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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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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아까운 책이다. <프로이트 평전>을 읽다가 프로이트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보면서, 그 서양의 그럴듯한 학문이라는 것이 참 거시기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가 노학자의 글을 읽게 됐고, 몇 일을 꼼꼼히 정독하게 됐다. 이와 비슷한 책은, <신경 과학의 철학-신경 과학의 철학적 문제와 분석, 맥스웰 베넷·스티븐 해키, 사이언스북스>와 같이 묵직하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고갱의 그림 앞에서 노학자는 오래도록 고민한 것을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철학이 방향을 잃었다는 노학자의 주장은 서양철학의 문제다. 그들은 모든 것을 나누었기에 최근에 융합을 시도하지만, 자연은 융합도 분리된 적이 없었다. 다만 조금씩 변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한 관점을, 사회성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놀랍다고 해야겠다. "신화가 인류의 기원과 의미를 해명할 수 있다는 세계관과 그렇지 않다는 세계관을 서로 화해시킬 수 있을까? 솔직하게, 그리고 짧게 대답하자면, 아니다. 둘은 화해시킬 수 없다.둘의 대립은 과학과 종교, 경험주의적 태도와 초자연적 존재를 믿는 태도의 차이를 정의한다." 라는 문장에서, 노학자의 깊은 사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2부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이다. 이 장에서 인간성과 인간다움의 허약한 성취물보다는 인간종에 대한 관심을 더 쏟고 있다. 적은 수로서 어떻게 환경에 적응했고, 진화를 할 수 있었는가? 라는 궁금증이 노학자의 화두였다. 그점을 사회성에 촛점을 두었고, 끈질긴 연구를 했다. "동맹을 형성하려면 서로를 자세히 평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그것은 선행 인류 조상의 본능에 이끌리는 곤충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사회성을 획득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라고 사회성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3장은 <인간유일성 문제 human uniqueness problem>을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선적응preadaptation으로 각 진화시대를 연구했다. 몸집과 비이동성, 나무 위에서 생활에서 분화로 꼽았다. 손의 발달은 인간종에게 큰 변화였고, 후각보다는 시각에 의지하게 된 원인으로 넓은 서식지의 영향임을 제시하고 있다. 제한된 자원인 손과 발, 직립보행이 되면서 손은 걷거나 매달리는 데 쓰지 않아도 되면서 진화가 가속이 되기 시작했다. 이 점은 깊이 사색해볼만하다. 철학적으로나 경제적인 문제로 현대사회의 빈곤을 다루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어서다.


이 책을 서평을 쓰기 아깝다고 한 이유는, 서평은 적은 분량일 수밖에 없어서다. 적어도 이 책을 소화하려면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이해해야만 한다. 물론 주욱 읽어나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정독을 해야하는 책이다. 20장에서 <인간 본성이란> 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보아, 노학자는 결코 피하지 않는다. 이 점은 이 노학자가 왜 지구의 정복자인 인간을 집요하게 연구를 했을까, 끄덕이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대다수의 사회 과학자들은 인간본성의 존재 자체를 아예 부정했다. 그들은 산더미 같은 증거들을 외면한 채, 모든 사회적 행동이 학습되는 것이고 문화는 대대로 전달되는 역사의 산물이라는 교조적인 견해를 고수했다."라고 나무라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 인간본성이 아닌가부터 설명하기로 하자. 우선 인간 본성은 그것의 토대를 이루는 유전자가 아니다." 라고 간결하게 주장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는 현명하다, 믿을만하다.


