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터브먼'이 억압당하는 환경에서 탈출해 도착한 곳은 북부였다. 그곳에 도착한 후 여전히 학대당할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 생각에 다시 남부로 돌아가 그들의 탈출까지도 돕는다. 남부는 노예제가 있는 곳이었으나 북부는 노예제가 없는 곳이었으니 해리엇 터브먼이 북부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부는 그녀에게 그리고 다른 흑인 노예들에게 천국이었을까?

















북부 자체가 인종주의에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는 전에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해도 1863년 폭도들의 폭력 행위는 흑인에 대한 적개심이 깊고 넓으며 목숨을 앗아갈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부가 노예제를 독점했어도 혼자서 인종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p.117



북부는 천국이 아니었다. 북부는 노예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흑인과 백인을 평등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장소. 다음장인 119 쪽에는 '남부가 인간의 권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동안 북부는 자유를 돌로 쳐 죽이고 있는 자들의 의복을 들고 그 옆에 서 있었습니다' 라는 앤젤리나 그림케의 말이 인용된다.


이 부분에서는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뿌리깊은 여성혐오와 강간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분명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자는 남자들 전체가 아니라 일부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자가 있기 때문에,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남자는 상대적으로 '교류가 가능한 좋은 남자'가 된다.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사항이어야 하는데, 이것에 대해 그 가치가 좀 더 높아지게 되는 것. 폭력이 발생하면 그 폭력이 진행되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불러올 때, 그건 폭력에 직접 가담하는 사람들만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주변에 그것을 보면서도 모르는 척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주먹을 들고 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선한 사람인가? '디 그레이엄'은 자신의 책, 《여자는 인질이다》에서 이에 대해 얘기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성폭력을 가함으로써 남근이 여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확립되면, 남자는 일상적으로 여자와 상호작용할 때조차 이런 폭력에서 이득을 얻는다. 그저 자기는 남근이 있고 여자에겐 여근이 있다는 걸 환기하기만 해도 우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성폭력을 가해서 남근이 위고 여근이 아래라는 생각을 주입하는 남자는 일부지만, 결국 일부 남자의 폭력이 늘수록 모든 남자가 더 큰 이득을 보게 된다. - 《여자는 인질이다》, 디 그레이엄, P.171









분명 성폭력이 일어나는 세상을 손놓고 바라보는 남자들은, 그로 인해 이득을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예제가 일어나는 세상을 손놓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이득을 보고 있다. 저기에서 흑인들은 노예로 살아, 그런데 여기서는 니네 노예로 안살잖아, 얼마나 좋으니?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갑자기 그것이 기본 셋팅이 된다. 기준이 낮아져 버리는 것. 그 낮아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선다. 가만 있어도 격차가 벌어지며 나는 노예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다. 



철수와 영희가 만났는데 철수가 순이에 대한 험담을 한다면, 영희는 순이를 한 번 본적도 없지만 그 험담이 머리에 박힌다. 나중에 순이를 보았을 때 순이의 어떤 실수를 목격하게 되면 '아 역시 순이는 듣던대로 구나' 라고 지난번 들었던 험담을 끄집어내 매치시킨다. 


어떤 사람을, 어떤 성별을, 어떤 인종을 특별히 더 열등하다고 누군가 발화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그 반대편의 사람들은 가치가 올라간다. 그 인식은 내가 직접 발화하지 않아도 스며든다. 그렇게 스며드는 편견과 차별로부터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것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발화를 직접 뱉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흑인은 노예로 살아갈 정도로 열등해, 라는 말을 듣고 마는걸로 그친다면 내 안에 그 사고는 스며든다. 그러나 니네가 노예로 살게 만들어 놓고 노예밖에 못한다고 하는 건 너무 멍청하지 않니? 라고 내뱉으면 상대의 생각이 내게서 튕겨져 나간다. 혐오의 발언이 없는 세상이 되는 게 궁극적으로 좋은 세상이겠지만, 어떤 인간도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혐오의 발언들에 그렇지 않다고 맞서는 것으로써 무효화 시키는 게 아닐까. 


사실, 남부에 노예제가 있었고 북부엔 없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북부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북부도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운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렇지, 그렇겠지 하게 된것이다. 나야말로 한 쪽이 나쁘니까 다른 한쪽을 자연스레 올려치고 있었어.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거다. 오, 신이시여. 이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발화해야 한다. 내가 자꾸 발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 발화들 중 일부는 분명 혐오일 것이고, 멍청함일 것이지만, 그렇게 드러내야 수정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됐다면 내가 잘못된 걸 드러내야 고칠 가능성이 생기는 거다. 



