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이불 속에서 계속 손을 잡고 있다. 심지어 잠든 후에도. (p.118)
어제 잠들기 전에 이 소설을 펼쳐 읽기 시작하고서는 아, 정말이지 책은 너무 좋다, 생각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가들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게다가 거기에서 꼭 내것 같은 마음을 만나는 일은 또 얼마나 기적같은가. 이래서 소설읽기를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별 거 아닌 문장이 때로는 내가 가지고만 있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보일 때가 있다. 내 안에 있으나 바깥으로 내보일 수 없었던 것을 응 뭔지 알아 그거, 하면서 펼쳐 보여주는 일을, 소설이 한다. 118쪽의 문장이, 두 사람은 이불 속에서 계속 손을 잡고 있다. 심지어 잠든 후에도, 가 나를 갑자기 어딘가로 던져버렸고, 그 던져진 곳에서 한참을 빠져나올 줄 몰라 책장을 덮고 책을 가슴에 꼭 끌어 안았다. 아, 이거 너무 좋아서 어떡하지. 왜 이런 문장 썼어. 아 너무 좋아 어떡하지, 역시 책이 만세 만세 만만세야, 했다. 어떡하지, 지금 이 감정 어떡하지, 알라딘 창을 열었다가, 아니야 읽기를 계속하자, 나는 책으로 돌아갔다.
'메리앤'의 어머니는 변호사고 지금은 돌아가셔 안계신 아버지도 변호사였다. 유복한 집에서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지만, 그러나 메리앤은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적이 없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오빠 역시 폭력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엄마는 메리앤이 당하는 폭력을 메리앤의 잘못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메리앤은 말수가 적고 친구가 없다.
메리앤의 집에 일주일에 두 번 와 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로레인'에게는 사이 좋은 아들 '코넬'이 있다. 코넬은 축구부에서 활동하고 잘생겼고 친구가 많다. 엄마가 메리앤의 집에 일을 하러 가면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엄마를 픽업하기위해 메리앤의 집에 가고 그렇게 메리앤과 코넬은 자주 마주치게 되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리고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메리앤에게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메리앤과의 사이가 알려지면 자신에게 어떤일이 닥칠지 몰라, 코넬은 메리앤을 만나 섹스를 하면서도 메리앤과의 관계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메리앤은 현재 코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존재이며 드러나서도 안되는 존재가 된다.
로레인은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되지만 아들이 이 관계를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게다가 졸업파티를 앞두고 코넬은 다른 여자애에게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로레인은 '네가 다른 애를 부른 걸 메리앤이 아냐'고 묻고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자 아들에게 몹시 실망한다. 같이 있는 차 안에서 엄마는 차를 세우라 말하고 차에서 내린다.
좋아, 이 말만은 꼭 해야겠어. 넌 수치스러운 짓을 했어. 난 네가 부끄러워. (p.75)
나랑 섹스하고 나랑 친밀한 사이인 사람이 그러나 자신과 친밀하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잔다. 공개적으로 파트너가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을 파트너 삼는다. 그럴 때 내가 느끼는 기분은 어떤걸까? 분명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나랑 섹스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나도 이 섹스가 좋은데, 그런데 내가 드러나서는 안된다니. 졸업파티에 내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한마디 말도 없이 다른 여자아이를 데리고 간다니. 메리앤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학교를 그만 둔다. 코넬은 그녀에게 연락해보고 찾아가 보지만 메리앤은 코넬을 만나주지 않고 답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너무 시리다. 나는 그 마음이 진짜 너무 싫다. 그건 수치스러워 해야 할 짓이 맞다. 나랑 얘기하고 나랑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랑 섹스하면서 그런데 나더러 숨어있으래. 싫다. 너무 싫다. 그럴 때 숨어있을게, 라고 말하는 내 자신도 수치스럽고 나를 그렇게 만드는 당신은 더 수치스럽다. 당신이 수치스러운 짓을 했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나는 로레인이, 코넬의 엄마가, 그 짓이 수치스러운 짓이라는 걸 아들에게 알려줘서 너무 좋았다. 무조건 아들의 편이 되는게 아니라, 네가 지금 하는 행동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걸 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넬도 그렇게 행동은 하지만 사실 마음 속에서는 그것이 잘못된 걸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러나 알고 있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그것이 수치스럽고 잘못된 행동이란 걸 인지했다면 그런 짓을 하면 안되는 거다. 나는 엉엉 울고 싶어졌는데, 메리앤은 오죽할까. 메리앤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학교를 그만두는데,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그렇게 할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학교는 너 자신을 위해 다녀야 하는데, 하면서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물론 남은 기간 학교를 안다녀도 메리앤이 대학을 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얘기했던 것처럼 메리앤과 코넬은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코넬은 학비며 생활비 때문에 대학 생활이 결코 유쾌하지가 않다. 그러다 메리앤을 다시 만나게 되고 다시 그들의 사이는 좋아지지만 이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로 다시 헤어지게 된다.