생물학적인 진화론이 아니라 사회학으로 바라본 진화론이다. 24장은 <도덕과 명예의 기원>인데, 진화가 도덕과 명예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노학자가 꿰뚫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몇 번을 더 읽어도 좋을 책이다. 문화의 흐름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으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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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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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특히 동양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가 흔치 않다.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서양의 미학이기에, 유흥준 선생의  <명작순례>는 도움이 꽤 도움이 되는 책이다. <명작의 조건>을 강의한 유흥준 선생은 명작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현재성, 존경심, 디테일 이라고 초대된 강의에서 밝혔다고 한다. 이것은 장르의 파격성과 조화, 그리고 통일성과 시너지로 필자는 해석하고 싶다. 책은 조선 전기와 후기, 말기, 사경과 글씨, 궁중미술이라는 5가지의 큰 단락으로 구분되었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익히 들어온 선생들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그림과 글에 대한 해석보다는 배경에 집중한 글이다. 이는 그림이기 이전에 탄생 배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순서라고 유흥준 선생은 생각한 듯 하다. 그림을 보는 눈은 여전히 그림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라는 점인데 책은 그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각 장은 율곡이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위해 쓴 글은 쉬 접하지 못하는 데, 그 부분을 가장 앞에 배치한 것은 이 책의 뜻이 <사랑, 자비, 헌신> 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49장은 옥새에 대한 것으로, 필자는 그 옥새를 촬영하기도 했다. 책의 배치는 가족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점층법의 수순을 밟고 있다. 황현산 선생의 메모를 하나 빌려와서 순례를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갸름될 것만 같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두터움은 감수성의 질이기에, 명작의 가치를 되새기를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책으로 조금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보여지는 것도 그래서다.

조선시대의 화원을 뽑는 시험을 취재取才라고 하고, 대나무는 5점이고, 산수는 4점, 인물과 영모는 3점, 화초는 2점이라고 한 그림의 주제와 점수의 관계는 꽤 독특하다. "사실 대나무 그림은 누구나 그럴듯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잘 그리기는 매우 어렵다. 몇 가닥 줄기를 끊어서 치고는 대나무 개介 자와 아비 부父 자를 쓰듯 댓잎을 겹쳐서 표현하면 묵죽의 기본 골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형태를 갖추었다고 곧 그림이 될 수 없는 것은 글자꼴을 갖추었다고 서예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라는 지적에서 깊이를 다루고 있다. 이전에 좋아하지 않았던 그림이 좋아질리는 없다. 그림이 좋아지려면 <내>가 변해야 가능하다. 이 변이를 꿈꾸도록 하는 책은, 꿋꿋하게 도상의 설명은 하지 않는다.

구성의 단점이라면 이것이다. 그림1, 그림2 같은 주석같은 부분이 없기에 어떤 그림에 대한 이야기인지 살피는 데 곤란을 겪었다. 세심하게 구성한 것은 맞겠지만, 일반인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느 그림에 대한 설명인지 표기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각 장에 소개된 그림이 글과 잘 섞이려면, 그림에 대한 견해도 넣어주는 것이 좋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 까닭인지, 구성의 흠이 생긴 것은 안타깝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점이다. 게다가 한문을 경시하는 현 세대에서 한자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문은 우리의 언어였지만, 지금은 해석은 물론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명작을 순례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부터 한다는 선행조건, 단서가 붙여줌으로써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입문서라 할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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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 크라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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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이런 류의 책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자꾸 발행되는 이유는, 자본의 해학이 문화 전반을 병들게 한다는 지적을 하려 함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 상위 1%들이 더 똑똑한 것도 아닌데, 더 많은 부를 움켜잡게 된 이후로 가난은 고질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이 배우는 학문을 <측정의 오류>라고 봄직하다. 그들의 세계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 부유함을 잔인함이라고 봐야만 하지 않을까? 대다수의 가난한 자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동굴로 스스로 들어간 물고기에 지나지 않다. 자신이 만든 어두운 동굴에서 살기에, 소통이 원할하지 않다. 이 사회문제는 더 많은 부를 획득하도록 만드는 서구의 교육에 문제가 있다.  욕심이라는 것이 한계가 없다지만, 끝이 없는 그들의 획득으로 인해 전지구적 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학의 관점이 아니라 인문학도 그들의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킨 잘못을 책에서 조금 다루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라스의 비판적 견해는 다음과 같다. "경제학적 설명은 아주 분명합니다. 미국과 중국처럼 서로 다른 나라들이 문호를 개방할 때, 잘 사는 나라의 임금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충분히 예상한 결과죠. 세계화란 미국의 임금수준이 중국과 같아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 시장의 의미입니다. 결코 환영할 수 없는 결론이죠."

