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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ㅣ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평점 :
몇해전에 들었던 정희진 쌤 강연에서 정희진 쌤은 본인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은
책으로부터 얻는다는 말씀을 하셨더랬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으로부터 얻는게 무척 많다고 자부하면서도, 필요한 모든 지식을
책으로부터 얻는다는 게 가능할까, 더 많이 읽는다면 결국 그렇게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심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책으로부터 모든 지식을 얻는 것은 가능할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속도가 있으니, 또 그 책을 내가
읽어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니, 모든 지식을 제때에 얻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것은
가능하겠구나.
나는 코로나19 이후의 삶에 대해서 처음부터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마스크도 벗을 것이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예전처럼' 비행기를 타고 내가 가고싶은 곳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시간은 고작 한두달 정도였는데, 지금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고
있고, 그 사이에 나는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해야 했다.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아직 9월 계획을 취소하지 못하고 비행기와 호텔에
예약이 잡혀있는 상태인데, 지금은 6월 초이고 9월까지는 세달 남았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내심 바라고 있었다. 지금도
바라고 있다. 그러다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 책에서 여행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알라디너의 얘기를 듣고는 얼른 사서
읽었다. 내 생각보다 길어지는 이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하겠기에.
처음
등장하는 최재천 박사의 이야기들로 아주 중요하고 당연한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자연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 사실 화해라기 보다는
자연을 더이상 침략하지도 공격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 맞겠다. 최재천 박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진 것은 '우리가
전례 없이 야생동물들을 건드려대기 때문' (p.25)이라고 말한다. 박쥐가 우리한테 부러 와서 옮겼느냐, 아니다, 우리가 박쥐를
잘못 건드린거다, 라는 것. 결국 인간이 자꾸 숲으로, 야생으로 들어가서 들쑤시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았다면 옮기지 않았을
바이러스들이 인간에게 찾아왔다는 거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정리해주니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라도 우리는 더이상
예전처럼 살던 방식을 유지해서는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된거다.
그리고
홍기빈은 여행에 대해 언급한다. 뭐라고 말할지 듣고 싶었지만 듣기 싫은 그런 양가적 감정으로, 알아야 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여행에 대한 홍기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우리가 대체 왜 해외여행을 그렇게 다녀야 하느나며, 내 안의 욕망을
다스리자고 얘기한다. 홍기빈의 얘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그 무엇보다 내 욕망에 스스로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겠구나, 싶다. 내 마음을 다스려야지. 실상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건 내가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아는 거였다.
가고싶지만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은 갈 수 없다고 나를 다스리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마음먹은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아주 자주, 얼른 정리되어 날아가고 싶다고, 요이땅만 하라고,
그러면 바로 앞으로 튀어가겠다고, 의욕 충만한 상태였던 거다. 그러나 이렇게 누군가 활자로 얘기해서 정리해주니, 좀 더 단단하게
질서를 잡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꼭 가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나에게 좀 더
자주 부드럽게 말해줘야 겠구나. 이렇게 쓰면서도 그런데 너무 속상해. 하...
이번
코로나 상황을 보면서 미국에 대해 가장 놀랐다. 너무나 급속하게 확진자가 생기고 사망자도 늘어나는 것에 너무 몰라서, 도대체
미국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인 미국이 도대체 왜 이렇게 대책없이 무너져가고 있는가, 생각한거다. 게다가 뉴스 화면상에서 보는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예방에 참여하는 것 같지도 않은거다. 게다가 최근에는 백인경찰이 흑인을 사망케 하는 사건도
일어나 미국 전역이 들끓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미국은 총체적 난국인것 같았다.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분노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미국의 지도자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지도자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다면 미국은
지금과 달라졌을까. 다른 지도자였다면 코로나가 확산될 때에 그리고 백인경찰이 '또' 흑인을 사망케 한 일에 대해, 다른 지도자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것은 지도자의 문제인걸까. 곳곳이 들쑤셔진 미국은 그렇다면 안정이 찾아오긴
할까, 언제 찾아올까, 에 대해서 좀 충격적인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누리' 가 말하는 미국에 충격받은 한국인중에는
이렇게, 내가 있었다.
미국은 사실 내게는 어릴적부터 가고픈 나라였다. 선망의
대상이랄까. 내가 보았던 영화, 내가 읽었던 책, 내가 들었던 음악에 미국이 있었다. 센트럴 파크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내가
살면서 꼭 가봐야 할,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내 손으로 돈을 벌고나서 미국에 여러차례
다녀온 뒤에도 뉴욕이란 도시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현실적이 되어 '언젠가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여기는 내가
살 수는 없는 곳이구나'로 바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언제든 또 찾아가고 또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 곳이
이렇게 처참하게 엉망이 되는걸 보는 건 충격이었는데, 어쩌면 (이 책의 정관용 표현대로)엉망이 '되는'게 아니라 엉망이었던 모습을 내가 미처 보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에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미국에 '여행'차 갔을
때에는 단순히 여행자의 모드로 그곳을 보았지, 거주자의 눈으로 그곳을 보진 못했을 테니까.
그러고보면 반미정서가 가장 적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내가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으면서 그런 나라의 사람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우리에겐 어떤 시간들이 있었던 걸까.
얼마전에도 미국에 저항하는 나라, 에 대해서 친구랑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에 대한 감상에서 얘기하게 된건데, 그때 나는 친구에게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인용문을 들려주었더랬다.
다음날 저녁은 우리가 마닐라에서 보내는 마지막이어야 했어요. 나는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을 켰을 때 처음에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영화가 아니고 뉴스더라고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중략)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공격의 희생자들을 생각한 게 아니에요. 텔레비전에서는 어떤 허구 인물이 죽으면 마음이 많이 움직이죠.
