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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세계화 - 기원, 비용 및 노림
프랑수아 셰네 엮음, 서익진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단상
그런 책이 있다. 읽고 또 읽고 줄치고 줄쳐도 좀처럼 문장 하나하나의 이해를 넘어 전체 글의 연관 속에서 그 부분이 차지하는 맥락을 파악하는 게 어렵고, 책 전체의 일관된 줄거리를 간결하게 정리해내는 게 머리에 쥐가 나도록 어려운 책. 만약 그게 책이 후져서가 아니라, 반대로 알찬 내용이 빼곡하게 차 있어서라면, 그 어려움은 허벅지를 꼬집어 가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가면서 이겨내야 한다. 프랑수아 셰네가 편집하고, 프랑스의 A급 정치경제학자들이 금융주도 축적체제의 등장에 대해 다룬 『금융의 세계화』가 바로 이런 책이다. 이런 책은 좀 길어지더라도 꼭 정리해놓아야 나중에 다시 읽게 되더라도 수월하다. 주제넘게 감상이라고 씨부리면서 이해도 못한 채 설익은 비판을 해대며 가오잡는 일은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인 것 같다. 이 리뷰는 전적으로 서평자 본인의 정리를 위한 리뷰이다. 아는 것이 일천한 관계로 길고 불친절하다. 그래서 재미없을 각 장의 정리는 뒤로 돌리고, 내가 이해한 바와 전체적인 감상을 지금 생각나는대로 가급적 짧게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금융주도 축적체제는 그 자체로서 세계적 범위에서 작동하는 축적체제이다. 이는 그것에 대한 개념화 역시 전지구적 분석을 동반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주변부나 주변부의 금융적 종속, 혹은 배제적 금융화는 그 나라가 금융주도 축적체제가 아니라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축적체제의 일부라는 것을 뜻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금융화는 다차원적으로 불균등,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금융화의 양상이 선진국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해서 한국은 금융주도 축적체제가 아니라는 정성진 식의 주장은 그래서 문제가 있다. 예컨대, 최근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부실 사태는 미국의 금융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2008년 2월 21일 자로 발표된 월든 벨로의 글 “Capitalism in an Apocalyptic Mood” (http://www.commondreams.org/archive/2008/02/21/7192)는 스위스, 일본, 한국 은행들도 이 사태로부터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2. 읽는 내내 한국의 금융화 상황은 어떠한가가 무척 궁금했다. 한국투자공사의 출범은 앵글로색슨계 연기금처럼 임노동자의 재산을 모아 금융자본을 창출하는 것이다. 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더욱 노골화될 금산분리 철폐는 재벌이 단지 금융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것을 넘어, 셰네가 마지막 장에서 지적하고 있듯, 더 이상 확대재생산을 목표로 하지 않는 산업자본이 자신의 금융자본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의 한국적 형태에 영향을 끼칠 지도 모른다. 미국계 펀드들이 프랑스 소액주주를 선동해서 프랑스 은행 기업의 회장을 갈아치운 사례는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에 대한 대안연대의 우려가 비단 우리 나라에만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3.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2003 우수학술도서’라는데 그럴 만하다. 편집서이지만, 짜임새가 극도로 높다. 특히 브뤼노프에 의해 정초된 '가상자본'(fictitious capital)의 문제틀은 각 장들의 응집성을 보장해주는 핵심어 역할을 한다. 또한 모든 저자들이 금융자본이 "손실의 사회화"를 통해 자신의 과실을 상대적 약자들에게 부담시키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두 일곱 명의 학자들이 각자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유기적 응집성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편집서들을 보면 한 사람이 쓴 글을 모은 것인데도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는 중구난방의 글들을 아주 모호하고 넓은 책 제목을 붙여가며 출판해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만큼의 일관성과 응집성 아니면 편집서는 내지 말자.
4. 이 책은 아시아 경제위기 직전인 1996년에 출판되었는데, 그로 인해 10여년 이 지난 오늘날의 현실을 업데이트하고 있지 못하다. 무엇보다 아시아 경제 위기가 그렇고, 국부 펀드들(sovereign wealth funds)이 금융화의 기간부대로 등장한 현실이 그렇고, 고유가로 대표되는 원자재 가격 급등이 그렇다. 엔 케리 트레이드나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부실 사태도 그렇고…
* 이 책의 후속편 격인 책들이 있나 본데, 다음 책들 누가 번역 좀 해주시기를.
