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 많아 행복한 가을"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지음 / 시공사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10월의 수확은 <바람의 열두 방향>과 <최순덕 성령충만기>였다. 르 귄의 열성 팬은 아니지만, 또 책에 실린 몇 개의 단편은 이미 읽은 것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멋진 책이다. (표지 색감과 판형도 맘에 든다.) 특히 인상적인 건 각 단편 앞머리에 르 귄 자신이 해당 작품에 대해 짧게 술회한 부분. 작품의 발단, 출판의 뒷얘기, 소설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해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번역도 매끄럽고 깔끔하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한국소설이다. 또다른 이야기꾼의 등장을 조심스레 점쳐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랩'으로 서술되는 '버니'부터 전/성경의 형식을 빌려쓴 '최순덕 성령충만기'(에, 종교소설이 아니다.;)까지. 책에 실린 작품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 재미있고 완성도 있다. 이기호란 이름을 기억해두자.
 
그러나 많은 문학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10월에 나를 쓰러뜨린 작품은 <엄마 마중>이다. 알라딘에서 일하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어린이책을 조금이나마 접하게 되었다는 것. 아니었으면 조카도 친구 딸내미도 옆집 아기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내가 어린이 책을 접할 일이 없을 테니까. 이태준의 짧은 동시를 그림으로 풀어낸 이 책 <엄마 마중>. 대여섯 살 먹은 어린 아가가 버스 정류장으로 엄마를 마중나간다. 이영차 보도에 올라서서 '우리 엄마 안와요' 기웃기웃. 그림 한장 한장이 너무 가슴에 와닿아서 눈가가 순간 화끈해졌다. 알라딘 편집팀이 10월에 반한 책은 뭐니뭐니 해도 <엄마 마중>이 아니었을까.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은행잔고 35원, 그래도 만화는 계속 나온다"
데스 노트 Death Note 1 오바 츠구미 + 오바타 다케시 / 대원씨아이
환월루기담 이마 이치코 / 대원씨아이
후르츠 바스켓 14 타카야 나츠키 / 서울문화사
더 이상 말하지마 요시나가 후미 / 서울문화사
 
이번 달에는 일반 단행본은 거의 보지 못했다. 경이로운 1권을 선보이는 만화, 흥미로운 2, 3권을 선보이는 만화들로 인해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보냈다. 이달의 선봉은 뭐니뭐니해도 <데스 노트>. 오바 츠구미라는 가명을 내세운 작가는 과연 누구인지 친구와 연일 토론을 하느라 메신저는 언제나 ON 상태였다. 원서판매 사이트에서 미리 주문해서 내용을 살짝 엿볼 수도 있겠지만, 훗날의 재미를 위해 꾹 참고 있는 중이다. (사신 류크가 너무 귀엽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싸이코'라고 한다.)
 
다음을 차지한 것은 오랜만에 등장한 이마 이치코, <환월루기담>으로 <백귀야행> 못지 않은 찬란한 만화를 선보였다. <문조님과 나>로 잠시 동물만화로 나가는가 싶더니, "나, 아직 건재하다구!"라고 조용히 외친다. 으레 그렇듯, 나는 그녀의 만화를 읽다보면 전병과 귤, 담요가 그리워진다.
 
편애하는 캐릭터인 링이 많이 아파보여 마음이 무거웠던 <후르츠 바스켓 14>, 요시나가 후미의 <더 이상 말하지마>(나이제한 표시가 안되어있어 덜컥 구입했더니 15세 미만 불가, 소프트 '야오이'였다!) 등도 주말에 탐독한 만화. 고양이의 주인된 도리로 다시 한 번 봐줘야겠다는 생각에 보기 시작한 <나비의 일상>, <묘한 고양이 쿠로>도 요즘 내 손을 타고 있는 책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이 겨울에 쏟아질 만화들도 빵빵하다고 하니 기대백배! :)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눈이 쌓인 추운 겨울날, 전차 정류장으로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아이는 "낑"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서서는 전차가 설 때마다 고개를 내밀며 엄마를 찾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차장 아저씨가 말해줍니다. "너희 엄마 오시도록 가만히 서 있어라." "아기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30쪽 분량의 그림책이 기다림이란 정서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가슴 깊은 곳을 '툭' 건드리는 이야기, 이 책에 덧붙여야 할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마지막 그림이 말해주는 깜찍한 결말, 그런데도 마음 한켠이 여전히 먹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다림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원래 가슴이 아픈 거니까... 하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고,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이고, 그래서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론은 엉뚱하게 튀었습니다만, 어쨌든, 기다릴 무엇이 있어 다행스러운 오늘, 지금입니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학생이다
왕멍 지음, 임국웅 옮김 / 들녘
 
대장정에서부터 천안문 사태까지, 중국의 현대사를 헤쳐온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늘 사람을 각성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삶이란 저런 것인가를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이 즐거운 것도, 슬픈 것도, 아름다운 것도, 처연한 것도 아닌 그 무엇이 아닐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왕멍은 인생은 '배움'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딪치게 될 모순과 함정, 그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해답을 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계속 배우고 공부해야 한단다. 인생=배움. 하기사 인생에 단 한 가지의 정답이 있겠는가.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또 하나의 답을 얻었다.
 
아 그리고 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 책, <엄마 마중>!!!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애달픔과 기쁨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적을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니 역시 인생은 행복한 것이라고.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한국경제가 정말 어렵긴 어렵나 보다"
한국을 버려라
이성용 지음 / 청림출판
 
시대가 뒤숭숭하고 먹고 사는 게 어렵다 보니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서가 많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당장 2년, 3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독자들로서는 '10년 후, 3년 후'가 붙은 책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고, 출판사로서도 팔릴 책이니 안 낼 수 없는 거겠죠.
 
<한국을 버려라>라는 그런 저런 책들 사이에서 비교적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성향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시각, 한국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썼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저자는 왜 한국이 100점의 실력을 가지고도 70점 밖에 대접을 못 받는지, 그 해답을 15가지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역시나 읽으면서 기분 좋은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내 일처럼 집중해서 읽게 되는 건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다시듣는 그 노래, 감동은 여전하구나. 보고싶다 친구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그 시절. 난 소중한 친구와 이 앨범을 들었다. 비록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설픈 반항이나 부당한 대우를 속으로 삭이는 것 뿐이었지만 이 앨범은, 이 노래들은 작지만 큰 울림으로 지금이 아닌 세상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바꾸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이들은 소리없이 다시 다가왔다. 다 늘어난 테이프 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한 때의 이야기들을 다시 살려준 앨범. 성진아. 너도 이 앨범을 듣고있니. 우리 그때 참 좋았는데... 보고 싶구나.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올해 본 최고로 감동적인 한국그림책"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너무 상투적이라 쓰고 싶지 않은 표현들이 있다. 콧날이 시큰해졌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얼마나 맥빠진 표현들인가. 아무도 감동하지 않을, 아무도에게도 그 본래 뜻이 전달되지 않는 표현이다. 적어도 서점 편집자라면 이런 표현으로 독자를 유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정말 콧날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뻐근했다. 아기의 코끝이 발개지도록 엄마가 오지 않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군더더기 없는 날씬한 글과 담백한 그림. 누구에게라도 읽히고 싶을만큼 아름다운 우리 그림책이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다큐멘터리가 꼭 카메라로만 찍히는가"
신의 괴물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그야말로 다큐멘터리. 사진 한 장 없고 도표 하나 없어도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이런 책을 위해 몇년씩 취재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정리하고, 마침내 책상 앞에 앉아 써내는 과정을 상상해보았다. 과연 그것은 지금 멸종해가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밀렵꾼으로부터 지키는 육체적 활동보다 가치있는 것일까? 쾀멘만큼만 쓸 수 있다면 골백번도 'Yes'일 것이다. 글의 장점을 새삼 발견했다. 영상보다 은근하고 개인적이며 그래서 더 살갗에 와닿는다.
 
