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신의 글에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서의 인물은 독자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랑에 빠지게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인물을 만들어낸 것은 그 글을 쓴 작가이다. 샬롯 브론테의 《교수》를 읽으면서 샬롯 브론테가 여성이면서 굳이 남성인 화자를 만들어낸 이유는 뭘까, 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읽다보니 이 남자인 '윌리엄 크림즈워스'는 여느 남성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질에 굴복하지 않고 꼿꼿함을 유지하려고 하며 여성을 트로피 취급하지도 않는 남자였다. 네가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나는 너처럼 이중적인 여성은 싫어, 네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너같은 폭군 밑에서 자존심을 구기며 일하지 않을거야. 윌리엄의 꼿꼿함은 그런 식으로 드러나는데, 나는 읽다가 '샐리 쏜'의 《헤이팅 게임》속 인물 '조슈아' 생각이 났다. 내가 그 로맨스 소설을 읽고 조슈아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은, 그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을 만들어내는 강한 남자였는데, 게다가 일도 성실히 하고, 여자를 성적대상화 한다거나 유희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진지한 관계를 고려하는 남자였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나는 어김없이 알고 있었다. 그 조슈아는 실존하는 조슈아가 아니고, 눈돌리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남성 캐릭터가 아니고, 그 조슈아는 여성 작가인 샐리 쏜이 '만들어낸' 캐릭터라는 것을.


샬롯 브론테의 윌리엄 크림즈워스는 그런 캐릭터였다. 여성 독자인 내가 딱히 흠잡을 데 없는, 불쾌한 지점을 가지지 않은 캐릭터. 폭력적이지도 않으며 여성을 인간으로 대하려고 하는 캐릭터. 확실히 불쾌하지 않은 남자 캐릭터는 여성 작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걸까, 그렇다면 그게 가능한 이유는 여성이 바라는 남성상을 그 안에 녹여내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윌리엄 크림즈워스의 '불편하지 않은 남성'에 대해 생각했다면, 그것을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는 '양성적' 이라고 표현했다.



크림즈워스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이 어느 정도 양성적이었기 때문에 사회 부적응자로 인생의 첫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p.580



윌리엄이 양성적 캐릭터라는 것은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만 했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교수를 다 읽고 뒤의 작품해설을 읽을 때, 옮긴이 '배미영'의 해설에서도 언급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윌리엄과 프랜시스라는 두 명의 남녀가 주인공이지만 사실 이 둘은 한 인물의 두 가지 특성을 분리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윌리엄은 남자 몸을 한 프랜시스이고 프랜시스는 여자 몸을 한 윌리엄이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윌리엄의 심리는 프랜시스의 심리와 흡사하고, 프랜시스가 간혹 드러내는 불 같은 열정은 윌리엄을 떠올리게 한다. 윌리엄은 프랜시스를 통해 자신의 성(性) 아래 억눌려 있는 여성적 정서를 표출하고, 프랜시스는 억압된 남성적 야심을 윌리엄을 통해 표출한다. 윌리엄프랜시스가 훨씬 상식적인 관계이기는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의『워더링 하이츠』(1847)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마치 둘로 나누어진 한 몸처럼 독자에게 각인되는 정황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첫 소설에서 남녀 각각 둘로 분리되어 재현된 인물들은 작가의 마지막 발표작인 『빌레트』에서 하나의 여성 인물 루시 스노로 구현된다. - 《교수》, 샬롯 브론테, P355 (작품해설 中)



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된다. 오래 전에 읽은 《제인 에어》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젊은 시절 내가 제인 에어를 읽고 느꼈던 것은 '사랑에 대해 당당하게 대처하는 로체스터' 였다.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 나는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지점이 내게는 아주 놀라웠다. 혹여라도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진 않을까 뒤로 물러설 상황에서, 로체스터는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라고 했던 거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다시 읽게 된다면 내가 새로이 받아들이게 될 것 같고, 이 부분에서 여성의 돌봄노동을 기대하는 지점에 대해 비판할 여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다시 교수로 돌아오면,



샬롯 브론테가 만들어낸 여성주인공 '프랜시스 앙리'는 고아이며 가진 돈도 없고 브뤼셀에 거주하는 반은 스위스인 반은 영국인인 여성이다.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그녀의 위치는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고, 그 학교의 교장은 그녀를 멸시한다. 게다가 그런 보잘것 없는 여성에게 윌리엄이 관심을 갖자, 교장은 프랜시스를 내쫓기까지 한다. 교수, 샬롯 브론테의 이 작품에서 가장 뿌듯하고 놀라운 지점은 프랜시스 캐릭터의 웅변이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의 부당함을 인지하고, 밝히고, 요구한다. 그것이 계속 '선생님'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녀는 결혼 후에도 그 호칭을 고집한다- 남성에 대해서도 발현되는데, 남성이며 나이도 더 많고 돈도 더 많이 버는 남성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샬롯 브론테가 만들어낸 여성 캐릭터, 그리고 이야기를 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인지하고 그래서 앞으로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다.


