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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프랑수아 아르마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여행 전날, 부랴부랴 바로드림으로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구입했다. 당장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바로 전날 이 책이 사고 싶어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퇴근 후에 서점으로 달려가면서, 아아, 나는 왜 하필 이 때 이걸 읽고 싶어서 몸고생을 하는가...스스로를 원망했지만, 아니,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을 묻는 책인데, 여행할 때 가져가는 게 아니라면 언제 읽는단 말인가! 나는 다른 책들과 함께 이 책을 여행에 가져갔고, 얇은 책이니만큼 하노이의 한 까페에 앉아서 다 읽어내려갔다.
이 책은 '당신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은 무엇?' 이라는 질문을 세계 곳곳의 작가들에게 던지고 그 답을 기록해놓은 것인데, 애초에 《성경》과《셰익스피어 전집》은 책 목록에서 제외하라고 나와있다. 아마도 이 두 권이 가장 많이 선택되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인데, 사람들 참 웃기다. 분명 전제에 '이 두 권을 제외하고' 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라고 했지만' 이러면서 성경과 셰익스피어 전집을 잘만 넣어둔다. '빼라는 거 알지만' 이라는 전제를 붙인 작가도 있고, 그런 거 아예 쓰지도 않고 그냥 '난 성경!'막 이래 ㅋㅋㅋ 아아, 작가들 고집이 대단합니다.
성경은, 어쩌면 나도 가져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경을 읽고나면 세계 문학을 이해하는 데 더 폭넓은 길이 열릴 것 같아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아서. 그렇지만 셰익스피어 전집은, 나로 말하자면, 좀 여러권 읽기도 했을 뿐더러 무인도에 가져갈 책도 아니야. 그런데 아주 많은 작가들이 이 두권을 제외하라고 했음에도 껴넣는다. 성경과 셰익스피어 전집, 뭐지요?
내가 도표로 만들어서 수치화 하려고 작가이름, 가져갈 책 목록 엑셀로 만들다가 포기했다. 다만, 기억나는대로 말하자면, 아주 많은 작가들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얘기하더라. 그 책이 분량이 길기 때문이라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시 읽어도 좋을 작품이란 얘기가 많았다.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그렇다면 나는 무인도에 갈 때 아직 읽지 않은 이 책을 가져가도 좋으리라.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책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다. 그리고 《돈키호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언급하더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구권 남자작가들에게 성경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모비딕》도 여러차례 언급되었는데, 내게는 이 책이 이북으로 있지..아직 읽지 않았지만... '카뮈'의 《이방인》도 몇차례 보았고, 발자크, 도스트옙스키, 스탕달, 체호프, 폴로베르도 여러차례 언급된 작가이다.
여기에 실린 작가들이 고른 책들의 리스트는 대부분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이었다. 가져갈 책으로 꼽히는 책이 고전이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작가들 중의 다수가 남자이고, 또 그들이 가져갈 책의 상당부분이 남자 작가의 책이다.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보부아르'는 《제2의성》에서 발자크의 여성혐오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발자크를 가져가겠다고 한 작가들은 (내 기억이 맞다면)모두 남자 작가들이었다. 새삼 여자 작가들의 작품이 가시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은 몇 해전에 작가들에게 뿌려졌고, 그 대답을 책으로 묶자는 기획은 2014년에 세워졌다 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시간은 상당히흘렀으니, 지금 다시 작가들에게 묻는다면, 그리고 여성작가들의 수를 더 늘린다면, 가져갈 책의 목록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발자크나 존 스타인벡은 덜 언급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여러차례 언급된 '발자크'의 《사촌 베트》는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작가들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집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무인도에 간다면 시를 읽기에 너무 좋을 거라는 거다. 시집에 대해서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가, '정말 무인도에서는 시를 읽기에 좋을까?' 하고 계속 생각해보고 있지만, 좀처럼.. '그렇다'는 답을 내가 내릴 수가 없네?
작가들의 좋은 혹은 재미있는 대답들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작가 '로버트 올렌 버틀러'는 가져갈 책 목록에 아직 미발표된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스 듀베리'의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포함시켰다. 이건 아직 미발표작인 책인만큼 자신이 이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하고 또한 세상에 좀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였나, 전화번호부를 가져가겠다고 했고, '안토니오 카발레로'는 아무거나 백과사전으로 세 권 가져가겠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가져가고 싶으니 추천 해달라고 했고, '오늘은 이 책들을 얘기하지만 내일 물어보면 다를거야' 라고 답하기도 했다. 아, 누군가는 자신이 쓴 책을 가져간다고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책 대신 펜과 종이를 가져간다고도 했다.
