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읽어야 할 분량에서는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 '루이자'와 '윌'이 만난다.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 한 번도 자기가 사는 동네를 떠나본 적 없고 까페 일 말고 다른 건 해본 적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던 루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그런 참에 시급을 많이 쳐주는 사지마비 환자를 돕는 일을 마다할 수가 없다. 그렇게 윌과 첫만남을 가졌는데, 윌은 마치 루이자와 한 방에 있는 것도 싫다는 듯 행동한다. 환자를 돌본 적도 없는 루이자는 윌에게 어떻게 해줘야할지를 모르겠고, 그래서 차를 끓여줄까 커피를 내어줄까 차 타고 어디 갈까? 이래저래 말을 걸어보지만, 윌은 '너 수다스럽다는 거 우리 엄마한테 들었는데, 나랑 있을 땐 제발 수다 떨지마'라고 말하고 루이자를 무시한다. 루이자는 그와 한 장소에 있는 것도 지옥같고 너무 끔찍하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난 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너무 힘들다. 그래서 동생에게 근무 중에 문자메세지를 보내지만, 동생은 말한다. 언니 참아, 고작 반나절 밖에 안되었잖아, 지금 언니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돼, 언니 우리집 형편 알잖아, 하면서 힘들어하는 루이자에게 계속 일하기를 권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직장이 어디있냐며, 그래도 치킨공장에서 야간근무보단 낫지 않냐며 모두들 루이자가 일하기를 원한다. 루이자는 너무 힘들고 끔찍하고 다시 또 거길 가야 되는지 고민스럽지만, 그러나 식구들 모두가 루이자가 거기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그만두기를 원하지 않는다. 루이자는 모든 식구들을 먹여 살릴 돈을 벌고 있으니까. 그런 참에 루이자가 그만둔다? 안될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살아?
엄마와 얘기해봤자 뻔하고 그런데 일하는 건 너무 끔찍하고, 그렇게 근무 첫날 루이자는 자신의 작은 방에 갇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한다. 집의 가장 큰 방은 여동생과 조카에게 이미 내어줬다. 여동생은 그렇게 똑똑해서 가족들 중에 처음으로, 유일하게 대학에 간 사람이었는데 중간에 임신해서 대학을 그만뒀고 지금은 꽃집에서 일하고 있다. 돈을 버는 그나마 가장 큰 수입원이고 모든 가족의 기댈 곳인 루이자는, 가장 작은 방에 머물면서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한다. 그렇게 첫 근무가 끝나고 복잡하고 힘든 자신을 방 안에 가둬놓고 있는데 여동생은 노크도 없이 들어온다. 언니가 일 그만둘거라는 말, 나는 엄마아빠한테 못해, 라고 말하는 동생. 그런 동생이 그러면서 자신은 대학에 돌아가겠노라 말한다.
네?
뭐라고요?
'I'm really desperate to use my brain again. Doing the flowers is doing my head in. I want to learn. I want to improve myself. And I'm sick of my hands always being freezing cold from the water.' -p.53
"머리를 다시 쓰고 싶어서 정말 미칠 지경이야. 꽃꽂이 일을 하다 보니 머리가 다 썩고 있어. 나 공부하고 싶어. 자기계발을 하고 싶어. 그리고 물 때문에 항상 손이 얼음장처럼 찬 것도 지긋지긋해."-책속에서
그러니까, 동생 트리나는 머리를 쓰고 싶다. 똑똑한 여자였으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느라 앞길이 막혀버렸으니까.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될거라고 동생 트리나는 말하고 있다. 대출을 받아서 학자금을 댈거고, 주중에는 보조금 나오는 기숙사에서 아들 토마스와 머물거고 주말에는 다시 이 집에 아들 데리고 들어오고, 그렇게 살겠단다. 맞다. 그래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일을 할 수 없어서 엄마와 아빠한테 돈을 한 푼도 가져다드릴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엄마 아빠한테 돈을 좀 빌릴 수도 있을 거라고 한다(언니가 벌어온 그 돈 말이다). 언니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나는 아이 낳고 남자친구가 생길 가능성도 없어, 내가 대학을 가는게 나와 내 아들을 위한 유일한 미래야, 그러니까 언니 나를 좀 한 번만 봐줘..
