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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일베 현상을 통한 2013년 한국 현실에 대한 재고(再考) 『일베의 사상』

 

박가분 지음, 오월의 봄, 2013. 11.

 

청춘이 꽃피고 시대적 아픔이 오롯이 내 아픔이 되었던 오래 전 어느 봄날, 공지영의 소설을 만났다. 이십대의 작가는 시대의 정서와 경험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소설로 옮겼다.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했다. 신념을 다지는 쉬운 소설, 어렵지 않은 소설이 존중되지 못했던 날들, 그녀는 세월을 잉태한 채, 여전히 소설가로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잠시 핫하게 떠오르다 사라지는 작가 중 한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공지영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며 꾸준히 작품을 써왔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작품보다 사적 삶이,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SNS가 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접하기 쉽고 이해가 빠른 ‘한국’ ‘현대’ 소설에 누가, 얼마나 경의를 표하겠는가 싶지만,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도 저평가 되는 작가 중 한사람이다. “공지영은 그냥 싫다.”는 독자를 꽤 여럿 알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냥”이다.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고, ‘그녀’가 싫다고 한다. 이유 없이 그냥 싫다면, 싫어하는 자신의 무의식을 살펴볼 일이다.

 

공지영의 신간『높고 푸른 사다리』를 오래 기다렸다. 한겨레에 연재되는 소설을 띄엄띄엄 읽으며, (2013년을 누구보다 처참한 심정으로 지냈을 것 같은) 공지영 작가를 살게 하는 힘이 이 소설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다. 신문에서 보는 그녀의 글이 한권의 근사한 책으로 묶이자마자 사전 예약까지 해두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의 중단 없이 읽혔다. 작가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도대체, 왜?” 2012 대선을 거치면서 매 순간 자답하게 하는 자문이었다. 채널이 막힌 2013년 터널을 지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은 각자의 생각은 자유라는 방식으로, 세상의 부도덕과 몰상식을 보수화라는 용어로 정당화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7470

 

  

지난 5월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시크릿 전효성의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언급이 네티즌의 도마 위에 올랐다. 버스커버스커의 김형태는 “허니지 형들 차트 종범”이라고 트윗하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들에 대한 거센 비난은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때까지는 왜 ‘민주화’나 ‘종범’이라는 단어가 네티즌의 집중 포화를 받아야 하는 까닭을 몰랐다. (민주화 : =ㅁㅈㅎ, 일베 게시글에 대한 반대, 비추천을 의미, 더 나아가 진보적인 주장에 공감하거나 보수파나 자신들의 정치적 농담을 용인하지 못하는 게시판의 분위기를 지칭하는 말. 모든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축하는 말(22쪽), 종범 : 야구선수 이종범의 이름. 존재감이 없다는 듯으로 사용한다(25쪽)). 모르기 때문에 분노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세대 간의 차이이거나,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잠깐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일베’가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일베 유저에 새롭게 자리하고 있는 우파의 논리,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넘길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때를 맞춰 출판된 책 『일베의 사상』은 이 현상이 우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믿었던 나와 같은 ‘기성’ 세대에게 충분히 읽을 가치가 필요한 책이다. 저자 박.가.분. 그가 보는 세계는 분명 나와 다르다. 이십대 청춘 박가분은 일베의 용법으로 그들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기술한다. 암중모색. 대안 없어 보이는 2013년 한국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치열하게 진단과 분석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생각이 하나의 단어를 다른 의미로 소비하고 있다면,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일베의 역사, 문화,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2013년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베에서 가공되는 정치적 담론을 기성 논객 몇몇의 근엄한 꾸짖음으로 야단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는 끝낼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영향력이 막대할 뿐 아니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출발한 일간베스트, 일베는 콘텐츠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포지션을 바꾸기 시작한다. 엘리트와 대중의 경계를 넘나든다. 진보 좌파와 짝을 이루던 민족주의는 이제 애국보수와 짝 지워진다. 인터넷의 민주화는 일베의 형제애가 된다. “일베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서로에게 말을 놓으며 툭툭 내뱉는 것이 원칙이다. 일베 유저들은 이런 문화에서 집에 온 것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 일베는 서로에 대해 수고로운 감정노동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의 진보주의자들처럼 서로에 대해 가식적인 가면을 쓰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편한 공간이다(125쪽).” 공격적이고 우상 파괴적인 스타일, 감성과 논리, 정치적. 학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을 뒤섞어가며, 상대의 허점을 명쾌하게 논파하는(77쪽) 강준만식 글쓰기와 인터넷 글쓰기는 형식에 공통점이 있다.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와 짤방은 같은 방식으로 유통된다.

