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업 - 세계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들이 창조한 위대한 탐정 탄생기
켄 브루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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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DAVID MORRELL>편
P 325
창작수업에서 이야기의 종류는 다섯 가지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인간 대 또 다른 인간, 인간 대 자연,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사회 혹은 인간 대 신을 다루는 이야기 이렇게 다섯 개다. 이러한 분류가 글을 쓰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런 이론이 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쓰려고 보니 세상엔 오직 두 부류의 이야기만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부류는 글을 쓰는 데 아주 효과적이며 내가 <First Blood>에 대해 처음 생각하기 시작한 1968년 읽고 있던 책인 조셉 켐벨의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에 나오는 이론과 일치한다. 즉 누군가 여행을 떠나거나, 이방인이 마을에 오는 이야기 두 가지이다.
<CAROL O'CONNELL>편
P351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즉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용어들은 학계 논문에서는 서로 바꿔가면서 사용된다. 그리고 내가 아는 심리학자가 인용한 말이 이 문제에 대한 현대 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오늘의 소시오패스가 어제의 사이코패스다." 논리적인 생각은 잠깐 한쪽으로 밀어놓고, 이런 특정 용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 훨씬 더 권위 있어 보인다고 일반인들은 생각한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소시오패스는 아기의 머리에 총을 쏘고 밤새 편히 잘 수 있는 사람이고, 사이코패스는 아기의 얼굴을 먹어치우고 밤새 편히 잘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의든 여러분이 가장 불편해하는 정의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말로리가 너무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나는 정신병자들이 보낸 편지들이 종종 통찰력이 넘치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래서 그들이 보내는 편지는 언제든 환영한다. 내가 보기에 정신 이상은 하나의 장소와 같다. 우리는 거기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모두 교대로 정신병 환자가 된다. 약간의 광기가 없다면 문학은 아주 황량한 곳이 될 것이다. 요즘처럼 조심스런 연설, 심지어 두려움에 찬 연설, 담배 연기를 찾아볼 수 없는 영화 대본,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는 노래 가사들, 그리고 아이들이 열 수 없게 자물쇠를 잠근 성인들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현대에 예술가들이 종종 하는 한탄은 바로 이것이다. "그 멋진 미치광이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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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해부학 - 살인자의 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방법
마이클 스톤 지음, 허형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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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범죄 심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것 같다. 주석을 제외하고도 p576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한여름밤의 으스스한 책친구가 되어 줬는데, 끔찍한 살인범들의 일화들보다 거기서 차별화되는, 벗어나는 전과자들의 후일담들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데이비드 파커 레이는 정말 잊지 못할 악한이긴 했다. 제 9장 뇌과학과 정신의학이 밝혀낸 범죄의 원인들이 가장 흥미로웠다.

"우리는 인간 본성이라는 미스터리의 답을 찾기 위해, 과학자와 지성인, 예술가들을 연구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연쇄살인범과 성범죄자, 살인자들을 연구한다."
 
--- 어반 웰시 <Crime>
 
"니체는 유명한 수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를 이렇게 형상화했다. 우리는 팽팽한 밧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인생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며, 그 밧줄은 심연 위에 놓여 있다." 가다가 동물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 자신을 초월해 도덕적 우월성을 성취할 수도 있다. 나는 이 "동물" 이미지가 마음에 걸린다.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동물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악행을 보면 종종 "그는 마치 짐승처럼 굴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좀 더 현대적인 비유로 바꾸어, `인간은 번디와 붓다 사이에 팽팽히 놓여 있는 밧줄이다`라고 하면 어떨까. 그리고 심연은 테드 번디와 그 부류가 기다리고 있는 곳, 같은 인간의 안녕에 대한 배려가 거품처럼 사라지고 오직 가늠할 수 없는 잔인성과 해악, 우리를 소름끼치게 만드는 `악`만이 존재하는 그곳이다."
--- 본문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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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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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북쪽 거실>(2009), <서울의 낮은 언덕들>(2011)에 이어진 삼부작 완결이라고 봐야 할 텐데, '고아 낭송 배우' 모티프가 결국 서울에서 완결이 되었다. 대체로 배수아의 이 작품들을 꿈(환상)의 초대로만 해석하는데 그건 일차원적인 해석이다. 낭송=꿈으로의 초대~ 거참 책 꿈 잘 꿨다? 그걸 바라고 썼겠어? 환상을 문학으로 가져와 그것들이 섞인 곳에서 무엇이 떠오르는지, 그 작업을 들여다보는 게 배수아 작품 독해법이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서 나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
  
