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있는 바이러스 박사인 '에드바르트'는 어느날 우연히 젊고 아름다운 '뤼트'를 보고 반하게 되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 에드바르트의 나이가 42세였고 뤼트의 나이는 28세였다. 에드바르트는 한 번도 결혼한 적 없었으며 뤼트는 결혼을 했던 적이 있으나 그것은 뭐 별로 꺼내기도 싫은 당시의 실수였다며 어쨌든 지금은 싱글인 여성이다. 이들이 결혼하기 전, 뤼트의 아버지를 방문하는데, 뤼트의 아버지는 사위가 될 에드바르트와 고작 열 살 차이다. 뤼트와 에드바르트의 나이차보다 사위와 장인의 나이차가 덜 나는 것. 뤼트의 아버지는 에드바르트의 나이를 일깨워준다. 에드바르트가 뤼트에 비해 훨씬 나이가 많음을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이봐, 자네는 늙었어.
"걔는 남의 말은 안 듣고 제 생각대로만 하는 애라서." 아버지는 두 번째 잔을 단숨에 비우고 술에 젖은 입술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쪽과 내가 열 살 차이요. 그러니 의사 양반은 뤼트보다는 나하고 더 가까운 세대 사람일 거요. 나는 늘그막에 딸내미가 나를 좀 돌봐줬으면 생각했는데 사정 돌아가는 꼴을 보니 딸내미가 의사 양반 휠체어를 밀어주게 생겼구려. 그런 걸 원하시오? 노년에 나이차 많이 나는 건강한 아내에게 병수발을 받고 싶은 게요?" (p.32)
깔깔깔.
아내에게 병수발 받고 싶은 거냐는 물음은 통쾌하지만, 그러나 딸이란 무엇이고 아내란 무엇인가. 아버지는 딸이 자기를 돌봐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딸이란 무엇이고 아내란 무엇인가. 부모가 늙어갈수록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이 자식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아버지에겐 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늘그막에 자신을 돌보아줄 것은 으레 딸일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어쨌든, 이 아버지는 늙은 사위에게 노골적으로 묻는다. 너 부양받고 싶냐?
사위(가 될 남자)는 그런건 생각해본 적 없다, 그건 너무 먼 일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 다시 한 번 팩폭 날려주신다. 흥! 네 나이가 마흔둘인데 멀긴 뭐가 멀어?
"하하! 그리 생각하시오? 자, 그럼 내가 미래를 점쳐드리리다. 오차가 있어봤자 1~2년 안팎일 거요. 10년만 있으면 의사가 전립선 검사를 한답시고 똥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을 거요. 그거, 오지게 아프지요. 조금 있으며 손끝이 저려서 심장 기능 검사를 한다고 자전거 같은 거에 앉아야 할 날이 올 거요. 혈관도 얼마 못 가 여기저기 녹이 슬 거요. 안경 없이는 설명서 같은 건 읽지도 못하는데 그놈의 안경을 어디 뒀나 기억이 안 나서 한 세월을 보낼 거요."
에드바르트는 미소를 지었다. 뤼트의 아버지는 유머를 아는 사내였다. 그는 이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 아버지가 에드바르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에드바르트는 어리둥절했다.
"여기, 이마에!"
에드바르트가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보았다.
"뭐가요?'
"안경! 글자를 읽으려면 안경이 있어야지!"
"저는 안경 없이도 아주 잘 보입니다." 에드바르트는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거두기를 기다려 그렇게 말했다.
"흥, 3년 후에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자고." (p.33)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나에게도 언젠가부터 노안이 찾아왔다. 어릴 적에 다들 한번쯤 그런 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나. 어른들이 신문등의 작은 글자를 볼 때 오히려 눈에서 멀어지게 떨어뜨리는 것. 너무나 당연항 상식이 '작은건 가까이에서 큰 건 멀리에서' 보는 거잖아. 그런데 작은 글자를 오히려 눈에서 멀어지게 해서 보는게 신기했다. 그걸 왜그리 멀리 떨어뜨려 보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잘 안보여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나 역시 어김없이 '작은게 안보이면 더 가까이 들여다봐야지'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데!
내가!
이 내가!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작은 글자를 멀리 떨어뜨리며 보더라. 그걸 처음 깨달았을 때 헉! 내가 지금 뭘한거지? 하고 놀랐더랬다. 이건 어릴 적에 보던, 나이든 어른들이나 하던 건데... 설마 나에게 노안이???