그렇다. 필자는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노동의 착취로 얻어진, 그들의 자본은 언젠가는 세계화가 아닌 지구 전체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 의 시대는 현재 상황을 꽤 잘 묘사한 개념이라고 본다. 승자들도 불안하다는 것은 대기업 정책과 세계화가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승자의 유지기간이 극히 짧아졌다는 점은, 그들―플루토크라트가 힘든 이들에게 남긴 흉터다. 부의 공평한 분배가 사라지고 난 후, 모든 이데올로기까지 부에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선사업을 어디에서 해야할지 모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된 까닭에, 전 세계가 그들의 고향이라는 패러독스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투자를 하지 않거나, 투자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의 반대개념인 보이는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플루투크라트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경유착이 유독 심한 편인데, 개발이 최우선으로 둔 까닭이다. 단기간에 승부를 거는 정책이나 방법들은 언제나 후유증이 심각하지만, 최정상의 부를 추구하는 이들은 나머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편이다.

저자와는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우리 시대의 모순(The Paradox of Our Age)를 적어둔다.

The Paradox of Our Age / Dr. Moorehead, 1995

We have taller buildings but shorter tempers; wider freeways but narrower viewpoints; we spend more but have less; we buy more but enjoy it less; we have bigger houses and smaller families; more conveniences, yet less time; we have more degrees but less sense; more knowledge but less judgement; more experts, yet more problems; we have more gadgets but less satisfaction; more medicine, yet less wellness; we take more vitamins but see fewer results. We drink too much; smoke too much; spend too recklessly; laugh too little; drive too fast; get too angry quickly; stay up too late; get up too tired; read too seldom; watch TV too much and pray too seldom.

We have multiplied our possessions, but reduced our values; we fly in faster planes to arrive there quicker, to do less and return sooner; we sign more contracts only to realize fewer profits; we talk too much; love too seldom and lie too often. We've learned how to make a

living, but not a life; we've added years to life, not life to years. We've been all the way to the moon and back, but have trouble crossing the street to meet the new neighbor. We've conquered outer space, but not inner space; we've done larger things, but not better things; we've cleaned up the air, but polluted the soul; we've split the atom, but not our prejudice; we write more, but learn less; plan more, but accomplish less; we make faster planes, but longer lines; we learned to rush, but not to wait; we have more weapons, but less peace; higher incomes, but lower morals; more parties, but less fun; more food, but less appeasement; more acquaintances, but fewer friends; more effort, but less success. We build more computers to hold more information, to produce more copies than ever, but have less communication; drive smaller cars that have bigger problems; build larger factories that produce less. We've become long on quantity, but short on quality.

These are the times of fast foods and slow digestion; tall men, but short character; steep in profits, but shallow relationships. These are times of world peace, but domestic warfare; more leisure and less fun; higher postage, but slower mail; more kinds of food, but less nutrition. These are days of two incomes, but more divorces; these are times of fancier houses, but broken homes. These are days of quick trips, disposable diapers, cartridge living, thow-away morality, one-night stands, overweight bodies and pills that do everything from cheer, to prevent, quiet or kill. It is a time when there is much in the show window and nothing in the stock room. Indeed, these are the times!

누군가 번역을 하였는데, 이 부분도 적어두고.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부족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더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더 줄어들었다.