실은 <엄마 마중>을 꼽고 싶었는데 앞서 많이 등장했으니... 완벽한 글의 아름다움이 댕댕댕 울려퍼지고 절제된 그림의 힘이 따스하게 번져가는 숨막히는 그림책이다. 이 글을 쓰느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묘하게 조여온다.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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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wave 2004-11-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크 저도 <엄마 마중>에는 홀딱 반해버리긴 했지만, 정말 엄청난 몰표군요.
 



"비로소 마음에 와닿은 무엇"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닷컴
 
"파종은 전선이다. 한치의 땅도 묵히지 말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모두다 속도전 앞으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 현대사의 한장 한장을 구호의 연속이라 해도 될만큼 구호에 매달려 살아온 사람들. 삶의 순간순간을 체제를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죽을 각오로 매달리며 살았을 사람들. 그들의 절박함. 읽는 내내 '구호 아래서' 또는 '구호에 의지해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정치며, 사상이 그들 각자에게 무엇일지를 헤아려보면서.
 
사실 완성도보다 출간 자체의 의의가 더 큰 책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또는 '주체의 나라'로 보는 극단을 경계하고 균형을 잡는데 초점을 두고 있어, 뚜렷한 시각이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여기에 이 책을 가져온 이유는, 이 책에는 북한을, 북한 사람들의 삶을 헤아려보게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북한정치사나 한국정치사 같은 과목을 수 차례 들었지만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북한 사람들의 절박한 삶'이 비로서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 숱한 어려움을 겪고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라니... 국제정치니 경제니 하는 말보다 먼저 그 구호를 절박하게 외치고 있을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래서 아프고, 화나고... 미안하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비밀과 거짓말"
 
폭스 이블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논스톱으로 새벽 4시까지 읽었다. 다음날이 휴가이기도 했고 쉬이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확실히 영국 여성 추리작가들의 작품은 디테일과 묘사가 훌륭하다. "영국의 시골에선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벌어질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마플 할머니 때문인지 영국 시골마을은 범죄소굴 같아요." 이런 잡담을 잠시 하기도.;;
 
2001년 영국 셴스테드, 서너 가족만이 상주하고 도시 사람들의 주말 별장만 빼곡한 작은 시골마을이다. 어느날 한 저택의 안뜰에서 제임스 로키어-폭스 대령의 부인 에일사가 얼어죽은 채 발견된다. 이 죽음을 계기로 로키어-폭스 가문의 어두운 가족사와 감춰왔던 비밀이 차례로 드러난다. 한편 폭스 이블이라는 사내가 이끄는 부랑자 한 무리가 마을 빈터를 무단으로 점유,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 소설은 결국 '사냥감과 사냥꾼'의 이야기이다. 사냥하는 자의 심리, 사냥당하는 자의 심리, 그 주변의 경직/고조된 공기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사람들.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썩 멋지고 플롯과 캐릭터의 묘사는 치밀하고 설득력 있다. 독자를 서서히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구성도 일품. 어느 출판사에서 '골든대거 상'(영국 추리작가협회 상) 시리즈를 계속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인용으로 감상을 대신하렵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소담
 
정말 나는 몰랐으니까.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연인과 함께 지내는 밤의 달콤한 친밀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남자의 단순함, 남자의 복잡함, 남자의 관용, 남자의 안심.
 
...색깔 있는 세계란 아마도 의존과 관계가 있으리라.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의존도 있다는 것을, 남편을 만나고서야 처음 알았다. --본문 55~57쪽
 
집안에 있어도 비슷하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나는 남편의 머리를, 남편은 현재를, 나는 미래를, 남편은 하늘을, 나는 컵을.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야 물론 때로는 답답해서 전부 같으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마음속 가장 깨끗한 장소에서는 그런 바람이 일시적인 변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본문 61쪽
 
예를 들어 함께 살기 전에는, 남편이 만나러 와주면 무척 기뻤다. 만나러 온다는 것은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뜻이었으므로. 그런데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남편이 매일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돌아온다. 그게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리석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도무지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보고 싶었어?"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렇게 물으면 응, 하고 고개는 끄덕이는데,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것 같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신혼이라지만 그런 질문을 매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만사가 그 모양이라 그 한 해는 정말 진이 빠졌다. --본문 94쪽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무제(10월)"
 
20년 벌어 50년 먹고 사는 인생설계
오종윤 지음 / 더난출판사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힘든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 인천행 지하철에 오르면서, 아 스무 살에 회사 다니는 것도 이렇게 빡빡한데 나이 마흔 먹어 다니기는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또 하나는 지하철에 힘들게 타고 내리시는 어르신을 뵐 때.
 
은퇴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은퇴 이후의 삶'에 주목하는 이유는 역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생의 결론을 미리 생각한 사람이 중간부분인 지금을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와, 또 하나는 노년이라는 것은 힘들게 달려온 인생의 보답이라는 생각 때문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상기시켜 준 좋은 기회였다. 사오십년이 흐른 후 인생을 되돌아보며 '참, 열심히 살았다. 훌륭한, 성공한 인생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평범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토마스 A. 슈웨이크 지음, 서현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과연 누구 말이 맞는가. 이 책처럼 두리뭉실하게 목표 없이 사는 사람이 더 성공하는가? 아니면 숱한 자기계발서처럼 목표를 위해 치밀하게 달려가는 사람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은가?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두리뭉실하든 치밀하든 결론만이 아니라 중간의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성공에 골인할 확률이 높다는 점. 야심만만처럼 '성공한 사람 100인에게 물었습니다'라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자기계발서. 따라하지 않을 사람이라도 보면 재미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가을이라면 여행, 젊은이라면 도쿄"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이우일, 현태준 지음 / 시공사
 
뽈랄라 아저씨랑 두건사나이 이우일씨가 손을 잡고 도쿄로 떠났다. 이 둘이 탐방할 곳은 눈에 훤하다. 보나마나 장난감 가게겠지. '보나마나' 장난감 가게다. 그것도 온갖 장난감 가게는 다 등장한다. 숍 형태의 가게부터 천엔샵, 프리마켓의 장난감 가게까지. 언제나 그렇듯 두 분 모두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도 많으시고, 가끔 기분좋게 아부도 해주신다. 장난감에 별반 관심없는 나조차 오색찬란한 사진 앞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들여다보느라 눈이 아플 지경. "저건 뭐지, 마징가 아니야!" "오오, 건담이다!"
 