「글쎄요, 선생님, 별거 아니에요. 스위스에서 저는 무언가를 하긴 했지만 별건 아니었고, 배우기는 했지만 너무 적었고, 보긴 했지만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곳에서의 제 삶은 고리처럼 닫혀 있었어요. 저는 매일같이 같은 길을 걸어 다녔고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가난하고 재주가 없었으니까 죽을 때까지 거기 그대로 있었다 해도 저는 결코 그걸 넓힐 수가 없었을 거예요. 배운 것도 별로 없었어요. 이런 되풀이되는 생활에 완전히 지쳐 버렸을 때 고모에게 브뤼셀로 가자고 애원했죠. 부자도 아니고 신분이 높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저의 생활 범위는 전혀 넓지 않아요. 저는여전히 좁은 곳을 돌아다니지만 풍경이 바뀌었어요. 영국으로 가면 한 번 더 바뀔 거예요. 저는 제네바의 중간 계급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어요. 이제는 브뤼셀의 중간 계급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죠. 런던으로 가게 되면 런던의 중간 계급에 대해서 알게 될 거예요.」 - 《교수》, 샬롯 브론테, P191



윌리엄이 그녀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살아가는게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혼 후에도 자신이 계속 가르치는 일을 할거라고 말한다. 너는 나를 막을 수 없다! 또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굽히고 들어가지 않을 것임을, 만약 그것이 부조리하다면 그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까지도 잘 새기고 있다.


「선생님, 어떤 여자가 자기와 결혼한 남자에 대해 진정으로 지긋지긋함을 느낀다면 결혼생활은 노예 생활이 될 게 분명해요. 올바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노예 생활에 저항할 것이고 저항한 대가로 고통을 받는다 해도 그 고통에 맞서야 해요. 자유로 가는 유일한 길이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나온다 해도 그 문을 반드시 거쳐야 해요. 자유 없이 살 수는없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그럴 경우 제 힘이 허용하는 한 저항할 거예요. 힘이 다 빠지면 저는 분명 피신하겠죠. 죽음은분명 악법과 악법의 결과에서 저를 보호해 줄 거예요.」 -《교수》, 샬롯 브론테, P334



결혼 생활이 길어지고 아이가 생기고 남편의 월급은 높은데 자신은 여전히 남편의 절반도 안되는 돈을 버는 것이 너무나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그녀는, 남편에게 '우리가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남편은 그녀의 제안에 응하고 그들은 학교를 만들어 잘 운영해서 학교의 이름도 드높아지고 그들의 경제적 형편도 여유로워진다. 샬롯 브론테의 책을 읽으면서 작가 소개를 보다보면, 그녀가 다른 자매들과 함께 학교를 세우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데, 샬롯 브론테는 이렇게 소설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낸다.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까페에서 우연히 한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난 후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혹은 다른 글에라도 그녀를 등장시키고 싶었지만 -p.13' 이라고 밝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은 그 글에서 자신이 바라는 이상형의 사람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이상 자체를 실현할 수도 있는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샬롯 브론테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리고 행동을 자신의 책, 교수를 통해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내용이 어떠하든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는 다른 여성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행동이 있다면, 그것을 하라. 그렇지만,



