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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니체적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바로 보기 『우상의 추락』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 지음, 전혜영 옮김, 2013. 10. 글항아리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열등감의 화인(火印)일수도 있고,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의 유적(遺蹟)일 수도 있다. 스무 살, 내게 주어진 시공간은 낯선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 읽기 시작했던 철세(『철학에세이』), 껍데기(『껍데기를 벗고서』)로 시작했던 학습 모임은 세 계절을 보내고 겨울방학이 되자 마르크스, 포이에르 바흐 원전으로 넘어 가기 시작했다. 동기들은 어느새 사회과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문학의 세계에 머물면서 공지영의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김남주 시인의 시에 빠져 있었다. 학습 모임에 들고 갈 발제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낱낱의 글자만 읽고 있을 쁜 텍스트가 함의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모임에서 발제문을 읽고 발표했을 때 모임에 나를 추천한 선배 얼굴에 맺히는 당혹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추운 겨울에도 얼굴이 후끈거렸다. 지적 허영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수치심은 낮은 자존감으로 나타났다. 한학기 내내 먼지 가득한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사회과학만을 읽었던 것 같다. 대학에 다니는 오빠의 책을 훔쳐보는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시간들이다.

 

그날 이후 Marx는 이십대의 내 시간 안에 머물며 영혼을 건드렸고, 삼십대 초반 수년 동안 공부한 정신분석 모임은 Freud를 통해 내 안에 빙산을 이루고 있는 무의식을 성찰하게 했다. Freud에서 Jung으로 넘어가고, 다시 Adler나 Erikson으로 이어지는 상담심리를 통해서 남의 상처가 아닌 내 상처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한다. 성찰하고 언어화하는 순간 반은 치유받는다는 믿음이 내게 있다. 언어화된 상처는 이미 상처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내 시공간의 지평을 넓혀주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늙지 않고 성장하는 것, “소유하는 소비가 아니라 경험하는 소비”(선대인 선생님의 말씀)를 했던 지난 시간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지금 나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위로를 주는 친구는 Nietzsche다. 니체는 내 삶을 긍정하고 긍정하게 무한 변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었다. 이들의 어깨에서 올라타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은 내가 보낸 젊은 날들을 회상하게 하는 서사에서 비롯되었다. 방대한 자료에서 주장의 근거를 찾아내는 성실함도 놀랍지만, Freud와의 인연을 자신의 성장에서 끌어내는 문학적 필력 또한 대단하다. 그 또한 프로이트처럼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운명적 만남이 프로이트를 우상에서 추락하는 과정으로 나아갔음을 독자에게 고백한다. 저술을 하게 된 이유를 밝힘으로써 방대한 분량의 저서임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시작점을 만들어 준다. “그 당시 헌책방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세 권 있었는데, 바로 니체의 『적그리스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7쪽)”라는 저자는 무지를 자각하고 지식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 자신의 숙명을 자각한다. 기독교가 더 이상 숙명이 아니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넘어야 할 지평이며, 도덕성과 무관한 성욕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우상을 전설로 기억하지 않고, 친구로 만든다. 그에게 “니체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고, 그 마음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다.” 친구는 친구를 비판할 수 있고, 친구를 따라가고, 때론 뛰어 넘으면서 우정을 나눈다. 우상을 박제된 영웅으로 가슴에 새기기를 거부하는 사람만이 가장 완전한 형태의 사랑과 존경, ‘우정’을 나눌 수 있다. 그런 관계일 때 비판은 설득력을 갖는다. 프로이트를 비판하기 위해서 미셸 옹프레는 정신분석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엽서 열장을 제시한다.

 

1.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혼자서 발견했다.

2. 말실수, 갑자기 떠오른 단어, 망각된 고유명사, 어떤 대상을 왜곡하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정신병리학적 현상이다.

3. 꿈은 해석이 가능하다.

4. 정신분석학은 임상 징후를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한 과학이다.

5. 실질적인 치료와 환자의 정신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고 정신병리학이 진단한 병을 낫게 해주는 방법을 발견했다.

6. 정신분석을 통해 억압된 기제를 의식화함으로써 병적 징후를 없앨 수 있다.