 
p151
사진은, 본래의 의도나 목적과는 다르게, 유령으로서의 인간을 증명하는 유일하면서도 강한 선언이다, 하고 볼피는 생각했다.
 
 
p182~183
"그러니까 실제 범인도 이십 년 전의 그 범인이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범인도 이미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거죠. 사실 이런 구상은 조금 전에 사진 전시회에 가서 <신혼여행>이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 거예요. 그래서 아직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구축한 건 아닙니다. 책을 쓸 때 나는 머릿속에 동시에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그걸 모두 글로 표현하려고 시도를 해요.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 버전을 갖게 되지요. 그렇게 써놓은 모든 버전을 직접 읽어보고 그중에서 한 가지로 선택을 해요.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이 이야기는 내가 서울에 와서 생각한 최신 버전인 셈이지요."
"아, 그렇군요." 아야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채택되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되나요?"
"글쎄요." 볼피는 불확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영원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는 거겠죠."
 

 

p188
"대규모 정전도 기억력의 감퇴와 마찬가지로 늙어가는 징후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점점 희박해져가는 징후이겠지만." 극장장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무엇이 희박해지고 있단 말인가요?"
"글쎄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 우리를 꿈꾸고 있는 자의 잠이?"
"아케이드 상점의 불빛이 꺼져버렸던 그때 갑자기 생각이 들기를, 나는 당신의 꿈속에 등장한 상상의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나는 이제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나를 꿈꾸고 있는 자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신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면, 내가 당신 상상의 산물이라면."
"우리가 서로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건배."
 

 

 

§§ 

예술가나 작가들의 비운은 자신이 바로 자신의 내부 고발자라는 데 있다. 다행히 각자 암호를 쓰는 요령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는 언어라는 암호를 쓴다. 배수아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 이를테면 신, 죽음, 꿈같은 것들과 세계와의 인력을 보여준다. 작가도, 독자도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긴 어렵다. 그건 태초부터 밝혀지지 않은 인류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하려면 이야기는 혼돈 자체가 될 수밖에 없는데, 보통의 3차원의 세계만을 인식하며 사는 이들에겐 무리한 이해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꿈이니 환상이니 섣불리 갈무리 짓고 만다.

 

 

갑자기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생각났다. 홍천강 괴담과 관련해 치밀히 계획된 살인사건 이야기였다. 10여년 전 한 여인이 홍천강에서 익사한 이후 해마다 유사한 의문의 익사사고가 많아 마을사람들은 여인의 저주로 생각하고 굿까지 지냈다고 한다. 2010년에는 한 부부가 이곳에 와서 아내가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부부에겐 두 딸이 있었다. 첫째딸은 엄마쪽, 둘째딸은 아빠쪽에서 데려온 의붓형제사이다. 첫째딸은 묘한 꿈과 함께 사고에 대한 강한 의혹으로 부검을 요청했다. 부검 결과 익사 사고로 보기 힘든 목주변의 손자국이 결정적 증거로 떠올랐다. 익사로 보이기 위해 누군가 뒤에서 일시에 목을 눌렀다는 주장이다. 그순간 보험금을 노렸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사건 정황과 모의실험, 남편의 진술서와 태도, 막대한 사망보험금, 이전의 보험수령사례 등이 남편을 향해 유죄라고 가리켰다. 드라마틱한 이 사건에 대한 구구절절함은 검색을 통해 알아보시고,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작가가 소설로 탄생시키는 크레바스가 이 사건에서도 가장 강력한 지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천강 괴담과 익사사고로 위장된 살인사건과의 인력, 우리가 그것을 단순처리할 뻔한 관성에 대해서. 남편의 자백은 없을 것 같고 이 사건의 진실은 어디까지 밝혀질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알려지지 않은 채 수장되었을까 하는 아득함.