여러 일화를 통해 내게 친숙해진 인물이 죽으니까 그런 거죠. 그런데그 순간은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p.66-67
파키스탄
사람인 주인공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여자를 사랑하고 미국에서 직장을 잡고 살지만, 그러나 미국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해
쓴 소설이다. 그는 이 거대한 미국,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배타적인 미국을 무릎 꿇게한 상징성에 대해
즐거워한다. 주인공도 이런 자신의 감정에 대해 혹여나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 저어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어떻게
미국한테, 이렇게 거대한 나라를 어떻게, 감히, 무릎 꿇릴 생각을 했을까, 에 대해 생각한거다.
미국은 나에게, 이슬람 사람들에게, 유럽 사람들에게, 아시아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어떤 나라였던걸까.
미국에
친구들이 있다. 다른 나라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멀리 있다는 것이 나에게 그동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그렇게 만나기도 했으니까. 그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기도 하고 우리의
중간지점인 다른 나라에서 만나기도 했었으니까. 나는 별 걱정없이 이런 삶이 언제든 가능할거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내 '의지'와
'시간'과 '돈' 만 있다면, 아무리 먼 곳에 당신이 있어도 우리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산불 때문에, 태풍 때문에, 지진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그런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일은 내게 가능해질까? 가능하다면 그건 언제쯤일까? 그리고 그렇게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일은, 정말
괜.찮.은.걸.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내가 만나겠다는 것이, 또 다른 식으로 결국은 자연과 인간을 공격하게 하는 건
아닐까.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에도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면 그런데,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의 여섯학자들은 모두 우리가 '예전처럼' 살게될 순
없을 거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삶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에게 잠재력이 있으니 희망을 갖자고 말하는데, 나
역시 이모든 상황이 안정될 것이고 우리가 적응할 또다른 삶의 모습에 우리는 결국 익숙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순간
우울해진다.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두렵고 간절히 원하는 것을 뒤로 밀어두어야 하는 것도 두렵다. 무엇보다 이 두려움이
오래 지속될까 두렵다. 마음의 질서를 찾자고, 반복해 속삭인다.
지금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백신밖에 답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백신을 만들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린다면서요. 아마 실질적으로 2~3년 걸리겠죠. 그런데 만일 앞으로 바이러스가 거의 매년 우리를 공격한다면, 백신은 늘 뒷북을 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1년 동안 몇만 명 죽고 난 뒤에야 백신이 개발되고 유통되는 셈이죠. 백신은 독성을 약화시켰거나 죽인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로 만들거나 병원체를 둘러싸고 있는 표면 단백질 혹은 독소를 추출해 만들잖아요? 이런 화학백신보다 더
좋은 백신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행동백신과
생태백신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로 행동백신의 일종입니다. 옮겨가지 못하게만 하면 바이러스는 아무 힘이 없거든요. 그리고
숲속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게 생태백신입니다. 우리가 행동만 확실하게 하면 옮아가지 않습니다. 그게 훨신 더 좋은
방법이죠.
바이러스가 번번이 나타날 때마다 백신 개발한다고 1년이나 3년을 허덕이다가 대충 넘어가게
되거든요. 바이러스의 창궐 시기가 점점 짧아져 3~5년마다 한 번씩 인류를 덮친다면 우리는 늘 뒷북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백신의 안정성과 효과를 검증하려면 바이러스가 계속 유행하고 있어야 하는데, 수십만 명이 죽어나가고 세계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무렵이면 바이러스는 저절로 한풀 꺾이기 마련입니다. 사스와 메르스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요.
-최재천, p.33
소비가 미덕인 건 현대밖에 없죠.
그렇죠.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꼭 해외여행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명도 이 문명밖에 없습니다.
전부 새로 나온 거죠.
그런데
이런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는 원칙이 계속되는 한 생태 위기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코로나19 위기도 누그러지지 않을 거고요.
현대문명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이 원칙에 대해서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에 우리 스스로 질서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인가.
무한한 욕망을 계속 무한하게 긍정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해야 합니다. -홍기빈, p.120-121
여기서
우리가 살아온 방식도 바꿔볼 게 있을 겁니다. 우선 매년 한 번씩 해외로 여행을 가서 공기를 더럽히고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가서 피사의 사탑을 꼭 손으로 만져봐야 할까요? 지하수고 암반수고, 심지어 빙하 녹은 물까지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도시에서
마셔야 하겠습니까? 덴마크 사람들도 우리도 농사 짓고 돼지 기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단 몇백 원, 몇천 원이 더 싸다고 해서
우리 농산물을 덴마크로 보내고, 덴마크에서 돼지고기를 가져오다보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질서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욕구와 능력의 한계와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유한한 인생인데 수십 년을 한없이 먹고 한없이 입다가 끝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바이러스는 미물이지만 우리에게 인간과
이웃과 자연이 함께 지복을 누리는 '좋은 삶', 그걸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홍기빈, p.125
미국은 뭐든 잘하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엉망이잖아요.
미국이
저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나라가 한국이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국민은 한국인일 거예요. 대체로
유럽에서는 미국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이 넓게 퍼져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반미주의가 약한 나라, 거의 없는 나라라고 이야기할 정도예요.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우리가 앞으로 선진국이 된다면 따라가야 할 나라라고 생각했던 미국이 저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 못 한 거죠.
사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제3세계 수준의 삶을 산다는 것, 게다가 생존과 생명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지켜줄
공공의료시스템이 없다는 걸 지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진 미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너무나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고요. 왜 그런가 하면 한국은 사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미국화가 심한 나라거든요. -김누리, p.134-136
정말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원하는 걸 계속 추구하다보면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훨씬 더 많이
빼앗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역량을 발전시켜가는 사회나 문화에서는 더 적은 걸 가지고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김경일,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