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 많아 행복한 가을"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지음 / 시공사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10월의 수확은 <바람의 열두 방향>과 <최순덕 성령충만기>였다. 르 귄의 열성 팬은 아니지만, 또 책에 실린 몇 개의 단편은 이미 읽은 것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멋진 책이다. (표지 색감과 판형도 맘에 든다.) 특히 인상적인 건 각 단편 앞머리에 르 귄 자신이 해당 작품에 대해 짧게 술회한 부분. 작품의 발단, 출판의 뒷얘기, 소설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해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번역도 매끄럽고 깔끔하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한국소설이다. 또다른 이야기꾼의 등장을 조심스레 점쳐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랩'으로 서술되는 '버니'부터 전/성경의 형식을 빌려쓴 '최순덕 성령충만기'(에, 종교소설이 아니다.;)까지. 책에 실린 작품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 재미있고 완성도 있다. 이기호란 이름을 기억해두자.
 
그러나 많은 문학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10월에 나를 쓰러뜨린 작품은 <엄마 마중>이다. 알라딘에서 일하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어린이책을 조금이나마 접하게 되었다는 것. 아니었으면 조카도 친구 딸내미도 옆집 아기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내가 어린이 책을 접할 일이 없을 테니까. 이태준의 짧은 동시를 그림으로 풀어낸 이 책 <엄마 마중>. 대여섯 살 먹은 어린 아가가 버스 정류장으로 엄마를 마중나간다. 이영차 보도에 올라서서 '우리 엄마 안와요' 기웃기웃. 그림 한장 한장이 너무 가슴에 와닿아서 눈가가 순간 화끈해졌다. 알라딘 편집팀이 10월에 반한 책은 뭐니뭐니 해도 <엄마 마중>이 아니었을까.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은행잔고 35원, 그래도 만화는 계속 나온다"
데스 노트 Death Note 1 오바 츠구미 + 오바타 다케시 / 대원씨아이
환월루기담 이마 이치코 / 대원씨아이
후르츠 바스켓 14 타카야 나츠키 / 서울문화사
더 이상 말하지마 요시나가 후미 / 서울문화사
 
이번 달에는 일반 단행본은 거의 보지 못했다. 경이로운 1권을 선보이는 만화, 흥미로운 2, 3권을 선보이는 만화들로 인해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보냈다. 이달의 선봉은 뭐니뭐니해도 <데스 노트>. 오바 츠구미라는 가명을 내세운 작가는 과연 누구인지 친구와 연일 토론을 하느라 메신저는 언제나 ON 상태였다. 원서판매 사이트에서 미리 주문해서 내용을 살짝 엿볼 수도 있겠지만, 훗날의 재미를 위해 꾹 참고 있는 중이다. (사신 류크가 너무 귀엽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싸이코'라고 한다.)
 
다음을 차지한 것은 오랜만에 등장한 이마 이치코, <환월루기담>으로 <백귀야행> 못지 않은 찬란한 만화를 선보였다. <문조님과 나>로 잠시 동물만화로 나가는가 싶더니, "나, 아직 건재하다구!"라고 조용히 외친다. 으레 그렇듯, 나는 그녀의 만화를 읽다보면 전병과 귤, 담요가 그리워진다.
 
편애하는 캐릭터인 링이 많이 아파보여 마음이 무거웠던 <후르츠 바스켓 14>, 요시나가 후미의 <더 이상 말하지마>(나이제한 표시가 안되어있어 덜컥 구입했더니 15세 미만 불가, 소프트 '야오이'였다!) 등도 주말에 탐독한 만화. 고양이의 주인된 도리로 다시 한 번 봐줘야겠다는 생각에 보기 시작한 <나비의 일상>, <묘한 고양이 쿠로>도 요즘 내 손을 타고 있는 책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이 겨울에 쏟아질 만화들도 빵빵하다고 하니 기대백배! :)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눈이 쌓인 추운 겨울날, 전차 정류장으로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아이는 "낑"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서서는 전차가 설 때마다 고개를 내밀며 엄마를 찾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차장 아저씨가 말해줍니다. "너희 엄마 오시도록 가만히 서 있어라." "아기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30쪽 분량의 그림책이 기다림이란 정서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가슴 깊은 곳을 '툭' 건드리는 이야기, 이 책에 덧붙여야 할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마지막 그림이 말해주는 깜찍한 결말, 그런데도 마음 한켠이 여전히 먹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다림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원래 가슴이 아픈 거니까... 하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고,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이고, 그래서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론은 엉뚱하게 튀었습니다만, 어쨌든, 기다릴 무엇이 있어 다행스러운 오늘, 지금입니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학생이다
왕멍 지음, 임국웅 옮김 / 들녘
 