그런 한편, 나는 노예 해방에 함께했다가 분노로 들끓어 등돌렸던 백인 여성들에 대한 비난에 이 책의 앤절라 데이비스 처럼 동조하고 싶진 않다.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들의 해방을 돕기 위해서라도 내게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렇게 한뜻으로 노예 해방에 앞섰는데, 해방이 되고 일어난 일이 흑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평등권협회가-연방선거에서 투표권을 부정당한 남자 시민의 수에 맞춰 의회 대표자 수의 할당을 삭감하기로 한-수정헌법 제14조의 통과를 지지하기로 결의했을 때 이 백인 여성들은 깊은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협회가 투표를 통해-시민의 투표권을 부정하기 위한 근거로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과거에 노예였다는 사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하는-수정헌법 제15조를 지지하기로 한 뒤에는 내부 마찰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거친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분출되었다. 엘리서 플렉스너의 표현에 따르면,


(스탠턴의) 울분 그리고 앤서니 양의 그 울분은 한도를 몰랐다. -P.129



물론,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주장한 것처럼, 노예 제도가 없어졌다고 해서 흑인들이 갑자기 잘 살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를 조금이라도 획득할 수 있으려면 그들에게 투표권이 있어야 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정헌법에서 투표권을 부정하기 위한 근거로 댈 수 없는 사항이 '인종', '피부색', '노예였다는 사실' 이라니. 여기에 성별이 없다니. 그러니까 나는 내 성별로 인해 여전히 투표권을 받을 수 없다니. 나도 화가 나는데? 나도 울분이 생기는데? 그런데 내 앞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 차별에, 수정할게 라고 말해놓고 수정한게, '그래도 너는 아직 아니야' 라니. 이런 상황 앞에 어떻게 내 울분에 한도를 정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만큼 분노를 표현해야 적당한 분노가 될까? 


앤절라 데이비스는 이 백인 여성들을 비난한다. 왜냐하면 이 여성들이 결국 울분에 가득차 자신 안의 인종주의를 드러냈기 때문에. '우리도 안줄거라면 쟤들도 주지마!' 라고 말했으니까. '어차피 남자들만 가질거라면 그러면 우수한 남자들만 줘!' 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들안의 인종주의와 계급주의를 드러내는 이 발언으로 인해 그들이 주장한 평등은 결국 자신들을 위해서였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백인 여성들은 인종주의를 가진 분노하는 여성들이 된다. 평등에 대한 생각에 가진 그러나 울분에 대한 한도를 모르는 여성들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여성들에 대한 비난에 동조할 수가 없다. 이 여성들이 결국 '왜 우리는 아직 안된다는 거야!' 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인종주의를 드러낸 것이 물론 칭찬받을 행동은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잘못한건가? 결국 이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노예 해방도 힘을 얻었는데, 그들이 나중에 인종주의를 드러냈기 때문에 욕먹어야 하는걸까? 


물론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말한것처럼 일단 가장 힘없던 노예들, 학대받고 린치당하던 이 노예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시급한 일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백인 여성들은 학대당하거나 린치를 당하지 않으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자고 하는 말이 어떻게 틀릴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백인 여성이 자신들의 투표권 없음을 자각하고 그것을 요구한다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들에겐 그녀들이 그 상황에 놓인 당사자들이었다. 제삼자가 멀리 떨어져서 '야 너 결국 인종주의 드러내네? 너 왜이렇게 분노가 많아, 일단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서 너네들 해준다니까' 라는 말을 하긴 쉽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정의와 올바름을 부르짖을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라면 머릿속에서 냉철하게 정리하고 두루 포용하는 게 쉬울까? 응, 맞아 너네 너무 괴롭지 그러니까 너네 먼저 투표권 줄게, 자 그 다음은 어디가 괴롭니, 우린 아직 그만큼 까지 괴롭진 않으니까 우린 그 다음으로 미룰게, 아이쿠야 너네도 너무 괴로워? 그래 그러면 이번엔 너네가 먼저.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난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아마도 그런 사람이 포용력 있는 사람이며 정의로운 사람일 수도 있겟지만, 난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울분은 한도를 몰랐다'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 너무 싫다. 내 울분의 한도를 누가 정하는건데?




