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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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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는 자신을 사랑해줬던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들이 다 자기 곁을 떠나고 우울해하면서 죽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서있는 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에 자기 혼자 서서 도대체 이게 뭔가 하고 있는데, 어릴적 학교의 사서였던 '엘름 부인'이 나와 '후회의 책'을 보여주며, 너는 네 인생을 다시 살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노라의 후회의 책을 펼쳐보니 두껍고 빽빽하게 후회로 가득차 있었다. 아마도 그 후회가 그토록 가득 차 있기에 노라의 인생은 그토록이나 우울했던 것일테다. 자, 너는 어떤 후회를 지우기 위해 어느 때로 돌아가 이 도서관에 오기 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어, 어디로 갈래?


노라는 되고 싶은게 많았고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오롯이 자신이 생각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수영을 했고 오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밴드를 했었다. 후회의 책에 쓰여진 그 많은 자신의 후회들을 보면서 어쩌면 자신이 살 수 있었던 다른 삶속으로 들어가는데, 그러나 그 삶속으로 들어간다고 노라의 행복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노라의 작은 선택 하나는 아주 많이 다른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하다. 세상은 나 하나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내 작은 선택하나는 내 가족에게, 내 애인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결과들을 불러온다. 남자친구랑 결혼해서 남자친구의 소망대로 펍을 이루고 살았다면 우리는 결혼전에 꿈꾸었던 그 행복한 삶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 삶속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그러나 기대와 혹은 상상과는 다른 삶이 다른 선택들로 인하여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노라는 지금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의 삶을 살아보며, 하나씩 삶이란 것을 배워간다. 후회를 하나씩 지우면서 교훈을 하나씩 얻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교훈은 사실 뻔하다. 처음 노라가 도서관에 도착해서 다른 삶을 선택하는 과정이 주어지는 순간, 바로 그 때부터 우리는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있다. 우리는 가보지 못한 다른 삶에 대해 후회를하기 마련이지만, 어떤 선택을 했어도 거기에 후회는 남는다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대신 지금 주어진 삶에서 최대한의 의미를 찾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아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아는 것을 읽어가면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되새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알려줌으로써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할 수도 있다.



'올랜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 주연의 영화 《엘리자베스 타운》을 보면 초반에 남자가 죽고자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때 누나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죽기를 계속할까 전화를 받을까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을 때, 수화기 너머 누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것 때문에 남자는 자신의 죽음을 뒤로 미루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들동안 그는 가족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과 알고 지내게 되면서 다시 사는 결심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뻔한 사실은 뻔한만큼 또 너무 당연하기도 하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아주 많은 부분에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 혼자 사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내 예상과는 다른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러나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가깝게 혹은 멀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제에 이어 오늘을, 오늘에 이어 내일을 살 수 있다. 먹고 사는 일에도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고 내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일에도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내 지식을 늘리는 일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남자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하는 간절한 바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그의 연결됨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으니 동생에게 전화하자는 너무나 당연한 이 누나와의 연결고리는 그의 죽음을 최소한 그 순간에 찾아오지 않을 수 있게 했다. 만약 그에게 그를 생각할만한 사람이 누구하나 없었다면 그의 자살의 뒤로 미뤄질 확률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어떤 의도가 됐든 생각하고 찾는다는 것은 나를 오늘 하루 더 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이것은 그러나 타인이 내게 해주기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연결된다는 것 그리고 이어진다는 것은, 누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것으로만 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그 연결됨에 가담을 해야 한다. 너가 나한테 전화를 하고 너가 나의 집 벨을 누르기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너의 집의 벨을 눌러야만 비로소 우리가 서로에게 걸친 끈이 계속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것이고, 이렇게 이어져 있는 이상 내가 혼자라는 외로움, 내가 혼자라는 절망 때문에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생을 놓으려는 생각들은 늦춰지거나 약해지는 거다.