 

일베의 용어는 낯설고 여성, 전라도, 게이에 대한 비하의 의미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의외로 일베의 모태인 디시인사이드가 친노 성향의 진보적 색채가 강했던 사이트다. “효순/미선 추모 시위, 노무현 대통령 당선, 탄핵 반대시위에 이르기까지 주된 정치적 국면 때마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여론을 표출하는 진앙지(97-98쪽)였지만, 이제 김대중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오열하는 이희호 여사 사진을 홍어 택배 왔다는 짤방으로 유통하면서 특정 지역과 인물을 비하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한 사람의 신상을 털어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은 희화화하고,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의 죽음은 추모로 이어진다.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일베문화가 사회의 배설물이 되어 일베유저를 익명의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이십대에게 희망이 있는가?

 

아쉽게도 『일베의 사상』은 극우에서 양산되는 일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에서 멈춘다.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 때문으로 극으로 돌아섰다고 보는 것은 기계적 해석처럼 보인다. 경쟁과 배제 속에서 성장한 아픈 청춘, 저성장 사회의 88만원 세대, 저출산 고령화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이들의 무기가 인터넷 공간인지 모르겠다. 핸드폰, 골방, 일용할 양식만 주어지면 무노동 무임금도 좋고, 루저가 되는 것도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시대와 삶을 성찰하는 것이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어려운 사태에 내몰려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무거운 책임감만 주어진 것이 기성세대들의 탓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젊음에는 젊음의 값어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꼰대의 방식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 박가분의 신간을 읽어야 하는 것은 - 일베에서 양산하는 깨알 같은 재미와 웃음에는 웃어넘길 수 없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경멸, 정치 성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공감하며 힐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바르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은 위로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위로만으로 희망을 현실에 가져올 수는 없다.

 

『일베의 사상』이 다행스러운 것은 저자가 이십대 새파란 청춘이라는 점이다. 나에게 공지영이 있었듯이, 젊은 그대들에게는 박가분 같이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평론가가 있다. 누구보다 일베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고, 경멸이 아닌 이해로 싸움을 걸 줄 아는 유머를 잃지 않은 청춘의 평론가다. 서로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정의를 세울 수는 없다. 냉소는 환멸을 양산할 뿐이다. 기성의 언어가 꼰대의 설교로 들리고, (언어는 사유의 집이라서) 소통할 수 없는 언어 세계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기대할 것은 청춘 간의 소통과 싸움이 만들고 지켜가는 사회적 책무와 투쟁이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기대하지 않은 영화였다. 발칙한 젊은 잉여들의 1년간 유럽 여행기. 그 정도의 정보가 다였다. 파리, 로마, 이스탄불, 런던을 간접 여행하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객석 한자리를 차지했다. 러닝타임 초반 십분까지 잉여로 보였던 그들은 나머지 1시간 40분 여분 동안 잉여 개념을 확실하게 전복시켰다. 자칭 잉여인간 호재, 하비, 현학, 휘가 80만원과 카메라 한 대로 시작한 유럽의 히치하이킹은 이십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진정한 유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각자 특별했지만, 그 특별함을 생산적으로 만들어가는 상보적 관계와 호재의 리더십은 생산과 놀이를 분리하지 않는 니체적 삶을 제대로 보여준다. 미래는 막막하지만, 일상과 단절하고 예측할 수 없는 주사위 놀이를 시작하는 그들을 보면서 ‘일베’와 대척점에 있는 놀이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상이 관념적이라면 놀이는 삶이다. 이렇게 양극단의 삶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놀라운 잉여들은『일베의 사상』을 읽으며 막혔던 심장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5298

 

 

 앞으로의 국가는 당위와 명분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사람을 억압하는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다. 이상적인 국가의 형태가 제각각일지라도 약자는 국가에 기대어 삶을 살아간다. 국가를 통해서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면 대안적 공간을 만들고 연결망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혐오, 환멸로 억압된 욕망을 표출하는 것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없다. 국가가 약자의 삶을 위태롭게 할 때, 대항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존재기반이 위태로운 소수자들이다. 열등감을 열등감으로 대하는 한 사회적 약자는 벼랑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자기 연민을 덜어내고, 상처투성이의 유머를 거두고 냉혹한 현실을 차가운 이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베의 성장 과정을 충실히 분석해야 한다. 때가 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거두어야 한다. 『일베의 사상』은 일베 현상의 원인을 알고 대응책을 만들기 위한 필독 입문서에 이름을 올릴만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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