메리앤은 5월 이후로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시험이 끝난 후 고향집으로 돌아갔고, 그녀는 더블린에 머물렀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알았어. 사실 그녀는 그의 여자 친구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심지어 그의 전 여자 친구도 아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p.140)
나는 또 아픈 마음이 되어서, 아니 잘 만나고 있었으면서, 그렇게나 다정하면서, 그 누구보다 편하게 생각하면서, 어째서 여자친구라고 어디에도 말하지 않는걸까, 어째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서 가슴에 대못을 박아대는 걸까 미칠 것 같았다. 이 새끼 도대체 뭐가 문제야, 둘이 있을 때 세상 젠틀하고 매너잇는 것 같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가만가만 대못을 박고 상처를 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코넬이 '다른 사람 만나고 싶어'라고 메리앤에게 말한 적이 없다. 자신이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집에서 나와야 했다고 말했을 뿐인데, 한번도 그의 공식적인 여자친구였던 적이 없는 메리앤은, 너랑 지내도 되냐는 그의 말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가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그를 보내주는 거다. 이건 서로가 서로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한데에서 오는 오해였는데, 그렇다면 이 오해가 왜 비롯되었는가. 메리앤이 한번도 그의 공식적인 여자친구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둘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이 함께 자는 사이이고 친밀하다는 걸 다 아는데, 그런데 그들은 모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스킨십을 하지도 않고 애인처럼 서로를 대하지도 않는다. 메리앤은 그에게 공식적인 애인이 될 게 아니라면 그만두자고 요구하지도 못한다. 그를 너무 좋아해. 그렇게 속만 끓일 뿐이다. 이들은 이렇게 오해와 재회를 반복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와 헤어지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는, 메리앤의 요구대로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섹스를 한다. 주도권을 쥔다. 메리앤은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메리앤은 애정을 주는 상대에게 고분고분하다. 내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건가 까지 생각하는게 힘겹다.
그들은 이 책 한 권에 걸쳐, 총 4년여동안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고 만나는 동안에도 서로에게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아니었으며 헤어져 있는 동안에는 각자 다른 연애를 하기도 한다. 메리앤은 코넬에게 이제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긴걸 안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가 새로운 여자친구를 몹시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녀를 사랑하지 물으니, 정말 사랑한다고 그가 답한다. 그녀는 운다. 엉엉 운다. 나는 그녀가 이 대답에 우는 사람이라서 너무 좋았다. 그의 앞에서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어쩐 일인지 내가 고마웠다. 나 역시 같은 상황에서 울 사람이지만, 그렇지만 나였다면 아마 그의 앞에서 울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앞에서 울지는 못하고, 그와 헤어져 돌아가는 길에 주저앉아 울거나, 집에도착해서 내 몸을 침대에 내팽개친 다음에 울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무실에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울음을 참으면 어쩌나, 이 감정을 참아내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녀가 울어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스웨덴에 공부하러 가있는 동안 만난 남자는 인기있는 사진 작가였는데 섹스할 때 그녀의 손을 묶고 목을 조르는 등의 행위를 한다. 그녀는 그런것들을 함께 경험하긴 했지만, 그녀를 촬영하겠다고 하고 손을 묶고 목을 조르는 데, 그러면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에서 그만하라고 말한다. 이걸 견딜 수 없어한다. 그녀는 이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안다. 그동안 알면서도 해왔지만, 그런데 그런 폭력을 저지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끔찍하다.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섬뜩한 짓을 하면서,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걸까? 사랑이라는 게 가장 비열하고 가장 모욕적인 형태의 폭력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세상은 그렇게 사악한 곳일까? (p.246)
메리앤과 코넬은 만났다 헤어지고 만났다 헤어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또 만나보고 또 만나봤지만, 지금 이 상대만큼 좋은 다른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나는 코넬이 학창시절 그녀를 숨기려고 했던게 너무나 야속하지만, 그리고 해야 할 말들을을 제때에 꺼내지 못하는 것도 야속하지만,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연애를 자꾸 하는 것도 야속하지만, 그녀 앞에서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너무나 야속하지만, 그녀가 '나를 때려달라'고 요구했을 때, 싫다고 해서 너무 좋았다. '네가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라면서 그녀를 때리거나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그건 아닌 것 같아, 라고 말하고 거절해서 또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아니라고 말해줘서, 싫다고 말해줘서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를 숨기려고 했던 그 시간들에 대해 용서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평생의 상처로 남아있을 테지만, 그래도 때려달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감각과, 자신의 그 감각대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태도가 너무나 좋다. 누군가를 때리는 행위가 상대가 요구한다 해도 옳지 못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너무나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녀를 숨겨놓은 존재로 만들었던걸까. 너무 어려서 그랬을까.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게 너무 소중한 나이라서, 무리로부터 배척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한 사람을 그렇게 바닥으로 내동댕이 친걸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면 그들에게는 그런 까닭이 있을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결국 헤어진다면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안되는 사람들이구나 하겠지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결국 서로의 곁에 머무르게 됐다면,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그게 맞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옆에 있게될 관계라면 그렇다면 그들에게 만남과 헤어짐을, 그 사이사이 다른 사람들을 도대체 왜 준걸까? 신이 혹은 운명이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한 이유는 대체 무얼까? 이 사람이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인지 더 잘 알기 위해서 그렇게 한것일까?