(1) La finance mondialisée (2004)
http://www.amazon.fr/finance-mondialis%C3%A9e-Fran%C3%A7ois-Chesnais/dp/2707142743/ref=sr_1_6?ie=UTF8&s=books&qid=1204078884&sr=8-6
(2) La finance capitaliste : Séminaire d'Etudes Marxistes (2006)
http://www.amazon.fr/finance-capitaliste-S%C3%A9minaire-dEtudes-Marxistes/dp/213055430X/ref=pd_bxgy_b_text_b?ie=UTF8&qid=1204078884&sr=8-6
5. 내가 이 책을 산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2002년에 처음 번역 출판되어 나온 책이 2003년에 벌써 초판 4쇄를 찍었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관련 서적으로서는 아주 드문 성공이다. 이런 책들은 재쇄나 재판을 찍을 때마다 신경써서 번역을 대폭 손봐야 한다. 역자의 잘못도 있지만, 출판사 편집부의 부주의로밖에 볼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 상까지 받은 책인데 원저자들과 한국 독자들, 그리고 한글에 대한 예의는 좀 지키자.
장별 요약
제1장 총론에서 셰네는 80년대 초반 이후 본격화된 금융 세계화가 대단히 위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달러의 지위와 막대한 규모의 채권 및 주식시장의 존재로 인해, 미국은 그 국제적 위계의 정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을 지배한다. 금융 자유화와 탈규제는 국가 간의 (OECD 국가들 사이에서조차) 불균등 발전과 (금융과 통화를 통한)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17). 이는 “세계화된 금융시장에 통합될 수 있는 신흥시장도, 대공업국들의 채권 또는 주식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기업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개도국들에 대한 배제를 수반한다 (19). 금융 영역의 성장은 부가 생산 부문에서 금융 부문으로, 개도국(채무국)에서 선진국(채권국)으로 이전하는 메커니즘을 정착시킨다(21).
그는 이와 같은 위계적 금융 세계화가 진행되어온 1960년부터 95년까지의 35년의 역사를 세 개의 국면으로 구분한다 (30쪽 표 1-1, 289쪽 표 8-1). 그는 유로달러 시장이 형성되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함(1971)에 따라 변동환율제로 이행 (1973)하고, 이로 인해 통화 및 이자율 시장에서 선물, 옵션 등의 파생상품들이 출현하는 한편, 제3세계 국가들은 외채 위기의 길로 빠지게 된 1960년부터 79년까지의 시기를 국민적 금융제도들의 ‘간접’ 금융 국제화 시기로 본다. 두 번 째 국면은 폴 볼커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총재에 임명되고, 대처가 영국 수상으로 등장(1979)하면서 본격화된 통화주의 정책과 국민적 금융제도들의 자유화가 이루어진 1980년부터 1985년까지의 금융의 탈규제화 및 자유화 국면인데, 이 시기에 국제적으로 상호 연계된 채권시장들이 급속하게 팽창하게 된다. 이는 선진국 정부들이 재정적자 보전을 위하여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데에 앞다투어 나선 결과였다. 선진국 정부들의 채권 발행으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는 연기금이나 뮤추얼 펀드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 째 국면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민간연기금을 가지고 있던 영국의 시티에서 ‘빅뱅’(1986)이 일어난 후, 자유화가 다른 모든 금융센터들에 전파됨에 따라 대규모 금융 운용기관들의 결정이 개별 국가(특히 “‘신흥’ 금융시장을 가진 신흥공업국들)의 거시경제정책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커진 이 글이 쓰여지던 시점(1995) 직전까지의 기간이다.
