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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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블로그에 썼던 것을 가져옵니다. )

근래 반년 안에 본 것 중에 이 정도 허탈감과 분노를 안겨 준 것이라면 영화 [1408]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언제나 영화보다 책 쪽에 점수를 더 잘 준다는 걸 고려하면 이것은 정말로 독보적인 결과입니다. 심지어 [다 빈치 코드]도 이 책보다는 재미있습니다.

원래 책 앞뒤에 씌어 있는 말에 대해서는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는 합니다만 이번에는 얘기 좀 해야겠습니다. 왜냐면 이 책의 홍보 포인트가 정말로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앞표지 타이틀 아래에는 "정신분석학과 추리소설의 완벽한 만남! 프로이트와 융, 미국의 연쇄살인을 해석하다! " 라고 씌어 있는데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전립선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융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다른 제자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뻔하디 뻔한 말을 충고랍시고 던지고 그러다가 좀 쓰러지는 것 이외에 아무 일도 안 합니다. 카를 융은 미국에 도착한 당일부터 매우 이상하게 행동하고 비밀스럽게 모습을 감추고 더욱 이상하게 행동하고 수상쩍은 자들과 접선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안 합니다. 한마디로 인간같지도 않아.



그 유명한 사진. 

 모든 추리는 작가의 페르소나임이 분명한 상류 계급 출신의 젊고 늘씬하고 잘생긴 정신분석의가 하는데 이 놈은 자기 직업윤리의 희박함을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때우려고 하고 프로이트는 그걸 부추깁니다. 물론 그러면서 환자들과 붙어먹는 카를 융을 비난하지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자 프로이트와 악마의 자식 융'의 구도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저는 프로이트도 싫어할 뿐더러 융이 정확히 무슨 파시스트적인 이론을 나불거렸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지만 이 세상에는 일단 '카를 융 싫어하는 소설가들의 모임'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고 그 사실에 대해서만은 융에게 하염없이 동정심을 느낍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 두 사람이 별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미국 방문시 무언가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첫 페이지의 문구는 어떻게 해석해도 낚시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가 충격을 받을 만한 것은 대략 이런 것들이 있는데 1) 융의 변절 : 이것은 '미국인들' 을 야만인이라고 일컬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2) 살인사건 자체 : 사건의 잔혹성으로 그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이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사건은 이런 류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지극히 온건합니다. 제가 21세기의 때에 찌들었나 싶어 일부러 [연쇄살인범 파일] 따위를 다시 읽었습니다만 20세기 초반이라고 해서 이게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사건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3) 살인사건에 드러난 미국인들의 변태심리 : 이 사건의 내용물은 앞에 언급한 '귀족가문출신의젊고늘씬하고잘생긴정신분석의™'의 분석에 따르자면 그야말로 프로이트 이론에 입각한 모범적인 케이스이니 여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 그야말로 자기 목을 조이는 결과가 되지요.

이쯤 되면 실은 프로이트 지능안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프로이트가 과연 지능안티가 필요한 정도의 인물인지는 논외로 하고요. 하지만 작가의 경력이나 홍보방향으로 보아 그럴 리는 없으므로 이건 그냥 '한번 망상해 본 걸 두번 생각지도 않고 실행에 옮긴 소설' 이라고 보는 게 적합할 겁니다. 친구 아무개가 종종 '영화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고...' 라는 탄식을 하는데 소설은 혼자 쓰는 거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 정도 계획된 베스트셀러라면 편집자가 옆에서 이것저것 잡아줘야 했을 텐데 그것조차도 안 한 것 같습니다. 넘쳐흐르는 아마추어리즘에 익사할 거 같아요!

역시 홍보 포인트 중 하나인 '20세기 초 뉴욕의 풍부한 풍속 묘사' 같은 것도 없습니다. 이 말 한 사람은 '풍속'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고, 작가는 그 시대 여자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합니다. 있는 것은 오로지 읽다가 질려서 토할 것 같은 분량의 '당시의 뉴욕 건물들'의 묘사인데 그야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겠지만 최소한 저는 아닙니다. 여자에 대해서나 범죄에 대해서나 자료 하나 들쳐보지도 않은 채로 흠'ㅁ' 하고 생각한 걸 그냥 옮긴 것 같아요. 빅토리아 시대 영국 도색잡지에서도 비웃음당할 것 같은 중학생 수준의 에로 망상을 펼쳐놓고 '오오 사악한 변태의 섹스범죄 오오' 하고 있는데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영국판 표지. 이게 제일 낫군요.