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8. 정신분석의 거부는 그 주체에게 신경증이 있다는 단서이다.

9.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해방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10. 계몽주의 철학의 난해한 비평적 이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구체화하였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프로이트 이론은 철저히 그 개인의 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인 삶이 반영된 것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프로이트의 삶, 사상, 치료에 의문을 제기하며 출발한 책이다. 처음부터 주장을 직구로 던져서 독자로 하여금 길잡이의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프로이트 자신이 경험한 개별 사례들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사료 속에서 찾아내고, “선악의 경지를 넘어 니체의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가 제시하는 반론의 엽서는 다음과 같다.

 

1. 프로이트는 수많은 책 - 특히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학 - 을 정독하여 무의식에 대한 가설을 제기하였다.

2. 정신병리학의 증상을 리비도에 의한 욕망의 억제로만 분석할 수 없다.

3. 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꿈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리비도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4. 정신분석학은 문학에 적용된 심리학과 관계가 깊다.

5. 분석에 의지한 테라피 효과는 마법에 가까운 효과에 의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 욕망의 의식화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8. 마법에 대한 생각을 거부한다고 해서 자신의 운명을 마법사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9. 해방이라는 이름 아래 정신분석학은 심리주의가 말하는 금기 사항들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10. 역사적으로 계몽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에 이성주의에 입각한 철학을 부정한 새로운 형태의 철학, 이른바 반(反)철학을 내세웠다.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자유롭게 연구하고 성과를 만들 수는 없다. 각자 고민하는 문제가 씨앗이 되어 발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나서 싹을 틔운다. 프로이트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 배다른 형 필립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의심, 형에 대한 강한 질투심, 처제와의 오랜 세월 한집에서의 거주, ‘일요일의 아이’라고 부르며 아꼈던 딸 소피의 죽음, 세 딸과의 관계가 정신분석학을 집대성하는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대를 잇는 이성 간이 성교만을 정상적으로 바라보고 그 외 모든 것들을 변태성욕으로 보았던 프로이트는 좋은 아내, 엄마가 여성의 역할이는 믿음 또한 도처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자신의 잠정적인 주장,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욕망이 하는 말, 소원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 완성”에 프로이트가 집착했다는 것을 수용할 만하다. 미셸 옹프레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 독자라 할지라도 거의 칠백 쪽에 달하는 분량의 논증은 사료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과학 보다는 문학에 가까웠다는 점,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이해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워낙 자료를 치밀하게 추적하기 때문에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호기심 어린 에피소드들도 수록되어 있다. 존 휴스턴 감독이 <프로이트 : 그의 은밀한 열정>이라는 영화를 찍기로 계획하고 사르트르가 시나리오 작업에 동참했던 것, 안나 프로이트가 마리린 먼로와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만났고, 먼로가 보유한 재산의 1/4와 죽고 난 후 지불될 저작권료가 안나 프로이트 재단 설립에 쓰였고, 지금까지도 런던에 있는 프로이트 재단의 계좌로 들어가 있다.(304쪽) 프로이트와 기독교를 병치하여 분석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샤르코와 프로이트의 만남을 예수와 세례 요한의 만남(671쪽)”으로 비유하고, 프로이트 전기 작가를 “예수의 삶을 신화처럼 우상화시킨 기독교인들이 썼던 방법을 적용해 프로이트를 역사적인 모델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치료하는 의식은 말로 죄인들의 죄를 씻어주는 방식과 비슷하다. 말이라는 것은 일종의 내면을 드러내는 고백, 고해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673쪽).” 기독교의 고해 성사와 프로이트 카우치에서의 내담자가 쏟아내는 고백을 같은 것으로 분석한다.

