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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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여자대학교의 교수이다. 그녀는 똑똑한 제자 몇몇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인 '줄리아 스타일즈' 가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 어떠니, 제안하고 줄리아 스타일즈도 그걸 고려하는 듯 보였다. 무릇 똑똑한 여성들은 공부를 이어가야 할지니, 주저앉지 말지어다!


그러나 줄리아 스타일즈는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대신 그녀가 선택한 건 남자친구와의 결혼이며 결국 더 큰 도시로 나가는 것도 그만두기로 하는 것. 이에 안타까워진 줄리아 로버츠는 줄리아 스타일즈를 찾아간다. 그리고 재차 대학원 진학을 얘기한다. 이렇게 똑똑한 여성이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되는데, 라는 마음이 그녀에게 있다. 그러나 줄리아 스타일즈 역시 재차 거절한다. 그리고는 줄리아 로버츠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큰 도시로 가는 게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러나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이 동네에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주부가 되는 거라고. 이건 주저앉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장면이 굉장히 낯설고 놀라웠다. 우리가 어릴 적에도 현모양처가 장래 희망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는 정말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소원일 수도 있는 것이구나, 라는 걸 영화를 보면서 충격적으로 깨달았달까. 나 역시 줄리아 로버츠 처럼, 학업을 이어나가고 큰 도시로 가는 것이 더 마땅한 혹은 더 가치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 앞에 부끄러워졌다. 왜 내 가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걸까?


<소네치카>를 읽으며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혼란을 다시 느꼈다. 주인공 소네치카도 그리고 소네치카 인생의 중반부터 등장한 야샤도, 남자를 만나고 난 후 자신의 꿈을 다 잊은 혹은 잃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네치카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열심히 읽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딱히 이렇다할 사랑을 해본 적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지만, 책의 세계에 빠지면 그녀는 그게 그렇게나 좋았다. 책에서 기쁨을 얻고 책에서 위로를 얻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소네치카를 알아보고 그녀와 비슷한 남자가 청혼을 해온다. 그녀는 그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정말 행복했다. 가난했지만, 남편이 스무살이나 더 나이가 많았지만, 그녀는 일상의 모든 소소한 순간들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투잡을 뛰어 힘들게 일해도 그런데 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삶이 늘 행복이었던 거다. 게다가, 자신이 연민을 품게 된 소녀 야샤의 등장에서도 자신의 집 한 켠을 내어주며 그녀를 딸처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건, 천성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숱하게 책을 읽어오며 쌓아온 단단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배신감과 아픔이 찾아든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게다가 그 상대까지. 그녀는 슬프고 힘들다. 그러나 발악하고 우는 대신 다시 책을 꺼내든다. 역시 책이 그녀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를 준다. 지금 남편이나 딸이 줄 수 없는 것들을 책이 준다. 나는 다시 책을 찾아들고 위로를 받는 소네치카를 보면서, 대체 왜 그 책을 남자와 함께 살 땐잊은걸까 싶었다. 아니, 잊을 수 밖에 없었다는 건 안다. 가난한 삶에서 늘 일을 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는데 책을 읽을 시간이나 여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그런 한편 도대체 왜, 어째서, 그토록 좋아하고 기쁨을 주는 것에서부터 멀어지는 것을 기꺼이 선택하는가 싶기도 했다. 선택할 당시엔 그걸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너무 안타까운 거다.


야샤는 고아였다. 기꺼이 선량한 마음으로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그녀는 이 험한 세상을 홀로 살아내야 했다. 그녀의 나이 열두살 때부터 남자 어른들이 고추를 넣어가며 그녀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됐고,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이 지저분한 어른 남자들을 받아들인다. 세상은 이렇게 더러운 거라는 걸 어릴 때부터 알면서 혼자서 버티어낸다. 그런 그녀가 다니던 야간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고, 그 친구의 집에 초대 받아 간 순간부터 그녀는 그 집과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그동안 가져본 적 없었던 따뜻한 음식과 돌봄과 잠 잘 공간이, 무엇보다 친구 엄마의 환대가 너무 좋았다. 게다가 친 구 엄마인 소네치카는 집의 방 한 칸을 그녀를 위해 내어준다. 이제 여기서 자, 라고. 그런 그녀가 사랑에 빠진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외치느라 내가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칠 정도의 충격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지마, 안돼, 그러지마, 라고 내가 얼마나 많이 말했다고! 그러나 내가 그러지 말란다고 어디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듣던가. 결국 자신의 선택이고 또 뒤늦은 자신의 깨달음이 아니던가.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는 내 결핍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야샤가 선택한 사랑이 나로서는 이해 못할 것이지만, 그러나 야샤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필연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가 가져본 적 없던 아버지 같았고, 그는 그녀가 그간 경험한 고추만 밀어 넣고 이용하고자 한 어른 남자들과도 달랐다. 그래, 나는 정말 너무 싫었지만, 야샤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눈물을 머금고 '네 삶, 네 사랑' 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야샤도 역시 이 남자와 사랑을 한 후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더이상 꾸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바라는 건 자기 손가락의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나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싶어. 그녀는 배우가 되고 싶었었는데, 남자를 사귀고 나자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에 끼우고 싶다. 왜? 왜? 야샤, 당신은 배우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야, 왜 그 대신 다이아반지를 선택하는거야? 배우의 꿈은 사실 그렇게 큰 건 아니었던 거야? 그게 그동안 당신을 버티게 해주었는데, 이제와서 남자와 그 남자가 준 다이아 반지로 만족한다고?