 내용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정말 너무나도 저렴해 보이는 표지 사진이었습니다. 한국판 디자인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책 자체의 모양새는 고급스럽고 공을 들인 티가 났지만 저 사진은 정말...=_=; 그나마 (같은 사진을 쓰고 있는) 미국판 하드커버는 더스트재킷을 이중으로 써서 사진을 좀 가렸다고 들었습니다. 참고로 한국판 앞표지에는 "뉴욕타임즈,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전세계 32개국 출간 예정! 영화화 결정! " 이라는 말이 씌어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의 아마존 사용자 평점은 51명 평균 별 셋 반으로, 아리아나 프랭클린의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Mistress of the Art of Death](41명, 별 넷 반)보다 뒤지며 심지어 다이언 셰터필드의 [열세 번째 이야기The Thirteenth Tale: A Novel](407명, 별 넷)보다 처진다는 것을 괜히 밝혀두고 싶군요.



미국판 하드커버의 이중 표지.
저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컨셉인 듯.

전반적으로 내용물보다는 한국판 책의 모양새 쪽이 더 훌륭합니다. 요즘 추리소설 페이퍼백들을 문고판이 아니라도 가볍게 내려는 시도가 있는데(매우 마음에 듭니다) 이 책은 500페이지가 넘고 장정에 꽤 공을 들인 고로 그 정도까지 가볍지는 않더라도 적당히 기분 좋은 무게입니다. 최소한 어느 출판사의 책들처럼 팔이 빠질 듯한 고통을 안겨주지는 않습니다. 미국판 페이퍼백의 표지 사진을 내지 중 한 군데에 실은 것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디자인 정보가 빠져 있는 게 좀 아쉽네요. 아, 음식과 관련된 한두 가지 오류와, '얇은 허리' 같은 거슬리는 표현을 제외하면 번역은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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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1-0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eppie님. 저는 이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한마디로 인간같지도 않아.<-- 이 문장 때문에 eppie님께 반했어요, 정말!! >.<


eppie 2008-11-07 10:53   좋아요 0 | URL
흑, 감사합니다. [살인의 해석]을 꽤 재미있게 보셨다니 이런 리뷰를 들이댄 것이 갑자기 송구스러워집니다. ㅜ.ㅠ 하지만 다른 부분을 가능한 한 좋게 보려 애쓰더라도, 저 카를 융 캐릭터에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CMB 7권을 보다가 생각난 것은 다름 아닌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의 이름이었습니다. 보캉송의 소화하는 오리Canard Digérateur를 비롯한 여러 움직이는 인형들은 CMB에 등장한 '터키인The Turk'과는 달리 진짜 로봇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제가 이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AI를 공부해서가 아니라 매우 잡스러운 취미에 기인합니다. ^_^;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1709-1782)
(image from the Wikimedia Commons)


 다름이 아니라, 로렌스 노포크Lawrence Norfolk의 [랑프리에르의 사전Lemprière's Dictionary] 에서 매우 신비스러운 비밀결사의 일원으로 이 보캉송이 등장했던 거예요. 작가 로렌스 노포크는 실제 인물인 존 랑프리에르John Lemprière의 생에서 이 소설의 힌트를 얻은 모양인데, 이 인물의 생몰연도(1765–1824)를 보면 대략 보캉송과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소설에서 보캉송은 이미 나이가 들 대로 든 음침한 엔지니어이자 인형사로 등장하는데, 이 막가는 소설의 설정상 보캉송도 실제로 그가 했음직한 일보다 더 무시무시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야기가 너무 뻘스러워질까봐 여기까지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는 피아노줄 비슷한 걸로 로보토미 비슷한 일을 해내고 그의 작품이자 환자인 전직 암살자의 의지를 콘트롤합니다. 이건 무척 뻘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이 책에는 저것 외에도 보캉송의 작품(이라고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들)인 기계장치들이 잔뜩 등장하고,
 저는,
 매혹당했습니다.