대장정에서부터 천안문 사태까지, 중국의 현대사를 헤쳐온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늘 사람을 각성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삶이란 저런 것인가를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이 즐거운 것도, 슬픈 것도, 아름다운 것도, 처연한 것도 아닌 그 무엇이 아닐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왕멍은 인생은 '배움'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딪치게 될 모순과 함정, 그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해답을 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계속 배우고 공부해야 한단다. 인생=배움. 하기사 인생에 단 한 가지의 정답이 있겠는가.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또 하나의 답을 얻었다.
 
아 그리고 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 책, <엄마 마중>!!!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애달픔과 기쁨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적을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니 역시 인생은 행복한 것이라고.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한국경제가 정말 어렵긴 어렵나 보다"
한국을 버려라
이성용 지음 / 청림출판
 
시대가 뒤숭숭하고 먹고 사는 게 어렵다 보니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서가 많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당장 2년, 3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독자들로서는 '10년 후, 3년 후'가 붙은 책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고, 출판사로서도 팔릴 책이니 안 낼 수 없는 거겠죠.
 
<한국을 버려라>라는 그런 저런 책들 사이에서 비교적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성향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시각, 한국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썼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저자는 왜 한국이 100점의 실력을 가지고도 70점 밖에 대접을 못 받는지, 그 해답을 15가지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역시나 읽으면서 기분 좋은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내 일처럼 집중해서 읽게 되는 건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다시듣는 그 노래, 감동은 여전하구나. 보고싶다 친구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그 시절. 난 소중한 친구와 이 앨범을 들었다. 비록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설픈 반항이나 부당한 대우를 속으로 삭이는 것 뿐이었지만 이 앨범은, 이 노래들은 작지만 큰 울림으로 지금이 아닌 세상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바꾸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이들은 소리없이 다시 다가왔다. 다 늘어난 테이프 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한 때의 이야기들을 다시 살려준 앨범. 성진아. 너도 이 앨범을 듣고있니. 우리 그때 참 좋았는데... 보고 싶구나.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올해 본 최고로 감동적인 한국그림책"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너무 상투적이라 쓰고 싶지 않은 표현들이 있다. 콧날이 시큰해졌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얼마나 맥빠진 표현들인가. 아무도 감동하지 않을, 아무도에게도 그 본래 뜻이 전달되지 않는 표현이다. 적어도 서점 편집자라면 이런 표현으로 독자를 유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정말 콧날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뻐근했다. 아기의 코끝이 발개지도록 엄마가 오지 않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군더더기 없는 날씬한 글과 담백한 그림. 누구에게라도 읽히고 싶을만큼 아름다운 우리 그림책이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다큐멘터리가 꼭 카메라로만 찍히는가"
신의 괴물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그야말로 다큐멘터리. 사진 한 장 없고 도표 하나 없어도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이런 책을 위해 몇년씩 취재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정리하고, 마침내 책상 앞에 앉아 써내는 과정을 상상해보았다. 과연 그것은 지금 멸종해가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밀렵꾼으로부터 지키는 육체적 활동보다 가치있는 것일까? 쾀멘만큼만 쓸 수 있다면 골백번도 'Yes'일 것이다. 글의 장점을 새삼 발견했다. 영상보다 은근하고 개인적이며 그래서 더 살갗에 와닿는다.
 
실은 <엄마 마중>을 꼽고 싶었는데 앞서 많이 등장했으니... 완벽한 글의 아름다움이 댕댕댕 울려퍼지고 절제된 그림의 힘이 따스하게 번져가는 숨막히는 그림책이다. 이 글을 쓰느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묘하게 조여온다.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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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wave 2004-11-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크 저도 <엄마 마중>에는 홀딱 반해버리긴 했지만, 정말 엄청난 몰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