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못찾은 자아가 인도 간다고 찾아지냐'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나 역시 여기서 찾지 못한 걸 다른 곳에서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게 진실이나 진리 혹은 참이라기 보다는 내 생각 역시 그러했다는 거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자아 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여기서 못찾은 걸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건, 내가 스스로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여행다녀온 후의 내가 여행 전의 나와 다를까? 나는 당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여행의 시간에서만큼 이곳에 머물면서 흘렀다면 마찬가지로 나는 그 시간만큼의 차이가 나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만, 그러나 공간이 달라졌을 때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일상은 다르고, 그로 인해 나는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기도 하는 거다.
어떤 극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달라지길 기대하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전에 알지 못했던 걸 지금은 아는 사람이 된거다. 거창한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나는 이 변화가 즐겁다. 그러니까,
영어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채로, 대문자와 소문자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채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한글은 누구보다 빨리 떼고 초등학교에 진학해서 60명 이상되는 아이들 중에서 독보적인 아이었지만, 그러나 영어는 A, B, C, D 도 모르고 갔던 거다. 언젠가 이곳에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나는 I am Insu. 라는 문장을 앞에 놓고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아이 엠 인수가 나는 왜 인수라는 건지를 도대체 모르겠는거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아이 엠 인수가 '나는 인수다' 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영어는 공포였다. 무서움이었다. 영어는 주요과목이라 수업 시간도 많은데, 영어 때문에 학교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영어 선생님은 어찌나 무서운지, 수업 시작하자마자 아무나 불러세워 나는 너의 친구다, 같은거 영작해보라고 시키는 거다. 다 교과서에 나오는건데 나는 friend 를 왜 프렌드라고 읽는지에 대한 기초가 완전히 전무했던 사람이라서 이 모든 순간들이 무섭고 긴장됐다.
국민학교 때도 전과 없이 숙제를 했고 모르는 건 다 엄마가 알려줬더랬다. 그러나 6학년이었던가 5학년이었던가, 어느 순간 엄마는 내가 묻는 것에 답해줄 수 없게 되었고, 그제야 나를 헌책방에 데려가 전과를 사주셨더랬다. 중학교 1학년때도 헌책방에 가 영어 참고서를 사주셨는데, 표지도 없는 헌참고서를 앞에 두고 나는 울었다. 영어 수업은 계속 돌아오고 아이 엠 인수는 왜 나는 인수라는 건지 모르겠고. 그리고 내겐 이 물음에 답을 줄 사람이 없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반에 영어 선생님이 묻는 모든 질문에 앞서 대답하는 똑똑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 철자 수업이나 발음 수업은 어려움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어느 쉬는 시간에 그 아이에게 가서 '너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해?' 물어보았더니, 그 아이는 과외를 한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나도 영어 과외 하면 안되겠냐, 학원 다니면 안되겠냐 물어보았는데, 엄마는 혼자 해보면 안되겠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영어를 모르고, 못하는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거다.
엄마는 나름 어디서 팁을 듣고 오셔서 '팝송을 많이 들으면 영어를 잘한대' 같은 말을 전달해 주셨지만, 영어를 모르는 내게 팝송이 즐거울 리도 없고 듣고자 하는 의욕이 있을 리도 없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friend 를 프렌드로 발음해주면, 그걸 잽싸게 교과서에 프 렌 드 라고 받아 적기 바빴다. 안그러면 읽을 수 없었으니까. 나는 숫제 '발음기호'라는 말 자체를 이해를 못했더랬다. 그런데 그 무서운 영어 선생님이 전근을 가셨다.