다른 분들이 제인 에어를 통해 샬롯 브론테의 그 시대상황의 편견을 자연스레 체득할 수밖에 없었던 점들을 지적했던 것처럼, 나 역시 교수를 읽으면서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다. 이야기 속에 여성혐오자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작가가 여성 혐오를 하는 사람이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 범죄가, 살인이, 마술사가, 공룡이, 아동학대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가해자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작가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러나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를 통해서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교수를 읽으면서 나는 샬롯 브론테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음을, 장애인 비하를 하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반트(벨기에를 달리 이르는 이름:역주) 젊은이들의 특성을 알아내는 데는 예리한 관찰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을 학생들의 능력에 적용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의 요령이 필요했다. 그들은대개 지적으로는 저능했고 동물적인 면은 강했다. 따라서 그들의 본성 속에는 무능함과 어떤 둔중한 힘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들은 멍청했지만 묘하게 고집이 셌고 납처럼 무거웠으며 납처럼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이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주로 정신적인 노력을 요하는 식으로 그들을 시험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기억력이 나쁘고 지적으로 우둔하며 사색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그들은 꼼꼼히 공부해야하거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반발하며움츠러들었다. 그들이 혐오스러워하는 노고를 선생이 분별없이 마구 이끌어 내려고 하면, 학생들은 돼지만큼이나 단호하고 시끄럽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학생들은 혼자서는 용감하지 못했지만 en masse (떼 지어) 행동할 때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 《교수》, 샬롯 브론테, P88



나라고 결백한 인간이 아니고 나에게도 역시 인종차별적인 감성과 수많은 '나와는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한 혐오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바깥으로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벨기에 사람에 대한 윌리엄의 저 생각이 윌리엄의 것인지 샬롯 브론테의 것인지 고민해야 했지만, 제인 에어에서의 버사 부인을 생각해보면, 저 부분에서의 샬롯 브론테는 그것이 인종차별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저 써낸 것인것 같다. 작품 해설을 보노라면 저 문구 자체가 당시 상황의 인종차별이나 혐오를 비판하기 위해서 나온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딱히 그렇게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나를 불편하게 한 지점은 또 있다. 예쁘지도 않은 프랜시스 앙리 양을 사랑하면서 윌리엄은 그러나 자신이 그녀를 사랑함에 있어서 그녀의 내적인 면만에 끌렸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녀에게 열정을 갖고 있는 것은 그녀의 육체도 원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하는거다. (지금 책이 없고 그 내용은 사진을 안찍어놨네 제기랄...)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녀가 어떤 모습이었어도 자신은 그녀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자신이 가르치는 학급의 기형아 같은 그 여자아이였다면 열정이 생기지 못했을 거다, 라고 말하는 거다. 프랜시스에게 욕망을 얘기하기 위해서 굳이 '기형아 제자'를 가져와야 했을까? 내가 결혼할 상대가 신체가 건강하길 바라는 것은 물론 잘못이 아니다. '만약 그녀에게 장애가 있다면'이라는 생각은 누구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학급의 기형아 아이를 콕 찝어 '그 아이처럼 기형아라면 욕망 안생겨' 는 내게 좀 아쉬운 지점이었다. 샬롯 브론테가 당당하게 살게 만들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서 남자와 똑같은 것들을 누리게 해주고자 했던 대상은, 그렇다면, 가난하고 배움이 짧을 지언정 '백인 비장애인 여성'이었던건가 싶어지는 거다. 


물론, 나는 소설속 인물들이 완벽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인간 자체가 완벽하지 못한데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그녀가 경험한 세상이 그녀에게 자연스레 편견을 갖게 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나 특별한 '악의 없이' 썼다고 해서 그것이 괜찮은 게 되는건 아니지 않나. 나는 항상 '무지는 죄다' 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 편견은, 교수의 작품해설에서 마찬가지로 언급된다.



작가에게는 편견도 많아 보인다. 그가 저지대, 브라반트, 혹은 플랑드르라며 다소 비하하고 있는 지금의 남프랑스와 벨기에 연안은, 사실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할 무렵까지만해도 영국령이었으며, 영국의 입장에서는 대륙으로의 교두보나 다름없는 중대한 지역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과 문화에 대한 경멸감, 가톨릭 교회의 타락상, 물질주의에 대한 혐오는 그 깊이가 매우 깊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에 만연하던 물질주의와 종교의 타락상에 대한 맹렬한 비판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아일랜드이민 2세로서, 가난한 목사의 딸이었고 외국 경험을 많이 한 작가는 분명 천성적으로 경험적으로 독특한 이력의 작가임에는 분명한데, 그런 경험을 자신만의 언어로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데 그의 탁월함이 있다. 목사의 딸임에도 신화와 전래 민담 등을 풍부하게 언급하고, 비교적개방적인 종교관을 보여 주고 있으며, 계급 의식에 있어 유연하고(거의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아주 실질적인 경제관을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이 소설을 읽는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할 대목들이다. - 《교수》, 샬롯 브론테, P359 (작품해설 中)



