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태동 -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치, 사회복지학 총서 80
송호근.홍경준 지음 / 나남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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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특히 한국의 복지국가에 관한 책 한 권을 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야말로 문외한이다. 따라서 책에 대한 비판보다는 지은이들의 핵심논지를 정리하는 정도가 이 글이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1부에서는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일반적 관계에 관한 서구의 이론을 주로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화가 복지국가의 재편을 초래한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축소로 귀결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주장은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한다. 곧 세계화에 대응하는 국가마다 그 나라에 고유한 복지정치를 통해 복지제도가 확장될 수도 있고, 부분수정을 통한 현상유지를 할 수도 있고, 전면축소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곧 미국, 영국, 중남미에서는 축소가 일어났으며, 북구 사민주의국가와 유럽대륙의 보수적 복지국가들에서는 재조정이, 한국의 경우에는 확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103쪽). 


2부에서는 1부에서 소개된 개념적 장치들이 민주화 이후 태동한 한국의 복지국가가 1997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다. 지은이들은 한국이 본격적 복지국가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하더라도 복지국가를 향한 시동은 이미 걸려 있는 상태라고 본다. 이러한 복지국가의 초기형성과정이라는 사정은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복지국가 유형 중 하나로 한국을 범주화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지은이들은 한국을 일종의 ‘혼합형’ (곧 사회보험의 기본 설계는 ‘보수주의 복지국가’와 유사한데, 그 혜택요건은 ‘임금생활자 복지국가’와 유사하며, 노동시장정책과 공적부조는 ‘자유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하지만, 재정부담과 수혜기준은 ‘가톨릭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한) 체제로 분류하고, 이처럼 독특한 체제가 존재하게 된 과정을 추적한다. 무엇보다도 이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이중적 전환을 거치면서 가족과 기업에의 의존성을 낮추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복지동맹과 반복지 세력의 거부권(veto point) 간의 복지정치의 산물이었다 (111).


1987년 이후, 복지제도는 ‘확대’되었으나, 그것이 초기설계를 넘는 시스템적 개혁은 결코 아니었으며, 경제발전이 국가의 복지역량을 향상시킨 결과로서 나타난 ‘따라잡기적 확대과정’(expansionary catching-up)이며 “초기설계의 성숙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점진주의적 확대”이다 (126, 140-1). 복지확대는 고용연계성과 비정규직의 배제라는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노동시장 분절에 의해 촉진된 소득불평등이 국가복지를 통해 재생산되는 역설적 결과가 초래되었다. 저자들은 이를 한국 복지제도의 “구조적 한계”라 칭하는 데, 세 가지 구조적 한계로 (1) 고용연계적 자격요건, (2) 사각지대의 지속, (3) 취약계층 중심의 사회서비스를 들고 있다. 이 구조적 한계는 애초의 제도설계에 내재된 제약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1990년대의 복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데, 이는 비용절감에 목을 맨 국가와 기업이 노동시장의 삼분적 분절구조 - 관리사무직 / 정규직 핵심노동자 / 비정규직으로 분리되어 있는 노동시장구조 - 라는 “구조적 덫” 안에서 가장 강한 정치력을 획득한 정규직 핵심노동자만을 선별하여 복지를 제공하고, 관리사무직과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70-71, 311). 1995년부터 불어닥친 대량감원과 해고 바람은 당시 막 정상조직으로 설립되었던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조직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정규직 핵심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을 포기하게끔 한다. 이는 “고용연계성이 강한 제도적 설계 위에 취업자의 50%에 이르는 비정규직이 국가복지로부터 배제된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당시 민주노총 “조직 결성의 성공요인이었지만, 향후 민노총이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176-7).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한국의 복지개혁은 초기설계로부터 결코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정치인, 관료, 시민들에게 장기간 내면화된 복지이념과 의식에 의해 재생산됨에 따라 강력한 경로의존성을 구성하게 된다 (201-2).