자본주의가 도금주의를 만들었고, 돈이면 다 된다는 풍조를 퍼트린 장본인이다. 자본은 인간이 만든 개념인데, 그 개념에 구속되기에 실천이 뒤따라야만 한다. 책의 결론은 여러 저명한 이들의 견해가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둘 다 놓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시하는 사회는 두 가지 모두를 상당 부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평등이 쟁취의 목적이 된 듯 싶었다. 서구의 개념은 소유와 쟁취같은 것을 벗어나야만, 그들의 문제를 비로서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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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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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일베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전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꽤 조사가 잘 되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그들의 과격한 이야기가 퍼져나가지 않았으리라 본다. 인터넷과 익명성으로 위장이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필자는 일베의 사상적 근원을 익명성과 민주주의의 헛점에서 찾곤 했다. 저자가 논증하는 일베의 사상이 어디에 닿았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읽어나가게 됐지만, 의외의 소득이 생기곤 했다. 저자가 네이버 블로거로 활동할 때, 그의 글을 종종 읽어볼 때와는 다른 접근이었다. 논문과 비슷한 논조였던 블로그의 글쓰기와는 달리 읽기가 수월했다. 저자의 주장은 몇 가지로 압축되는 데, <관심병과 신상털이>를 비교적 차분한 시각으로 전개했다. 거의 모든 대립은 그래서 점점 이데올로기로 확대되지만, 그 근원에 있는 극히 사소한 충돌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어떤 사상이든 뜬구름잡기와 다르지 않다. 하워드 진은 "우리가 평생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고 했다. 정의나 평등, 자유 같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친절함'이다. 즉, 친절하지 않기에 적대적이 되었고, 익명성 뒤에 숨고자 했다. 그런 행위가 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으로 표출되는 원인은 분출구가 없어서다. <관심병>이란 그들의 분출구이고, 더 만흔 관심을 받고자 <신상털이>를 하는 짓을 서슴치않았던, 일베는 그들의 행동이 무법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쉬지 않으려 하기도 했다.

불수의근不隨意筋이라 해둔다. 일베의 사상은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중독적인 현상이라고 보곤 했다. 익명성으로는 논증을 할 수 있어도, 익명성이 민주적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의지는 자유가 아닌 방임에 가깝다. 신상을 터는 행위는, 경험도 노력도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퍼트린 괴상망측한 단어까지도 청소년에게 바로 오염시키면서도, 의지와 상관이 없다는 표명을 하는 태도는 꽤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곤 했다. 한 할아버지의 죽음을 인증샷을 하던 손자의 행위는 충격적이었다. 그러한 행위는 도덕적 해이이지 않던가. 자본사회가 되면서, 하나하나 힘을 잃었던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분노를 표출한다지만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저자의 지적은 페이스북의 행위를 허세로 본 부분도 있는데, 일정부분은 그럴 듯하다. 논증을 위해서 끌여들이다 보니, 논리를 위한 논리로 논증을 하게 된 경우가 전체의 맥락을 강경일변도로 바꾸었다. 그런 점이 이 책의 옥의 티라 해야겠다.


뉴라이트 사상이라고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기에 자극적인 요소로 사회를 더 병들게 하려는 일베를 파헤친 노력은 높이 사고 싶다. <일베의 사상>은 사태나 개념 그리고 존재를 그들의 우스개로 만드는데 혈안이 되었기에, 저자는 문화적 맥락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것같다. 그러나 필자는 문화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세다고 생각해오곤 했다. 애매한 대상을 제외한 서양의 합리론처럼, 일베의 행태는 모호한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기능을 실현하지 않았다. 그들의 한계라고 봐야할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두 장에서 빛이 난다. 책의 앞부분은 일본의 한 학자의 반성과 맥을 같이 풀이하면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은 듯 싶기도 했다. <인터넷은 공론장인가?> 라는 장에서는 저자의 사유가 그대로 녹아들었다. "결국 공론장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은 스스로가 말하는 바의 이해 가능성, 진리성, 정당성, 진실서을 담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그러한 성실성을 타인에게 납득시키야 한다. 한편 하버마스는 이른바 '왜곡되지 않은 생활세계' 안에서는 그러한 의사소통 규범이 수용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시 말해 권력과 돈이 중심이 되는 '체계'가 훼방만 놓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행위규범에 도달하게 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라고 뜻을 심었다. 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공론을 바라는지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병을 진단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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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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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표창원 교수는 꽤 알려진 프로파일러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CSI를 통해 엿볼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도 꽤 세밀하게 살피는 이를 표교수라고 방송은 소개하곤 했다. 책의 제목이 수상하기도 하거니와 전문 인터뷰로 알려진 지승호의 대담은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1부. 한국적 범죄의 탄생
2부. 연쇄살인을 복제한느 사회의 어두운 고리
3부. 과학수사를 파괴한 사법 시스템의 죄악
4부. 거대 국가 범죄에 가담한 경찰들
5부. 차가운 분노, 그리고 뜨거운 희망