늙어가면서 몸의 이곳저곳이 제 기능을 다했다고 아우성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도,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지고 점점 빠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터였다. 다이어트를 마음 먹어도 살이 안빠지는 것도, 소화기능이 예전같지 않은 것도 모두 노화가 가져오는 것일진데, 이런 모든 것에 내가 뭐 크게 반항할 생각은 없었다. 오래오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려면 이런 몸에 서서히 길들여져야 할터였다. 물론, 서운하고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노안이 온다는 것, 글자를 읽기 힘들어진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큰 공포였다.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한글을 다 뗐던 아이였고, 한글을 뗀 순간부터 책을 읽었던 사람이다.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네가 정말 책을 읽는게 맞니?' 하며 저마다 책을 들이밀고 글자를 읽어보라고 했더랬다. 책은 내가 글자를 깨우친 그 순간부터 내 옆에 있던 것들이었다. 친척집이나 친구집 하다못해 피아노선생님 집에 놀러가도, 나는 그 낯선 집의 책장 앞으로 가서 책을 빼들고 읽는, 그런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과 멀어진 적도 없었다. 책과 나는 점점 더 가까워지기만 했지. 그리고 책하고 앞으로도 멀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책은 언제나 내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너무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있어서 '자연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나는 자연으로 가게 된다면 책을 모두 싸들고 갈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러면 모두 다 괜찮아지니까. 시간이 갈수록 더 늙어가는 부모님을 부양하느라 독립은 요원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혹여 혼자 살게 된다면 방 하나는 책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리라 생각했다. 이민을 가게 되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그럴 때에도 책만큼은 다 싸들고 가고 싶다. 아니, 가지고 있는 전부는 아닐 것이고 좀 솎아내야 겠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면, 도착할 곳이 낯선 나라라면, 그러면 더더욱이 책을 싸들고 갈것이다. 혹여 누군가와 동거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도 나는 내 책을 그대로 싸들고 가서 공간 하나를 따로 내어주고 가끔은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하루중 어느 시간만큼은 그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고 싶고 또 새로 책을 사서 쌓고 싶다. 읽고 팔고 쌓는 일들이 반복되겠지만, 그러니까 책을 내 삶에서 놓을 생각은 나는 전혀 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삶에서 즐거운 것을, 좋아하는 것을 늙어감에 따라 하나씩 버려야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가장 나중 버릴 것, 최후까지 가지고 있을 것은 책(과 술)이었다. 나는 아주 늙어서도 책(과 술)만 있다면 다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단 한 순간도,
내가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노안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놀랐다. 두려웠다. 소화 기능이 떨어진것보다 그게 더 두려웠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건가 생각하니 너무 무서워서 미치겠는거다.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생각해봐야 하나. 내가 책을 읽을 수 없게 된다면 그 다음을 생각해보아야 했다. 오디오북, 그래 오디오북이 있으니까... 라고 했지만, 내가 오디오북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떡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책을 좀 읽어 달라고 해야할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 안되겠다, 병원에 가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 하고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제가 노안이 온건지, 요즘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고 작은 글자 멀리 떼어내야 보이고... 라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검사를 해보시고는 노안이 왔네요, 하셨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노안..이 내 일이 될 줄은 몰랐어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벌써 2년전의 일인가 ... 일단 눈이 건조한 걸 먼저 치료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나이가 젊으니 벌써 돋보기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눈 건조한 걸 치료하고 지내다가 5년후쯤 돋보기 맞추자고 하셨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지금 심각한 건 아니니까 5년후에 맞춰도 되겠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선생님께 여쭸다. 선생님, 제가 혹시 루테인이나 이런거 먹으면 노안을 늦추거나 완화할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선생님은, 그런 거 아무 소용도 없어요, 그냥 돋보기 써야 해요, 하셨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루테인 사두었는데 그 뒤로 내팽개치고 있다. 먹는 걸로 노안 치료 아무것도 못해요, 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노안이라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돋보기 쓰면 책 읽기는 가능해지는거니까... 다행인건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재작년에 이 일에 대해 네이버에 일기를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네이버 이웃이 그랬다. 자신은 벌써 돋보기를 맞췄노라고... 하아.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늙어가는건가... 슬픔의 새드니스.........