 사실 보캉송은 자동 직조기의 최초 발명자로도 유명합니다만, 분명히 말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실제로 하고 싶었던 일은 기계들로 세상을(*더 정확히는, 프랑스를) 이롭게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고, '오리' 나, 플루트 연주자나, 탬버린 연주자는 그저 그의 쇼룸의 일부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 이 '장난감' 들이었다는 사실은 저나 저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클 겁니다. 처음에는 미니어처 마네킹이었던 안티크 인형들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 '논다', '즐긴다' 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8세기에 자동인형을 꿈꾸었던 보캉송이나, 21세기에 보빈으로 레이스를 엮고 있는 제 친구나 양쪽 다 즐겁게 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image from the Wikimedia Commons)

물론 보캉송의 오리는 진짜로 음식을 '소화' 하지는 않습니다. 나무조각에 가까운 작은 나무통에 음식을 넣어 삼키고 그 소화 과정을 조사했던 어느 과학자의 고통스러운 연구 과정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소화 과정을 구현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리' 는 그저 머리를 숙여 음식을 쪼고, 그것을 적절한 처리를 거쳐 내보냈던 겁니다. 이래서야 그냥 우유 먹이는 장난감 인형에 푸드 프로세서가 붙은 것 뿐입니다만...보캉송 본인은 언젠가 진짜로 소화를 시키는 인형을 만들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서운 사람.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이 집요한 페이지를 참조하시기를. 검색에 잡히기에 턱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으로 보고 있었는데, 샵 링크가 보이기에 눌러봤다가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Trivia


(image from the Wikimedia Commons)

'터키인' 의 오욕의 역사에 대해서는 위키페디아를 참조. '터키인'의 제작자인 볼프강 폰 켐펠렌Wolfgang von Kempelen (1734–1804)은 판화 기술에 숙달된 사람이었고, 이 동판은 켐펠렌 본인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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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일단은 미스터리. 잘 짜여진 수수께끼 풀이의 기미만 있다면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 씌어진 작품이 아니더라도 멋대로 틀 안에 넣고 좋아합니다. 
 그 외에도 제 기준에서 '유머가 있다' 고 여겨지는 작가나 작품은 무엇이든지.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피서를 가게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름에 시원한 곳에서 느긋하게 쉴 때 읽는다'는  가정 하에 답해 보자면... 핀천을 좀 읽고 싶습니다. [제 49호 품목의 경매]를 읽었더니 새삼 마음이 동했어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도 읽어야겠고, 척 폴라닉이 추천했던 Amy Hempel의 단편집도 읽고 싶군요. [죽음의 미로]도 오래오래 기다려 왔으니 이제는 읽어야겠죠.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시마다 마사히코, 척 폴라닉.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역시, 모범적으로, 에르퀼 푸아로겠지요. :] 푸아로를 좋아하는 이유를 새삼스레 늘어놓기보다는 그냥 제가 엘러리 퀸을 너무나도 싫어한다고 쓰는 게 더 명확하고 전달력이 높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엘러리가 싫습니다. 작가도 탐정도 싫습니다. 엘러리의 후예들도 싫습니다.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윌키 콜린즈의 [월장석]에 등장하는 집사 가브리엘 베터리지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존 란체스터,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 이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겁니다. :] [거장과 마르가리타] 보다는 살짝 약하지만 이 역시 제 인생의 책이며, 흔히들 히치하이커 시리즈를 통해 얻는다고 하는 영국식 사카즘에 대한 각성은 제 경우엔 이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한국의 정치/종교계 인사들 중에, [바야돌리드 논쟁]을 읽히고 싶은 사람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아니,  본인들은 읽어 봤자 깨닫지 못할 테니까 그 사람들의 똑똑한 측근에게 읽히는 거겠지만요.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헤닝 만켈의 [리가의 개들]과, 셰리 홀먼의 [도둑맞은 혀] 입니다. 

  [리가의 개들]의 경우, 발란더 시리즈 중에서 감히 제일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인데, 어째서 번역 출간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영문판으로 읽으면서, 모처럼 재미있는 책 읽느라 밤 새우는 달콤한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한 번 잡으면 졸린데도 잘 수가 없습니다!

