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는 총 14장까지 있고 에필로그로 끝난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막 14장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 11월 남은 시간(11/28-30)을 기꺼이 투자한다면, 나는 11월 안에 이 책 읽기를 완료할 수 있을 것 같다.
14장의 소제목은 <여성의 몸을 침략하다> 로,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여자들도 있긴 하지만, 낙태를 반대하자고 운동을 하고 테러를 하는 사람들은 젊은 남자들이었다.
호전적인 낙태 반대 운동의 대변인들은 대중 앞에선 페미니스트들을 "영아 살해자"라고 불렀고, 이들 때문에 낙태율이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치솟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페미니스트들을 "창녀", "레즈비언"이라고 불렀는데, 어쩌면 이런 욕설이 더 많은 것을 시사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에게는 살인보다 성적인 독립이 더 큰 범죄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p.592)
나는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욕으로 쓰느냐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을 구멍이라고 취급하며 욕하는 것도, 일단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욕을 하는 것이라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남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욕 중에 '창녀'가 있다. 나는 이게 남자들이 너무나 모순된 존재라는 증거라 생각한다. 돈을 주고 여자의 육체를 사고자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남자들이다. 다른 여자들의 몸을 몰래 촬영해 공유하는 게 누구인가? 남자들이다. 그런데 여자들에게 '창녀'라고 욕을 한다고?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나는 그래서 장동민이 끔찍하다. 너무너무 끔찍하다.)
여자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 중에 하나가 '여자들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비이성적이다' 였다. 감성적이라는 걸 열등한 걸로 알면서 욕으로 사용하는 그들이,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가장 감정을 어쩌지를 못해 행동에 제약을 두지도 못하는 인간들이었다. 자기를 무시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는 이유로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고.. 게다가 몰래 촬영한 영상을 공유하고 자기 여자친구들의 몸까지도 올릴 수 있다는 게, 해외 성매매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하는 게 바로 그들이 하는 일이다. 그것은 논리와 이성으로 하는 일인가? 돈 주고 성을 사는 바로 그자들이 여자들에게는 또 창녀라고 욕을 한다. 뭐 어쩌라는 건지?
낙태를 금지하자는 사람들(구조작전의 멤버들)이 '영아 살해'이기 때문에 주장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피임을 잘하자'고 동시에 말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또 혼전 순결을 주장한다. 이게... 말이 되나? 아니, 여자가 섹스를 안하면, 당연히 여자의 섹스 상대인 남자도 안해야 되는 거잖아. 그래야 그 혼전 순결이 유지되지.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야? 지들이 섹스하면 섹스 상대가 있을텐데 어떻게 여자한테 혼전 순결 하라는거야?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1986년 『남자와 결혼』에서 조지 길더는 여성의 출산의 자유에 대한 남성들의 우려 밑에 깔려 있는 두려움을 가장 솔직하게 표출했다. 그는 책에서 산아제한과 낙태의 자유를 요구한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 "성적 권력의 균형이 여성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고", 남성의 가부장적인 "정력"이 고갈되며 페니스가 "한낱 노리개"로 전락하게 된다고 밝혔다. (p.592)
며칠전에 엄마와 같이 <거리의 만찬>이라는 프로를 시청했다. 낙태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나는 낙태를 하는 친구의 보호자로 따라간 적이 있었다. 친구를 임신시킨 남자가 그 자리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술비도 주지 않았다. 친구는 자신이 돈을 모았던 저금통을 그 날 가져왔더랬다.
낙태를 한 적 있던 여자들이 나와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그 때의 자기 자신을 후회하기도 하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인지하기도 하는 그런 대화들을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엄마랑 같이 본 건 너무 좋았다. 우리가 같은 여자라서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떻게 됐든 일이 벌어졌을 때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여자라는 건,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그러나 그렇게 여자가 임신을 했을 때, 그 몸으로 낙태를 받고자 하는 것도 여자고 낳는 것도 여자다. 병원에 찾아가는 것도 여자고 몸조리를 해야 하는 것도 여자다. 그런데 이 나라가 낙태가 불법이라, 지금은 낙태를 하는 여자와 낙태를 해준 닥터들이 벌을 받는다. 여기에 정작 임신을 시킨 남자들은 빠져있다. 그들은 여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심지어 범죄자가 되게 하는데도 아무런 책임이 없단다.
어린 시절에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프로를 보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어릴 때, 친구 낙태수술 하는 데 가준 적 있어."
나는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지 못했지만,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이제는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도 친구 낙태하는 데 보호자로 간 적 있어."
아. 우리들은, 우리 여자들은, 누군가의 낙태 수술에 보호자로 따라가준 적이 다들 있는걸까. 이 얘기를 트윗에 쓰자 다른 친구도 멘션을 달았다. 자신도 그랬노라고. 낙태 수술도 여자가 받고 보호자도 여자가 되어준다.
여성들이 아무리 가장 온건한 수준에서 자신의 생식력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도 반대의 불길이 활활 일어나는 건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 모른다. 교육이든, 일이든, 그 어떤 형태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든 여성의 모든 포부는 궁극적으로 아이를 가질지의 여부와 가진다면 언제 가질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된다. 이 때문에 출산의 자유는 언제나 모든 일련의 페미니즘 의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제였고, 반격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거센 공격의 대상이었다. (p.606)
나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지 모르지만, 지금은 생활이 안정되어 있다고 나 스스로 여긴다.
나는, 지금이라면 이제 아이를 낳아도 싱글맘으로서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제 내 육체는 임신에서 아주 멀어져있긴 하지만, 만약 지금이라면 싱글맘이라 해도 세상에 당당히 나를 드러낼 수 있을 것 같고(어, 근데 뭐? 왜?), 내 월급으로 아이랑 함께 사는 것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좋은 부모님과 여동생 남동생이 있고 또 좋은 친구들이 있으니, 내 아이가 딱히 사랑이 부족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마 모두들 내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게 애써줄테지. 그러나
만약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적에 싱글맘이 되어야할 상황에 처했다면, 나 역시도 아마 낙태를 선택했을 거다. 혼자 아이 키우는
게 자신이 없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사회에서 싱글맘을 보는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두려워서 낳지 못했을 것 같다.
이것도 너무 이상하지 않나? 싱글맘에 대한 예산도 삭감하면서, 그러면서 낙태를 하지 말라고 하면..뭐 어쩌라는 거지? 낳고 다
죽어라 이런거야?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지금이라면 내가 결혼하지 않고 임신해도 엄마한테 말할 수 있고 또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내가 20대에 임신했다면.. 나도 낙태했을 것 같아. 그리고 엄마에겐 계속 비밀로 했겠지."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응, 너 그랬을 것 같아."
아직 완독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책 같이 읽기는 분명 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이야기들을 같이 읽는다고 생각하니 힘이 되었다. 11월 며칠 안남았고, 자, 우리 같이 읽는 여러분 힘내서 열심히 읽어봅시다! 저는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