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예 감독의 <여름궁전>은 나의 이번 부산영화제행에서 최고의 수확이다.
워낙 중화권 영화를 좋아하니까(그렇지만 만다린이나 캔토니즈는 한개도 못한다 ㅡ.ㅡ),
주말에 상영하는 영화들 중에서 관심을 끌만한 영화가 많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샨사의 <천안문>을 읽고나서 궁금했던 천안문사태에 대한 정서라고 해야하나,
청춘의 연대기, 라면 언제나 쌍수를 들고 환영을 했던 내 취향도 작용을 했고,
격변하는 중국의 상황에 대한 젊은 영화감독의 내밀한 독백이 분명 잘 드러날거라는 기대도, 물론 있었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100개나 된다고 해도, 직접 영화를 본 것만 못할터.
하드코어 첨밀밀, 이라고 간략하게 정리를 하긴 했지만,
1987년부터 2005년까지 거의 20여년의 세월 동안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남녀의 러브스토리다.
북경대생인 유홍과 저우위 두 주인공의 격정적이고 질척거리는 사랑의 행로를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주인공들이 북경에서 베를린, 우한, 충칭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그에 따라 삶의 모습과 방향이 달라진다.
천안문 사태를 다룬 것과 상당히 수위가 높은 섹스신 때문에 중국내에서 상영이 금지되었고, 감독은 5년간 영화제작금지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하면서도 회한으로 가득찬 사랑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분위기도 전하고 싶었던 것도 같고(그렇지만 우리나라 후일담 소설류에서 풍기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혼돈으로 가득찬 젊은 날의 격렬하고 뜨거운 사랑의 뒤안길을 가슴이 뻐근하도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남자주인공의 눈빛 때문에, 사실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꽤 오랫동안 머리속이 복잡했다.
'여름궁전'이라는 제목은 아마 칸느에 출품했을 때 영어제목을 그대로 옮긴 듯한데,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타난 타이틀은 한자로 이화원, 그러니까 북경에 있는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이 d원래제목이었다.
영화상영이 끝난 후 등장했던 로우예 감독이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주기도 했는데,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배를 타고 놀던 이화원에서의 시간, 가장 찬란하고 행복했던 그 시간을 영화의 제목으로 썼단다.
<란위>를 보고나서도 후폭풍이 오래갔었는데,
<여름궁전>도 꽤 갈 것 같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계속 이 영화 얘기. ㅎㅎ
여자 주인공인 유홍. 새침떼기같은 소녀에서 사랑과 인생을 체득해가는 여인으로.
남주인 저우위. 남자주인공으로 열열한 이 배우의 아우라 꽤 크다. 곽소동이라는 대륙배우인데, 놀랍게도 KBS드라마 <북경 내사랑>에 출연한 적이 있다(안봐서 어떤 역할로 나왔는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