 [도둑맞은 혀]는, 하드고어한 묘사가 좀 취향을 탈 수 있지만, 그러나 역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눈을 따라갈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숨은 걸작입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워요.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영화 [파이트 클럽]에 출연하기 위해)브래드 피트의 머리를 밀었던 여자가 나한테, 내가 크리스마스 카드에 넣어 보낼 수 있도록 브래드의 머리카락을 좀 보내 준다고 약속했었다. 그 여자가 약속을 잊어버려서, 난 친구의 골든 리트리버의 털을 좀 솎았다.  -Chuck Palahniuk, [Stranger than Fiction] 中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여기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의 극한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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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8-07-0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앨러리퀸을 싫어하시네요.저는 꽤 좋아하는데 앨러리 퀸이 너무 현학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서 그러신가요???

eppie 2008-07-01 16:50   좋아요 0 | URL
아뇨, 다른 현학자의 건들거리는 헛소리들은 좋아합니다. 퀸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작가와 탐정 모두) 여자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다 아는 것처럼 잘난 척 하기 때문이에요. 그의 어떤 여자 캐릭터들은 정말로 참고 봐 주기가 힘들어요. 여자의 행동에 대한 엘러리의 분석은 늘 '누가 봐도 너무 뻔하거나, 아예 말도 안 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같은 이유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도 싫어하고요. (네, 엘러리의 후예들이란, 직접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가리킵니다) 그들의 이런 점은 그 팬들에게 매우 즉각적인 영향력을 끼치는데...그래서 엘러리 퀸이나 히가시노 게이고를 너무 좋아하는 남자를 보면 도저히 곱게 보이지가 않아요.

...말이 좀 지나쳤습니다만, 그간 엘러리 퀸 팬인 남자들에게 연애생활에서 시달려 온 탓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ㅠ_ㅠ

2009-03-0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본어 번역 말투 좀 안 보고 살았으면...

eppie 2009-03-10 12:49   좋아요 0 | URL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구체적으로 지적을 해 주셔야, 결과적으로 안 보고 사시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 1.2 세트 - 전2권
우루야 우사마루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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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책정리의 와중에 다시 읽고 나서,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이 만화에 대해 그렇게까지 애정이 있는 것도, 할 말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마스터피스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우연히 알게 되어 읽었더니 무지무지 재미있는' 작품, 즉 숨은 걸작이 되기에도 뭣할 겁니다. 그래도 일단 읽어버린 사람의 마음 속에 잠시 착잡한 감상이 들 정도는 됩니다. 이것만 해도 어딘가요? :]
 
 같은 작가의 [최강여고생 마이]를 보고 머리가 띵해졌던 기억이 있거니와, 엄청난 톱니바퀴물(그런 게 있습니다)이라는 얘기에 솔깃해서 보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이 작품에 대해 스포일러 없이 이야기하기는 거의 불가능한고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살짝 감추도록 하겠습니다. )  

 다 읽고 나서, 아마존 재팬에서 이 책의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저는 이 만화가 원래도 두 권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만화책의 권 구성이 원작과 달라지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요. 아니라면 저는 좀 실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다행히도 아마존에 올라와 있는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Marieの奏でる音樂]은 상하 2권으로 나누어진 같은 구성이었습니다. 표지 일러스트도 한국판과 같고요. 같은 일러스트를 사용한 주제에 일본어판이 좀 더 예뻐 보인다는 점이 꽤 약오르기는 하지만...
 두 권의 표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그림이 보입니다. 오른쪽을 향해 '달걀' 을 내밀고 있는 피피와, 왼쪽을 바라보고 앉아 그 달걀을 받아 들려는 듯이 손을 내밀고 있는 카이. 카이의 손바닥에는 여전히 그 표식이 그려져 있고요. 이 표지는 이 만화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대칭성' 입니다.

 이 만화의 '반전'에 대해서는 주로, 없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의견이 많이 있지요. 저는 오히려, 이 만화를 다 읽고서 모처럼 소위 '반전'에 긍정적인 기분이 되었습니다. ^_^; 그 반전이 없으면 이 만화의 대칭성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평소 같으면 형식에 구애되는 것은 좀 곤란한 습관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이런 세계관의 이야기이니 형식미에 집착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엇보다 그 반전이 없으면 그냥 '꿈을 좇아 떠난 소년과 그 소년을 사랑하는 소녀의, 슬픈 청춘의 한 페이지' 가 되지 않습니까. 제가 싫어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청춘이라고요. 