아, 그리고 미셸 우엘벡!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설문조사에는 절대 답하지 않는다. -p.108, 미셸 우엘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는 분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전에 내가 읽은 《헛된 기다림》의 작가 '나딤 이슬람'은 안나 카레니나만 세 번 외친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전쟁과 평화를 선택하고 싶다고 말한다. 성경과 미워시의 시집들을 가져갈 거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위기 상황을 지나야 할 때, 감정적인 상처를 극복해야 할 때나 실수를 저질렀음을 인정해야 할 때, 일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갈 때 나는 언제나 문학에 기대곤 했다. 그럴 때 미워시의 작품은 언제나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달래주었다. -p. 31, 나딤 이슬람
아,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이 대답이 진짜 너무 좋은 거다!
문학에 기대는 것, 그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뚜렷이 기억나는데, 아주 오래전, 무슨 일 때문인지 지치고 힘들어서 갑자기 정미경의 책이 읽고 싶어졌던 거다. 그 때 집에 가는 길, 걸으면서도 그녀의 단편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를 읽었었는데, 읽으면서, 아아, 역시 소설이 짱이야, 지치고 힘들 땐 책을 읽으면 돼, 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여러분 이런 경험 있지 않아요?
'로디 도일'이란 작가는 무인도에 가져갈 책으로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을 선택하는데, 이 선택에 이렇게 덧붙인다.
이 책 앞에서 나는 사춘기 때 그랬듯 게걸스레 빠져들어, 내가 냉장고도 술집도 없는 곳에 난파되어 세상에 홀로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게 틀림없다. -p.71, 로디 도일.
아아, 이것도 너무 좋지 않은가. 내가 어디 있는지 아예 까맣게 잊게 만들 책. 나를 쏙 빠져들게 만드는 책. 도대체 그런 걸 잊게 하는 책이라니, 나의 투쟁이 어떻길래 그런걸까.
당연히 여러 책이 나오고 그래서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번 하게 되지만, '존 어빙'만큼 그 생각을 강하게 들게한 작가도 없다. 그는 모디빅을 선택하는데, 이렇게 답하는 거다.
나는 《모비딕》이 없으면 안 된다. (p.111, 존 어빙)
아아, 저기에 모비딕 말고 무얼 넣어도 성립되고, 그렇지만 신중하게 넣고 싶어지지 않는가. 도대체 그게 없으면 안된다니, 모비딕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저 문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면서, 나는 저기에 모비딕 말고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넣어봤지만, 아니, 그게 없다고 해서 '안되는' 지경까지는 아닌 것이야. '없으면 안되는 거' 그건 대체 내게 어떤 것일까?
설마..
술과 고기?
그리고 이런 충동은 또 어떤가!
내 세 번째 선택은 월트 휘트먼의 《풀잎》이 되겠다. 나는 내 섬에 세상을 가져오고 싶다. -p.147, 알베르토 망구엘
어떤 책을 가져가면 나는 섬에 세상을 가져가는 기분이 될까?
하나만 더.
'퍼 페터슨'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내 비밀의 책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노르웨이어 번역, 덴마크어 번역, 두 가지 영어 번역으로 갖고 있다. 어떻게 한 작품이 그토록 생으로 충만하고, 열정과 '사유'와 '기교'로 가득할 수 있을까!