1학기를 채 마치지 못했는데 선생님은 의사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간다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갓 부임한 아주 젊은 여자선생님이었다. 당시 기억하기로 25세 였던 것 같다. ㅋ ㅑ 꼬꼬마네. 이 선생님은 처음인만큼 전혀 무섭지 않았고 대답하지 못한다고 혼내지도 않았고 그렇게 내 영어점수는 더 바닥을 친다. 선생님 무섭고 혼나기 싫어서-나는 선생님한테 혼나본 적이 없어서 혼난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교과서 달달 외워 영어 수업을 준비했던 터라, 무섭지 않은 선생님앞에서 긴장이 풀어진거다. 선생님은 대답 못하는 아이들에게 딱히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당시 유행하던 '장국영' 의 <to you>가사를 칠판 가득 적으셨고, 그걸 들려주시며 우리에게 따라 부르게 시키셨다. 수업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따라했지만, 어느 순간 어느 부분이라도 따라 할 수 있는 내가 좀 좋더라. 신났다. 그리고 1학년 겨울방학. 방학이면 으레 외할머니 댁에 갔고 거기엔 외삼촌과 이모가 있었다. 어느 밤, 발음기호를 모른다는 나에게 충격받은 외삼촌이 나를 앉혀놓고 새벽 두시까지 발음기호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는 그 날밤, 발음기호를 모두 외웠다. 삼촌은 사전의 아무데나 펼쳐놓고 읽어봐, 읽어봐 했고. 그때마다 번번이 나는 발음기호를 보며 다 읽었더니 삼촌이 폭풍칭찬을 해주었다. 다음날 삼촌은 우리 락방이는 보통 천재가 아니라고, 하루만에 발음기호를 마스터했다고 모두 앞에서 얘기했다. 그러자 이모는 '그건 그냥 다 외우는 거 아녀?' 했고 …
그때부터 나의 팝송 라이프가 시작됐다. 엄마에게 부탁하면 엄마는 리어카에서 파는 싸구려 카셋트 테입을 사다주셨고 나는 열심히 들었다. 친구 오빠의 팝송 테이프도 복사해서 열심히 들었다. 가사가 있는 건 가사를 외우고 해석하면서 즐거웠다. 영어 듣기평가 만점의 시대가 열렸고 어휘력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영어선생님으로부터 '너 영어 선생님 해라 '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문법책을 본 적이 없었다. 성문 기초영어? 맨투맨 기초영어? 공부 못하는 애들도 한 번씩 다 본다는 그 문법책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거 보는 애들보다 내가 영어를 더 잘했다고 나는 당시에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아이들이 어학 연수를 다녀온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시간이 흘러 어떤 아이들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들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급격히 위축되고 어느 순간 나는 다시 영어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잘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으나 포기해버린, 영어 못하는 나.
그런 내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water 가 물인 거 알고 danger 가 위험인것도 알고. 여행을 못할게 뭐람. 나는 내가 아는 단어들을 동원해서 여행을 다녔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지 묻는 것쯤은 할 수 있으니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노 프라블럼. 그렇게 뉴욕을, 홍콩을, 싱가포르를, 중국을, 마카오를, 베트남을, 괌을, 체코를, 영국을, 포르투갈을, 네덜란드를, 벨기에를, 러시아를, 룩셈부르크를, 말레이시아를 갔다. 영어를 잘해서 간 게 아니라 영어를 못하지만 갔고, 영어를 못하지만 갔더니, 어떤 영어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호텔 조식의 오믈렛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인데, 야채들과 햄과 치즈들이 놓여있고, 셰프는 뭘 넣어줄까? 묻는다. 나는 다 넣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all"
이라고 말하자 셰프가 고쳐주었다.
"everything?"
나는 그 때 알았다. 아, 이럴 때는 에브리씽이라고 하는구나.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갔을 때 주문을 마쳤다 싶으면 직원이 물었다.
"That's all?"
나는 그렇다고 말하며 그 다음부터 레스토랑에 가 주문을 마치면 댓츠 올, 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럽의 어느 나라들에서는 댓스 올 이라고 말하면 내게 'That's it?" 하고 되물었다. 아, 어느 곳에서는 댓츠 잇이라고 하는구나. 작년 네덜란드 에서는 댓츠 잇을 많이들 하길래 이번 네덜란드에서 댓츠 잇을 써야지, 하고 잘 써오다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나도 모르게 댓츠 올을 했는데 직원이 댓츠 올? 하고 내 주문을 받고 가더라. 아, 댓츠 올도 통하는구나. 그렇게 하나 또 쌓였다.