이 책은 범죄를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시스템의 부조화로 끌어내려고 한다. 맞는 지적이다. 개인의 분노를 다른 에너지로 바꾸지 못하는 자본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곱추가 있었다. 노틀담이라는 곳에 사는 그다. 누구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편견으로 인해 닫혀버린 인식은 드레퓌스를 계속 생산해내면서도 회수하지 못하는 구조적 결함이 있다. 더 많이 가진 이들이 편법으로 죄를 짓고도 유유히 풀려나는 도덕적 해이의 시스템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같다.

그러나 인터뷰는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이야기같은 부분이 적지 않게 발견되기도 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속시원한 해법은 보여주지 않았는데 인터뷰의 특성으로 치워버리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신파가 아니면 엽기인 가족 관계> 에서 지승호는 "가족은 누가 안보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라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이야기와 "한국 사회의 가족관계는 신파 아니면 엽기"라고 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로 인터뷰를 몰고갔다. 이것은 질문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단면이기는 하더라도 인터뷰어가 객관적이지 못했다. 물론 솔직하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해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자료는 허술하다거나 잡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미래를 위해 자식을 키운다는 논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서다. 그들의 생각은 특수한 것을 보편화하려는 모습이 적지 않게 보여주기에, 신문기사를 읽는 듯 했다. 적어도 몇 개의 신문을 읽다보면 사회사건을 바라보는 입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인터뷰는 둘 다 비슷한 시각을 갖거나 한 사람의 사유에 맞추는 것같이 보였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리스크를 피하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했다.

표교수가 철학의 방법을 종종 꺼냈지만, 그 방법이 정착되지 않은 이유를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판사의 명령을 거부하는 검사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표교수가 프로파일러이므로 그들 검사들의 심리상태까지 파헤쳐주는 것은 어땠을까. 단순히 그들이 그러하다, 라는 이야기로는 설득력을 얻을 수는 있어도 뜨뜻미지근한 것같았다. 그가 한 일도 있었지만, 대개는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제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적용하다가 실패한 곳도 있을 터인데 실패사례같은 이야기는 희박했다.

공소시효가 없어져야 한다는 표교수의 주장에는 필자도 동의한다. 사실 부익부빈익빈의 현상이 자본주의 슬픔이라고 하지만, 그 축적에 개입된 유착관계를 끝까지 파헤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그가 이론가만이 아니라 생각에 도착하게 했다. 객관성을 위해 객관성을 버린 듯한 아슬아슬한 인터뷰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어떤 대화는 깊이 들어가고자 했지만 주어진 주제가 있어서인지 들어가지 못했다. 적지 않은 페이지를 할당하면서, 언론에 공개되어 알게 된 사실보다 조금 더 사건들을 연결해주기는 했다. 그 부분이 호불호다. 그래서 이번의 인터뷰는 무엇인가 빠진 게 있는 듯 싶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가난한 이들을 변호하는 것도 괜챦지만, 가진 자들의 특성을 파헤치는 것이 조금 더 날카로웠으면 싶었다.

그래도 이 책에서 더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이들을 위하고 있기에, 고마움을 표하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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