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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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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0.1% 슈퍼 클래스를 통해서 본 국가 없는 자본주의 현실과 전망

 

『플루토크라트-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2013. 10.

 

진정한 진보와 플루토크라트

 

『플루토크라트』는 전 세계 최상층에 속하는 0.1%의 신흥 갑부에 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세계 경제의 변화 양상을 파악한다. 언론인이자 산업전문가인 저자 크리스티아 프릴랜드는 시장 경제와 플르토크라트의 성장을 파악하기 위해서 정치적 · 경제적 접근 방식을 함께 차용한다. 글로벌 슈퍼 엘리트의 일상을 아는 것이 - 진보와 빈곤이 결합한 - “거대한 스핑크스”의 모습을 보는 일이라면 독자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자선 & 불평등, affluent(부유한) & rich(부자)

 

우리가 『플루토크라트』에 접근하면서 살펴보아야 할 몇 가지 용어가 있다.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부를 의미하는 희랍어 Pluto와 권력 kratos의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자선이다. 유의해야 할 점은 그들이 자선을 베푼다고 해서 불평등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자산 보유 상위 0.1%는 “고귀하고 따뜻한 사람”을 전제할 수 있지만, 불평등에 대한 개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계급 투쟁 없이 현 상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affluent(부유한)’와 ‘rich(부자)’ 역시 이미지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부자라는 말은 은연중에 물질적인 풍족함과 속물근성을 함의한다. 문화, 교육, 사회관계 자본을 함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자는 부자라는 호칭을 싫어한다.

 

“해외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다.”

 

세계인의 삶이 평균 곡선의 정상 분포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간에 높고 완만하게 분포한 사람들은 평등한 세계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전반적으로 공유한다. 스마트 월드는 누구나 원하는 음악과 영화를 다운 받아 보고,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며, 저가의 질 좋은 상품을 손쉽고 값싸게 구매한다. 산업 혁명과 근대화 이후 다수의 사람들이 정치적, 법적, 형식적 평등을 누리게 되었고, 기술혁명과 근대화는 전 시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내면서 사회 계약 자체를 바꿔 놓았다.

 

국적 없는 슈퍼 클래스, 그들만의 리그

 

아무리 우리의 일상이 표준화되었다고 해도, 계급 진입 장벽을 간과할 수는 없다. 여전히 뛰어 넘을 수 없는 계급 특수성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남보다 빠른 도전,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금 주어진다. 국가에 대한 생각을 기준으로 과거와 오늘날 부자의 성격이 확연히 달라진다. 과거의 부자와 오늘의 부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경계가 국가관이다. 신흥 갑부에게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삼성 회장 이건희와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가지는 공통분모 보다 빌게이츠와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많은 유사성을 갖는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부자가 아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토대로 유희를 즐기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슈퍼 엘리트는 노력과 성공을 기폭제로 자신이 누리는 지위의 부가가치를 높여간다. 발명을 통해서 부를 창출하고, 명문대학의 높은 장벽을 넘어 서며,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일을 한다. 부, 권력, 성공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마라톤에서 땀으로 얻어진다. 성공한 이들에게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이고, 시차 적응의 과정이다. 일주일에 나흘 밤을 집을 떠나 잠을 자는 신분을 상징하는 배지를 단 자본의 고아들(93쪽), 날아다니는 계급이며 아이디어 귀족(113쪽)이다.