 

우리가 불러오고 끌려다니는 많은 일들. 알려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긴 매우 어렵다. 다만 그것들에게서는 왜 죽음의 냄새가 짙은지 미스테리다. 그리고 이 코스모틱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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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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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일이 이렇게 풀려오게 된 건지 모르겠으나 한 달간 <범죄의 해부학>을 2번 읽고, 미국 중산층 살인범의 탈옥 이야기 <팔코너>를 읽고, <범인은 바로 뇌다>를 읽고,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기들을 읽고, 토마스 베른하르트 <소멸>에서 오스트리아에서의 나치스 얘기, 로맹 가리와 밀란 쿤데라의 신간에서도 빠지지 않던 살인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보았고, 중간중간 보았던 영화들(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카페 드 플로르, 헝거, 바시르와 왈츠를, 뱅뱅클럽)에서도 온갖 살인과 죄악들을 목격했다. 이 지긋지긋한 범죄와 죽음의 이야기에 질려 하면서도 나는 액셀레이터를 밟듯 <죽음의 집의 기록>이란 제목의 소설을 집어 들었다. 우선적으로는 신뢰할 만한 고전이자 작가를 원해서였지만 결정적이게도 이 선택은 옳았다. 최근 책 읽으면서 웃어본 기억이 없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두 번 미친 듯이 웃었으며(목욕탕, 바를라모프와 불낀 이야기)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공감의 미소를 거둘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재밌는 책을 그간 멀리하고 있었던가 곰곰이 짚어 보았다.
 
1.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 자체(대문호 답게 책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
2. 무시무시한 제목과 표지..... (쾌적한 교양쌓기 일환으로 고전주의 미술이라도 관람하러 가는 게 아니라 정체불명의 시체로 가득한 인체 해부 관람을 하러 들어가는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아우라를 뿜고 있다)
3. 생각의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도스토옙스키 다른 작품(가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독서기억
4. 책을 펼쳤을 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라면, 낯선 러시아 지명과 인명에 대한 껄끄러움과 감옥으로 들어가는 시작이 마치 독자가 감옥에 입소하는 듯한 심상에 젖어들게 해, 독서 진입을 울적하게 만든다.
 
작품 내용의 무게를 떠나, 내가 읽었던 도스토옙스키 책 중에 가장 유쾌하고 읽기 쉬운 작품이었다.
19세기 감옥 안 인간 군상들과 그 스토리들이  21세기 현재의 인간들과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기막히게 우습기만 했다. 
문체, 플롯, 화자, 캐릭터들의 조합 어느 것 하나 소설의 모범이 되지 않는 게 없다.
이 현실 감옥에 죄수로 존재하고 있는 내 현재의 절망적 무게와 내 발목의 가냘픈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마무리까지, 멋진 작품이었다.

 