나는 도저히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었지만, 그것도 꽤 오래전 일이며 다시 빠져들 준비가 되어있다. 두껍기까지 하니 무인도에서 적어도 일주일은 버티게 해줄 것이다. -p.187, 퍼 페터슨
나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생각이 났다. 나는 그 책을 독일어 원서로도 가지고 있고, 영어 번역본으로도 가지고 있다. 물론...둘 다 읽지는 않았고 또 읽지 못하겠지만, 퍼 페터슨이 안나 카레니나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확 다가오는 거다. 내가 새벽 세시를 사랑하는 바로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져갈 세 권'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됐다. 제일 처음,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꼽았다. 그리고 나자 나머지 두 권에 대해서는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워지는 거다. 줌파 라히리를 좋아하는 만큼 그녀의 책을 가져가야 할 것도 같고, 율리시스 같은 긴 책을 가져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싶기도 했다. 읽어봐야지 했지만 섣불리 펼쳐보지 못했던 성경은 어떨까 싶기도 했고, 아니야 그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소설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적인 사정이 듬뿍 담긴,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를 가져가면, 그 책에 얽힌 기억이나 마음까지 쏟아져내려, 무인도에서 버티는 데 문제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는 새벽 세시 말고는 다른 두 책을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했고, 그러면서 새벽 세시 시리즈로 《일곱번째 파도》까지가 한 권이라고 우겨야지! 다짐도 했다. 내심, 영어번역본과 독일어 원서 까지도 한 권이라고 우길까.... 하기도 했고.
책 제목이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이라고 했으니, 나는 무인도에 표류할 다른 사람들과 미리 어떤 책을 가져갈지 얘기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야 책이 서로 겹치지 않고 다양하게 흘러올 수 있지 않나. 그러면 서로 다른 책을 가지고서 교환해볼 수도 있잖아. 아아, 그러나 더 많은 책들을 다양하게 읽기 위해서라면, 사실 거기는 무인도가..무인도가 아닌 게 되지 않나. 그러니까 말이 안되는 것인가... 그렇지만..성경은 안가져가도 될 것 같은데, 그거슨 아마도 무인도에 이미 성경은 누가 갖다놓았을 것 같기 때문이야.. 다들 이렇게 고전들을 가져오려고 하니 내가 가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구출될 당시에 무인도에 기증하고 와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놓고간 숱한 고전들 속에서 현대 소설 읽는 깨알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아아, 인류를 사랑하는 나는 휴머니스트...
나 역시 세 권을 다 추려내지 못해, 다른 작가들도 이 질문에 답하기 너무나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나 역시 설문조사엔 답하지 않겠다고 하는 편이 속 편할듯...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해본다.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지만,
'내가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은 무엇일까?'
적어도 25권은 필요할 텐데! 나에게 문학은 마약이다. 아내는 내게 아주 짧은 여행에도 왜 세 상자나 되는 책을 철저하게 챙겨 가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독서에 제약받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p.103, 짐 해리슨)
《모비딕》과 셰익스피어 없는 삶을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p.111-112, 존 어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안나 카레니나》, 《신곡》. 순전히 실제적인 이유에서다. 거기서 몇 년을 보내야 한다면, 묵직한 책을 가져가야 한다! 나는 프루스트르 숭배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이 대목 저 대목을 나는 끝없이 다시 읽는다. (p.128, 하니프 쿠레이시)
‘도데‘의 《사포》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책이다. 줄곧 저속함의 경계선에 있으면서도 결코 그리로 떨어지지 않는 그의 글쓰기는 아주 근사하다. (p.138,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내 세 번째 선택은 월트 휘트먼의 《풀잎》이 되겠다. 나는 내 섬에 세상을 가져오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휘트먼의 시각, 격독적이고 세심하고 애정어린 시각은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앞날을 향해 펼쳐진다. (p.147, 알베트로 망구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가져가겠다. 무엇보다도 그 언어의 아름다움 때문에 계속 다시 읽는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을 쓰기 위해 노트를 잔뜩 가져가겠다! (p.166, 토니 모리슨)
그리고 선집 한 권, 선집이라기보다 나만의 명작 시집(로버트 크릴리, 데릭 월컷, 존 클레어, 타밀어 사랑 시들, 토머스 와이엇, 데니스 존슨, 잭 길버트의 글 몇 편, 에이드리언 리치, 토머스 하디, 그 외에도 다수)에 기억할 만한 단편소설 몇 편, 특히 이사크 바벨과 메이비스 갤런트의 단편을 곁들여 가져가겠다. 이 명작 선집은 나만을 위해 몇 년동안 공들여 만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여기저기서 뜯어낸 낱장들과 손으로 베껴 쓴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물에도 불에도 상하지 않는 내 구급상자다. (p.180-181, 마이클 온다체)
발견되기까지 내겐 내가 쓴 책 세 권이면 충분하다. 《낙원》, 《여자들》, 《취향 전쟁》. 난파선에서 건진 술 몇 병만 있으면, 만사가 순조롭게 굴러갈 것이다. (p.214, 필리프 솔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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