2장에서 쉬잔느 드 브뤼노프는 환율 문제(곧 복수의 국민통화들의 공존이라는 현실)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통하여 첫 번 째 국면에서 이루어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이라는 역사적 전환을 고찰한다. “자본의 국제화는 임노동의 국제화가 아니며, 임노동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주어진 영토 위에서 수행된다” (51). 또한 이 일국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임노동이 연루된 소득의 생산과 분배는 국민화폐로 표시된다. 이 국민통화들의 교환이 가능하려면 국제적인 화폐적 계량단위를 필요로 한다. 1880-1914년 동안 자본주의 강대국들과 이들에게 종속되어 있던 대부분의 나라들에 의해 채택되었던 금본위제는 고정환율제였고, 이는 1차대전으로 인해 붕괴된 이후 복구되지 못하였다. 이후 금이 아니라, 기축통화가 이 준거 계량단위의 역할을 수행한다(55). 이 기축통화는 국민통화들의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하지만, 동시에 다른 통화들과 경쟁 관계에 놓이는 하나의 금융자산”이다 (56). 곧 준거 계량 단위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상품으로서 그 자체의 가격은 다른 통화, 특히 마르크(현재는 유로)와 엔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역관계에 따라서) 결정된다. 국제적 통화 불안정은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브뤼노프는 민간금융에 의한 조절(신자유주의)과 결별하고, 현재와 같은 달러의 특권을 박탈한 ‘통화 다중심주의’를 대안으로 지지한다. 그녀는 세 개의 지배 통화를 인정함으로써 달러-“마르크”-엔 복합 단위의 시대를 여는 것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일”이라고 웅변한다.
구트만의 글은 브뤼노프의 이론적 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동시에, 이 이론적 논의를 자신과 이 책에 실린 다른 이들이 펼치는 역사적 논의와의 매개고리를 보다 세밀하게 다듬고 있다. 그는 뉴욕에 있는 대학에 몸담고 있지만, 유럽, 특히 프랑스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과 조절이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는 가상자본(fictitious capital)에 대한 브뤼노프의 고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아글리에타와 리피에츠 등처럼, 통화의 조절 방식이 어떻게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어떻게 포드주의의 해체에 기여했는가 등의 문제에 천착한다. 또 , 투자의 회로를 산업자본의 회로와 금융자본의 회로로 구분하는 그의 논의는 오래 전 Christian Palloix가 자본의 국제화를 다루는 글에서 circuit of productive capital과 circuit of money capital을 구분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브뤼노프는 셰네가 <표 1-1>과 <표 8-1>에서 요약한 세 개의 국면 중 첫째 국면에 논의를 국한했지만, 구트만은 브뤼노프의 관점을 앞으로는 1931년 금본위제의 붕괴 이후 루스벨트의 통화 및 은행 제도에 관한 뉴딜 개혁까지 뒤로는 셰네가 구분한 세 국면 전체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는 셰네의 첫번째 국면의 특징을 정부의 재정적자와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에서 기인한 스태그플레이션(80)으로 꼽는다. 당시의 인플레에 기초한 화폐제약의 완화는 산업자본과 차입자에게 유리한 반면 금융자본과 대부자에게는 불리한 것이었다: “인플레는 한편으로는 최종 공산품 가격의 상승을, 다른 한편으로는 명목금리의 상승으로 인한 금융자산의 가격 하락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가격운동을 동반했다” (81). 그러나 첫번째 국면을 특징짓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의한 금융자본의 약화는 같은 시기에 진행된 (미국 내의 은행들과는 달리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유로달러 시장의 발달과 (이것이 어느 정도 기여한) 브레턴우즈체제 붕괴로 인한 변동환율제의 채택으로 인해 역전되어 버린다. 두번째 국면(1980-85)에 이루어진 통화주의 정책과 탈규제는 고금리를 낳았고, 이는 “소득의 배분이 임금과 이윤에게는 불리한 반면 이자에게는 유리하게” 만들었고, 금융자산을 보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소득과 부의 분배도 악화시켰다 (89). 고금리 정책은 산업투자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회임기간이 긴 투자들을 기피하게 만들었고, 기업들로 하여금 규모를 축소하고 임금과 퇴직금을 감축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금을 생산자본으로 재투자하게 하기보다는 유동자산(유로달러 등)에 투자하게 함으로써 금융자산을 급속하게 증대시켰다 (90-91). 구트만은 이러한 고금리의 출현을 20세기 초에 발생했던 경쟁적 조절양식으로부터 일국 차원의 독점적 조절양식으로의 이행에 비견할 만한 “현재 출현 중인 특정 축적체제에 조응하는 새로운 조절양식”의 등장으로 간주한다.