책의 처음 정희진의 해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누구와의 평등을 지향하는가? 흑인 여성은 누구와의 평등을 지향하는가. 백인 여성, 흑인 남성, 백인 남성? 노숙자, 이주민, 미셸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노숙자나 불법 이주민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평등해지기보다는 난민과 가난한 이들과 내 경험을 공유하기 원한다. -P.26



나는 세상에 결코 완전한 그리고 완벽한 평등은 있을 수 없을거란 생각을 한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천 년후 만년후에 가능해지거나 혹은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 다 죽고 다시 태어나면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평등을 위해 싸운다고 할 때, 내가 주장하는 평등 혹은 권리는 다른이가 생각하는 것과 충돌할 수 있다. 다른이의 것과 충돌했을 때 나는 별로 한 발 물러서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이 다른 이의 불편함과 취약함은 아니다. 그건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여성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부르짖을 때 그런 나에게 야 환경 운동도 같이 해야지, 야 동물권도 보호해야지 너는 너만 중요하냐? 라며 다른 것들을 함께 해나가길 바라는 말들을 듣고 그 모든 걸 끌어안고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가 있고 내 에너지는 그 쪽을 향하도록 할것이다. 세상에 바꿔나가야 할 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모두들 자기가 가장 우선시하는 게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걸 하면 된다. 그런 과정에서 함께 해내자고, 연대하자고 손을 뻗을 때 손을 잡는 건 상대의 몫이다. 나 역시도 내가 중요한 의제를 위해 행동하다가 음, 그렇지만 이것도 내가 무시할 순 없지 하고 옆으로 가지치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분노가 튀어나오거나 혐오나 차별의 말들이 나도 모르게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고. 



물론, 나는 내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혹은 평등을 외침으로써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깎아 내리고 싶진 않다. 저 백인 여성들이 결국 인종주의를 드러냈을 때, 그들도 아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강한 울분은 결국 그들의 무의식을 드러냇을 것이고, 그건 인종주의가 맞았다.

나는 내 울분에 가득차도 내 안의 차별과 혐오가 바깥으로 튀어나오길 바라진 않는다.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지금 여기에서 저런 일들에 대한 책을 읽었기에 가능해진 부분도 있다. 뭐가 됐든 나는 저 울분에 찬 백인 여성들을 향한 비난에는 내 비난까지 더하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의 5장까지 읽었다. 나머지도 열심히 읽어보겠다.



한국여성의전화, 사단법인 비투비, 엠네스티 전쟁피해여성 지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유니세프

나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단체에 매달 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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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2-17 0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이 페이퍼 너무 좋아서 두 번 정독했어요. 읽고 생각해보니 저 역시 북부를 은연 중에 올려치고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여기에서 확장해서 남근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널리널리 퍼지면 다수의 남성들이 얼마나 이득을 보는지/그만큼 여성들이 얼마나 피해를 볼지까지 이어지는 사고에 이분 천재 아닌가 박수쳤음요.. 그리고 평등이 불가능하단 말에도 동의요.. 싸워야할 전선은 너무 많은데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결국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우위를 둘 수밖에 없다는 점에 엄청 공감했어요.. 일례로 유니세프나 세이브더칠드런 기부한다고 했을 때 그럼 한국 애들은? 노인은 안 불쌍하고? 라던가 제가 채식을 하는데(한때 완전 비건, 이제 아닙니다) 그때 식물은 안 불쌍해?? 이런 얘기 들으면서 저는 짜증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죄책감 들었거든요.. 근데 한 인간이 정말 그많은 전선에서 모든 싸움을 다 할 수는 없죠..ㅠㅠ

다락방 2023-02-17 13:58   좋아요 3 | URL
사실 이 글 쓰면서 이 글을 좋게 읽을 사람들이 많진 않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걸 각오하고 쓴 글이었는데요, 이렇게 책먼지 님 가장 먼저 두 번 정독했다 말씀해주셔서 좀 안심도 되고 마음도 놓이고 그랬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책먼지 님.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비난도 돌아가지 않는데, 무언가 하는 사람에게는 더 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쉽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진짜 너무너무 싫어요. 저의 이런 생각과 성격이 이 책을 만나니 이런 식의 글이 나오게 된 것 같고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 하자고 생각합니다. 책먼지 님, 화이팅!!