ㅡ Agl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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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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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이제야 다 읽었다. 9개월이 걸린 셈이다.... 단편 하나씩 읽을 때마다 아득해졌고 속도를 내고 싶지 않았다. 해안가 구불구불한 멋진 길을 드라이브할 때 스릴감과 감탄을 서둘러 끝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또한 인물들의 상황과 마음의 우물들을 들여다보다가 어떤 반대편 출구로 한없이 파고들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 반대편은 막혀 있으면서 뚫려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음?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그것은 거기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거기'가 어디인지, 오로지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몫.
앨리스 먼로와 같은 1931년생이었던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 생각도 스쳤다. 어느 경지에 이른 작가의 글에서 감지되는 침향을.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읽으면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반드시 깨닫게 된다." - 200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선정 평은 적확하다. 단편마다 나는 반드시 이제껏 보지 못했던 특별한 것들을 발견했다.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를 하려고 했으나 노벨상 수상으로 어쩌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니 차후 기다려볼 일일까.
소설, 특히나 단편소설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가라타니 고진 얘기까지 구구절절 꺼내고 싶진 않다.
2~3시간의 영화나 즉각적 게임의 시대에서 문득 든 생각,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깊고 긴 감성의 시대는 점점 아니게 돼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단편소설이 여전히 빛날 수도 있다. 인간의 감수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물론 문장과 플롯, 감성 치중에 길들여진 한국문학판 현실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이 작품집에서 토마스 만 <마의 산>이 두 번 언급되는데, 아마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음 읽을 책이 결정될 지도 모른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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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 닿기를
*(Agalma) 객차 사이 공간에 갇혀 있던 케이트의 경험을 나는 오래오래 상상해 보았다. 이 부분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상당히 밋밋했을 것이다.
 
 
 
 
「아문센
*(Agalma) 이 소설집에서 가장 처음 접한 인상깊은 부분이었는데, 책을 덮고 나서도 이 부분이 가장 깊이 남았고 제일 먼저 다시 읽고 싶어지는 부분이었다.
 
p 82
 앨리스터의 차 앞에 세워진 트럭은 전쟁 전 모델로, 발판이 달려 있고 펜더 가장자리는 녹슬었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철물점에서 나와 트럭에 올라탄다. 엔진이 툴툴거리더니 트럭이 제자리에서 덜컹덜컹 요동치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이제 가게 이름이 적힌 배달 트럭이 그 빈 공간에 들어오려 한다. 공간이 충분치 않다. 운전사가 트럭에서 내려 앨리스터의 차로 걸어오더니 차창을 톡톡 두드린다. 앨리스터가 놀란다 ㅡ 그렇게 심각하게 말하던 중이 아니었다면 그도 문제가 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앨리스터가 차창을 내리자, 남자가 우리에게 가게에서 물건을 사려고 차를 거기 세운 것인지 묻는다. 그게 아니라면 자리를 좀 비켜줄 수 있겠는지?
 "곧 떠납니다." 내 옆에 앉은,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나 이제 하지 않겠다고 하는 남자 앨리스터가 말한다. "우리는 곧 떠날 겁니다."
 우리. 그가 우리라고 말했다. 잠시 나는 그 단어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 안에 내가 들어갈 마지막.
 
*(Agalma) 영미 문학권의 훌륭한 작품들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고 앨리스 먼로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는데, epiphany. 일상적 삶 속에서 주인공 당사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반짝, 하고 빛난다. 제임스 조이스, 포크너, 레이먼드 카버....최근엔 앤드루 포터 작품 등등.
 
 
 
 
 
「메이벌리를 떠나며
*(Agalma) 리아와 레이의 인연. 운명적 인연이란 평생 잊히지 않는 시작점과 마지막 지점이 연결된 굴곡선일 것이다.  
 
 
 
 
 
 「자갈
*(Agalma) 앨리스 먼로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비밀스러운 스릴러가 늘 내재되어 있다는 점인데, 그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다웠다.
 
p 134~135
 마음속에서 카로가 블리치를 들어 물속에 집어던지는 모습을, 블리치가 카로의 코트에 매달리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카로는 몇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물로 달려든다. 뛰어간다, 뛰어오른다, 어느 순간 물속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개와 카로가 잇따라 수면에 첨벙 부딪히는 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작은 소리도 큰 소리도. 어쩌면 나는 그때쯤 트레일러를 향해 돌아섰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 꿈을 꿀 때마다 나는 늘 달린다. 꿈속에서 나는 달리지만 트레일러가 아니라 다시 채석장을 향해 달린다. 나는 블리치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카로가 블리치를 구하려고 헤엄치는 것을, 힘껏 헤엄치는 것을 본다. 카로의 옅은 갈색 체크무늬 코트를 보고, 격자무늬 목도리를 보고,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고, 물에 젖어 끝부분이 짙어진 불그스름한 곱슬머리를 본다. 나는 그저 지켜보면서 행복하게 서 있으면 된다. 어쨌거나 내가 할 일은 없다.
 