그는 맑스가 금융자본을 (1) 이자를 낳는 중장기 대부자본과 (2) ‘가상자본’으로 구분했던 사실을 환기시킨다 (92-94): “대부자본의 경우 그 소득인 이자는 차입자들의 산업이윤이나 여타 소득의 일부로서 이에 직접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반면, “가상자본은 실물생산 영역으로부터의 자금 이전을 바탕으로 성장하지만 자신을 산업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본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99-100). [내가 갖고 있는 김수행 역 비봉판 『자본론』 3권 하권 초판(1990) 569-70쪽에서 이 개념은 "의제자본"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구분에 비추어 보면, 첫번째 국면에서 두번째를 거쳐 세번째 국면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금융자본의 우세한 형태가 대부자본에서 가상자본으로 완전히 역전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경우가 특히 두드러지는데, 힐퍼딩의 금융자본 분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프랑스, 독일, 일본의 경우 은행과 증시의 분리가 미국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1981-82년 경 스태그플레이션의 종결은 엄청나게 과소평가되어 있던 주식과 채권의 가치상승을 가능케 하였고, “인수∙합병 및 적대적 주식매입을 통한 산업재편”이 빈번해지면서 금융시장은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기업들은 은행으로부터의 고금리 대부보다는 증권을 선호하게 되었고, “증권시장에서 활동하는 금융기관들 특히 뮤추얼 펀드와 연기금 등이 자본시장 전반을 주도하게 되었다” (95).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중은행들 또한 증권시장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는 가상자본의 우위를 확립시킨 주요한 요인이었다. 은행들은 새로운 금융상품들(선물 금융수단 및 파생상품들)을 개발하여 금융시장에 내놓았고, 이는 외환시장에 대한 금융투기를 더욱 부추겼다 (98-99). 대부자본으로부터 가상자본으로 금융자본의 지배적 형태가 변화한 것에 조응하여, 화폐의 공공재적 성격은 약화되고, 화폐의 사적 상품으로서의 측면이 가장 폭력적인 형태를 띠며 나타나게 되었다 (99). 구트만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서 2장에서 브뤼노프가 제시했던 바와 같이 ”달러, 마르크 및 엔의 세 통화를 중심으로 하는 복수통화제도”의 정착(105)과 더불어, 정부가 “한편으로, 화폐의 공공재의 측면과 사적 상품의 측면 사이의 최선의 균형이 무엇인지를 재규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를 통해서 금융자본이 다시 산업자본의 성장 잠재력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운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03). 그의 글은 폴라니를 연상시키는 다음의 언급과 함께 마무리되고 있다: “화폐는 상품 이상의 그 무엇이다. 즉 화폐는 그 관리가 민간 주체들과 이들의 이윤 동기에 맡겨져서는 안 되는 하나의 사회적 기관이다. 정확한 규정에 따른 발행, 단절 없는 순환 및 안정된 가치로 표현되는 화폐의 공공재로서의 측면들은 화폐의 올바른 국가 관리를 요구한다” (114).
구트만이 세 개의 국면을 조감하는 대하논문을 썼다면, 플리옹은 두번째 국면, 즉 조절양식의 이행기에 더욱 집중한다. 그는 조절이론 (그 중에서도 특히 다섯 가지의 제도적 형태가 특정 조절양식 혹은 성장체제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파리학파적 정식화)에 어느 정도 기대어, 제2차 대전 후 1970년대까지의 "영광의 삼십 년"을 특징 짓는 세 가지 제도적 요체인 (1) ‘포드주의적’ 임노동 관계, (2)케인시언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 (3)관치 금융제도가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 1973년의 석유파동 등을 계기로 흔들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장의 둔화와 인플레의 가속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를 민스키의 ‘평온의 역설’을 통해 설명한다. 곧 모든 게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던 "영광의 삼십 년" 같은 ‘평온의 시기’가 지속되면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에 차서 투자를 증대시키게 되고, 이로 인해 물가는 상승하며, 기업들의 채무는 증가함에 따라 금융 취약성이 증대하고, 금리는 상승한다. 또 최종대부자로서 통화당국이 개입한다고 해도, 성장의 둔화를 피할 수는 없게 된다. 플리옹은 1979년을 결정적인 분수령이라고 보는데, 이는 이 해에 있었던 도쿄 G7 정상회담에서 주요 공업국의 지도자들이 역사상 최초로 반인플레 투쟁에 절대적인 우선권을 두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그가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까지의 선진국 경제를 특징 짓던 위의 세 가지 제도적 형태들의 해체를 뜻하는 것이었다. 통화주의와 자유주의가 전면에 등장하였고, 임금긴축을 통한 탈인플레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조절양식을 구성하던 “생산성 및 물가의 변동과 임금 상승 사이의 연계”는 단절되어 버리고 만다. 이러한 긴축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율의 하락은 달성할 수 있었으나, 명목금리의 급격한 상승, 더 나아가 낮은 인플레율로 인한 실질금리의 상승으로까지 이어진다. “고수준의 실질금리의 지속은 … 새로운 국제 금융 조절양식의 출현과 조응한다. 한편으로는 거시경제적 긴장이 통화 발행과 인플레에 의해서 국민적 차원에서 흡수되는 체제로부터 변동성이 증대된 고금리에 의해서 조정이 이루어지는 체제로의 이행이 … 이루어졌다.” 이는 또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지배”를 확립했다 (121).