교수를 읽으면서 이런 내용은 대체 뭘 뜻하는 걸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걸까, 했던 부분들이 있다. 끝에 말해주겠지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던 것들. 윌리엄의 우울증이 그랬다. 그가 혹독하게 우울증을 앓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그 뒤에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한 복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나오진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아들 '빅터'의 어떤 성향에 대한 암시인걸지도 모르겠다고 뒤늦게 생각할 뿐. 그리고 광견병에 걸린 자신의 개를 쏘아죽이는 장면도 그랫다. 그 개를 윌리엄이 쏘아 죽이고 그 장면을 어린 아들이 보고 흐느끼는 장면, 아버지가 잔인하다고 원망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이야기속에 들어갔다면 그것은 필히 무언가 말하고자 함일텐데, 그건 뭘까 싶었는데,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언급된다.



헌스든과 이름이 같은 빅터의 맹견 요크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렸을 때 크림즈워스는 지체 없이 아들의 반려견을 쏘아 죽인다. 이에 격노한 빅터는 '치료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25장] 그 사건은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보다는 브론테의 상징성을 명로하게 밝히는 역할을 한다. 크림즈워스는 개를 죽이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개가 나타내는 것을 죽이고 싶어한다. 이제 완전한 가부장이자 교수가 된 그는 요크 헌스든과 개 요크를 그의 삶에 있어서 병들고 광적인 요소로 보는 것이다. -p.593~594



정말 그런가? 가부장제에 반항하는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크림즈워스에게 발현된 것인가? 

아무튼 교수를 읽고나서 읽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엄청 재미있다.



교수도 재미있었다. 고아로 자란 윌리엄의 세속적인 외삼촌들의 지원에 안녕을 고하고 형의 밑에서 일하고자 하지만 자신에게 일이 맞지도 않을 뿐더러 형이 너무 폭군이라 형과도 세이 굿바이 하고, 헌스던의 추천대로 벨기에로 슝 날아가서 학교의 교사가 되고, 그 과정에서 프랜시스를 만나 사랑하면서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고 아이도 낳고 뭐 그러는데, 나는 이 이야기속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윌리엄이 벨기에로 날아가 낯선 곳에서 눈뜨고 그곳을 한껏 즐기는 장면이었다. 너무 씐났다. 그래, 바로 그런거지, 그러취!! 그리고 브뤼셀에서 행방을 모르겠는 프랜시스를 한달동안 찾아다니는 장면. 크- 당연히 그녀를 찾아야 이야기가 진행되니 찾을것이라는 건 짐작가능하지만, 그래도 쫄깃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윌리엄은 브리쉘에 처음 가고나서 자신을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에, 새로운 곳이라는 사실에 흥분하는데, 그래서 이렇게 얘기한다.


독자여, 당신은 벨기에에 가본 적이 없을 것 같은데? 아마 그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것이다. - P73



허라. 이 건방진 녀석을 보았나. 잘난척 하지 마라, 내가 다녀왔다 벨기에!!! 볼래?








아, 저 부분 읽을 때 어찌나 짜릿하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다녀왔다, 나는 안다! 어디 건방지게 못가봤을 거라고 깝치는거야? 나 다녀왔다니까? 기차역의 찌린내도 기억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뜨거운 햇살 아래 썬글라스 끼고 홍합 먹었던 것도 기억한다, 이 밥통아!!!



그리고 덧붙여, 샬롯 브론테 언니 유치함을 좀 언급해주자. 


나는 그녀를 내 가슴에 좀 더 가까이 당겼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고 이제 우리 사이에 이루어진 서약을 그 입맞춤으로 봉인했다. - 《교수》, 샬롯 브론테, P295


그래, 여기까지는 알겠다. 입맞춤으로 봉인.. 알겠어. 사실 청혼할 때 그전까지 한 번도 스킨십 안해봤으면서 갑자기 그녀를 확 끌어당겨 무릎에 앉히는 거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서 남자들은 여자의 사이즈가 작기를 원하는가? 나같은 여자 무릎에 앉혔다가 뼈 아작날까봐?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말하면 되지 무릎에 앉히긴 왜 앉힌담? 아무튼 무릎에 앉혀가지고 저렇게 입술에 입을 맞췄단 말야? 그런데, 다음 부분을 보자.



