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북쪽 거실>(2009), <서울의 낮은 언덕들>(2011)에 이어진 삼부작 완결이라고 봐야 할 텐데, '고아 낭송 배우' 모티프가 결국 서울에서 완결이 되었다. 대체로 배수아의 이 작품들을 꿈(환상)의 초대로만 해석하는데 그건 일차원적인 해석이다. 낭송=꿈으로의 초대~ 거참 책 꿈 잘 꿨다? 그걸 바라고 썼겠어? 환상을 문학으로 가져와 그것들이 섞인 곳에서 무엇이 떠오르는지, 그 작업을 들여다보는 게 배수아 작품 독해법이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서 나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
  
 
p151
사진은, 본래의 의도나 목적과는 다르게, 유령으로서의 인간을 증명하는 유일하면서도 강한 선언이다, 하고 볼피는 생각했다.
 
 
p182~183
"그러니까 실제 범인도 이십 년 전의 그 범인이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범인도 이미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거죠. 사실 이런 구상은 조금 전에 사진 전시회에 가서 <신혼여행>이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 거예요. 그래서 아직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구축한 건 아닙니다. 책을 쓸 때 나는 머릿속에 동시에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그걸 모두 글로 표현하려고 시도를 해요.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 버전을 갖게 되지요. 그렇게 써놓은 모든 버전을 직접 읽어보고 그중에서 한 가지로 선택을 해요.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이 이야기는 내가 서울에 와서 생각한 최신 버전인 셈이지요."
"아, 그렇군요." 아야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채택되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되나요?"
"글쎄요." 볼피는 불확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영원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는 거겠죠."
 

 

p188
"대규모 정전도 기억력의 감퇴와 마찬가지로 늙어가는 징후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점점 희박해져가는 징후이겠지만." 극장장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무엇이 희박해지고 있단 말인가요?"
"글쎄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 우리를 꿈꾸고 있는 자의 잠이?"
"아케이드 상점의 불빛이 꺼져버렸던 그때 갑자기 생각이 들기를, 나는 당신의 꿈속에 등장한 상상의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나는 이제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나를 꿈꾸고 있는 자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신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면, 내가 당신 상상의 산물이라면."
"우리가 서로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건배."
 

 

 

§§ 

예술가나 작가들의 비운은 자신이 바로 자신의 내부 고발자라는 데 있다. 다행히 각자 암호를 쓰는 요령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는 언어라는 암호를 쓴다. 배수아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 이를테면 신, 죽음, 꿈같은 것들과 세계와의 인력을 보여준다. 작가도, 독자도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긴 어렵다. 그건 태초부터 밝혀지지 않은 인류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하려면 이야기는 혼돈 자체가 될 수밖에 없는데, 보통의 3차원의 세계만을 인식하며 사는 이들에겐 무리한 이해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꿈이니 환상이니 섣불리 갈무리 짓고 만다.

 

 

갑자기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생각났다. 홍천강 괴담과 관련해 치밀히 계획된 살인사건 이야기였다. 10여년 전 한 여인이 홍천강에서 익사한 이후 해마다 유사한 의문의 익사사고가 많아 마을사람들은 여인의 저주로 생각하고 굿까지 지냈다고 한다. 2010년에는 한 부부가 이곳에 와서 아내가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부부에겐 두 딸이 있었다. 첫째딸은 엄마쪽, 둘째딸은 아빠쪽에서 데려온 의붓형제사이다. 첫째딸은 묘한 꿈과 함께 사고에 대한 강한 의혹으로 부검을 요청했다. 부검 결과 익사 사고로 보기 힘든 목주변의 손자국이 결정적 증거로 떠올랐다. 익사로 보이기 위해 누군가 뒤에서 일시에 목을 눌렀다는 주장이다. 그순간 보험금을 노렸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사건 정황과 모의실험, 남편의 진술서와 태도, 막대한 사망보험금, 이전의 보험수령사례 등이 남편을 향해 유죄라고 가리켰다. 드라마틱한 이 사건에 대한 구구절절함은 검색을 통해 알아보시고,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작가가 소설로 탄생시키는 크레바스가 이 사건에서도 가장 강력한 지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천강 괴담과 익사사고로 위장된 살인사건과의 인력, 우리가 그것을 단순처리할 뻔한 관성에 대해서. 남편의 자백은 없을 것 같고 이 사건의 진실은 어디까지 밝혀질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알려지지 않은 채 수장되었을까 하는 아득함.

 

우리가 불러오고 끌려다니는 많은 일들. 알려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긴 매우 어렵다. 다만 그것들에게서는 왜 죽음의 냄새가 짙은지 미스테리다. 그리고 이 코스모틱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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