단발머리 2023-02-17 1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너무 좋아서 저도 두 번 읽었어요. 노예 해방 운동과 참정권 이야기도 그렇구요. 혐오의 발언이 갖는 힘을 누리는 ‘또 다른 편‘에 선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각각 다를 때, 그걸 어떻게 합의해 가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저도 얼른 페이퍼 써야지 하는데 ㅎㅎㅎ 책이 흥미로워서 그냥 읽고만 있네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다락방 2023-02-17 14:01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 님, 제가 위의 댓글에도 답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욕 먹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무언가 하나를 하게 되면 더 하지 않았다고, 더 잘하지 못했다고 쉽게 욕을 먹고 내팽개쳐지는 것 같아요. 이만큼 해온걸 생각하기보다 왜 저만큼 더하지 못했어? 가 되는 거죠. 저는 늘 그런 비난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책 읽는게 어렵지 않아서 놀라고 있습니다. 왜 어렵지 않은지 모르겠는데 잘 읽혀요. 2월 얼마 안남았지만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님도 계속 읽고 돌아오세요. 화이팅!!

청아 2023-02-17 14: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미국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싶더라구요.
왜 아직까지 흑인들이 경찰한테 어처구니 없게 목숨을 잃는지,
그런 흑인 남성은 왜 코로나때 중국인 여성을 때렸는지. 공부가 되고 자극이 되는 내용이었어요

다락방님 역시 또 하나의 관점을
이렇게 몰입도 있게 써주시니
읽으면서 또 즐겁네요 페이퍼 많이 써주실것 같아요^^*

다락방 2023-02-17 16:02   좋아요 3 | URL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미미 님. 다른 책들보다 더 쉽게 읽히는 것 같아요. 아직 5장까지밖에 못읽었지만 앞으로 남은 내용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더불어 인종과 여성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여성을 욕하는 무리에 동참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성을 욕하는 일이 생겼을 때 제가 동참하지 않아도 이미 그 여성은 너무 많은 욕을 먹고 있기 때문에요. 아마 그런 저의 성향이 책을 읽을 때에도 반영이 되고 있겠지요.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2-17 2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부의 노예해방은 값싼 노동력을 구하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고요. 심지어 우리가 잘 아는 대통령 링컨 역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노예제 찬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정치가로서 개인적 신념과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지요. ㅎㅎ
저는 다락방님이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지만 그래도 투표권을 두고 백인 여성들이 흑인 남성과 싸우는 쪽을 선택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의 비난도 한웅큼 같이 올리고 있습니다. 뭐 오래전의 일이고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일이니 사실 다락방님처럼 그 여성들이 느꼇을 절망과 분노에 더 공감해도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약자가 약자들끼리 싸우는 일은 너무 많잖아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싸움, 이대남과 이대녀의 싸움, 진짜 적은 저기 있는데 우리는 힘든 이들이 더 힘든 이들과 싸우는 형국이잖아요. 그래서 여성의 투쟁에 대한 다락방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한마디 이렇게 걸치게되네요.

다락방 2023-02-20 09:0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바람돌이 님. 애초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던 백인 남성들이 투표권을 자기들만 가지려고 생각했던 게 아니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죠. 노예제 해방 당시에도 이 책에서 공화당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투표권으로 싸움 붙이는 건 이미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었잖아요. 그런데 흑인과 백인 여성이 싸우게 되어버렸죠. 그리고 백인 여성의 인종주의는 욕을 먹는 것이고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여성들을 비난하는 걸 이해하고요, 아마 이 책을 읽을 많은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살았다면 제가 어떤 발화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이미 충분히 욕먹었고 또 욕먹을 여성들에게 제 욕까지는 더하지 않기로 저는 선택한 거지요.

언급하신 링컨에 대한 건 제가 분명히 어디에서 봤는데.. 그게 어디더라, 시사인 이었나... 어딘가에서 봤거든요? 링컨이 세상에 알려진대로 노예 해방을 원했던 사람이었던 게 아니다, 라는 걸요. 그런데 그게 어디인줄은 모르겠네요.

[여성, 인종, 계급]은 잘 읽혀서 오늘 내일 중으로 페이퍼를 또 하나 작성할 예정입니다. 2월이 이제 얼마 안남아서 초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