정말 맞는 말을 하는군. 마침내 내가 말했다. 당신 뜻대로 해요, 그게 최선의 길이니까. 자, 이렇게 즉석에서 동의를했으니 그 보답으로 자발적으로 입 맞추어 주어요.」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 맞추는 솜씨에는 초보자인 사람이 당연히 그런 것처럼, 내 이마에 아주 수줍고 부드럽게 입술을 갖다 대었다. 나는 그 작은 선물을 빌린 것으로 치고 후한 이자를 붙여 재빨리 되갚았다. -《교수》, 샬롯 브론테, P297


아 미치겠다. 오글거림이 하늘까지 뻗어오른다. 후한 이자를 붙여 재빨리 되갚았대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마에 입술 댄 것에 후한 이자를 붙여 재빨리 되갚았으면, 어디에 뭘 어떻게 한건데요? 내 생각엔 아무리 해봤자 후한 이자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 그만하자, 이런 얘기... 


아니, 그리고 그녀는 야생 딸기래. 나는 맨날 남동생에게 나는 밤에 피는 장미라고 하는데, 야생 딸기.. 신선하다.


「그러면 당신은 물론 그녀와 결혼할 거고? 아니라고 하지말게.」「결혼요! 운명의 여신께서 우리에게 10주만 더 허락해 주신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그녀는 내게 자그마한 야생 딸기죠, 헌스던, 그 달콤한 맛이 당신의 온실 속 포도에서 내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어요.」 - 《교수》, 샬롯 브론테, P304



나도 앞으로 혹여라도 연애하게 된다면 딸기라고 애칭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모를 나의 미래의 연인아, 너는 이제 나의 야생 딸기야. 찡긋~



그럼 이만.




나는 현실 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하는 모습을 봐왔던 그대로 내 주인공도 평생을 일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자기가 번 것이 아니면 한 푼도 가져서는 안 되고, 갑작스런 반전으로 일순간에 부와 높은 지위로 상승해서도 안 된다고 마음속에 새겼다. 내 주인공은 아무리 조그만 수입을 얻게 되더라도 제이마의 땀으로 그것을 사야 하고, 그늘진 정자에서 쉴 만한곳을 찾기까지 그는 반드시 <고난의 언덕길>의 오르막을 최소한 반은 올라야만 하며, 그전에는 아름다운 여성이나 지위높은 귀부인과 결혼조차 할 수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내 주인공은 아담의 아들로서 아담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며 일평생 기쁨이 섞인 절제된 물을 마셔야만 하는 것이다. - P5

그 다음날 아침 나는 길고 깊은 휴식에서 깨어나 아직도X시에 있다고 생각하고는 낮이 환하게 밝은 것을 알아차리고 늦잠을 자서 회계 사무소에 지각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일시적이고 고통스런 억압의 기억이 되살아났으나 환희를 띠는 자유에의 의식 앞에서 사라져 버렸고, 침대의 하얀 커튼을 젖혀 넓고 천장이 높은 이국의 방을 바라보았다. - P76

나는 생각했다. <딱딱한 노처녀일 것이고, 로이터 부인 딸이라고 해도 마흔은 넘은 나이일 거야. 그리고 만일 그렇지 않고 그녀가 젊고 예쁘다면, 나는 잘생긴 편도 아니고 옷을 잘입는다 해도 더 나아 보일 것도 없으니 지금 이대로 가자.>그리고 나는 출발했으며, 거울이 걸려 있는 화장대 테이블을지나치면서 대강 옆으로 훑어보았다. 넓고 각진 이마 아래 푹 꺼지고 검은 눈이 달린 마르고 못생긴 얼굴을 보았다. 한창인 것도 아니고 매력적이지도 못한 용모였다. 젊기는 하지만 젊은이다운 활력은 없었다. 여인의 사랑을 얻을 만한 대상도 아니었고 큐피드의 화살이 꽂힐 만한 과녁도 아니었다. - P101

나에 대한 그녀의태도는 내가 그녀를 딱딱함과 무관심으로 대하기 시작했을때부터 변했다. 그녀는 온갖 일에서 내게 거의 알랑거리는태도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내 표정을 살폈고 수도 없이 사소하게 참견하여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노예 근성은 압제를 만들어 내는 법이다. 이런 노예 같은 충성심은 내 마음을누그러뜨리는 대신, 내 기분 속의 가차 없고 가혹한 것은 무엇이든 더 커지게 만들었다. 마법에 걸린 새처럼 그녀가 내주위를 날아다니는 바로 그런 상황은 나를 단단한 돌기둥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아첨은 내 경멸감을 들쑤셨고, 그녀의 아양은 나를 더욱 침묵하게 했다. - P171