나는 개인적으로 트리나의 삶을 응원한다. 머리 좋은 여자가 배움을 멈춘건 짜증난다. 그녀가 아이를 낳고 배움을 멈추고 꽃꽂이를 하는 동안, 아이의 아빠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응당 아이 아빠가 해야 할 일을 트리나의 언니와 부모님이 대신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가난하고 모두 힘들다. 그러나 갑자기 생긴 자식 때문에, 그러니까 뭐가 됐든 트리나가 배움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루이자였다고 해도 배우고자 하는 여동생을 응원해주고 조카의 돌봄을 함께 해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마땅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배움을 위해서 일자리가 너무 싫고 끔찍하고 괴롭다는 언니에게 '그래도 일하라'고 압박하는 동생인건 진짜 너무 싫다. 물론 현실적으로 누군가가 돈을 벌어와야 먹고 살고, 일 하기 괴롭다고 그만두는 순간 다들 굶어죽을지도 모르고, 더욱이 학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 형편에서 힘들다고 일을 그만둘 수 있을 리 없다. 이를 악물고 일을 해야 할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의 학업인가? 트리나의 학업이다. 트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대학을 가는 것, 머리를 쓰고 싶은 것, 자기 계발을 원하는 건 트리나의 일이다. 토마스는 누구의 아이인가. 트리나의 아이이다. 그런데 언니 루이자에게 일을 하라고 압박한다. 언니가 일 해야해, 언니 일은 처음엔 다 힘든거야, 언니 우리집 형편 알잖아. 그런데 막상 트리나는 대학에 가고 싶어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어서 돈벌기를 그만둔다. 매일 꽃을 만지는 것도 지긋지긋하단다. 다르게 살거란다. 자기 자신은 꽃 만지는 일이 너무 싫어서 일을 그만두면서 언니에게는 왜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라고 하는걸까. 언니 나 꽃 만지는 일 너무 힘들어, 그런데 언니 아무리 괴로워도 일 더해 돈 벌어야지. 이 지점이 너무 화가 나는거다. 나는 힘든거 못하겠지만 너는 힘든거 견뎌, 왜? 나 공부해야 되거든. 그러니까 공부만이 유일한 목적은 물론 아니지만, 힘들다는 언니에게, 언니 그거 너무 힘들면 다른 일 찾아볼까, 언니 6년간 쉼없이 일해왔으니까 잠깐 쉬었다가 다른 일 찾자, 왜 이렇게 말해주지 못할까. 잠깐이라도 쉬면 생계에 지장이 생겨서라면, 그렇다면 바로 일을 찾으면 된다. 노동현장에 뛰어들고 일을 해야 하는 언니가 '힘들지만 버텨볼게' 하는 것과, '힘들지만 너의 배움을 지원해주고 싶어' 하는 것과, '나 공부 계속 하고 싶은데 언니 돈 벌기를 멈추지마!'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
나도 언니다. 나도 딸이다. 나도 이모이고 고모이다. 만약 나의 경제능력이 있어야 가족이 먹고 살아간다면 나는 마땅히 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고달프면 나도 관두고 다른거 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래도 모두가 나만 바라본다면 푸념할지언정 쉽게 그만둘순 없을 것이다. 그런 언니에게, 생계의 부담을 지고 있는 언니에게 언니 직장은 처음부터 좋을 수 없지, 라고 일을 그만두지 말라고 압박하는 그 말이, 그 말에 실린 마음, 혹시 언니가 일 그만둬서 돈 없어가지고 내가 대학을 못가면 어떡하지, 하는 그 마음이 진짜 너무너무 야속하고 속상하고 빡치는거다. 너가 일하는 거 괴로우면 나도 괴롭다. 너는 괴로운데 나는 신나는게 아니란 말이다. 나한테 참고 견디라고 말한다면 너도 참고 견뎌야지, 왜 누군가는 참아야 하고 누군가는 참을 수 없는 것인가. 내가 하는 일은 견딜 수 없을만큼 너무 힘들고 언니가 하는 일은 견딜만큼만 힘든 건가? 그 일 안해봤잖아? 하아- 딥빡.
나는 루이자의 동생이 특별히 악하다거나 언니 피 빨아먹을 작정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대학도 졸업하고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분명 언니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언니에게 정말 잘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생이 그렇게 자리잡아 가는 시간동안 언니의 삶은, 언니의 마음과 몸은 어떻게 되는걸까. 솔직히 나는, 루이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도망치라고. 그 끔찍한 일자리로부터 도망치고, 가족들로부터 도망치라고. 그러나 루이자에게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 자체가 없다. 그 점이 내가 루이자로부터 싫어하는 지점인데, 경험이 없으니 더 큰 세계를 열망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도망치라고 말하고 싶다.
런, 런, 데빌 런!!
자연스레 김이설의 소설도 생각난다. 김이설은 도망쳐도 남은 식구들의 가능해지는 삶을 얘기했다. 나 아니면 어떡하란 말이야, 는 나 아니어도 그들끼리 어떻게든 한다, 가 된다.
물론 도망칠 수 없는 그 마음까지도, 안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