 *(Agalma) 이 부분이 이 단편의 클라이막스구나 했는데 마지막 3페이지에서 반전이 또 숨어 있다. 정말 멋진 작품이다.
 
 
 
 
「안식처 
*(Agalma) 마지막 돈 이모부의 상황이 없었다면? ​
「자존심
p 189
 그 말에는 내가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었다. 그래야 어린 시절에 머무르면서 모두를 내 옆에서 지내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는 너무 간단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내 학창 시절은 내가ㅡ내 얼굴이ㅡ어떻게 보이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 가버린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대끼지 않고도 이곳에서 살아남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이곳에서 용케 버텨낸 것을 나는 승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우리 모두를 다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데려가는 것을 원하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고맙지만 그건 사양하겠다.
p 197
​ 오래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가는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된다. 모두의 얼굴이 고통을 경험했다.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코리
*(Agalma) 멋진 추리소설. 코리-편지-하워드
「기차
*(Agalma) 잭슨의 떠나는 방식이 이 소설의 모티프. 일리, 벨, 보디 던디라는 이름의 건물에서의 세 밤. 메노파 교회의 어린 소년들이 마차를 타고 지나가며 부르는 노랫소리. 시대의 활동사진처럼 흘러가던 인물들의 삶.
 
「호수가 보이는 풍경
*(Agalma) 파킨슨병이었던 앨리스 먼로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깊은 이해
 
「돌리
p 322​
 그 어떤 거짓말도 결국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p 329
시인의 시에 대해 시인에게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히.
 
 
​※ 피날레
*(Agalma) 앨리스 먼로가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자전적이지만  때때로 사실적인 측면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고 밝힌 자전소설​

 

「시선
p 355
내가 다섯 살 때 난데없이 남동생이 태어났고, 어머니는 그것이 내가 늘 바라던 일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몰랐던 생각을 어머니는 어떻게 알았던 걸까. 어머니는 그 생각을 상당히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모두 꾸며낸 것이었지만 반박하기 힘들었다.
*(Agalma) 이​렇게 시작되던 것이 '세이디'로 집중되던 절묘함. 그리고 멋진 피날레.
p 351
​ 그런데도 오랫동안 그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그날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장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부자연스러운 시체 분장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졌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고 생각했다. 한때 있던 젖니가 빠지고 새 이가 나도 당신은 젖니가 실제 존재했었다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처럼, 나는 그 일을 그렇게 쉽게 믿었다. 어느 날, 아마 십대였을 때, 마음 속에 어두운 구멍을 간직한 내가 지금의 나는 더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
「밤
*(Agalma)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의 먼로가 겪은 가정사 비극을 '불면'으로 풀어낸 작품
「목소리들
*(Agalma) 性에 눈 뜬 청소년기 환상의 편린을 잔잔하고 섬세하게 연결해내는 이 문단에 감탄.
p389
얼마나 오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춥고 어두운 내 침실에서 그들이 나를 살살 흔들어 잠재웠다. 나는 스위치를 켜듯 그들을 불러내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렸다. 오,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들의 목소리는 나와 상관없는 제삼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이 내 가는 허벅지를 축복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내 에로틱한 환상 속에 머물러 있는 사이, 그들은 떠나버렸다. 그들 중 몇몇이, 대부분이, 영원히 떠나버렸다.
「디어 라이프
*(Agalma)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인간으로서 '어머니'들을 되돌아본 앨리스 먼로의 마지막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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