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메뉴에 있는 음료 중 가장 칼로리 높고 가장 달달한 것으로 시켰고, 보란 듯이 휘핑크림도 추가했다. 사과 하나를 추가해 균형을 맞춰야 하나 아니면 아예 막 나가서 쿠키를 추가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애덤이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앗, 안 돼요. 아뇨, 아뇨, 이건 아니죠. 안 된다고요." 올리브가 그의 손을 자기 손으로 막으며, 목소리를 한껏 낮춰 덧붙였다. "내 것까지 계산하면 어떡해요."
애덤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면 안 돼?"
"우리 가짜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애덤은 놀란 눈치였다. "아니야?"
"아니고말고요." 올리브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나는 자기가 상남자라서 커피값 계산해야 한다고 믿는 남자랑은 죽었다 깨나도 가짜 데이트하지 않아요."
그러자 애덤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방금 올리브가 주문한 걸 '커피'라고 부르는 언어권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데."
"잠깐 …."
"그리고 내가 '상남자'라서 내는 게 아니라 …." 애덤은 그 단어를 뱉을 때 조금 괴로워 보였다. "올리브가 아직 대학원생이라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올리브의 월급을 생각해서."
올리브는 잠깐 동안 저 말에 불쾌해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머뭇거렸다. 평소처럼 재수 없음을 발산하는 건가? 나를 깔보나? 내가 가난한 줄 아나? 다음 순간 올리브는 자신이 실제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애덤이 아마 자기보다 다섯 배는 더 벌 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초콜릿 칩 쿠키와 바나나, 검 한 개도 추가했다. 애덤은 그답게 아무 말 없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총 21.39달러를 계산했다. -전자책 중에서
올리브와 애덤은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 연인인 척 하기로 한다. 조교인 올리브와 교수인 애덤이 연인인 걸 티내기 위해서 모두에게 보란듯이 그들은 매주 수요일 학교 내의 까페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기로 한다. 그렇게 하기로 한 첫날, 올리브가 주문한 커피와 간식값을 애덤이 낸다. 애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올리브보다 월급이 더 많기 때문이고, 올리브보다 월급이 더 많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올리브와 있으면서 커피값을 내는 것이 그에게 그렇게 커다란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올리브가 아니라도, 애덤이라면, 올리브 처지의 다른 사람과 있었을 때 역시나 커피값을 냈었을 거라고 본다. 올리브가 애덤보다 돈을 적게 버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올리브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올리브에게 다른 가족도 없다. 가족이라 부를만큼 친한 친구들은 여기 미국에 있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캐나다에는 의지할만한 사람이 없다. 올리브는 조교라서 돈도 적게 벌고 혼자라서 끼니도 잘 챙겨먹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와 섹스를 하기 위해 옷을 벗기 전, 내 갈비뼈가 드러나는 거 어떡하지, 하고 앙상한 자신의 몸을 걱정한다. 아직 애덤은 올리브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잘 모르지만, 그렇지만 일단 자신보다 월급이 더 적다는 걸 인지하고 커피값을 내준다. 커피와 함께 같이 산 간식들은 올리브에게 사흘 치 식량이 된다. 짧고 즐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올리브는 애덤에게 "사흘 치 식량 사줘서 고마워요." 라고 말한다. 그 후의 데이트에서도 애덤은 올리브에게 계속 간식을 사준다. 그것들이 그녀의 사흘 치 식량이 된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내가 이 책의 이 장면을 떠올린 것은 1월 1일에 본 핀란드 로맨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때문이다.