 

플루토크라트의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비즈니스와 자선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빈곤 문제와 가난한 나라를 염려하고, 자신들이 단지 이기적인 목표만을 쫒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97쪽). 해외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자국의 동포들을 위해 동시에 기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중 초점은 오늘날 플루토크라트들의 다양한 노력들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124쪽).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비즈니스와 자선 사업을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자료가 국가에서 내놓은 자료 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는 중론이 형성되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과거 국가가 해야 하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재정과 정보를 가지고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보건, 교육, 공공 기관 매수, 심지어 지배 이데올로기와 담론 형성까지 플루토크라트의 지배를 받는다. 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워렌 버핏의 주장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해주는 것이다. “계급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도발한 쪽은 나의 계급, 즉 부자 계급이며, 우리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131쪽에서 재인용)”는 버핏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복지와 자선을 통해서 그가 지키고 싶은 것은 부자 계급의 권력이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입법자”

 

물화된 권력을 갖지 못했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창조적 그룹이 있다. 공학자, 경제학자, 물리학자, 시인을 포함하는 지식인 계급이다. 슈퍼갑부는 슈퍼스타, 엘리트 변호사, 요리 슈퍼스타, 패션 디자이너 훌륭한 바리스타와 기수에게 지불해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다. 슈퍼스타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규모의 경제를 갖는 것과 슈퍼엘리트를 위하 고가 전략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은 프리미엄을 극대화하면서 가장 높이 올라간다. 슈퍼스타는 세계화와 기술 혁명으로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슈퍼스타의 성공은 슈퍼갑부의 지갑을 늘려줬고, 동료들도 큰 파이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네마토그라프와 함께 글로벌 슈퍼스타로 등극한 찰리 채플린, 컴퓨터 괴짜들의 성공, 최고의 승리자 자리를 금융가들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슈퍼스타다. 모든 사람에게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자격은 허락되었으나, 실제로는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은 자는 샴페인을 맛볼 자격이 없다.”

 

신흥 시장에서 일어나는 혁명에 잘 적응한 사람은 경제적 프리미엄을 얻는다. “적절한 기술과 인맥,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혁명의 파도타기가 쉽고 흥미롭다(244쪽). 기술 혁신을 둘러싼 비즈니스 경쟁의 승자들은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귀인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감은 성공의 필요충분이 될 수 없다. 자신감은 “적절한 능력, 올바른 태도, 적절한 사회적 지위”와 결합되었을 때 최상의 결과를 선취할 수 있다. 누구에게 부가 돌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은 정부의 몫이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플루토크라트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에 대하여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비참함에 무관심하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에 유감과 분노를 느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보다 높은 데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더욱 극심하고, 죽음의 슬픔이 더욱 클 것이라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애덤 스미스, 『도덕론』

 

18세기 애덤 스미스의 글은 현대인의 삶을 설명하는데 인용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수십억을 버는 연예인, 수백억 자산가, 스포츠 스타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낼 때가 더러 있다. 드라마 한편으로 수십억을 버는 젊은 연예인이 사적 삶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강한 동정, 수백억 자산가가 집보다 호텔에서 더 많은 밤을 보내거나 형제의 난을 일으키면 평범한 사람만 못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며 위로 받기도 한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도 연구실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염려하는 것에 대하여 남다른 혜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우리는 여전히 경제적인 윤택한 삶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진보의 의미를 재고하며

 

『플루토크라트』는 산업혁명 이후 미국, 유럽, 중국, 개발 도상국가를 넘나들며 시간과 공간을 종회무진 확장해가지만, 방대한 자료를 통해서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는 힘은 약하다. 저자가 그동안 경제 전문지에 기고했던 글이 하나의 책으로 엮이면서 나타나는 필연적 핸디캡으로 추측된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부자들에 관한 이야기’나 부자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라, 플루토크라트의 삶을 통한 자본주의의 현실과 전망이라면, 현상에 대한 문화 기술을 넘어 서서 고민을 공유하고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플루토크라트들이 공존을 통해서 함께 생존을 모색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면 베네치아 귀족의 사례를 짧게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을 읽는 내내 ‘강도 귀족들’의 삶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 다만 새롭지 않다는 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고민할 뿐이다. 이 사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수용하고 용인한 실체가 바로 세계와 내 지역의 양극화를 허용하는 전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진보를 발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오인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연을 첨가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진보의 의미를 재고(再考)하는 일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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