술이 빠지면 또 섭하지. 편의점 맥주부터 시작, 도쿄 모퉁이 할머니의 술집까지 어쩌면 그렇게 기가 막히게도 찾아내는지 원. <어시장 삼대째> 만화에 나온 전설의 '시샤모'(은어구이와 맛이 비슷하다고 함, 포장마차에서 구워 통째로 안주삼아 먹는다고)구이 사진을 보는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절대로 말해두는데, 이 책은 일반적인 도쿄여행기는 아니다. 이 두 분께 여행사 코스에 나온 '도깨비 무박 2일 여행'이나, '하코다 4박 5일'같은 정직하고 착한 코스를 기대하신 분들은 없으리라 믿지만 말이다. 술, 만화, 장난감, 마구잡이 여행, 이우일, 현태준, 뜬금없는 칭찬과 불평. 이 중 한 가지라도 마음에 드신다면 이 책을 잡으시라.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재미있게 놀 것을 권함"
 
조약돌과 휘파람 노래
에일런 스피넬리 지음, S.D. 쉰들러 그림, 강미라 옮김 / 봄봄
 
현재는 항상 미래의 담보물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를,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를, 대학교 때는 취직을, 미혼일 때는 결혼을, 젊었을 때는 노후를 말이죠. 하지만,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지금 나는 행복한가? 너무 바쁘지 않은가? 나의 다른 부분을 너무 심심하게 방치해두지 않았는가?'를 생각할 필요도 있습니다. <조약돌과 휘파람 노래>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항상 준비해야 할 미래가 '삶'의 한 부분이지만, 언젠가는 내 인생도 -별탈없이 흘러가기만 한다면- 겨울을 맞이할 겁니다. 그때 정말 필요한 것은 '현재의 행복'과 '과거의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보잘 것 없는 조약돌과 바람이 가르쳐 준 춤과 노래가 들쥐 가족의 겨울을 행복하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쉽게, 미래에게 현재의 주도권을 넘겨줘서는 안되죠. 마스터 키튼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인생을 허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에일린 스피넬리는 책의 내용을 몇번씩 반추하게 하는 매력을 갖춘 작가입니다. 그녀의 또다른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도 강추!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은 삶의 애잔함과 고단함, 그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작은 아름다움을 영롱하게 그려내지요. 소리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남편 제리 스피넬리도 <스타 걸>과 <난 열 살이 되고 싶지 않아>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갖춘 동화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부부만세'라고 할까요?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당신은 평생을 걸 수 있는 열정이 있는가"
 
4의 규칙 1, 2 
이안 콜드웰 외 지음, 정영문 옮김 / 중앙M&B
 
사실대로 말하면 이 책의 초반부는 무척이나 지루하다. 100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아 몇번이고 책을 다시 꺼내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하지만 거기만 지나고 나면 20대 초반의 패기만만한 네 친구의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추리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는 '열정'과 '우정' 이 아닌가 싶다. 등장인물 모두 놀라울 정도의 집중과 열정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믿음과 틀에 도전하며 희망과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책을 읽으면서 대학교 때의 내 모습을 많이 돌아보았다. 그때 나에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인생, 지금의 삶에 대해 열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평생을 걸 수 있는 무엇이 있을 거라고 매일 밤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호기있게 외쳐대곤 했었다. 잊지는 않았지만 잠시 제쳐두었던 스무 살의 내 모습을 책을 덮으며 겹쳐보았다. 늦지 않게 다시 앞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책.
 
친구들에게 한 권씩 선물로 보낼 생각이다. 야, 그때 우리가 했던 말 아직 기억하지? 우리, 한 번 다시 뭉쳐볼까.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어려운 책이 많아서 재미있는 세상"
 
기계 속의 생명
클라우스 에메케 지음, 오은아 옮김 / 이제이북스
 
<벌거벗은 여자>,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완역본 Vol. 1> 등 한번씩 짚고 넘어가주어야 할 좋은 대중과학서가 많이 나온 9월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일이라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를 완역하리라는 집념을 가진 출판사 승산의 그간의 노력이 이처럼 결실을 맺는 걸 본 일이다. 내로라하는 과학책 번역가들이 여럿 달라붙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책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데, 과연 의미있는 일이 되려면 널리 읽히는 수밖에 없겠도다.
 
<기계 속의 생명>은 도저히 일반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원제는 <The Garden in the Machine>이고 인공생명(Artificail Life)의 연구현황과 제문제를 다룬 책이다. "어려워 어려워"하면서 읽었고 읽고나서도 제대로 이해한 건 별로 없다. 그래도 자꾸 흥미가 가는 건 인공생명을 통해서 생명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고 생물학의 영역도 재정의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벌써 이처럼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기 때문이다. 미래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의 단어가 될까? 지금처럼 여전히, 유한해서 아름다운 것으로 이해될까?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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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와 함께라면 오늘도 쾌청!"
 
요츠바랑!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
 
열심히 찾아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여직껏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번 달,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행운 만땅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네 잎'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 <요츠바랑!>. (요츠바 = 행운의 네 잎 클로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의적 해석 -_-;;)
 
<아즈망가 대왕>이 키드키득 푸하하 웃게 만드는 즐거운 책이었다면, <요츠바랑>은 보기 드물게 즐거운 만화인 한편 마음 따뜻한 데까지 있어 더욱 행복했다. 대체 이 수상쩍은 인물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지는 앞으로 한참을 읽어야 알 수 있겠지만, 그 한참동안 나는 요츠바 때문에 나날이 행복해질 것을 확신한다.
 
* 덧붙임 : 이번 달 <요츠바랑>이 가장 큰 의지가 되었다면 <노다메 칸타빌레 9>는 내게 상상 못할 시련을 가져다 주었다. 대체 치아키 님에게 무슨 일이!!! '그것은 축구에서 동료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포옹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치아키 님의 말씀에 300% 신뢰를 보내며, 작가 토모코 니노미야는 10권 이후의 행보에서 더이상 나에게 시련을 안겨주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ㅜ.ㅜ (일본에서는 10권이 9월 13일에 발매된다고 합니다 ;;;)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올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라 감히 단언할 수 있는..."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 Nenoon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 Beatball(비트볼뮤직)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라니... 처음 앨범을 받아들었을 때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뭔가 낯설고 기묘하며 잘 와닿지 않는 기분. '술과 춤, 몽환의 디오니소스적 총천연 만화경 사운드' 라는 헤드카피는 또 얼마나 이상한가. 예전부터 활동하던 그룹이라는 건 어찌어찌 거쳐서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였다.
 