'안사'는 유통기한 지난 빵을 집에 가져가려고 했다는 이유로 다니던 슈퍼마켓에서 해고당한다. 이에 술집에서 설거지하는 일자리를 구했는데, 술집 사장은 '매주 월요일에 주급을 현금으로 주겠다'며 그녀를 고용한다. 드디어 첫 월급날이 되었는데, 안사의 사장은 마약밀매를 하다 걸려 경찰에 체포된다. 안사는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전부터 안면을 익혔던 훌라파는 안사에게 '커피 마시러 갈래요?' 묻는다. 어차피 지금 당장 가야 할 직장도 없고 그래서 안사는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지만, '그런데 나는 커피값이 없다'고 말한다. 훌라파는 자신이 커피를 사주겠다고 하며 그녀와 함께 카페로 간다. 둘은 커피를 주문했는데, 안사의 직장 사장이 경찰에 체포되어 주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훌라파는 '밥도 못먹었겠네요, 배고프죠?' 라고 묻는다. 안사는 그렇다고 답한다. 실제로 전기요금 낼 돈도 없어 집안의 모든 전기코드도 뽑아버렸던 터다. 훌라파는 그녀에게 빵 사줄테니 빵 먹으라고 한다. 그녀는 사양않고 일어서서 카운터로 가 빵을 하나 골라가지고 온다.
나는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매우 좋았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지만, 많은 경우 어떤 노동자들은 급여를 제때 받지 못하고 영원히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신고를 하기도 하고 어쨌든 빨리 급여를 받을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하는데, 급여를 제때 받지 못한 것 뿐만 아니라 일단 지급 급여를 받지 못하는 구직상태라는 걸 알면, 이미 근로활동중인 상대는 그 사람에게 밥 한 끼 사주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이 접근 방법은 훌라파의 접근 방법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라파 역시 가난한 노동자이다. 위험한 장비를 가지고 노동하면서 공사현장에서 제공해주는 컨테이너에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살고 있다. 게다가 알콜 중독 문제도 있다. 근무중에도 술을 마시다가 해고를 당한다. 어쨌든 그도 아주 가난하다는 거다. 훌라파가 한 사람을 만났고 '이번주 주급을 받지 못했다'고 할 때, '너 밥 못먹었겠다'를 바로 생각해낼 수 있었던 건, 만약 자신이 주급을 받지 못한다면 자신 역시 같은 처지가 되는 걸 아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 경우 상대가 '월급을 못받았어'라고 하면 바로 '너 밥 못먹었겠네'가 나올까? 를 생각해보면 그게 아닐 것 같은 거다. 훌라파는 안사를 혹은 안사의 사정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고 그리고 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이 안사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을 훌라파가 바로 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급 못 받았어, 너 밥 못먹었겠네? 빵 사줄게. 이런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그 전에 어떤 삶을 살아온걸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제 점심 먹으면서 이 얘기를 e 에게 하니, 내 얘기를 듣자마자 e 는 '그런데 너는 만약 내가 주급 못받았다고 한다면 바로 고기 사줄 사람이잖아?' 하는 거다. 맞다. 나는 고기를 사줄 사람이다. 배터지게 사줄 사람이다. 그런데 그건 이것과 다르다. 나는 e 가 내 앞에서 혹은 다른 사람이라도 내 앞에서 '월급을 못 받았어' 할 때, 대뜸 '밥 못먹었겠네'를 상상 할 수 없다는 거다. 이해는 반드시 경험에서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이해와 상상력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안사가 그 상황에 나를 만났다면 내게 밥 사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지금 안사가 배고플 것이다'를 내가 떠올릴 순 없었을 거라는 거다. 이게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거다. 나는 훌라파처럼 안사의 배고픔을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이게 너무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어떤 도움은 상상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훌라파가 했다.