 

다만 “프로이트의 픽션”이라는 극단으로 밀어가기에는 정신분석학의 임상적 효과와 인류 역사에 끼친 공헌이 지대하다. 프로이트를 인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그를 통하지 않고 21세기 철학, 심리학, 정신병리학을 논할 수 없다. 적어도 중세 이후 금기였던 성(性)을 응시하고, 담론화하여 해방시키는데 프로이트가 획기적인 이론으로 정신분석학을 확립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담배가 몸의 일부나 다름없었던” 프로이트가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인격이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개인적 서사에 대한 변명을 위해서 정신분석학이 필요했다고 추정할 근거도 없다. 미셸 옹프레 역시 프로이트를 사형대로 보내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 그는 구시대의 철학 체계를 반박하는 일이 철학자를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 『우상의 추락』은 니체적 관점에서 저자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프로이트를 딛고 올라서려는 결연한 의지가 만들어낸 수작으로써, 인간 프로이트에 접근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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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판적 책 읽기를 위한 훌륭한 텍스트
    from 二乙과 無生의 마음풍경 2013-12-15 00:13 
    이 책은 정신분석을 제대로 파고 들어갔다. <꿈의 해석>을 읽었던 삼십 몇 년 전으로 돌아가본다. 프로이트가 쓴 책이 워낙 유명세라서 읽어두면 살이 되고 피가 되리라는 충동적 읽기였다. 그러다가 2/3를 읽다 말았다. 어째서 이 책이 그토록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점점 자라나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어서였다. 우리에게 있던 <꿈의 해몽>보다 못하다는 판단이 들었는데, 해석이 동양의 풀이와는 너무 달라서였다.
 
 
비로그인 2013-11-1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글입니다..
제가 쓴 우상의 추락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더불어숲 2013-11-1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극이 별로 없는 서재에 '흔적'이 남았으니, 더 분발해야겠어요.
흔적님 리뷰는 제게 늘 채찍입니다. 오늘은 당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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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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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가 묻고, 표창원이 답하다.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지승호 지음, 김영사, 2013. 10.

 

민주적 기본 질서가 무너진 정치 상황은 개인의 삶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저출산 고령화는 아직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각자가 일상에서 누리는 평온함은 한동안 계속될 것처럼 느껴진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은 증거 인멸, 기밀 유출, 수사팀 징계로 이어지면서 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한 대화록은 국제 사회에서 전무후무하게 전문이 공개되었고, 종국에는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덕 본 것이 없다.”, “의혹 살 일 없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으로 이 사건들은 매듭지어질듯하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종북 발언 사태는 헌정 이래 초유의 정당해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값을 떠받치고 있는 정부 정책이 전세 값 폭등과 월세 붐으로 이어져도 사람들은 다시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삶은 지속되는 모양이다. 외부적 조건에서 비켜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평온함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개인의 삶과 구조적 조건이 무관하지 않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를 가로 막는 이분법적 논리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에 우파와 좌파가 따로 없듯이 진실을 보려는 것과 이념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이분법적 논리가 민주주의를 가로 막고 있다. 진실에 접근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보수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출생한 baby boomer가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와 지역감정이 팽배한 상황은 진보가 추구하는 소중한 이념들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온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선산이 전북에 있다는 이유로, 국정원 사태의 진실을 말하는 권은희 수사과장은 전남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건의 본질은 희석된다. 출신 지역이 그 사람의 실체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의 검열 속에서 진실에 닿으려는 노력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언론을 통해서 취사선택되고 프레임이 짜진다. 언론이 호불호에 따라서 실체적 이미지를 획득한다. 공중파 3사가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에 그나마 볼만한 뉴스는 종합편성 JTBC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간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가 프레임 시간대를 장악하고, 볼만한 드라마는 케이블 TV에서 간간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다. 스마트해지고, 채널 선택 폭은 상상 이상으로 많아졌으나, 사람의 의식과 언론 민주화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지식인이 분노할 수 있고, 정치인이 국회에서 소리 내어 세상에 쓴 소리를 할 수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2013 대선 스타로 등장한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에 비켜나 진실 앞에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으로 온전히 우리 앞에 존재를 드러냈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지난번 선거를 통해 얻은 선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표창원은 “보수의 품격, 사회의 품격, 경찰의 품격”을 갖춘 표창원은 좌우를 가로질러 ‘진실’에 접근하려는 지식인이며 실천가다. 극우꼴통은 있어서 품격을 갖춘 보수를 만나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작(前作)들이 그러했듯 표창원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한숨을 곁들인 공감과 지지를 불러 일으킨다. 시민의 눈과 귀가 막혔고, 발언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용을 쓰고 일어서야 할 때임을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야기는 듯하다. 『공범들의 도시』는 지난 대선 이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양한 사건을 복기하고 차가운 분노와 뜨거운 희망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 지향점을 설정한다. 이 책은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가 연합하고 협력”해야 할 때임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범죄를 유통하는 방식