작은 글자를 멀리 떼어놓고 보는 일은 점점 더 빈번해졌다. 얼마전에는 친구들과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펼쳤다가 나도 모르게 메뉴판을 멀리 떨어뜨렸다. 친구들과 함께 웃었다. 며칠전에는 엄마랑 티비를 보는데, 티비에서 화폐 전문가가 나오고 있었다. 그 전문가는 천원권 지폐 앞면에는 퇴계 이황이 그려져있고 뒷면에는 숲속에 집이 있는데, 그 집안에 퇴계 이황이 있다고 했다. 나는 오오 그래? 확인해보자 싶었고 엄마는 그런 내게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미셨다. 그렇게 뒤에 보는데 일단 숲은 보이는데 집이.. 나는 '으미 안보이네' 하면서 좀 떨어뜨렸고 엄마는 옆에서 깔깔 웃으셨다. 그런데 집은 보이는데..그 안에 이황은 보이질 않는거다. 엄마, 사람은 안비는데..하면서 더 멀리, 더 멀리 떨어뜨렸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엄마는 웃음을 멈출 줄 모르셨다. 아아, 나는 엄마랑 같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ㅠㅠ
토미 비링하의 《나의 아름답고 젊은 아내》를 읽으면서 너무나 많은 남자들이 '어리고 아름다운 아내'를 트로피삼아 데리고 다닌다는 걸 생각했다. 이렇게나 어리고 아름답고 쭉빵한 여자가 내 여자지, 하면서 자랑삼아 데리고 다니는 모습들이 매스컴에서도 보여지지만, 실제 생활에서도 그걸 자랑삼는 사람들이 많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옆에 두는 것이 마치 자기의 능력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런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이렇게 멋진 나'를 드러내고 싶어 그렇게 행동하는 건, 실제로 또 많은 남자들이 '저새끼 능력좋네' 라면서, 그걸 능력으로 쳐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 모두에게는 그러니까, '이런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나'를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고, 그런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더 큰것일테다. 우에노 지즈코는 남자들의 이런 심리를 잘 분석해두었었다.
K군(무차별 살상 사건의 범인)은 말한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차를 도난당하지 않아도, 야반도주하지 않아도, 휴대전화 의존증에 걸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여자
친구‘가 모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역전 홈런의 히든카드라 생각하는 그의 사고는 완전히 도착하고 있다. 실제
인과관계는 ‘일을 그만두거나, 차를 도난당하거나, 야반도주하거나, 휴대전화 의존증에 걸리는 놈‘한테 여자 친구가 생길 리 없다, 일
테니까.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P74
그런데 남자에게 있어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학력이 없어도, 직장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여자
친구만 있으면‘ 왜 역전타를 날릴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인기‘가 다른 모든 사회적 요인을 웃도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여자 친구만 있으면 ‘나는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여성에게 선택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2장에서 논한 세지윅의 호모소셜리티 개념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에게 선택되는 것에 의해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남성 집단의 정식 멤버로 인정됨으로써 최초로 남성이 되는 것이며 여자는 그 가입 자격을 위한 조건, 또는 그
멤버십에 사후적으로 딸려 오는 선물 같은 것이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여자를 한 명 소유‘, 즉 문자 그대로 ‘자기 것을
하나 가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P74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하고 바라던 K군의 외침이 진정으로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면 그가 선택했어야 하는
행동은 아키하바라에서 타인을 칼로 찌르는 행동이어서는 안 됐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행동을 근거로 판단했을 때, K군과 J군이
공통적으로 바랐던 것은 자신을 ‘남성으로 만들어주는‘, 독선적인 ‘여성 소유‘욕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P84
물론 모든 남자들이 다른 남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젊은 여자들과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닌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자를 트로피 취급하는 남자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니잖아?
나 역시 내가 나보다 훨씬 나이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너무 노화가 찾아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연애고 섹스고 죄다 갖다버린 상태이긴 하지만, 또 사람은 모르니까, 갑자기 어느날 젊은 남자가 나타났는데, 헐... 이 감정..뭐지? 이러면서 사랑에 빠지게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와 연애를 하고 삶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매우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조만간 돋보기도 껴야 하고, 체력도 예전같지 않은데, 젊은 연인은 하고 싶은게 얼마나 많을까. 내가 바라는 건 그게 누가 됐든,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인데, 그러니까 방에 처박혀서 책을 읽든 글을 쓰든, 그것에 태클 걸지 않는 것인데, 젊은 연인은 자꾸 인라인 스케이트 타러 가자고 하면 어떡하지... 하루에도 열두번씩 섹스하자고 덤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지는 것이다. 섹스는 한 달에 한 번만 하자... 내가.....좀 힘들다? 다 귀찮다..우리 섹스대신 명상 어때?