이들은 아직 청춘이다. 방황했던 시기가 저마다에게 있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방황은 또 찾아들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결국 어떻게 되었다, 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는 아마도 앞으로 또 만남과 헤어짐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헤어졌다 또 만나면 그 때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겠지. 서로가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다가 만난다면 아마 그 시간동안 다른 면들이 추가되고 또 지워지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관계가 형성되겠지. 그렇게 유지되면서 앞으로 쭉 함께할 수도 있고 또 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헤어지게 된다면, 부디 그것이 그들의 오해로 인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그녀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에게 모든 부분에서 우선 순위가 아님에 서운한 것처럼, 서운함은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도 찾아들 수 있다. 이 서운함을 어떻게 푸느냐도 그 관계의 몫일 것이다. 서운함과 오해가 없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할 말을 제때에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택해서 앞으로 쭉 만남만 유지한다 해도 혹은 이제 서로 다른 사람을 찾는다 해도 그건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해야 할 말을 제 때에 하는 것. 결국 관계를 유지시키는 건 바로 그 지점에서 가능과 불가능으로 나뉘는 게 아닐까.
몇 번의 헤어짐과 몇 번의 만남이 그들에게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불 속에서 잡았던 손을 놓지 않는 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잠자리에 함께 들었던 그 모두와 잠든 후에도 손을 놓지 않았던 일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잠에서 깼을 때 우리가 잠들었을 때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는 걸 아는 그 순간의 환희를 기억하기를.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그들이 헤어진 건 아니었다는 것은 또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도대체 왜 친구란 이름으로 관계를 유지하는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그게 각자의 연인에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코넬의 여자친구가 그녀를 싫어한게 과연 이해못할 일일까? 메리앤과 코넬이 다른 관계를 시작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서로를 중요한 위치에 놓았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 자리에 위치시키고 다시 돌아가고 다시 돌아가고 다시 돌아가니까, 자면서도 잡은 손을 안놓게 되는거다. 이 바보들아.이젠 인정을 해야 해, 인정을!
흐음, 네가 그리웠어. 그가 말한다.
다른 사람들하고는 이 정도로 좋지가 않아.
음, 다른 사람들보다 네가 훨씬 더 좋아. (p.289)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다. 너도 요즘 문제 있는 사람이랑 만나? 아니. 심지어 좋은 사람이랑도 안 만나. - P103
메리앤은 5월 이후로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시험이 끝난 후 고향집으로 돌아갔고, 그녀는 더블린에 머물렀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알았어. 사실 그녀는 그의 여자 친구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심지어 그의 전 여자 친구도 아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 P140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섬뜩한 짓을 하면서,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걸까? 사랑이라는 게 가장 비열하고 가장 모욕적인 형태의 폭력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세상은 그렇게 사악한 곳일까? - P246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캐릭클리를 떠났는데, 여기가 너무 싫어요. 그렇다고 지금 다시 거기로 돌아갈 수도 없고요. 그 우정이 다 사라지고 없으니까요. - P267
문학은, 이런 공개적인 낭독회에서 드러나듯, 무언가에 저항하는 형식으로서는 발전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도 코넬은 그날 밤 집에 가서, 그가 새로운 소설을 위해 적어둔 메모들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보았고, 예전처럼 만족스러운 느낌이 몸속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완벽한 골을 지켜보는 것 같았고, 나뭇잎 사이로 살랑살랑 스며드는 햇살, 지나가는 차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한 토막 같았다. 삶은 그 모든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희의 순간들을 기꺼이 내어준다. - P272
메리앤은 다시 한 번, 잔인한 짓은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어쩌면 가해자에게도 더 깊고 더 영구적인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괴롭힘을 당할 때만 자신에 대해 통찰력 있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법이다. - P277
헬렌이랑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았지? 글쎄. 가끔은 외로웠어. 헬렌이랑 함께 있으면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인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었거든. - P283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들을 내리고, 그러고 나면 삶 전체가 달라진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야. 지금 우리는 사소한 결정들로도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는 그런 기묘한 나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껏 넌 나한테 대체로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고, 나는 내가 확실히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네 덕분이지. - P285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더이상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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