 

표창원 교수는 범죄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낱낱이 분석한다. 범죄는 우리와 무관한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가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우리는 범죄에서 무관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갇혀 있다. 연쇄살인은 우리 사회 어두운 고리이고, 사법 시스템은 과학수사를 파괴한다. 범죄를 막아야 하는 경찰들은 거대 국가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범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 유통에 공모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명확한 근거를 저자는 철저히 분석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문법을 위배하면서까지 형사 역으로 분한 송강호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게 한다. 감독은 범인이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범인이 관객석에 앉아서 화면의 형사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우리가 이 사건을 잊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분명 범인은 아주 평범한 시민의 얼굴로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언급했듯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국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졌다.

 

안철수 열풍에 대하여

 

이 책에서 표창원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유효한 언급을 한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심정적 불쾌감’과 안철수에 대한 불신의 기저에 어떤 사건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던 내게는 참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지승호 인터뷰어의 질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안철수 후보에게 세 가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셨잖아요.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중도 사퇴를 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왜 선거 당일 축국했으며 그 계획은 언제 세워진 것이었는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노원 병이라는 선거구 특성에 비추어, 자신이 노희찬 전 의원이 표방하는 ‘진보’ 정치인인지, 그래서 그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 전 의원을 지지하지 않은 노원병 주민들의 보수적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355쪽)

 

이에 대한 안철수는 “문제인 후보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고, 선거 당일 출국은 “잘못이었다, 인정한다, 사과한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했다고 했으며, (노회찬의 뜻을 이어받아서) “노원 주민의 염원을 모두 받아서 새로운 정치를 펴는 시금석”을 삼겠다고 답했다. 안철수의 답에 100% 수긍을 하는 것은 아니나, 사태를 분석하고 신뢰 구축을 위해서 현문(賢問)을 던질 수 있는 표창원이 놀랍기만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다. 인구학적으로, 지리적으로 한국사회는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우리의 침묵과 무관심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돌부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 유리한 사람이 아닌 품격을 갖춘 사람,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 더 실체에 근접한 판단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일에서부터 미래의 많은 것들이 결정될 것이다. 마르틴 니묄러의 시(詩)가 그것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천주교도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기독교도였으니까.

 

그들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하여 발언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파도를 치게 하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파도만 보았다.”는 독백과 같은 주제를 내뱉는다. 영화 관람 이후 한동안 그 대사를 마음 한편에 두고 지내며, 과연 내가 보는 이 표상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현실을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 그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현실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범죄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파도’일 것이다. 파도와 같은 범죄의 높낮이 속에서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 프로파일러.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를 통해서 대중이 어떻게 범죄와 공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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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책들을 보며, 귀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지금의 나를 키워온 팔 할이 책이고, 여전히 독서가 세상을 ‘제대로’ 읽는 무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이 읽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마음으로 연애하듯 책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하는 아침입니다. 11월 신간 추천입니다.^^*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박가분 지음, 오월의봄, 2013. 10.

 

 

 

종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그들의 성장을 분석해야 합니다. 일베 신드롬을 제대로 분석해야만 한국 사회 젊은 우파들의 선택의 원인을 알고 대응책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해부해보고 극복하기 위해서 일독하고 싶은 책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편향 과정 분석』, 정경희 지음, 비봉출판사, 2013. 10.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없습니다. 단 ‘누가’ ‘어떤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역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담론 형성 과정으로 실시되었던 여론 조사는 국수주의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사 교과서 왜곡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이 어떻게 편향되었는지를 알아보는데 유익한 책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13. 10.

