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목 힘이 약하다. 학창시절 던지기를 정말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저 멀리로 공을 던져대는데 나는 바로 앞에다 내다 꽂곤 했다. 손목 힘이 약해서 지금도 페트병 뚜껑 따는 순간이 너무 싫다. 나는 진짜 온 힘을 기울여 뚜껑을 열어야 한다. 소주병도 마찬가지. 그렇게나 좋아하는 소주지만 소주병의 뚜껑을 돌려따는 건, 우습게 들리겠지만, 내게는 쉽지가 않다.
이렇게 손목 힘이 약해서 병의 뚜껑따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이 나는 너무 싫다. 어릴 때는 '약한척 한다'는 말을 듣는 게 싫어서 누구에게도 그걸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게 손목힘이 없다는 사실이 싫어서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가 않다. 특히 남자들과 술자리를 할 때는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따려고 한다. 그러나 온 힘을 다 쓰는 거다. 누구보다 힘이 셀 것처럼 생겨서는 뚜껑조차 힘겹게 따는 내가 너무나 야속하다.
언젠가의 데이트에서는 그냥 얘기해버렸다. 나 사실 병뚜껑 따는 거 힘들어, 그런데 사람들이 약한 척 한다고 할까봐 억지로 계속 따, 그래도 너라면 나한테 그런 말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야, 라고. 그 때의 데이트 상대는 그 후로 나를 만날 때마다 소주병의 뚜껑을 계속 따주었다.
나는 내 손목의 힘이 약하다는 게 너무 싫고 속상하다.
릴라가 아프다. 릴라의 몸이 약하다. 고된 노동에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몸은 말라갔고 스스로도 예전보다 자신이 못생겨졌다고 생각한다. 몸이 약해져서 현기증도 난다. 의사는 그녀에게 영양이 부족하다고 했고,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 아픈 상황에서 릴라는 남자 두 명이 있는 방으로 불려들어간다. 한 명은 자신을 고용한 공장의 사장이었고, 한 명은 그 사장의 더 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릴라를 앞에 두고 대놓고 희롱을 하고 모욕을 한다. 릴라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공격하려는 사람에게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못된' 여자애였다. 릴라는 자신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너무 화가나서, 이것들이!! 하는 생각으로 맞서려고 해보지만 자신의 육체에 힘이 없음을 자각한다. 저 사내놈들 둘, 공장에서 그녀를 강간하려고 했던 사장새끼와, 나의 정부가 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새끼가 함께 있는 방에서, 이를 악물고 그 때마다 저리 꺼지라고 했지만, 이 둘이 릴라에게 동시에 찾아든 이 순간에, 릴라는 자신의 몸이 약함을 느낀다. 이 몸의 연약함이 너무 싫다.
내 성격대로 내 성질대로 하자면 재떨이로 이 새끼들의 면상을 갈겨줘야 한다. 이마에 피를 철철 내고 다시는 허튼 소리를 못하게 해야한다. 그런데 내 힘이 너무 약하다. 내 육체가 내 의지대로 따라올 수가 없을만큼 내 육체가 약해져있다. 이게 싫다. 이게 분하다. 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이 부분을 읽다가 내 몸에서 내가 가진 힘이 좌르륵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기운이 없어졌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릴라에게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릴라가 사내놈들 앞에서 자신의 육체가 가진 힘이 약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 역시 함께 깨달아 버렸다. 그게 같이 싫고 같이 분했다. 너무 분했다. 나는 기운이 없었다. 나는 지쳤다. 어쩌면 금요일이라서 내가 지친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금요일이라 지친걸까, 릴라의 연약한 육체가 내게로 전해진걸까.
나는 릴라에게, 릴라가 듣지도 못하는데 말했다.
릴라, 밥을 먹어, 잠을 자.
물론 릴라가 지금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고 어려운 형편이라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니 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 그녀에겐 위험한 일이다. 어린 아이를 옆집에 맡기고 육체노동을 하러 가야하는 일상에서 그녀가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치로 느껴질만큼 먼 일이야.
연약한 육체를 혹은 연약한 정신을 가진 사람을 공격하는 건 비열한 짓이다. 사람은 누군가와 싸우게 된다면, 자신과 같은 급의 사람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 사내 둘은 돈이 없고 힘이 없는 릴라를 앞에 두고 서로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더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그녀에게 몸소 증명해보이려 한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새끼들. 이 새끼들이 틀렸다. 이 새끼들이 잘못됐다. 그런데 지금 당장 릴라는 이 새끼들 앞에 있다. 내가 아무리 욕을 하고 성질을 낸다고 해도 육체적으로 이들을 당해낼 수가 없어.
강해져야 한다.
건강을 지켜야 한다.
나는 온 몸의 기운이 빠지면서 스스로에게도 되뇌었다.
건강해야해. 건강을 지켜야 해. 잘 먹고 잘 자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내 육체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를 괴롭히는 사내들 앞에서 내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무력해지는 게 싫다. 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악물도 덤비기 위해서, 맞서기 위해서, 나는 강해져야겠다. 강해져야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을 열심히 할거야. 릴라, 우리 같이 강해집시다. 우리 건강합시다. 릴라, 기운을 내요. 밥을 잘 먹고 많이 먹읍시다. 잠을 충분히 잡시다. 내가 화가 났다면, 그 화를 육체로 표출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합시다. 내가 재떨이를 들어 그 새끼의 면상을 갈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그 말을 잘 듣도록 내 육체를 키웁시다. 당신은 어릴 때부터 강했어요. 어릴 때부터 성희롱하는 새끼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아이었어요. 지금 공장에서도 성희롱 하는 사내새끼의 귀를 물어뜯어버렸잖아요. 분한 채 뒤돌아서지 맙시다. 분한만큼 갚아줍시다.
나는 릴라가 두 사내와 맞장뜨고 있는 그 공간에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게 너무나 속상했다. 가장 육체가 약해져있는 그 순간에 그 사내 둘과 한 방에 있다는 게 너무나 끔찍했다. 릴라는 그들 앞에서 노동자였고 여자였다.
나는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강해져야지. 육체의 힘을 키워야지. 영혼이 분노한만큼 육체도 함께 분노하게 만들어야지.
그래서!!
준비해온 간식을 먹었다.
잘 먹고 다녀야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열심히 해야지.
여러분 잘 먹고 다니자.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 튼튼 마음 튼튼한 사람이 되자. 분노할 상황에서는 으르렁거릴 수 있도록. 으르렁 거리는 사람의 옆에 함께 서 줄 수 있도록.
저 초코파이 하나가 2천원인데, 아메리카노랑 먹으니 세상 꿀맛... 아침 출근길에 가방 안에서 이 초코파이를 보고 오늘 하루를 설레이며 시작할 수 있었다. 우앙- 간식있다. 그것도 고칼! 유후훗- 아메리카노랑 먹으면 진짜 세상 좋겠네...이러다가, 지하철 안에서 릴라의 육체의 나약함에 함께 기운 쭉 빠졌다가, 좀전에 초코파이 와구와구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다시 기운을 차린다.
여러분, 가방 안에 언제나 고칼로리 간식을 넣고 다니자!!
잊지 말자.
가방 안에는 고칼로리 간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