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작가의 사생활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사실 딱히 관심도 흥미도 없을뿐더러, 작품을 떠나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질 않는다. 그러니 정미경에 대해서도 책이 아닌 다른 삶, 그녀의 다른 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세상과 작별하기 전까지 가족들에게 헌신했었다는 것, 남편과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하고 마지막날까지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들을 알게 됐다. 이어령이 그녀의 재능을 몹시 아꼈다는데, 이 책속에서 정미경의 남편은, 그 재능을 가정과 가족을 돌보느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건 아닌가 내내 미안해했다. 뒤편에 실린 추모산문중 '정지아'의 글을 읽어도 그녀는 가정에 헌신적이었다. 추모 산문을 기록한 건 본인들에게도 또 고인에게도 의미있는 일이었겠지만, 나는 그 추모산문들을 읽지 않는 쪽이 좋았을거란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타인이 말을 보태서는 안되는 것이니 더 적진 않겠지만, 내게는 추모산문을 읽지 않는 쪽이 정미경을 더 정미경답게-물론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정미경이겠지만- 기억하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마지막 산문은 그녀의 남편, '김병종'의 것이었는데, 글 자체로는 역시 정미경의 소설만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나에게는 인상 깊은 산문이었다. 그것은 정미경의 남편이 정미경의 최초의 독자이며 마지막 독자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정미경은 소설을 발표하고 그것을 남편이 읽어주기를 바라고, 또 남편이 그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를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으로부터 별 말이 없다면 '이번 건 별로지?' 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그녀는 그녀의 글에 대한 평가에 남편의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물론 저마다 쓰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반드시 읽어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읽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쓴다. 즉, 한 사람의 뚜렷한 대상을 두고 쓴다는 것. 그렇기에, 그 사람이 읽으면 이 글을 뭐라고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러니 정미경이 남편의 평가를 기다리는 그 마음이 무언지 너무나 잘 알겠는 거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글을 써오던 사람이니, 어쩌면 정미경에게는 글의 대상이 단순히 남편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고난 후부터는 가장 중심적으로 남편을 생각했던 게 아닐까.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대상을 선정해놓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불특정 다수가 읽는다는 걸 인지하면서, 그러나 당신에게 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의식하고 글을 쓰는 대상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싶고.



나는 항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열심히 하는 일이 읽고 쓰는 것 뿐이라면, 읽고 쓰는 걸로 인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잘 쓰려고 꾸미지는 않지만, 내가 솔직하게 쓴 글을 내가 원하는 대상이 제대로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그 글이 그대로 그 대상에게 가 닿고 제대로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아홉살 조카와 홍콩에 가기로 했다. 나는 별 흥미가 없지만, 조카가 디즈니랜드를 너무 가고 싶어해서 함께 가기로 했는데, 어제 만난 조카는 내 손을 잡고


"홍콩 가면 이모랑 같이 시를 쓰려고 준비했어."


라고 하는 거다. 시를...쓰다니, 홍콩에서? 아니..거기까지 가서 왜...라고 생각했지만, 일전에 조카와 함께 남동생 결혼에 관해 시를 썼던 것이 조카에게는 꽤 인상깊은 경험이었나보다. 준비했다는 건 무얼 준비했다는 걸까, 그 날의 시의 주제를 준비했다는 걸까. 아니면 전에 그랬듯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라고 색연필을 준비했다는 걸까. 나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이번엔 시를 쓰고 와야 한다. 시여...



같이 놀이터에 가던 길, 시를 쓰겠다고 말하고선 이내 내 손을 놓고 제 동생을 향해 달려가던 조카를 보며 내 여동생은 말했다.


"언니, 쟤는 자기가 글 되게 잘 쓰는 줄 알아."


나는 아이의 자신감이 놀라워, "그래?" 라고 되물었는데, 이에 동생은 답했다.


"자기가 글 잘 쓴다는 자신감이 되게 큰데, 그 뒤에 언니가 있어. 이모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자기가 잘 쓰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조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 누구 조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조카는 학교에서 독서왕 상장을 받고서는 내게 전화해 한껏 자랑을 하기도 했다. "역시 이모 조카지?"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어떻게든 조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열심히 글 쓰는 일인데, 그걸로 인해서 어린 조카의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면, 그건 그대로 좋지 않은가.