하지만 이 앨범은 '대박'이다. 말 그대로 버릴 거 하나 없는 진짜 '대박' 이다. 첫 곡 'Eye... Piece' 에서 들려주는 꽉 짜인 연주는 느슨한 자세로 건방지게 음악을 듣던 나를 단번에 빡 기합이 들게 만들었다. 그 다음 곡 'Chordless' 부터는... 뭐라 쓸 말이 없다. 오만 가지 느낌이 듣는 내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잠깐씩 귀에 걸리는 드럼 소리, 기타 소리에 빨라졌다 느려진다. 잊을 수 없는 보컬의 강력한 마력은 또 어떻고.
 
이 앨범을 듣는 1시간 남짓은 일하는 내 자리 좌우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CD들이 푹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다. 어디 작고 어두운 골방에서 맥주캔 하나 두고 끝없이 플레이 켰으면 싶다. 아... 또 일이 손에 안잡히네... 이제 해체한 그룹으로 다시 새로운 녹음이 나오기는 힘들다고 한다. 얼마 찍지 않은 이거 단 한 장 뿐이다.
 
* 사실 이쪽 일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앨범을 알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삼 세상에는 내가 아직 모르는 대가들이 많고 접하지 못한 앨범이 많구나 하는 걸 느낀 한 달이었다. 더 많은 앨범을 찾고 소개하는 일에 대한 짜릿한 흥분이 이 글을 쓰며 새삼 느껴진다. (Very Very Special Thanks To Beatball Music)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상처없이 피어나는 꽃은 없다."
 
동방박사의 선물
에밀리오 파스쿠알 지음, 배상희 옮김 / 파랑새어린이
 
이 달에 나온 신간 중에서는 유난히 소년들의 성장담이 많았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소년, 세상을 만나다>, 로버트 코마이어의 <초콜릿 전쟁>. 그리고 에밀리오 파스쿠알이라는 낯선 스페인 작가의 작품 <동방박사의 선물>이 그 책들이다. 세 권 다 성장으로 고통받지만 꿋꿋하게 그 고통을 이겨내는 씩씩한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래도 세상을 긍정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아서, 모두 내 마음대로 좋은 책들이지만 특히 <동방박사의 선물>이 마음에 든다.
 
<동방박사의 선물>은 책으로 성장기를 치유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지만, 이야기와 함께 한 책 순례(<오디세이아>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그리고 <돈키호테>에서 한국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다른 스페인 문학 작품까지) 덕에 더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리고 세상과 끝내 타협하지 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유산'에서는 눈물을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눈을 깜빡였다.
 
p.s. 책 속의 주인공들과 동갑인 남동생에게 이 세 권의 책들의 내용을 말해주면서 권했지만 한 마디로 거절당했다. '즐!'이라나. 동생의 말을 빌자면, 지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보는 바보가 어디에 있냐고 하는데,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책에서까지 현실과 마주하게 하려고 한 내가 나쁜 누나다. 그래도 나는 <데미안>이나 <토니오 크뢰거>를 읽으며 위안을 받은 세대였는데... 쯔읍. 그래도 동생아, 시게마츠 기요시와 로버트 코마이어, 에밀리오 파스쿠알은 너 같은 소년이 이 책들을 읽어주길 바랐단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여름의 끝,  내 마음을 움직인 두 권의 책"
 
달려라! 하루우라라
시게마츠 키요시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1. 사실 <달려라! 하루우라라>는 두 가지 이유에서 내게 외면받을 뻔 했다. 첫째,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말 이야기라고, 그게 무슨 상관이람 하는 삐딱한 생각. 둘째,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감동적 이야기란 말이지, 아아, 난 눈물을 쥐어짜는 휴먼스토리 별로 안 좋아하는데(이건 말 얘기긴 하지만;). 그런데 무심코 읽게 된 신문기사 한줄에 순간 눈가가 젖어들었다.
 
경주마는 네 살을 전성기로 치니 여덟 살인 하루우라라는 은퇴할 나이. 하루우라라는 애초에 '달리기는 틀린 말'이었다. 발목이 가늘어 몸집이 작을 수 밖에 없었고 폐활량도 떨어졌다. 예민한 성격 탓에 레이스 전에는 여물을 먹일 수 없어 정작 경주에서 힘을 못 썼다. 1998년 데뷔전에서 하루우라라는 꼴찌인 5등을 했다. 하루우라라는 이후 6년 동안 내리, 꾸준히, 줄기차게 졌다. 99연패가 될 때까지 최고기록은 3등.
 
하지만 월평균 2회 꼴로 레이스에 참가한 하루우라라는 성실하다. 뒷심이 딸려 우승은 못해도 반드시 중간에 한 번은 치고 나간다. 온 힘을 다해 뛴다는 얘기다. 기수들은 안다. "기분이 나쁘면 기수를 떨어뜨리려 하거나 우물쭈물 달리는 말들도 있죠. 하지만 하루우라라는 늘 전력 질주를 합니다." - 동아일보
 
책은 이야기의 화제성에 비해 의외로 담담하게 서술된다. 집단 따돌림, 말더듬, 가장의 외로움... 언제나 주변부에 놓인 인물들에 집중했던 시게마쯔 키요시(<비타민 F>, <안녕, 기요시코>)가 지은이라는 점도 이 책의 호감도를 증폭시켰다. 심드렁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 영차, 다시 힘을 내게 해주는 희망의 존재 하루우라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흔하지만 필요한 감동'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2. 제목만 보고 아무 정보도 모른 채 침 흘리고 있는 책들이 몇 권 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그중 한 권. 야구 팬이기도 한데다가 또 저렇게 멋진 제목이라니!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이 나왔길래 얼른 집어들고 퇴근. 단 몇 장을 넘겼을 뿐인데 생각했다. 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니! 사실, 이 책은 아무나에게 권해주기 참으로 곤란하다. 문장은 뚝뚝 끊어지고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소설읽기에 익숙한 독자가 아니라면 당황할 수도 있다. 또 작가의 감수성에 어느 정도 '싱크로'하지 못한다면 영 재미없는 작품일 수도. 그러나 내게는 충분히 전작 읽기 리스트에 이름을 넣을 만한 작가로 낙점. 편집장께 빌린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기다리고 있어 너무 기쁘다. ^^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천년이 걸려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 치요코"
 
천년여우(Millennium Actress)
콘 사토시 감독 / 대원DVD
 
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유일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된 바 있는 [천년여우]를 꼽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함께 제5회 일본 미디어 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 수상, 2002년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극장영화부문 최우수 작품상. 이런저런 수상경력을 줄줄 읊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틀림없이 알아볼 수작이다.
 
관동대지진 때 찾아온 한 남자, 그가 전해준 "평화가 찾아오면 내 고향의 하늘을 보여줄께"라는 말과 '가장 소중한 것'을 열 수 있다는 열쇠. 그것을 간직하고 평생에 걸쳐 그를 쫓는 소녀가 영화의 중심에 있다. 단 한 번 찰나의 만남을 평생의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모습은 어리석게도, 아름답게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나는 이제 그를 쫓는 나의 모습을 사랑해요"라고 말했을 때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영화의 복잡한 흐름과 줄거리 자체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관객도 모든 것을 하나로 녹인 이 대사 앞에서는 무너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잇는 대성이라는 곤 사토시 감독의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영상도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그에 어우러지는 음악 또한 기가 막히다. 국내에 미개봉(단편영화제가 자주 열리는 중X시네마에서 그나마 잠깐 상영), 삐리리 DVD라도 구해볼 양으로 애써보던 찰나, 다행히도 정식으로 출시되었다. 이런 저런 거장의 찬사를 덧붙이는 마음을 알아주길! (보세요보세요보세요, 라는 레이저빔이 담겨 있다.)
 