이러한 경로의존성이 관철되는 와중에도 한국 사회복지 정책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하나의 전환점”을 통과하는데, 1998년에는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규모가 11%까지 늘어났으며 이후에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권위주의 시절만큼 축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게 되었다. 지은이들은 이 과정을 “글로벌 스탠더드의 준수와 그에 따르는 구조조정”을 구실로 삼아 기업들에게 위임되었던 복지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 기회, 곧 국가가 기업에 위임하였던 복지의 책임을 이제는 가져가야 하는 상황으로 이해한다 (270).


10장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세계적 추세가 한국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위기를 전후한 1996년의 개정 노동법과 1998년 사회협약을 통해 자본 측은 끈질기게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시간제 도입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추구한다. 이에 반해 노동 측은 고용 안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는 교환된다. “자본가는 유연성을 얻고, 노동자는 고용보호를 약속받았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유연성과 고용보호라는 상반된 목표가 어떻게 맞교환 되었는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분절시장을 전제로 해야 비로소 이해된다. 위 두 개의 목표를 맞교환할 때 정규직 노동자들만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을 유연성 증대의 대상 집단으로 내주고 자신들은 엄격성(고용보호)을 약속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비정규직 비율이 급증하던 당시의 현실에서 자본에게도 그리 불리하지 않은 교환형식이었다. 1998년 중반 이미 비정규직은 취업자의 45%선을 돌파하였다” (289-90).


한국적 복지의 특성인 “고용연계적 복지”(employment-entitled welfare)는 바로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 간의 제도적 분절 고착을 뜻하는 것인데, 노동조합과 기업의 저항으로 인해 분절시장은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민주노총에서 내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는 사회보험의 확대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데, 이는 고용주에게는 사회보험 부담금의 증가를 뜻하고, 기업의 고용능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많단다 (196).

유연노동시장, 관대한 복지제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황금삼각형으로 대변되는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모델과 같은 개혁정치가 한국에서 이루어지려면, 고용연계적 복지제도와 정규직 중심의 보호정책이라는 노동시장제도의 양대 초기 설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권 말기 (이 책이 쓰여진 후) 발효된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표하고 있다 (300).


 

마지막 11장 결론에서는 앞의 논의들을 정리하면서, 노무현 정권 말기 복지정치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일별하고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지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하다. 결론 내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이정우 전 정와대 정책실장의 글 (성장지상주의의 폐기와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을 인용하면서, 정당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것이 먹히지 않는가를 자문하며 그 이유를 당시의 경기침체 (그 때 그게 경기침체면 지금은 뭐냐?)와 더불어 다른 구조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복지제도의 성장과 확대를 결정하는 계기가 ‘국가’에 있다기보다 ‘기업과 생산체제’로부터 기인한다는 한국적 특성”이 그것인데, 그동안 한국의 국가는 미래대응적이기보다는 반응적 역할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대기업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이는 국가복지가 “생산체제 변화의 함수”로서, “생산체제의 구조변화가 낳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국가복지의 영역으로 흡수하는 것이 국가의 주된 역할”이었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들은 노무현 정권이 겪었던 저항을 반응적 조치로부터 미래대응적 조치로 복지정치의 기조를 옮긴 탓으로 해석하고 있다. (글쎄?) 

 

서평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간단한 느낌이나 몇 자 적자. 서구의 논의들을 정리한 1부는 다소 지루했지만, 2부, 그 중에서도 6, 7, 10장은 꽤 재미있었다. 지은이들은 한국노총은 “한국노총”이라고 하면서 민주노총은 계속 “민노총”이라고 하는 게 사실 좀 짜증났었는데, 또 막상 노동조합과 긴밀한 연대력을 가진 계급정당이 출현한다면 기업차원의 정치가 국가차원의 정치로 원활히 전환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미래대응적 조치들이 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예전에 누가 복지국가 공부한다고 하면, “드디어 맛탱이가 갔구만”하고 깐죽거리기도 했는데, 그 때 나한테 그 소리 들었던 그 친구가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걸 알면 뭐라 그럴까? 웃으면서 “그래, 이제 정신 차렸구나”라고 하려나.. 만약 그러면 난 “난 아직도 너랑은 달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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