그날 오후에는 바람뿐만 아니라 그 변덕스럽게 방랑하던 대기까지마치 담합을 한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잠에 빠져 있었다. 북쪽은 입을 다물고 있었고 남쪽은 침묵하고 있었으며 동쪽은흐느끼지 않았고 서쪽도 속삭이지 않았다. - P219

호색가에게는 매력 없을지언정 내게는 보물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최선의 대상.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느꼈다. 내 사랑의 보고(寶庫)를 봉인해 둘 이상적인 지성소. 분별과 신중함, 근면함과 인내, 자제와 극기의 화신. 내가 그녀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 내 모든 애정이라는 선물을 충실하게 지킬 수호자, 믿음직한 문지기.
진실과 명예의 표본이며, 독립심과 양심의 표본이고, 삶을정직하게 닦아 나가고 지켜 나갈 사람. 관대함이라는 우물을품고 있고, 차분한 만큼 상냥하고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순수한 열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가정이라는 지성소에 휴식과 편안함의 원천이 되는 자연스런 감정과 자연스런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나는 그녀의 가슴 속에서 그 우물이 얼마나고요하고 깊게 보글보글 솟아오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위험한 불꽃이 이성이라는 눈 밑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타오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 P223

우리가 다스릴 수 있는 충동도 있지만, 호랑이처럼 도약해서 우리를 덮쳐 버리고 우리가 그 충동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그런 충동이 주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를 다스리는 충동도 있다. 그래도 그런 충동이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조용한 만큼 짧고 느끼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그런 과정으로 인해 아마도 이성은 본능이 생각하는 행위의 온전함을 확인해 준 것 같고,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수동적으로 가만 있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이치를따지거나 계획을 세웠거나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순간 테이블 근처의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바로 그 다음 순간에 나는 프랜시스를 내 무릎 위에 끌어당겨재빠르고 단호하게 거기 앉히고 엄청난 끈기로 잡아 두었던것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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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2-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게 읽다가 벨기에부터 무장해제 되는군요ㅋㅋㅋ
그리고 야생 딸기ㅋㅋㅋ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속삭이는 사랑의 대화 자꾸 생각나네요. ‘나의 꼬마 요정님...‘ 앗 알라딘 꼬마요정님!ㅋㅋㅋ
전 그래서 샬롯 브론테 작가가 굉장히 극과 극을 오가는 성격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때론 선입견에 사로잡혀 편협했다가, 때론 오글거렸다가, 때론 종교적 신앙심이 강했다가..때론 외모지상주의였다가....^^;;;
소설을 읽으면 감정의 기복이 심해 보이던데 그런 점이 매력인가? 싶기도 하구요.
근데 교수도 읽어야 할 책이로군요^^

다락방 2022-12-13 11:23   좋아요 1 | URL
앗 꼬마요정! 그것도 제인 에어니까 들을 수 있지 이 나이의 저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이네요. ㅋㅋㅋㅋㅋ
냉철하고 당당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무장해제 되어 야생 딸기~ 라고 할 수 있는게 또 인간 아니겠습니까. 완벽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묘사를 잘했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치요?
저는 교수를 읽어서 속이 다 시원합니다. 그러나 빌레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자냥 2022-12-1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한 이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교수> 생각만 하면 후한 이자 떠오를 듯요...
고전은 이렇게 대화 속에서 약간 엉뚱하게 빵 터지게 만드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12-13 12:33   좋아요 1 | URL
도대체 이마 입맞춤에 대한 후한 이자면.. 뭐란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후한‘ 이자는 아닐 것 같은데 말입니다. 껄껄. 왜 자기 입맞춤이 후하다고 자부하죠? 자뻑쟁이... 뭐, 자뻑은 제가 챔피언입니다만. 후훗.
저는 확 끌어다가 자기 무릎에 앉히는 것도 너무 오글거렸어요. 아 너무 오글거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2-13 14:38   좋아요 0 | URL
후한 이자라고 하니까 전 상상되는 장면이 있는데........ 입 다물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12-14 08: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잠자냥 님, 저랑 같은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굳이 맞춰보진 맙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2-14 09:49   좋아요 0 | URL
그럽시다. 우리의 이미지를 위해.... 아무튼 그 생각에 찌찌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수 2022-12-13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한 이자 ㅋㅋㅋ딸기님께 찡긋 ㅋㅋㅋㅋ 너무 재밌습니다. 교수는 굳이 안 읽으려고 했는데 동합니다 동해요!
페이퍼 읽으면서 급진적(작품해설에 따르면요)이면서도 무지한 것에 생각이 멈췄어요.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떤 자세를 견지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들을 연달아 보고 있어서요.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2-12-13 12:35   좋아요 1 | URL
문제는, 우리가 무얼 모르는지 조차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알아야 비로소 모르는게 보이는데,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발생하게 되는 실수가 아주 많을것 같은데요, 그게 단순 실수이면 상관없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폭려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지점 같아요. 우리가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부일 것이고, 그것이 바로 책읽기 이겠지요!!