나는 분했다.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억울했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분하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어이가 없는 건, 그 책을 읽는 '나'였던 것이고, 그 삶을 사는 야사도 소네치카도 아니었다. 야샤는 그 순간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이었고 소네치카도 그 순간 자신의 행복을 만끽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들의 선택이 혹은 그 삶이 안타까워 속을 끓였을지언정, 그러나 그녀들에게 감히 그러지 말라고 말할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내가 더 우선하는 가치를 그녀들에게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머릿속으로는 정말 이걸 원하는 여성들이니 그렇게 본인들이 행복하다면 된거지, 하면서도 내내 안타깝고 슬펐다. 사실, 지금도 조금 슬프다. 


그런 한 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가진 즐거움이 혹은 꿈이 단지 남자 하나뿐만은 아니라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여분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여분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하나는 안돼, 하나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내가 의지하고 기쁨을 찾는 것이 단지 하나뿐이라면, 그 하나가 내게서 지워지거나 사라진 순간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네치카에게는 책이 있었다. 상실감이 크게 덮쳐왔을 때 그녀는 놓았던 책을 다시 들 수 있었다. 그건 그녀가 책이 줄 수 있는 기쁨을 이미 아는 까닭이다. 야샤에게는 배우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녀 역시 사랑을 떠나보낸 후 다시 배우의 꿈을 꾼다. 다른 즐거움, 다른 꿈은 인생을 사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단단한 축이 되어준다. 사실 소네치카를 읽은 전반적 감상은 슬픔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시 여분의 것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안도도 함께 느낀다.



이 책에 실린 또 하나의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도 내게 슬픔을 준다.

왜 딸이며 손주들까지, 늘 존재했던 엄마(혹은 할머니)의 존재에 감사하기보다, 언제나 부재했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혹은 할아버지)의 존재에 기뻐하고 행복해한단 말인가. 지금 자신들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건, 없었던 그 남자의 존재가 아닌데, 늘 있었던 그 여자의 존재인 것인데. 그런데 그녀의 인생은 그전에 어떻게 흘러갔던가. 그리고 그 후에는?



나는 슬펐다. 슬펐는데, 

감히 내가 타인의 인생에 슬퍼해도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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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02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마저 찌그러진 게 와서 더 슬픈 다락방.........

다락방 2023-11-02 11:47   좋아요 3 | URL
괜찮아요. 내릴 역을 지나칠만큼 책에 빠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1-0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슬프다........ 야사한테 뭐라고 그러면서 ‘그러지 마‘ 하셨는지 그걸 좀 써주셔야겠어요. 이럴 수가 있나요, 진짜.....

다락방 2023-11-02 13:22   좋아요 0 | URL
저는 슬픕니다. 매우 슬픕니다. 역시 소설 읽기는 힘들어요. 내가 막 슬퍼버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23-11-02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0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02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11-03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집중력하면 이작가님~! 지하철역도 지나칠 정도였다니 ㅋㅋ

저는 어제 <소네치카>만 읽고 잤는데, 좀 안타까웠습니다. 소냐의 자존감이 쫌만 높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ㅜㅜ

다락방 2023-11-03 11:13   좋아요 1 | URL
저는 소네치카도 안타깝고 야샤도 안타깝고 ㅠㅠ 슬펐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olcat329 2023-11-0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네치카가 너무 불쌍해서 다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어요. 소네치카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생각도 들었구요. 야샤를 보면서 설마설마 했는데 역시나 해서 아...어찌 이럴 수가! 했답니다. 근데 정말 마지막 문장에서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아 맞아~소네치카에게는 ‘책‘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있었지...하구요. 근데 저는 이 책이 이상하게 잘 안 읽히던데(가끔 번역이 이해가 안가서요) 다락방님은 너무 집중해서 지하철역까지 지나치고 제가 커피 끊고 집중력이 많이 약해졌나봅니다.

다락방 2023-11-06 10:14   좋아요 1 | URL
저는 야샤 때문에 내릴 역을 놓쳤어요. 정말이지 간절한 마음으로 ‘그러지마‘가 되었었거든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이야기에요. 미성년자와 성인의 성관계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서 그러지마 그러지마 아니라고 해줘 막 이런 마음으로 읽다 보니 내릴 역을 지나쳤습니다. ㅠㅠ

왜 그 남자는 자신이 원하던 여성들 모두와 사랑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예술)도 계속해나갔는데, 왜 그를 사랑한 여자들은 그를 돕는 역할이었나, 를 자꾸 생각하고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속상했어요. 그러나 그 당사자들은 그 시간을 좋아했다고 하면,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거겠죠. 아 너무 안타깝고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