*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혼다 타케시, [메모리즈], [인랑]의 이노우에 토시유키
* [천년여우]는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시이며, 올해 내가 본 가장 영상이 아름다웠던 영화이다. - 빈센조 나탈리, [큐브] 영화감독
* '짝사랑의 환상과 광기를 그린 자극적인 작품. 나는 이 영화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 대런 애로노브스키, [레퀴엠 포 드림], [The Fountain] 영화감독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당신, 청춘을 잃어버린 건 아니신가요?"
 
너, 외롭구나
김형태 지음 / 예담
 
술자리에서 선배 이야기가 나왔다. 타의 모범이 되는 방정한 생활과 4.5에 가까운 학점에도 토익점수가 안 돼 S전자 시험에 미끄러졌다는 선배는 기나긴 한숨과 함께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겠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러지 않아도 우울하던 술자리는 더욱 우울해졌고. 나는 왜 대학까지 나온 우리 청년들이 이렇게 취직, 공무원 시험 빼고는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해야 하는 일도 없는지 더욱 우울해졌다.
 
제목부터도 허전했던 가슴 저 한구석을 후비는 이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직업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싸가지도, 희망도, 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진짜 인생 이야기를 해 줄 선배도, 학교도 없는 불운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바치는 따끔한 충고다.
 
그냥 위안이나 좀 받을까 해서 펼쳐본 사람들은 먼저 종아리부터 맞는다. 변명이나 좀 하고,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매만 더 맞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책이 좋단다. 아파도, 기분 나빠도, 서러워도 좋은 건 이런 말 한번 해 준 어른들이 없어서가 아닐까.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당신은 '왜'를 알고 계신가요?"
 
예술 담당자인 예린씨의 휴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만나기 힘들었을 책. 예린씨께 감사를! 아니, 예린씨 여름휴가에 감사를! 8월에 감사를! 인생에 감사를! 좋은 책을 만나면 이렇듯 고마운 마음 전할 데가 많아지는 것을!
 
건축 사유의 기호
승효상 지음 / 돌베개
 
책의 서문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의 한 장면. 시를 두고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랭보와 베를렌이 '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격론을 벌인다. 그 때 랭보가 상징주의 시단의 거장이던 베를렌에게 건낸 한 마디,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를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를 안다!"
 
지은이는 '왜'라는 본질을 잃고 언어를 유희하는 방법에만 의존하는 베를렌에 랭보가 가했던 질책이 자신에게는 '당신은 기술에만 의지하면서 건축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은 건축을 왜 하는지 아는가'라는 물음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사실 서문만으로도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이 책은 이 질문에 마주서서 스스로가 찾아낸 답이라 할 만하다. 건축물을 만나러 나선 여행길에서, 건축에 새로운 정신 새로운 삶을 담아낸 20세기의 건축가에게서 힌트를 얻으면서.
 
"당신은 건축을 왜 하는지 아는가"라는 화두가 어디 지은이만의 것이랴! 읽다보면 건축 대신에 저마다의 단어를 넣어 이해하게 되고, 답을 찾아보게 된다. 당장에 손에 잡히는 답이 없으면 또 어떤가, 화두를 잡고 생각해본다는 것, 이 같은 질문에 먼저 마주서 답을 찾은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이다. 게다가 한 세기를 빛낸 건축물을 만나는 즐거움까지 가득한 것을.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겐이치로와 나와 알라딘의 추억"
 
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이승진 옮김 / 향연
 
1999년, 인터넷 서점이라는 것을 발견한 내가 처음으로 알라딘에 주문했던 책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외 3권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려웠던 책이라 알라딘과 여러 차례 통화를 거쳐 어렵사리 사게 되었다. 내가 구입한 후 알라딘에서도 바로 품절된 도서, 친구들에게 빌려주면서 의기양양해하는 책(^^;). 앞으로 알라딘에 입사를 하리란 예감 같은 건 전혀 없었던 그 때였지만 왠지 인연이다, 하는 기분은 있었다.
 
<사요나라, 갱들이여>를 읽으며 5년 전 알라딘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당시의 나를 회상했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았다. 지금의 알라딘도 돌아보았다. <...일본야구>도 다시 꺼내 읽었다. 유명한 서문을 읽었다. 책을 권했던 친구도 궁금해했다. 역시 인연이 묻은 책의 향취란, 아, 당할 수가 없다.
 
예전에 <FBI 심리분석관>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었으나 이 달에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보인 레슬러의 책도 내맘대로 좋은 책. "대체 왜, 끔찍하고 흔하지도 않은 연쇄살인범의 심리에 신경을 쓰느냐?"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대해서. 답은 몇 가지 있다. 도시의 인간은 범죄를 업고 산다. 범죄=도시인 측면이 상당히 크다. 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은 정신병자=살인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정신분열자에 대한 부당한 배척이나 살인자에 대한 부당한 공감은 이 점을 헷갈리는 것에서 비롯하는 바가 크다. 인간의 극한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해서 알고 싶기 때문이다.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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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0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이 책은 반드시 사고 말거야요...

starla 2004-09-0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무서운 장면 묘사가 나오지만 재미 있습니다. 프로파일링이란 것에 대해서 좀 실망할 수도 있지만 ^^

zooey 2004-09-0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예린씨. 치아키님은 이미 단단히 발목 잡혔다구요. 현실을 부정하려 하지 마세요. 흐흐. 노다메 파이팅!

방긋 2004-09-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반갑다!!! 'FBI 심리분석관'!!!
그 당시에 꽤나 재밌게 읽었는데, 지금은 CSI다 뭐다 해서 너무 흔한 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프로파일링은 쪼금 알게 됐다고 자부한다. ^-^

플레져 2004-09-0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성화님, 얼마전에 신문 기사에서 뵜어요.
음음 그러셨군요...부럽습니다! ^^
(뜬금없지만...) 화이팅!
 



"양서의 재발견"
 
바바라 민토, 논리의 기술
바바라 민토 지음, 이진원 옮김 / 더난출판
 
시간이 없다, 라는 핑계를 대야겠네요. 책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딱 2장 밖에 솔직히 읽지를 못했다고. 그래서 다음에 시간나면 읽어야겠다고 서가에 꽂아놓은 책이랍니다.
 