그는 또 글로벌 자유금융의 부상과 1980년대 초 이래 증대 일로에 있는 선진국들의 공공적자 간의 직접적인 관련을 강조한다. 선진국 정부들은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했고, 이를 국제 투자자들 (특히 기관투자자들)에게 구매할 것을 호소하였고, 이를 위해 자국의 금융제도들을 자유화하였다. 또한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균형 상태에 있었던 미국의 재정수지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히 악화되는데, 이는 미국 또한 자금조달을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도 최대 채권국에서 주요 채무국으로 전락하게 되며, 이 미국의 공공적자는 금융 세계화를 추동하게 된다. 79년을 전후한 변화는 선진국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개도국들의 구조적 적자가 주요 공업국들이 제공한 자금으로 보전됨으로써 자본의 국제적 흐름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들어갔지만,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악화된 상황이 달러와 금리가 급등하게 되자 개도국들의 과잉 채무화는 본격화되었고, 지불불능 상태에 빠져버렸다. “자본의 국제 이전은 방향을 바꾸어 북-북 논리를 따르기 시작했다. 즉 이제 일본과 유럽의 흑자가 미국의 거대한 적자를 메꾸게 되”었다 (130). 또한 이전에는 국제적 자금조달이 은행제도의 중개를 거쳤지만, 이제부터는 직접(탈중개) 금융이 주를 이루게 되었고, 국제 금융시장은 거대 단일화폐시장으로 발전하였다. 금융자본의 국제적 순환의 강화가 전지구적으로 관철되었다. “1983-84년에 주로 미국 당국의 강요하에서 일본의 금융제도가 개방되었으며, 그후 1990년에 유럽에서 단일 자본시장의 창조와 더불어 유럽 각국의 외환통제 제도들이 철폐되었다. 미국과 IMF의 강제하에서 신흥공업국들이 자유화운동을 뒤따랐으며, 그 결과 ‘신흥 금융시장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제 신흥공업국들이 금융 자유화를 시행해야 할 차례가 되었는데, 그 목적도 공업국들과 마찬가지로 공공적자의 보전 자금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플리옹 역시 브뤼노프, 구트만 등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가상 자본’ 개념에 주목한다 (145). 그는 가상자본을 “그 가치가 시장의 상태에 달려 있으며 산업의 위험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양도성 금융자산”으로 정의하면서, 이 자산들은 “시장에서의 양도 가능성 덕분에 차입자본에 대응하는 채권보다 높은 유동성”을 갖기 때문에 투기적 속성을 띠게 되고, “생산자본의 조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거래를 통해 잉여가치를 실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특성은 전체 거래의 75%가 투기의 성격을 띠는 파생상품 시장에서 잘 나타난다.
구트만과 플리옹이 금융세계화에 기여하는 국가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클로드 세르파티는 5장에서 대기업(그룹)들의 능동적 역할을 다룬다 (이는 셰네가 『자본의 세계화』, 특히 그 책의 10장에서 주로 살펴보았던 것이다). 그룹들의 활동이 세계화됨에 따라 그룹의 재산 또한 외환시장에서 운용되었으며, 이처럼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화된 금융체제의 능동적 구성원이 된 현실은 ‘기관투자자들’로 하여금 이 기업들을 ‘수익자산’으로 간주하게 하였다. 그룹의 최정점에 위치한 이사회에는 기관투자자들을 대변하는 이사들이 파견된다. 화폐자본은 다양한 종류의 주식과 채권을 집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그룹들을 매개로 다른 곳에서 창조된 ‘가치 연쇄’의 일부에 대한 통제를 실시한다. 이는 그 그룹들과 협력 또는 하청 계약을 체결한 하위파트너들과 대그룹 내부의 기업망 전체에까지 그 효력을 발휘한다 (171-2). [이런 언급은 우리나라의 재벌구조를 연상시킨다.] 이제 한 그룹이 생산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과 주식이나 채권의 보유를 통해 그룹과 무관한 생산에서 창조된 가치의 일부를 포획함으로써 얻는 소득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게 된다. 금융세계화는 대그룹들로 하여금 ‘금융시장들’에서 자본의 가치실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룹들은 중앙집권적 재무관리를 통해서 자본의 이동성을 증대시키고 외환시장의 개입을 위한 효과적인 금융 ‘타격력’을 구비할 수 있게 되었다: “헤지펀드들이 공격의 전위대였다면 금융 타격력의 본대는 기관투자자들과 비금융기업들 (즉 거대 다국적기업들)”이었다 (178).
