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송혜교와 박보검 주연의 <남자친구>를 보는데, 송혜교의 비서이자 친구가 송혜교에게 그런 말을 한다. '학창시절 콘서트에 다녀와서 선생님한테 혼날 뻔 했는데, 전교1등에 모범생인 니가 콘서트를 가주니까 니 덕분에 나도 안혼났다' 고. 이 부분을 보면서 아, 전교1등이란 무엇인가... 하였다.
전교1등..
나는 전교1등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전교 1등이 다 뭐야, 나는 반에서 1등도 해본 적이 없는걸.
그래서 어제 그 부분을 보면서 내가 1등을 한 게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았다.
유치원은 안다녔으니 패쓰하고 국민학교 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대학교 4년... 동안 1등해본 게 뭐가 있나?
없다.
없어.
없네.
학창시절 동안 물론 상장을 받은 적은 있었다. 표어짓기, 글짓기, 경필대회, 독후감 등등. 상장을 받아보긴 했지만, 그 상장도 상들 중에 중간정도였지, '대상'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어. 무슨 그런 대회를 해도 간혹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잘하긴 했지만, '월등히' 잘해서 상을 탄 것도 아니었다.
어쩜 이래?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하나씩은 있다는데 나는? 나는? 왜 뭐 1등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계속 생각했다. 그래도 남들보다 월등히 잘한 무언가가, 1등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없다.
없어.
뭐하나 '제일' 인게 없네. 뭐하나 '최고'인게 없어.
'그건 니가 제일이지.', '그건 니가 최고야' 할만한 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인생 왜이렇지?
그러니까 학창시절에도 나는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을 잘했는데, 그렇다면 그거 맨날 백점받고 내신1등급이냐 하면, 그게 아니라, 내가 다른 과목 이를테면 수리영역이나 사회탐구 영역보다 점수가 높다는 거였다. 서른 한살에 내 인생에 벼락처럼 내리꽂힌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나를 어필하기 위해 쓸데없이, -아니, 무슨 서른 살에 학창시절 외국어영역 얘기를 했을까-, '나 외국어 영역 잘했다, 점수가 높았다'고 한껏 자랑한 일이 있었다. 그게 그와 나의 첫만남이었고, 나는 아마도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만점 받았던 것도 아닌데, 하나도 안틀리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다른 것에 비해 '적게' 틀렸던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잘한다고 한껏 으스댔지. 그러자 내 앞에 앉아 삼겹살을 굽던 그는 아 그러냐고 하더니, '저는 외국어영역 만점 받고 대학갔어요' 라고 했던 것이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나..
나는 전교에서도 반에서도, 공부로도 그 뭣으로도 1등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만 1등을 자랑하고 싶어서, 내 여동생이 전교1등하면 자랑하고 다니곤 했다. 그러니까 나는 전교1등 못해봤지만 전교1등 동생 가진 여자... 반에서 1등했던 남자랑 연애했던 여자..쯤은 되시겠다.
그러니 당연 장학금 받아본 적도 없다. 이게 나이들고 나서 내가 장학금 한 번 못받아보고 학창시절을 끝내버렸다는 게 너무 서운한거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방통대였지. 방통대를 내가 우습게 봤다. 방통대가서 장학금 받으리라! 하고 들어갔어. 나는 또 내가 그게 될 줄 알았지. 그러나 나는... 나였다. 방통대 가서도 공부를 안하고 ... 장학금이 웬말이야..... 재수강 해야 되는 과목만 생기더라. 결국 한 학기 다니고 자퇴했지... 대학시절 학사경고 받았던 나여..왜 사람이 변하질 않아... 나는 공부는 정말 아닌거니?
어제 계속 잠들기 전까지 생각했다. 나는 정말 1등하고도 장학금하고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인가. 정말 1등해본 적 없나. 뭐라도 긁어보자, 뭐 있지 않을까? 하다가 생각난 게, 몇 해전에 문학동네 세계문학 리뷰대회? 거기에서 1등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상품으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권 받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은 상품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그건 좀...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정말 1등한만큼 잘 써서 줬다기 보다는, 뭐랄까, 얘 책 읽고 맨날 글 쓰는 애니까 주자...라는 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뭐든 꼭 1등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만큼은 누구보다 최고인, 그런 거.
그런 게 없어, 그런 게...
앞으로도 내가 뭔가 1등할 일은 없겠지...
쓸쓸하다.
전교1등이란 무엇인가.....
나도 1등 하고 싶다.
나도 최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