이 책의 진가를 재.발.견.하게 된건 분명 어제의 강연회 때문입니다. '<바바라 민토, 논리적인 글쓰기> 출간 기념 비즈니스 문서 작성법 강연회'라는 긴 제목의 강연회에서 강사는 제일 첫마디로 이 책을 자기가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무게감있고 좋은 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만이 모인다는 맥킨지에서도 들어오는 직원들에게 5일간 꼭 교육시킨다는 그 내용, <로지컬 씽킹>을 비롯한 수많은 비즈니스 라이팅 서적들의 기본서로 사랑받은 그 책.
 
그냥 보고 지나치셨던 분이라면, 이 글을 읽고 이 책의 가치를 재.발.견.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저도 회사에 오자마자 서가에 꽂아놓았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있습니다. 아, 이제야 책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네요.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탄탄한 구성과 충격적 결말"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 탓일까. 영화 '미스틱 리버'는 영 심심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팬인데, 저 영화는 도대체 '연출'이란게 보이지 않잖아, 이런 생각을 하며 투덜투덜. 원작의 경우, 세 소년 사이의 계급적 그늘과 가족관계, 가문의 내력 등이 보다 치밀하게 묘사된 탓일 수도 있다. 그걸 두 시간 안에 다 풀어내기란 쉽지 않으니. 여튼 확실히 개성적인, 웰 메이드 스릴러였던 <미스틱 리버>에 대한 호감 때문에 신작 <살인자들의 섬> 역시 즐겁게 펴들 수 있었다.
 
<살인자들의 섬>은 전작처럼 남자들의 세계, 가족의 문제,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폭력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허나 이야기는 전작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단 며칠 동안 벌어지는 사건 탓일 수도 있고, 한 남자의 내면에 집중한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특히 결말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안될 일이다. 책소개를 쓰면서도 고심한 부분. 축제의 퍼레이드 속 극명하게 갈리는 명암이 인상적이었던 <미스틱 리버>처럼, 이 소설의 끝마무리 역시 훌륭하고 또 가슴 아프다. 쉽게 끊어지지 않는 폭력과 상처의 고리를 보며.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하는 이름-데니스 루헤인이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순간은 순간이어서 아름답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기억을 80분 밖에 지속할 수 없는 박사는 무관한 숫자들의 나열에서 세 사람(박사와 파출부인 '나', 나의 아들 루트)을 연결해주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매번 80분의 처음을 채웁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순수한 마음을 주고 받으며 세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짧은 시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이들의 이야기에는 '순간은 순간이어서 아름답다'는 소박한 진실과 무관한 것들을 나름의 의미로 연결하며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들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을 읽는 동안 저에게 나름의 의미로 아롱진 숫자들, 그 의미를 공유한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1, 14, 17, 20, 37, 58... 제일 앞의 것은 동아리 기수이고, 그 다음 것은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했던 날들의 수, 그 다음은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마음을 다해 좋아해봤던 나이, 그리고 스무 살, 친구의 반 번호, 고3 때 독서실 좌석번호입니다.
 
박사가 무관해 보이는 숫자들의 나열에서 세 사람을 이어주는 의미들을 찾아낸 것처럼, 저 역시 이 수열에서 우리의 어느 삶은 무관한 숫자들을 이어주는 의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순간은 순간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더불어 숫자들 속에서 지나간 순간순간을 오랫동안 되새기며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리네아의 이야기를 다음 10년 후에도 만날 수 있기를..."
 
어떤 책이 10년 동안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들의 내용은 검증이 된다.
 
1994년 첫 책이 나온 이래 꾸준히 팔린 리네아 시리즈가 10년째인 올해 개정판을 냈다. 워낙, 소문없이 조용히 개정판을 내서 축하해주지 않은 리네아의 10주년을 나라도 축하해주고 싶다. 리네아 시리즈는 별다른 광고없이 오직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조용히 팔린 책이다.
 
내용은 변한 것이 없지만 도판 작업을 새롭게 하여 그림들이 선명하게 인쇄되었고, 답답하다 싶은 편집이 시원스럽게 변했고, 번역도 약간 손을 봤다.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면모가 흐뭇하다. 그리고 약간의 가격 상승. 10년에 500원 인상이라면 짜장면 값보다 인상폭이 좁다.
 
어린이 분야에는 십 년이 넘도록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책들이 참 많다. 당장 베스트셀러 코너만을 봐도 알 수 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1993년에 나왔고, <달님 안녕>은 1990년에 나왔다. <달님은 알지요>와 <무지개 물고기>,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그림책 1>는 1994년에 독자들을 처음 만났다.
 
좋은 책들이 소리없이 서점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마음 아픈 일이 없다. 그래서 리네아의 10년 선전이 더 반갑게 다가온다. 좋은 책은 오래도록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든다. 다음 10년에도 리네아의 이야기를 서점에서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10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는 우리 어린이책도 더 많이 늘어나길 빈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지음, 정영목.이순희 옮김 / 물푸레
 
사실, 이 책이 재밌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재미없는 과목에 목소리톤이 한결같은 교수님이 3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죽 강의하는 느낌이랄까. 연설 하나는 기가 막히는 클린턴이지만, 글솜씨는 조금 아닌가 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읽기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분명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조금만 참고 읽는다면, 단 한 순간도 의미없이 살지 않았으며 너무나 막연했던 꿈을 조금씩 조금씩 구체화시켜 결국은 그 정점에 누구보다도 멋진 승리를 거두며 도달하는 한 인간의 짜릿한 삶의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 (이 정도까지 책장을 넘기면 이 책 특유의 유머에도 익숙해져서, 처음보다는 쉽게 읽히긴 한다.) 더불어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여러 사건들의 막후를 살짝 들춰보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너무나 두꺼워 7월에는 다른 책을 읽지 못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러웠던 책. 하루이틀로는 절대! 다 읽지 못하니 휴가때 한 번 읽어보시길... (이 책과 함께 보면 좋을 DVD : [웨스트 윙], 시즌 3이 케이블에서 앵콜 방영중이며 시즌 2가 8월 초 출시되는, 근래 제일 재밌게 보고있는 정치 드라마이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대범하고 털털한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아직 심신이 건강하던 시절, 친언니와 함께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북부 2일, 남부 2일로 짜여진 일정표는 한 눈에 봐도 살인적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언니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나는 못하겠다, 며 슬슬 발뺌을 하려 했다. (그때 언니가 임신 중이었음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진작 말할 것이지.. 그런 언니를 끌고 4일 제주도 일주를 하려 했던 나는 천하의 못된 동생이 되어버렸다.)
 
그런 언니를 구슬러 공항 근처 자전거 대여점에서 낡은 레스뽀 두 대를 빌렸다. 야심차게 페달을 밟으며 출발한 지 2시간 후, 나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디로? 대여점으로. "아저씨, 우리 못 가겠어, 정말 못가겠으니깐, 와서 트럭으로 자전거 좀 싣고 가세요." 거리 상으로 얼마 안되니 다시 자전거를 타고 와서 반납하라는 대여점 아저씨, 한 발자국도 못 가겠다고 버티는 여자 두 명. 결국 2만원 내고 자전거를 실어보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2시간만에 전화해서 싣고 가라는 하이커는 아저씨도 처음 봤다고 한다.
 