이제 기업들은 스스로의 생산활동으로 이윤을 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산활동과는 무관한 금융시장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개입함으로써 이윤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금융화는 “가치실현의 직접회로인 A ∙∙∙∙∙ A’ (즉 생산 사이클을 경유하지 않는 회로)의 다양화를 의미한다” (192). 세르파티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프랑스계 그룹들을 분석하면서, “금융자산의 취득이 상당히 증가한 동시에 그 소요 자금 조달을 위한 차입이나 자기자본 또는 준자기자본 역시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역시 한국의 재벌을 연상시킨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정성진이 ‘한국은 금융주도 축적체제가 아니라 금융종속상황’이라고 했던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6장에서 리샤르 파르네티는 앵글로 색슨계 연기금과 뮤추얼 펀드가 글로벌 금융의 출현과 팽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 이 기금들은 국제 원자재 시장과 외환시장에서 주요 행위자로 활약하면서, “국제 투기경제”의 출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1960-70년대의 위기들을 촉발했던 주요 행위자들이 은행과 다국적 기업의 재무부서들이었다면, 1980년대의 금융 자유화는 예의 두 행위자를 대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투기운동의 주요 행위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고, 이 기금들의 거대한 유동성이야말로 외환시장에서 헤지펀드의 위력을 가능케 해준 원천이었다. 이 기금들의 위력은 금융시장에서 큰 손으로 활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corporate governance를 통해 기업지배구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파르네티는 1995년 소액주주들에 의한 수에즈은행 그룹의 회장 해임 사건의 예를 들면서, 이는 사실 이 은행의 자본을 16% 이상 소유하고 있었던 두 미국 펀드들이 소액주주들을 꼬드겨서 이전 회장을 경영권으로부터 몰아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시 한국의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Cf. 장하성 - 참여연대와 장하준 - 대안연대 간의 입장 차이]
파르네티는 이처럼 앵글로색슨계 기관투자자들에 의해서 강제되는 기업지배구조의 원칙들의 국제적 전파로 인해 “세계화된 지대적 조절의 국제화” (번역 별로 안 좋다!)가 용이해졌다고 분석한다. 곧 거대 네트워크의 중심에 위치한 집중된 화폐자본이 세계의 다른 곳에서 생산한 가치로부터 징발해가는 지대의 양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금융자본의 지대 포착은 생산영역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없이 이루어지며, 자신의 손실을 다른 행위자들에게 감수토록 한다. 이로 인한 생산투자의 부족은 건전한 기업들마저 위기에 처하게 한다.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은 금융시장과 대기업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국고채 시장에서도 큰 손으로 활약하며, 이는 주권국가의 정책행위에 심각한 제약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금융자본으로 활약하는 이 연기금들이 사실은 “임노동자들의 돈을 활용함으로써” 이 거대한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의가 주로 핵심부 경제들에서 나타난 금융화에 국한되었다면, 7장에서 피에르 살라마는 금융화의 라틴아메리카 버전을 다루고 있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좋았던 장을 꼽으라면, 약간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단연 살라마의 7장을 꼽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금융화와 노동의 유연화 간의 연관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살라마는 고금리는 자원의 최적배분을 유도하리라는 맥키넌과 쇼의 명제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이들의 “신고전파 접근에서는 저축이 투자에 시간적으로 우선하여 투자 자금의 조달원이 되는 반면 케인시언 패러다임에서는 투자행동이 저축에 선행한다”(250). 따라서 신고전파는 이자율이 높아야 예금주가 저축을 많이 하고, 이 저축액이 대출을 통해 투자로 이어지리라고 가정하는 반면, 케인시언은 이자율이 낮아야 투자가 증가하고, 사후적으로 저축의 증가를 가져온다고 본다. 살라마는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가 거친 두 국면, 곧 80년대 초반 인플레의 급등과 80년대 말 이후 둔화 과정을 고찰하면서 후자의 입장이 옳았다는 것을, 곧 고금리와 초인플레에도 불구하고 저축률과 축적률은 현저하게 하락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는 또한 “달러와 연동된 고도의 금융상품들의 창조, 가속적인 금융화” 등이 수반되었다 (256). 기업들의 금융화(총자산에서 차지하는 금융자산의 비중의 증가)가 진행되지만, 기업들은 신용대출을 통해 자금을 (외부로부터) 조달하기보다는 자기금융을 통해 투자자금을 마련한다. 고금리는 기업들에게 높은 차입비용을 의미하며, 덜 효율적인 기업들을 도태시킨다는 순기능적 가정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기업들에게조차 “그보다 낮은 금리라면 실현할 수 있었을 투자안들을 실행할 용기를 꺾어 버린다” (260).