 (스포일러) 작가는 본문 중에서 '현자' 구울 씨의 입을 빌어, 사랑과 신앙은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카이는 마리를 여신으로 섬기다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피피는 카이를 사랑한 끝에 신앙하게 되었습니다. 둘의 믿음은 같은 층위의 것입니다. 문제의 반전을 제외하면 이 이야기는 '카이가 믿었던 것' 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만 그 반전이 있음으로 해서, 앞의 모든 이야기가 '또한, 피피가 믿었던 것' 으로도 바뀌게 됩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비롯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카이' 의 존재를 믿게 만들었습니다. 여신조차도 기계장치의 모습을 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간접적인 증거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든 거라고요! 둘 중에 누가 더 성공적인 포교자냐 하면, 피피 쪽의 압승입니다. :]

 그런데,  피피가 카이를 보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녀 역시 '마리' 를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카이는 명실상부한 '신의 도구' 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그의 말이 피피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거니까요. 끝부분에서 구울 씨는 또다른 재능을 가지고 또다른 모습의 마리를 보고 있을 존재에 대해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합니다만...실은 눈 앞에 그 존재가 있으니까요. 독을 토하는 꽃이나 요부 대신,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리'를, 피피는 보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이 세계의 수많은 섬들에 각각 다른 형태의 마리-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마리는 실재합니다. 피피의 사랑은 그 자체로 마리-종교의 또다른 분파이고, 세계는 마리의 뜻 안에서 닫혀 있습니다. 피리토의 기계장치 세계관은 이런 의미에서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이야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확실한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건 대부분의 경우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와 이 스타일이 어울리는가...는 약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피리토의 기계장치 세계관이나, 풍속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그림은 좋지만 어딘가 뻣뻣합니다. 거의 매 컷 '이런 걸 그려도 좋을까나'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 걸 그려야 할 텐데' 하고 망설이는 듯한 분위기가 있어요. 이건 일차적으로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느낌을 줍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먹히지 않을 거예요. 저는 어느 정도까지 이 만화의 편을 들어 줄 수 있지만, 저런 부분을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겠지요.

Trivia
차라리 이런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종교이면 마음이 갈 지도 모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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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남 2009-02-2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그럼 순수한 카이로의사랑이 아니라 마리종교의 새로운분파라는거라면 카이에대한사랑이 본래는 마리로의 신앙심이었단 건가요?
왠지 혼란스러워지네요 그냥 저는 단순히 피피의눈에만(구울도?)보이는 카이가 나중에 임무를 수행한뒤 사라졌다, 로 이해할라 했는데 또 피피가 쓰여있지 않은 편지를 읽는것이 마음에 걸리고 그럼 다시 그냥 피피가 카이가 죽은게 믿겨지지않아서 피피야말로 모든걸 지어낸건 아닐까했는데 아 너무 어렵네요 카이는 사라졌는데 그 빈편지는 대체 뭔지

eppie 2009-02-26 14:51   좋아요 0 | URL
마리에 대한 카이의 마음 역시 '사랑' 이었지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제가 그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다가 내린 결론일 뿐이니까요. ^^; 저는 피리토의 세계관이 '마리'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 이야기를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로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결말을 매우 마음에 안 들어하시더라고요. 다른 분들께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는 쓸 수 없지만 그 사고 이후 카이는 피리토라는 세계,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고 결국 마리의 일부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피피에게 다가왔던 카이의 기척이나 그 모든 것은 피리토, 세계, 혹은 마리가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고요. 환타지나 동화의 껍질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매트릭스]랑 더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계남 2009-02-2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랑할수도 있는거군요' '이건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하고 전 그때 좀 감동적이라 그래도 중후반엔 그런 세계관얘기하다 마지막엔 뭐냐 아름다운 피피의 사랑 이런얘긴줄 알았는데 저런 해석도 있군요 제가 좀 집요해서 그런지 참 그 피피가 보던 편지가 마음에 거슬리네요
한번만 읽어봐서 그런가 님말씀 듣고 보니까 다시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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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8-06-2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ppie님 중고상품 구하시나봐요.맥널리 시리즈는 헌책방에 가면 가끔씩 눈에 띄는데 보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eppie 2008-06-30 10: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맥널리 시리즈는 사건 자체나 소설의 방향이나 좀 바보스러운 바가 있는데도 옆에 두고 싶더라고요. 지금 두 권은 구했고 나머지 두 권 구하는 중이에요. :]

카스피 2008-07-25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ppie님 맥널리의 덫과 행운(요건 맞는지 모르겠네요)이 수요일날에 신촌의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봤읍니다.혹 아직도 구하신다면 여길 한번 가보세요^^

eppie 2008-07-29 14:40   좋아요 0 | URL
웃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으러 다녀와서 페이퍼 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