나는 베스트셀러를 쓸 수도 없는 사람이고 또 쓰지도 못하겠지만, 내 글이 특정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계속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출판사 대표님은 나에게 '글로 덕을 많이 쌓았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그걸 계속 실감하는 바다. 글을 쓰면서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났고, 글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위로도 받는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이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글이 좋다는 칭찬을 해주고, 책을 보내주고 커피를 보내주고 간식거리를 보내준다. 팬임을 자처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단지 글만 읽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 놀랍고 또 고맙다. 글로 덕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한다. 이것이 내가 가진 복이구나, 생각한다. 내가 좋아 쓰는 글을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뿌듯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내가 애정해마지 않는 상대는, 내 글을 가장 재미있다고 해주었었다. 다른 사람들 글 아무리 다 읽어봐도 나는 네 글이 제일 좋아, 라고. 나는 이정도면 딱 좋다고 생각한다.



정미경이 남편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바라고 또 그로부터 나올 평가를 기다리는 그 기분 같은 것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글이란 건 대체 뭘까, 정미경 남편의 산문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정미경의 삶에 대해 조금 알게되는 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정미경의 삶에, 정미경의 글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사람이 함께였다는 건, 사실, 좀 부럽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글의 가장 큰 응원자가 되어준다는 건, 그렇게 흔하게 가질 수 없는 행운이란 생각을 한다.



나의 엄마는 내 책이 나오면 읽긴 하지만 내가 글 쓰는 이곳까지 찾아오진 않는다. 내 가족들도 마찬가지. 내가 어딘가에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예 이런 블로그 쪽으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히려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미경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항상 같이 하면서,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미경이 쓰는 글을 가장 먼저 읽고 또 정미경이 가장 평가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꽤 오래 내게 남는 일이다. 정미경에 대한 추모의 글을 읽다가, 정미경이 결혼하지 않고 글만 썼다면 어땠을까를 수십번 생각했는데, 그건 철저히 내 중심적인 생각이라는 걸 안다.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도, 본인의 글을 가장 잘 읽어주고 평가를 해주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부럽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인정받고 싶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늘상 선택 앞에서 '나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의 선택이, 나의 능력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것인가, 하고.


나는 계속 읽히는 글을 쓰고 싶고, 그 글이 나로부터 나오는 진솔한 것이기를 원한다. 또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으로 내 자신이 가장 기쁘고 편할 것이고.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글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가끔은,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라는 말을 듣고 펑펑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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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4-30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과 가족, 친구들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다락방님이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만큼, 주변에서 또 다락방님께 이런 다정한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선순환이네요...

다락방 2018-05-02 15:3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인복을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건 또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구나...하게 되고 말이지요.
잊지마세요, 2017년에 저에게 좋은 사람으로 쨘- 하교 쇼님이 나타났다는 사실을요!
:)

단발머리 2018-04-3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다락방님이 자랑스러워요.

다락방님식 독법, 다락방님식 글쓰기, 다락방님식 유머, 다락방님식 티브이 시청, 다락방님식 요리, 게다가 다락방님식 요가까지.
사랑할 수 밖에요~~~~~~~^^

다락방 2018-05-02 15:31   좋아요 0 | URL
흙흙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의 애정이 느껴지고 또 제 애정을 그에 못지않게 돌려드립니다. 흙흙 ㅠㅠ 단발머리님은 진짜 최고야! ㅠㅠ


clavis 2018-04-30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는 오늘 락방님 글에서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을 한다˝가 제일 좋았어요 엊그제 한 여성 동지의 미투를 들으면서 락방님께 달려가 이르고 함께 분노하고 싶었는데..글 쓰기 뿐 아니라 ˝빅 시스터˝로서 락방님은 제게 그러한 분이 되셨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락방만만세♥입니다

레와 2018-04-30 15:09   좋아요 0 | URL

어므나, 빅시스터 다락방! 너무 좋네요! ^^


다락방 2018-05-02 15:31   좋아요 0 | URL
크- 멋지네요, 빅 시스터라니..
기대에 부응하는 멋지고 강하고 큰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빠샤!!!

레와 2018-04-3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 시스터, 내 친구 다락방 ♡

다락방 2018-05-02 15:32   좋아요 0 | URL
응 계속계속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도록 내가 열심히 읽고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