처음 노라가 자살을 결심하면서 자신을 자책할 때, 그 때의 노라가 너무 싫었다. 온통 비극과 우울을 끌어안고, 역시 나는 뭘 해도 안되고 누구도 내게 없어, 라고 할 때, 그 우울함이 너무 싫었다. 도서관에 도착해 다른 삶을 선택하면서도 노라는 내내 그런 태도였다. 그러나 삶 하나하나를 거치면서 그녀는 조금씩 달라지고, 그러다 자신이 비로소 원한 행복한 삶을 찾았을 때, 그 때의 노라는 이제 성장했구나 싶어졌다. 그 삶은 그동안 평행우주에서 겪어본 그 어떤 삶보다 만족스럽고 행복했으며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매우 욕심이 났지만, 그러나 노라에게 그것은 '그렇지만 이것은 진정 나의 것이 아니라 내가 끼어들어 가져온 것이다'라는 감각이 있다. 나는 이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삶 역시 다른 우주 속의,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의 노라가 살게될 삶이지만, 그러나 지금 여기에 갑자기 나타나 이 삶을 사는 노라는, 이 삶을 여기까지 끌어온 노라와는 다른 노라이다. 박사 학위를 받은 것, 좋은 남편을 가지고 사랑스런 딸을 가진 것. 이 모든것을 선택하고 이 삶을 끌어온 것은 여기 있는 노라인거지, 이렇게 중간에 푱 하고 나타난 노라가 아닌 것. 욕심나서 이걸 잃고 싶지 않지만 '그렇지만 이건 온전히 내것은 아니야' 라는 바로 그 감각. 한줄기나마 '이것은 옳지 못하다'는 감각을, 나는 사람들이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로 말하자면 내가 죽어야겠다 생각을 안할사람이니 처음부터 아예 노라랑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내가 만약 노라처럼 인생을 다시 선택할 수있는 도서관에 들어가고 후회의 책을 펼쳐본다면, 장담하건데 내 후회의 책은 노라의 책보다 훨씬 얇을 것이며, 어느 순간부터-아마도 삼십대 중반부터가 아닐까 싶은데- 쓰여진 후회는 극히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나도 후회를 한다. 아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그런데 대부분 어린 시절의 것이다. 성인이 되어 어느 순간이 되면서부터는 나는 선택에 앞서 항상 나에게 묻는다. 이걸 선택하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래서 지금은 딱히 후회되는 어른의 일이 별로 없다. 가장 후회되는 게 학창 시절 공부 안한 것이고, 가끔 떠올리는 못된 짓들도 역시 어린 시절의 것이고, 그런것들로도 나는 충분히 괴롭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는 정말이지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러다가도 '그때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곱씹어보고 또 곱씹어봐도 아니, 그 때 내가 한 선택이 옳았다. 그것이 나에게 더 나았다. 만약 이십년 후에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간혹 내가 공부를 좀 더 잘했다면 조금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더 돈을 잘벌지 않았을까 등등 더 잘나고 싶은 욕망에 대해 얘기하노라면 남동생은 '누나에겐 열 개의 자아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최선의 자아가 지금 발현되고 있는거야' 라는 말로 대꾸해준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평행우주속의 내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삶을 살 가능성이 없지않지만, 그러나 나는 대체적으로 내 삶에 만족한다. '에이모 토울스'는 자신의 책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까만 사과를 먹으면 시간을 돌릴 수 있다' 라고 했을 때, 주인공의 입을 빌어 그러나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내 선택들이 내 눈 앞에 있는 당신과 함께 있도록 했으니까, 라고 말한다. 나 역시 똑같이 생각한다. 나는 내 가족과 내 친구들, 그리고 내 과거의 어떤 연인에 대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다른 평행우주 속에서 이보다 나은 사람들을 혹은 이만큼의 사람들을 만날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고 지금 내가 꾸려온 여기까지의 삶에 만족하며 내가 만났던 어떤 사람들에 대해 만족한다. 나는 죽기로 결심하지 않을 것이고 도서관에 갈 일도 없을 것이며, 굳이 후회희 책 들춰보고 다른 인생을 선택할 생각도 없다.



노라에게 필요한 건, 연결됨이었다.

내게 아무도 없고 나는 누군가 원하는 삶만을 살아왔다는 우울함 앞에, 그래서 노라는 누군가 손내밀어주는 이가 없는 외로움 때문에 죽기로 결심했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기만 하는 마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액션을 취해야 한다. 누군가와 연결되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한 나의 몸짓도 반드시 필요하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노라는, 일어나서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 문을 두드린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면서 살아야 한다.

내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깨달은 게 있다면 강한 사람은 혼자 모든걸 다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누군가 다가와주길 바란다면 다가와달라고 말을 해야 한다. 그렇게 연결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뒤로 늦출 수 있고, 죽음을 뒤로 늦춰야 좀 더 괜찮은 삶을 만날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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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9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리뷰 쓰심!? ㅋㅋㅋ 저도 곧 읽어보겠습니다. 리뷰는 그 다음에 정독!

2021-07-19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9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9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9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9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1-07-19 14: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집에 이 책이 있더라구요. 딸아이가 읽고 싶다 해서 사줬는데 저도 락방님 따라서 읽어봐야겠어요. 저기 위에 남동생님이 말씀하신 거 최선의 자아 발현_ 그 말 넘 좋네요. 그래도 평행 우주 어딘가 락방님 나머지 아홉 자아도 궁금하긴 하다 ^^ 오늘의 리뷰가 이달의 리뷰가 될 거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도 좋고.

다락방 2021-07-19 14:48   좋아요 2 | URL
저도 달러구트 좋아한 조카가 이것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읽고 조카 주려고 샀어요. 달러구트 보다는 훨씬 나은 책이었습니다만,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인공 성격 너무 제 취향 아니어서 ㅋㅋㅋㅋㅋ 저랑 친구 못할 타입이며 저랑 친구하면 저한테 잔소리 폭탄 들을 타입입니다. 저는 잔소리 하는 거 진짜 싫어해서 가급적 잔소리 하게 만드는 사람은 안만나려는 편인데요, 그래서 아마도 노라랑 저는 친구가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으하하하. (뜬금 댓글이네요?)

공쟝쟝 2021-07-20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진짜 강한 사람! 😭😭😭😭 (운다)

다락방 2021-07-20 17:57   좋아요 2 | URL
아주아주 어른이 되어서야, 최근에야 알았어요. 정말 강한 사람은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울지말고 우리 더 단단해지도록 합시다. 플랭크를 뽝- 하면서!!

공쟝쟝 2021-07-20 18:24   좋아요 1 | URL
하지만 오늘의 내 플랭크에 타인의 도움은 해당되지 않는다… 오늘의 채찍질만이 ㅋㅋㅋㅋ

2021-07-22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8-06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