책표지를 본 순간, 그 때의 기억이 났다. 종국에는 혼자 마무리짓게 되는 여행이지만, 김남희씨도 처음에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혼자였으면 모르되, 도중에 혼자가 되었을 때 느끼는 쓸쓸함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나 또한 언니가 자전거에 학을 떼이고 다음날 비행기로 서울에 가버린 후, 제주도에서 손가락으로 땅 후비며 서울로 줄기차게 전화하면서 아무나 제발 내려와주기만을 기다렸다.
 
땅끝마을에서부터 북쪽 한계선까지 걷는 과정은 길고 길다. 시골 어른들의 잔정을 온몸으로 느끼느라 외로울 새도 없는 저자이지만, 역시 여행은 여행. 곳곳에 묻어나는 사색,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이 친근하면서도 부럽다. 침대 한 켠에 두고 한 단락씩, 잠들기 전 야금야금 읽으며 자전거일주 재도전을 그리고 있는 요즘이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행복은 유보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카지노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행복을 유예시키며 살지 말자는 소리가 가끔 들린다.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을 얻게 되면, 아이를 잘 키우고 나면... 이렇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라는 걸텐데 하기사 그렇다. 놀고 싶은 걸 참고, 먹고 싶은 걸 미루고, 하고 싶은 일을 언젠가는! 이라 다짐하며 살아가다 보면 행복한 날이 올까?
 
아사다 지로가 유럽으로 '카지노만'을 구경하는 여행을 떠났다. 책 낸다는 미명 하에 카지노나 쏘다니다니 베스트셀러 작가는 역시 팔자가 좋군, 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사다 지로라고 걱정이 없었을쏘냐. 결국 언제 어떻게 행복해질까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인 게다.
 
카지노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요, 혹시 유럽의 도박 문화에 대해 알게 된다고 득 될 일도 없다. 하지만 아사다 지로의 글이 너무 재미있다.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 얻는 것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이번 달이 즐거웠으면 다음 달도 즐거울 것이다.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어쩌면 좋을까요, 아저씨"
 
방화벽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나는 범죄추리물(수사물)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시리즈라면 더욱 좋다. 해서 케이블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외화시리즈 '과학수사대 CSI'나 '특수수사대 SVU'는 빼놓지 않고 보려 하고, 쿠르트 발란더 아저씨가 주인공인 이 연작소설 시리즈는 수 년을 기다리며 우리 말로 옮겨질 때마다 한 권씩 읽어왔다.
 
<방화벽>은 씁쓸하다. 가뜩이나 일도 안 풀리는 발란더 아저씨, 동료는 배신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시리즈 8번째권. 곧 아저씨는 은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내 일인 양 나는 7월 내내 골치가 아팠다.
 
이번 편에도 여전히 커피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았다. 세어 보았는데, 몇 번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이스타드 경찰서의 커피메이커가 고장나자 경찰관들은 투덜댄다. "커피가 없으면 경찰업무가 불가능하다는 걸 시민들에게 알리는 캠페인을 벌여야 해. 그래서 새로 하나 사자고." 끄덕끄덕...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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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이름 두 개, 잊어서는 안될 이름 하나"
 
먼저 댄 브라운. 초대박 베스트셀러이자, 올해 읽은 소설 중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다 빈치 코드>의 작가. 편집자의 호의로 가제본을 먼저 읽은 6월 18일 금요일 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퇴근하면서 읽기 시작, 밥 먹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손에서 떼지 못하고 결국 그날 밤 11시에 독파! 완독 후 만족감은 거의 그리샴 소설에 버금갔다 (여기서 알 수 있지만 내가 소설의 재미를 판가름 하는 기준은 존 그리샴, 잘 쓰고 못 쓰고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존 그리샴, 걸작과 졸작을 판단하는 기준 또한 존 그리샴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좀체 진정시킬 수 없는 멋진 소설! 10월 발간된다는 댄 브라운의 전작도 어서 읽고 싶다. (원서는 있던데... 다시 영어 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다음은 가넷 크로우. 혼성 J-Pop 그룹인 이들은 자드, 비즈 등이 소속된 Being의 떠오르는 스타다. 아무 정보없이 들은 이들의 곡은 어떤 장르에도 묶이지 않는 신선함과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J-Pop 중 가장 새로왔고 놀랍도록 인상적인 앨범으로, 이전 앨범들을 발매해 달라고 음반사에 조르기까지 했던 그룹. 멋지다.
 
마지막. 기억했지만 거의 잊었다가 다시 콱 박힌 이름. 켄지, 친구, 우민당, 바이러스, 가면, 예언의 서, 절교... 20세기 소년! (이번 권에는 컬러 페이지까지!! 감동의 도가니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함께 가요! 유쾌한 깨달음이 있는 만남의 장으로! "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홍세화,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신문사
 
남사당패에서 줄 타는 광대가 부채 하나만 들고 줄에 올라갑니다. 광대의 부채는 언제나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펼쳐져야 해요. 중립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똑똑한 척하고 부채를 가운데로 들면 바로 떨어집니다. 자신의 부채를 어느 쪽으로 펼쳐야 할지 항상 고민하면서 살자는 겁니다. "나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노동자 사이에서 공정하게 중립을 유지할 거야."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본문 183쪽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접하면서 나름의 입장을 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요즘이다. 양비론의 논리로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투덜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간 무언가를 크게 혼동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건 중립이 아니라 균형이라는 것, 그리고 균형을 위해서는 치우침이 필요하다 것"을 이해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업을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
KBS 일요스페셜 팀 취재, 정혜원 글 / 거름
 
책을 올리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나.도.유.한.킴.벌.리.같.은.회.사.에.다.녔.으.면.좋.겠.다. 라고 독자서평이 올라왔다. 훗. 다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어제도 TV에서는 기업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나와서 경직된 고용환경으로 기업하기 힘들다고, 노조를 대표하는 사람도 나와서 뭐 받는것도 적은데 여기서 더 줄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서로 불만을 이야기했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몰라도 유한킴벌리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가장 신선했던 것은 4일 근무 4일 쉬는 것도 아니고, 동급 최고 임금 보장도 아니고, 300여시간에 달하는 교육과정도 아니었다. '믿음'. 회사는 내가 이만큼 해주면 직원들도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직원들도 회사가 이 정도 생각해주니 더 열심히 안할 수 있습니까 라고 생각하는.
 