  

 

 

 

2012 대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실체 없는 공방의 정중앙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자리했습니다.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 진실에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과 맥락에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영화 같이 볼래요? - 영화가 끝나고 시작되는 진짜 영화 이야기 시네마톡』한창호, 김영진, 남인영, 신지혜, 이동진, 심영섭, 조인철 지음, 씨네21북스, 2013. 10.

 

 

 

지극히 사적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시대의 공적 공론장이 될 수도 있는 서른 편의 영화 안팍의 이야기를 평론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평론집이 나왔습니다. 평론의 전문 영역에서 살짝 비켜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네마 톡’이겠지요? 현장의 기록이 여기 있습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영화와 책을 함께 섭렵해보면 좋겠습니다.

 

 

 

 

 

 

 

『영화 같은 시간』, 최동훈, 조성희, 오승욱 (감독), 김소영, 정지우, 정우열, 정용준, 김희진, 박진희, 오승욱, 변병준, 봉준호 지음, 이음, 2013. 9.

 

 

 

 

 

이어서 다시 한번 영화 관련 신간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30주년으로 기획된 책이라고 하니 더욱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영화와 함께 한 시간을 체험하면서 조금 더 겸손하게 영화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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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강한 신념도 유쾌한 유머가 될 수 있다.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8.

 

인기 없음이란?

 

오래 전 박지원의 『열하 일기』를 읽으며 통곡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재해석한『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웃음과 우정으로 노마드하는 연암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검색해 보니 십 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책을 보니 더없이 반갑다.) 시대적 조건이 확연하게 다른 이백 여 년을 건너 뛰어 연암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감동하며 절로 눈물이 흘렀다. 유머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수하며 진정한 호모 쿵푸스로 살아간 그가 온몸으로 절절하게 느껴졌다. 연암과 나, 둘 사이를 중매한 고미숙 선생님 모두 한반도라는 토양과 한글 속에서 성장한 교집합이 있었다는 어설픈 이유를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242

 

새삼 연암 때문에 울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것은 버트란트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다. 러셀은 60 여 년의 간격을 두고, 나와 전혀 다른 지리적 공간에 살았고, 경험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사상에서 거리 두기가 충분한 철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유쾌함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핫한 신념 & 쿨한 반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러셀의 책이 계속해서 출판되는 것은 문제 의식에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신간 『인기 없는 에세이』 진정한 ‘인기 없음’이 왜 역설인지를 보여준다.

 

연암에 대한 사적 에피소드만큼, 러셀을 만난 오래된 기억 또한 또렷하게 남아 있다. 따뜻했으나 축축했던 벤쿠버 겨울 챕터 서점. 유치원 영어 실력으로 근근이 어학원을 드나들던 짧은 시기에도 책이 고팠다. 지금처럼 전자책이 있었다면, 한국어 책에 대한 헛헛함은 덜했을텐데, 나의 짐 가방은 온통 기초 영어 책으로만 가득했다. 서점에서 얇은 책 한권을 사들고 (당시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타벅스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었다. 이후 한국어로 읽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같은 책에서 러셀은 행복과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 철학사』 한권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명성이란 변덕스러운 것(5쪽)”을 일찍이 깨달았던 러셀은 철학사의 주요 사상가들을 사회·정치적 배경과 연결 짓는다.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라니?

 

책을 구성하는 12개의 에피소드는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서 순서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강점을 갖는 반면, 전체적인 구조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러셀이 지적 쓰레기라고 이름 붙인 철학은 지배 담론이 되어 국가의 공식 견해가 된 철학이다. 진정한 실재와 현상적 실재를 구분하여 진정한 실재를 오로지 논리로만 규정한 헤겔, 그가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에 끼친 영향과 소련 독재 체제의 이론적 정당화가 그가 말하는 지적 쓰레기의 계보다. 러셀은 형이상학 철학에 관한 독한 비판을 피력한다. 성직자들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던 시절(162쪽)의 스콜라 철학이 대표적이다. 그는 “교조주의는 지적 사상이 아니라 권위를 견해의 근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경험론은 행복을 바라는 사람을 위한 윤리적이기까지 한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험론의 한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에서 러셀의 편향적인 모습이 불편하기는 하다.