살라마는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을 두 국면 – (1) 1980년대 초인플레 시대인 ‘상실의 10년’과 (2) 90년대의 반짝회복과 경제위기의 재발 – 으로 나누고, 금융화가 양 국면에서 갖는 상이한 의미와 함께 어떻게 각각의 국면에 상이한 노동력 관리 방식을 야기하였는지 분석하고 있다. 곧 금융화가 첫 번째 국면에서는 고인플레와 관련이 있었던 반면, 두 번째 국면에서는 “시장 전반의 급속한 자유화와 통화의 고평가 정책에 바탕을 둔 위기 탈출 전략의 산물”이었다. “첫번째 경우엔 잉여가치의 창조와 점유에 있어서 낡은 고대적인 노동력 관리 방식들로의 복귀가 조장되는 반면 두번째 경우엔 이러한 고대적 형태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노동강화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력 관리 방식이 득세한다” (261).
그는 금융이 부정적 측면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생산적인 측면, 곧 비용을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잉여가치의 획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 역시 갖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좋은 (virtuous) 금융과 사악한 (vicious) 금융을 구분한다. 그리고 “금융화가 가파른 물가 상승을 동반할 때 ‘호’금융은 ‘사악한’ 금융으로 변질된다”(268). 이 때 (1980년대)는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의 고대적 메커니즘 - 노동일의 연장을 통한 부불 노동량 증대 - 이 전면적으로 작동한다. 감소한 실질임금과 이로부터 야기된 구매력 감소로 인한 소득상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이들은 더 많이 일해야 하며, 이는 저질의 일을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가족 구성원 중 노동자 수를 늘림으로써 가족재생산의 조건을 악화시킨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를 자유화가 불충분했던 탓으로 돌렸지만, 금융화와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된 1990년대에도 경제실적은 80년대에 비해 나아졌을 뿐, 그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국민경제들을 대규모 투기자본의 유입에 철저하게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위기 가능성을 상존시켰을 뿐만 아니라, 노동력 관리에 있어서 유연성을 극도로 제고시켰다. 곧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실질금리는 자본의 지속적 유입과 대달러 환율의 상승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미국보다 더 높게 유지되어야 했다. 두번째 시기 동안 사악함은 첫번째 시기만큼은 심하지 않았지만, 앞선 시기의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의 고전적 형태(노동시간 증대)와 더불어 근대적 형태(노동 강화)가 결합되어 나타나게 된다.
8장에서 셰네는 앞서의 논의들을 정리하면서, 몇 가지 의미심장한 지적들을 한다.
(1) ‘체계적 취약성’이나 ‘체계적 위험’과 같은 새로운 표현들의 출현이 의미하는 바는 이제 “경제적 경기변동과 직접적인 관련 없이 금융 충격들이 반복된다는 것을 표현한다” (294).
(2) ‘금융화된 세계적 축적 체제’의 출현은 “‘영광의 30년’이라 불리는 시기 동안의 장기 축적이 종국적으로 부닥친 막다른 골목, 즉 ‘포디스트적 조절’ 위기의 탈출구로 등장한 것이며, 임노동 관계의 심각한 손상을 기반으로 한다” (297).
(3) 이 축적 체제에서는 “산업자본의 축적이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더 이상 확대 재생산을 지향하지 않”게 되었다 (301).
Two Thumbs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