요즘 자기 전에 '요가소년'의 15분 '요가 니드라' 하는데, 이거 좋더라. 우리... 섹스 대신 요가 니드라 한 판, 어때?
아아, 어쩌면 나는 '젊은 남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건지도 모르겠다. 젊은 남자라고 하루에 열두번씩 섹스하란 법 있나. 어쩌면 나보다 섹스를 더 싫어할 수도 있고 섹스를 아주 못할 수도 있고 발기 자체가 안될 수도 있는 것임에... 내가 헛상상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젊은 남자가 섹스를 많이 할거라는 편견, 버리자. 이미... 젊은 시절에 다 이것저것 겪어봤잖아?
나는 그냥 혼자 명상하는 걸로... 아무튼 토미 비링하 때문에 잠깐 젊은 연인에 대한 망상을 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윤여정도 자기 머릿속에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별까지 다 했더랬지. 후훗. 직접적 고통과 고생이 없으니 머릿속 연애가 제일 좋은 것이여. 완벽하다.....
자, 그러면 우리의 에드바르트, 그는 이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너 어떻게 저런 아내를 얻었냐'며 부러움 한껏 받으며 잘 살고 있을까? 함 보자.
뤼트와 그는 함께 늙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늙어버렸고, 일반적인 인구 법칙을 적용해보건대 결코 뤼트의 노년을 볼 때까지 살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을 처음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뭐든 못 내놓을까! 그때만 해도 나이 문제로 이렇게까지 괴로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를 차지하고서 느꼈던 그 승리감! 하지만 그는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것이 결코 거머쥐어서는 안 될 승리였음을 알았다. 출발은 의기양양한 승리였으나 이제 남은 것은 불리한 싸움뿐이었다. (p.90)
젊고 아름다운 아내랑 결혼했지만, 바람을 피는 것은 늙은 남편을 둔 젊은 아내가 아니라, 젊은 아내를 둔 늙은 남편이다. 그는, 다른 부부들이 그런것처럼 이 결혼에 지친다. 섹스가 의무가 된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라고 해서 사랑이 영원히 찬란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가 처음부터 반한 것이 그녀의 엉덩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그는 아내보다 더 젊은 여자와 바람을 핀다. 늙어서 이제 발기도 잘 안되고 발기가 되어도 유지가 좀 힘든데, 그래도 바람피는 여자와는 그게 좀 된다. 그래서 짜릿한 바람피는 생활을 유지하며 살고 있냐고? 아니. 그는 오십세에 몰락한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몰락한다. 몰락은 한꺼번에, 한순간에 찾아온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로 의기양양...은 그렇게 생각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그는 남편으로도, 아빠로도, 박사로도, 한 인간으로도... 이제 사실 딱히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아, 그게 그가 늙었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나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짓이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가져야할 욕망은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우에노 지즈코도 지적한것처럼, 이 관계를 어떻게 시작하고 또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앞으로 나의 삶에 더 긍정적인 효과를 줄것이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함께하고 싶다면, 나는 그것이 당신이라는 사람이 좋기 때문이어야 하는거지, 당신이 젊거나, 혹은 잘생겨서나 여서는 안된다. 젊음은 늙음으로 찾아올 것이고 잘생겼다는 것은 금세 빛이 바랜다. 우리는 수많은 '잘생겼던' 연예인들이 한순간에 꼴도 보기 싫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걸 너무 많이 보아오지 않았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해 젊고 잘생긴 애인을 두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자아실현이다. 그건, 베티 프리단이 이미 말해준 바 있다.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은 관계를 맺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성적 만족도도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성관계는 에전보다 더
나아졌으며 항상 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밝혀지는 매우 평범한 보고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자신이 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 깊고 심오한 관계를 맺고, 더 포용하고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더 완벽하게 식별할 수 있고, 자신의 경계를 더 많이 초월하며,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p.557)
내가 나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면 더 좋은 관계, 더 만족할 만한 관계 역시 따라오게 된다. 더 깊고 심오한 관계, 더 포용하는 더 큰 사랑. 이건 그저 바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니까?
아무튼 오늘 밤에는 여러분 모두 요가 니드라. 내 조카도 어제 요가 아저씨 목소리 들으며 꿀잠잤다고 오늘 소감을 밝혀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