식사를 마치면 피니쉬 라고 말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비단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에서 사람들은 에브리씽 이즈 오케이?를 묻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 뉴욕에 가 지하철 티켓을 사면서 "two people" 이라고 말했는데 직원은 내게 "two persons?" 라고 되물어주었다. 아, 이럴 때 쓰는 건 피플이 아니라 퍼슨스 구나. 나는 외출 후 객실 청소를 부탁할 때 make up room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런것들을 알게 된 게 너무나 좋다. 정말 사소한, 모르고 살아도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을 것들이지만, 그런데 이런걸 모르는 것보다 아는 내가 되어 있는게 좋다. 나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여행을 한 게 아니었는데, 여행을 했더니 영어 공부가 되어 있었다. 내겐 독서도 그랬다. 공부하기 위해 독서를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는데, 왜냐하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공부가 되어있었던 거다. 정말 재미있어서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는 행위자체가 나에게 모르던 걸 알려주는 게 아닌가. 책속의 많은 것들을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해도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읽은 후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다. 여행이 내게 책읽기처럼 그걸 해준거다.
오래전 친구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했었다. 그 때 친구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무슨 소리야, 너 여행 좋아해!'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니야, 나는 호텔에 가는게 좋고, 호텔 조식이 좋고, 낯선 데 가는게 좋은거야 했더니 그때 친구들이 말했다.
"그게 여행이잖아!!"
아? 나는 대체 여행을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여행을 뭐라고 생각했기에 늘 여행을 다니면서도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걸까?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 후에 이제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나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항상 여행을 갈 때면 혼자든 친구랑 함께든 '유명하다는 어딜 가보자' 보다는 '그곳의 거리를 무작정 걸어보자' 쪽인데, 내가 원하는 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걷고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걸 보는 거였고, 그곳에 나를 두는 거였다. 얼마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에서 가이드가 '관광객이 되지 말고 여행자가 돼라'는 말을 했더랬다.
'관광객은 삶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여행자는 삶을 경험하길 원하죠.'
확실히 나는 관광객 보다는 여행자였고, 그래서 내게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서 레스토랑엘 가고 거리를 걷고 서점에 가고 마트에 가고 우체국에 가는게 기쁨이었다. 새롭고 낯선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에서, 혹시라도 내가 뭘 몰라서 실수하진 않을지, 제대로 못하진 않을지 번번이 긴장하고 쫄긴 하지만, 그래봤자 사람 사는곳인데 어떻게든 물어서 해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이모도 '너는 그냥 어디에 데려다놔도 잘 살겠네'라고 내게 말했다. 정말 사소하고 누가 들으면 '그게 뭐야' 라고 야유할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낯선 나라에서 버스를 타보았다는 게, 지하철을 타보았다는 게, 기차를 타보고 트램을 타보았다는 게 좋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그러다 막히면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어떻게든 목적지에 닿았다는 게, 목적지에 닿기까지 멈춰서며 주변을 둘러보고 그러다 흥미로우면 들어가보곤 했던 것이 좋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게 다 기억속에서 희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그런것들을 해본 사람이라는 것이 내게 남는다.
나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니 완전히 변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게 아니다.
낯선 곳에 다녀오기 전의 나와 다녀온 후의 내가 아주 조금은 달라졌다는 거다.
그 달라짐은 아주 작고 사소하고 미미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결코 띄지 않으며 다른 사람은 알아챌 수도 없을테지만, 그러나 내가 안다. 나에게 낯선 곳으로 잠시나마 다녀온 경험은 순간의 긴장과 두려움을 당연히 감당하고서라도 최종적으로 기쁨과 행복으로, 그리고 그전보다 뭔가를 더 아는 경험과 습득으로 남아 있다. 내가 뭘 얻기 위해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다녀오고 나면 무언가 더 가진 기분이 된다. 나는 내가 낯선 곳에 다녀오고 싶어했으며, 그래서 다녀왔다는 것이, 다녀온 후에 내가 그전보다 알게된 아주 작은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자지러지게 좋다. 세상에, 이번에 이런 것들을 알고 경험하고 왔는데, 다음에 다른 곳에 가면 나는 또 무엇을 경험하고 알게 될까? 너무 기대가 되어서 얼른 또 떠나고 싶어진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여행으로부터 뭔가 듬뿍 담아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결국 달라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