 

반전 운동가인 경험론 철학자 러셀은 군사적 자만이 낳은 국가적 자만심의 해악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교육은 교화를 전제하고 다수의 교사는 공무원으로서 명령을 수행한다. 불행은 늘 잘못된 믿음을 지나치게 확신하면서 시작된다. 우상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쓰레기의 계보에 비켜서 있는 철학이 해야 할 일이다. 러셀을 읽다 보니 - 예의 없는 것들과 싸움에서 예의를 지키며 이길 수 있는 해법이 없다면 - 조금은 경망스러워도 될 것 같다.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23쪽)”

 

예민한 사람은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 사려 깊게 사고하는 습관 없이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한 품성이 쓰레기의 계보 속에서 보석 같은 철학을 발견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진보한다는 것이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이타적(利他的) 이라는 도덕주의의 오류에서 조금 비켜서서 러셀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꽤 괜찮은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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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얇은 책의 울림, 쉽고 명확한 사회학 개론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 2013. 8.

 

뉴스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보지 않은 상태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경제 지상주의’가 가속화되고, 모든 가치는 자본으로 환원한다. 과정에 대한 고민 없이 결과에 대한 평가만 이루어진다. 필연적인 결과라고 회피하기에 한국의 상황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우경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의무만 남고 시민의 권리는 점차 사라진다. 한동안의 무관심이 만들어낼 결과가 두렵다. 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저 관객의 즐거움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다. 아바타의 활동을 지켜보는 수동적인 자리에 놓여 있는 객체의 심정이 그러하다.

 

정량화된 데이터와 단단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을 새롭게 읽는다. “가진 것 마저 빼앗기는 나”라는 부재가 그것을 함의하고 있듯이, 바우만은 우리가 불평등을 감수하는 원인과 사태에 대해서 치밀하게 분석한다. 세계에 대한 성찰과 방향을 제시하는 그의 저서는 동어반복일 수 있는 주제를 매번 쉽고 새롭게 변주한다. 근대 사회의 해체를 보여주는 바우만의 ‘유동성’ 개념은 자본이 기획한 마케팅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다. 무의식을 개인 삶으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 담론의 결과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사회학자로서 바우만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

 

학업성취도가 미달인 학생, 학부모와 심층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성취도 미달 학생의 경제적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고, 부모님이 비정규직, 잠정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하층 자녀일수록 학업 성적 미달을 본인의 능력으로 귀인(歸因)한다는 것이다. 원래 부모님이 공부에 관심이 없고 못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고 답변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잘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같은 성취도 미달 학생 사이에서 중층과 하층의 의식 차이는 확연했다. 하층으로 갈수록 “어차피”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태생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우리 안의 인종주의는 여전히 신화로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신념 가운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드러내는 일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신화

 

불평등 심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확신에 찬 계몽주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다수의 저소득층이 반복되는 불평등을 견뎌내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신화들” 때문이다. 경제 성장이 최고의 관건이고, 인간의 행복은 소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어느 사회에나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쟁은 자연스럽다는 확신이 존재한다. 일직선의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는 사회 진화론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행복은 각자 다른 목적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자기 윤리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주체적인 삶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고 삶의 목표를 하나로 획일화한 사회가 발전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모든 사람을 호명하는 방식이 ‘소비자’로 획일화된다면 주체는 객체로 전락하여 노예적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난이 가난을 부른다.

 

역설적으로 세계화는 세계를 둘로 분리한다. 밤의 세계지도는 세계가 어떻게 지리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22쪽)” 지리적으로 지역적으로 불평등은 노골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loanbank1116?Redirect=Log&logNo=120175447906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의 도덕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상황이 우리를 도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거시적인 관점과 반복된 사고 패턴을 뒤집는 것이다. 문제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의 철도에서 각을 틀어야만 불평등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는 파이 키우기에 몰두해 있는 우리에게 지금부터는 키운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경제 성장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낙수 효과 신화를 벗어나서, 누가 파이를 독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여 제 몫을 찾아야 할 때다. 번역이 즐거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한다. 새벽을 기다리는 자에게 가장 어둠이 짙을 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문제에 직면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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