교수 읽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빌레뜨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래가지고 어디 12월 안에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다 읽을 수 있을지.. ㅠㅠ

단발머리 2022-12-13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님 이 글 좋아요!!! 진정한 본성에서 인종적 편견, 벨기에 그리고 야생 딸기까지요. 물론 ‘후한 이자‘가 제일 기억에 남겠지만요 ㅎㅎ

저는 교수를 끝까지는 읽지는 않은 상태이기는 한데 작품해설의 ‘두 사람이 실은 한 사람‘이라는 해설이 적정한지는 모르겠어요.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만큼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거든요. 윌리엄이 보통의 남자보다 훨씬 더, 훨씬 더 여성적이라는 면에 대해서는 긍정할 수 있겠지만, 프랜시스에게 남성적인 면모가 보이는가? 전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요. 저는 브론테가 윌리엄으로 자신을 ‘셋업‘하고 있다고 보여요. 순하고 상식적이면서 도덕적인, 젊은 남성이요. 자신을 그쪽으로 확 밀어두고서 속물적인 남성(형)을 비판하고 공부 안 하고 딴말하는 여성(학생들)을 비판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확신은 없습니다. 완독하지 못한 1인인지라.....

다락방 2022-12-14 07:5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페이퍼에 썼다가 지운 말이 잇어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 해석처럼 ‘양성적이다‘ 라는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였어요. 윌리엄을 양성적으로 해석하석하는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 그리고 두 사람이 실은 한 사람이라는 배미영의 작품 해설. 전 이 둘 모두 너무 멀리 나갔다고 생각했어요. 샬롯 브론테가 바라는 어떤 인간형이 있고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 나가기 위해 남주를 화자로 내세운 것은 의도적이었음에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양성적‘ 이고 ‘이 둘은 실은 한사람‘이라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 지나친 해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샬롯 브론테가 작품을 쓸 당시에 젠더롤은 분명 더 심했던 것 같고요. 지금도 안심한 건 아니지만, 지금 빌레트 시작했는데 루시가 ‘남자같은 성격‘ 운운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남자같은 성격, 여자같은 성격 같은 성별 고정관념이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저 빌레트 시작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빌레트 읽다 보니 <교수>에서의 윌리엄이 빌레트에서의 루시가 됐네요. 빌레트 먼저 읽었다면 교수는 잘 안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한 번 읽었던 것의 반복인 느낌이에요.

아무튼 저 빌레트 갑니다. 고고!!

독서괭 2022-12-1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진지하고 사색적이고 예리한 분석에 이어 내가 다녀왔다 벨기에, 후한 이자, 딸기ㅋㅋㅋㅋㅋ
앞부분도 뒷부분도 넘 좋습니다. 이제 빌레뜨 가시나요? 전 2권 읽다가 요즘 책을 못 읽어서 멈춰있은 중 ㅠㅠ 빨리 읽어야할텐데요. 다락방미친여자도 진도 많이 나가셨네요. 전 완독하려면 하루 100쪽씩 읽어야 할 듯요 ㅠㅠ
그런데 락방님 다른 sns도 하시는군요. 아이디를 보니.. 77년생이신가요?ㅋㅋㅋㅋ

다락방 2022-12-14 13:47   좋아요 1 | URL
저도 다락방의 미친 여자 완독이 과연 12월 안에 가능할 것인지.. 그것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후딱 빌레트에 매진하려고요. 집중집중! 후딱 빌레트 읽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힘이여, 솟아나랏!! ㅋㅋㅋㅋㅋ
독서괭 님도 힘내세요!!

2022-12-14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