마틴 에덴의 글이 팔리지 않아 코트까지 내다 팔아야할 정도로 가난했을 때, 그런 마틴 에덴이 밥도 못먹었겠구나, 라고 걱정하며 마틴 에덴의 밥을 신경써준 건, 마틴 에덴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 마틴 에덴의 굶어 홀쭉해진 모습을 눈치채고 밥을 챙겨준 건, 마틴 에덴보다 아주 약간 나은 형편에 있었던 하숙집 주인이었다. 자신이 먹일 아이들도 있고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했고, 돈이 없어 자신의 공간 한 켠을 하숙을 줘야 했던 하숙집 주인. 그런 하숙집 주인이 돈이 있다면 자기 먹기도 바쁠텐데, 어이쿠 마틴 굶고 있구나, 하고 마틴의 밥을 챙긴다. 굶는 마틴에게 필요한 사람은 밥을 주는 사람이지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건 밥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아무리 돈이 많은 연인이 있어도 내가 지금 돈이 없어 굶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없다면, 그 돈은 다 무슨 소용이람?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여자와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가 우정을 맺고 편지를 쓰는데, 서로 누가 더 가난한지 모를 정도로 가난하면서, 상대에게 돈을 빌려준다.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다른 사람에게 빌리면서까지도 상대가 혹여라도 밥도 못먹을까봐 돈을 빌려준다.
나 지금 돈이 너무 없어, 이번에 받아야 할 돈을 못받았어, 라고 말했을 때 '어, 너 그럼 밥을 못먹었겠네'를 생각할 수 있는 건, 부자 애인이 아니다. 애초에 부자 친구에게라면 '나 주급을 못받았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Hey, listen. By the way. It looks like I won't be able to pay rent up here this summer. Marianne looked up from her coffee and said flatly: What?
Yeah, he said. I'm going to have to move out of Niall's place.
When? said Marianne.
Pretty soon. Next week maybe. -p.123
코넬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간신히 렌트비를 댈 수 있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시간을 줄이자고 했고 그러면 렌트비를 댈 수 없어 사는 곳을 나와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코넬은 이에 메리앤에게 얘기한다. 그들은 자주 만나고 함께 지냈으니, 여기까지만 말했을 때 메리앤이 '오 그러면 나랑 함께 지내' 라고 말해주리라 기대한 까닭이다. 그러면 당장 머물 곳이 해결된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너랑 머물러도 될까, 를 묻지는 못한다. 함께하는 시간에 모든 비용을 메리앤이 다 댔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그것이 딱히 문제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너랑 머물러도 될까, 를 묻는 건 힘든 일이다.
메리앤은 메리앤대로 그가 나와 함께 머물 거라고 짐작할 수 없다. 메리앤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시달려왔지만 경제적인 상황은 여유가 있었다. 돈이 없었던 적은 없었으나 누군가 자신을 사랑할 거라는 확신을 갖는 건 어려웠다. 나 렌트비가 없어서 사는 곳을 나와야 해, 라는 말에 '나랑 있으면 어때?'를 메리앤은 상상할 수 없다. 너 그러면 엄마 집에 가겠네? 라고 대뜸 묻는 까닭이다. 코넬은 코넬대로 거기에 그렇다고 답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원망을 가진 채로 그들은 헤어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직접 일하지 않으면 잠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게 뭐든 부족한 적 없었던 사람은,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 없다. 자신이 가진 한계 안에서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음, 이상한 결론이지만,
나는 그래서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간절한 마음으로 상상력아 길러져라, 얍!! 해봤자 그런 게 될 리 없다. 매일 자기 전에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세요, 백일기도 드려봤자 갑자기 쿵-상상력이 내 머리에 내려앉지 않는다. 그렇지만 노멀 피플을 읽으면 아아, 이렇게나 달라서 이해를 못하네, 를 알게 되고, 마틴 에덴을 읽으면 아이고야, 마틴이 굶고 있는 걸 왜 모르나, 하게 되고, 사랑은 낙엽을 타고 를 보고나면, 아아, 저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정말 굶주릴 수도 있는 거야, 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어휴, 올해 본 첫 영화 때문에 가슴이 후벼 파졌다. 안사에게 배고프지? 를 물을 수 있는 훌라파라서 너무 좋지만, 나였으면 그렇게 묻지 못했을 거란 사실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