너무나 이상적이라서 누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많은 부분들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유한킴벌리, 그들의 성공에 박수를 보낸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반성합니다. ㅠㅠ 이 달에는 신간을 못 읽었습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습니다. 물론, 매일매일 밀려드는 어린이 신간들은 모두 충실하게 읽었습니다. 다니엘 페낙이 주창한 독자 권리장전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로마 시대의 배 젓는 노예처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눈 도장 꽝꽝 찍어가면서, 업무상 읽어야 할 책은 읽었지요. 하지만, 나만을 위한 신간은 읽지 못했습니다. 왜냐, 제가 이번 달에 오에 겐자부로에게 필이 꽂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오에 겐자부로 책들은 거의 다 절판 내지는 품절입니다. 그래서 헌책방을 주말마다 '미친듯이' 돌아다니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닥닥 긁어 모아서 지금 읽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내 못산 책 때문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지요. 이번 달에는 오에 겐자부로 책만 샀습니다. <개인적 체험>, <만연원년의 풋볼>, <핀치러너 조서>, <죽은 자의 사치 / 일상생활의 모험>, <성적 인간>(이 책은 미시마 유키오 작품과 같이 있는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 <하마에게 물리다>,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킬프군단>, <조용한 생활>, <치료탑.치료탑 혹성>, 타오르는 푸른나무 3부작, <히로시마 노트>, <신년의 인사>, <200년의 아이들>, <'나의 나무' 아래서>, <'나'라는 소설가 만들기>.참 이 사람은 제목에 작은 따옴표 넣는 것 너무 좋아합니다. 이러면 검색 잘 안되는데. 어떻냐고요? 무척 어렵습니다. ㅠ.ㅠ 그래도 너무 좋습니다.
 
오늘 아침에 전철에서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대목입니다. (<신년의 인사>, 본문 88쪽 중에서)

나는 알고 있다, 최후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저 높은 구름 속 어딘가에서.
싸우는 상대편을 미워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키는 자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인용부분은 예이츠의 '아일랜드 비행사가 죽음을 예견한다'라는 시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김선일 씨가 생각났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사랑과 감동의 메디컬 드라마 E.R."
 
 
누구에게나 인생의 드라마, 영화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나에게는 E.R이 그렇다. 물론 엑스파일도 열심히 봤고 현재는 CSI와 SVU, 몽크에 열광하지만, 그래도 E.R만은 조금 특별하다.(공중파에서 3시즌을 안해줘서 한맺힌 탓일 수도 있다. -_-;)
 
Emergency Room. 병원 응급실을 배경으로 의사와 간호사, 환자들이 엮어가는 다양한 이야기. 시리즈들이 대개 그렇듯, 시즌이 지날수록 캐릭터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한다. 배우들 자체에도 그 캐릭터가 묻어난다. 의도했든 아니든. 닥터 그린, 닥터 루이스, 닥터 로스, 닥터 벤튼, 캐롤과 케리, 의대생으로 등장해 응급실장이 되는 카터...(그리하여 난 그야말로 '느끼한 남자' 캐릭터 조지 클루니에게서 닥터 로스의 여리고 섬세한 구석을 발견한다. 아, 난 E.R.때문에 그의 팬이 되었다.)
 
숨가쁜 병원의 일상에서 때로 실수도 하고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에게 당연한 미덕이라 말할 수도 있으나,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매회 여러 개의 에피소드와 새로운 인물들을 솜씨있게 엮어가는 줄거리 전개, 한 회 전부를 노컷 롱테이크로 찍기도 하는 과감한 시도와 자기 몫을 제대로 하는 배우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시리즈를. 1994년에 시작, 미국에서 현재 10시즌 방영 중이다. (지난주 DCN에서 5시즌 방영 시작)
 
* 덧붙여, 나의 6월을 행복하게 해준 책들
<다 빈치 코드>, <살인자의 건강법>, <나의 피투성이 연인>, <달의 제단>,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나는 엄마가 좋아!"
 
도깨비를 다시 빨아버린 우리엄마
사토 와키코 지음,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유독 '재미있는' 그리고 '기다렸던' 책들을 많이 읽은 한 달이었다. <다 빈치 코드>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노다메 칸타빌레 8>의 치아키 님 때문에 사경을 헤매였으며, <사랑해야 하는 딸들>도 다시 읽어보았다. <20세기 소년>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16권을 읽고나니 더욱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그 모든 책들보다 (사실 그들을 모두 합친만큼!) "좋아, 빨래라면 나에게 맡겨!" 이 한 마디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왔던가. 다시 돌아온 엄마가 마술 같은 이 한 마디를 다시 뱉자, 정말 요술처럼 재미있는 일들이 쓱쓱 생겨난다. 엄마의 이 한 마디는 열 번을 읽어도 백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힘이 난다. 다시 돌아온 엄마, 엄마는 너무 멋지고 재미나다!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농사는 아무나 짓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
 
삽 한자루 달랑 들고
장진영 글, 그림 / 행복한만화가게
 
삶이 지치고 고단할 때 "에이, 다 때려치고 시골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면 좋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진중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삽 한자루 달랑 들고>, <무논에 개구리 울고> 두 권으로 나온 책을 펴낸 저자는 스스로를 '건달농부'라 칭합니다. 자식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자는 훌륭한 취지 아래, 삽 한 자루 짊어지고 가족들과 강화도로 간 그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농사법을 전혀 몰라 아까운 깨를 다 죽이고, 흑돼지를 키우겠다고 했다가 허약한 축사에서 뛰쳐나간 흑돼지 때문에 결국 축산을 포기하고, 트랙터를 몰지 않고 맨손으로 밭을 일구다가 몇날 며칠을 힘쓰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만 일어나면 어디, 시골가서 살고 싶겠습니까. 또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시골의 따뜻함도 문득문득 엿보입니다. 길가던 옆집아저씨를 모아 구수한 새참을 들기도 하고,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이 시골에 동화되어 가는 모습에 흐뭇해하기도 합니다. 자식들이 바쁜 추수철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제히 세상을 뜨시는 부모님들 이야기에서는 가슴이 찡해집니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7월, 다시 고단한 심신을 추스리고 힘내자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선뜻 권해봅니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인간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웃겨도 되는가?"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마이클 무어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신문사
 
<멍청한 백인들>을 읽고는 "거 참 재미있는 사람일세 허허허" 했지만 '볼링 포 콜롬바인'을 보고는 "천재다!"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총기협회 회장인 찰톤 헤스톤을 직접 인터뷰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쉴새없이 낄낄대던 내 눈꼬리로 슬며시 눈물이 맺혔다.
 
그래서 글로 씌어진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보다는 곧 개봉할 'Fahrenheit 9.11' 다큐멘터리가 더 기대된다. 그러나 기다리는 중에 읽길 잘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내부자며 외부자며 기자며 석학이며 많은 자들이 분석을 시도했지만, 개중 마이클 무어만큼 웃기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것을, 내 한달 월급을 걸고 맹세하노니!
 
이번 달엔 <살인자의 건강법>과 [Music for Paul Auster]도 즐기질 않았느냐고, 주위 사람들이 상기시켜 주었다. "왜 데뷔작은 번역이 안된대? 재미가 없나?"라는 루머가 파다했던 문제의 책, <살인자의 건강법>, 재미가 없다니? '음반이든 책이든 아티스트의 데뷔작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쇼핑의 금과옥조를 본때좋게 보여주었다. [Music for Paul Auster], 폴 오스터도 좋고 실린 음악도 좋지만 과연 이 음반이 폴 오스터의 작품 분위기와 찰떡궁합이냐 하면 글쎄요(뒤통수 긁적), 인데, 하여간, CD2의 Pedro the Lion 때문에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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