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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이제야 다 읽었다. 9개월이 걸린 셈이다.... 단편 하나씩 읽을 때마다 아득해졌고 속도를 내고 싶지 않았다. 해안가 구불구불한 멋진 길을 드라이브할 때 스릴감과 감탄을 서둘러 끝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또한 인물들의 상황과 마음의 우물들을 들여다보다가 어떤 반대편 출구로 한없이 파고들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 반대편은 막혀 있으면서 뚫려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음?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그것은 거기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거기'가 어디인지, 오로지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몫.
앨리스 먼로와 같은 1931년생이었던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 생각도 스쳤다. 어느 경지에 이른 작가의 글에서 감지되는 침향을.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읽으면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반드시 깨닫게 된다." - 200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선정 평은 적확하다. 단편마다 나는 반드시 이제껏 보지 못했던 특별한 것들을 발견했다.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를 하려고 했으나 노벨상 수상으로 어쩌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니 차후 기다려볼 일일까.
소설, 특히나 단편소설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가라타니 고진 얘기까지 구구절절 꺼내고 싶진 않다.
2~3시간의 영화나 즉각적 게임의 시대에서 문득 든 생각,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깊고 긴 감성의 시대는 점점 아니게 돼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단편소설이 여전히 빛날 수도 있다. 인간의 감수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물론 문장과 플롯, 감성 치중에 길들여진 한국문학판 현실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이 작품집에서 토마스 만 <마의 산>이 두 번 언급되는데, 아마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음 읽을 책이 결정될 지도 모른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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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 닿기를」
*(Agalma) 객차 사이 공간에 갇혀 있던 케이트의 경험을 나는 오래오래 상상해 보았다. 이 부분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상당히 밋밋했을 것이다.
「아문센」
*(Agalma) 이 소설집에서 가장 처음 접한 인상깊은 부분이었는데, 책을 덮고 나서도 이 부분이 가장 깊이 남았고 제일 먼저 다시 읽고 싶어지는 부분이었다.
p 82
앨리스터의 차 앞에 세워진 트럭은 전쟁 전 모델로, 발판이 달려 있고 펜더 가장자리는 녹슬었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철물점에서 나와 트럭에 올라탄다. 엔진이 툴툴거리더니 트럭이 제자리에서 덜컹덜컹 요동치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이제 가게 이름이 적힌 배달 트럭이 그 빈 공간에 들어오려 한다. 공간이 충분치 않다. 운전사가 트럭에서 내려 앨리스터의 차로 걸어오더니 차창을 톡톡 두드린다. 앨리스터가 놀란다 ㅡ 그렇게 심각하게 말하던 중이 아니었다면 그도 문제가 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앨리스터가 차창을 내리자, 남자가 우리에게 가게에서 물건을 사려고 차를 거기 세운 것인지 묻는다. 그게 아니라면 자리를 좀 비켜줄 수 있겠는지?
"곧 떠납니다." 내 옆에 앉은,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나 이제 하지 않겠다고 하는 남자 앨리스터가 말한다. "우리는 곧 떠날 겁니다."
우리. 그가 우리라고 말했다. 잠시 나는 그 단어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 안에 내가 들어갈 마지막.
*(Agalma) 영미 문학권의 훌륭한 작품들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고 앨리스 먼로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는데, epiphany. 일상적 삶 속에서 주인공 당사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반짝, 하고 빛난다. 제임스 조이스, 포크너, 레이먼드 카버....최근엔 앤드루 포터 작품 등등.
「메이벌리를 떠나며」
*(Agalma) 리아와 레이의 인연. 운명적 인연이란 평생 잊히지 않는 시작점과 마지막 지점이 연결된 굴곡선일 것이다.
「자갈」
*(Agalma) 앨리스 먼로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비밀스러운 스릴러가 늘 내재되어 있다는 점인데, 그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다웠다.
p 134~135
마음속에서 카로가 블리치를 들어 물속에 집어던지는 모습을, 블리치가 카로의 코트에 매달리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카로는 몇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물로 달려든다. 뛰어간다, 뛰어오른다, 어느 순간 물속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개와 카로가 잇따라 수면에 첨벙 부딪히는 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작은 소리도 큰 소리도. 어쩌면 나는 그때쯤 트레일러를 향해 돌아섰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 꿈을 꿀 때마다 나는 늘 달린다. 꿈속에서 나는 달리지만 트레일러가 아니라 다시 채석장을 향해 달린다. 나는 블리치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카로가 블리치를 구하려고 헤엄치는 것을, 힘껏 헤엄치는 것을 본다. 카로의 옅은 갈색 체크무늬 코트를 보고, 격자무늬 목도리를 보고,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고, 물에 젖어 끝부분이 짙어진 불그스름한 곱슬머리를 본다. 나는 그저 지켜보면서 행복하게 서 있으면 된다. 어쨌거나 내가 할 일은 없다.
*(Agalma) 이 부분이 이 단편의 클라이막스구나 했는데 마지막 3페이지에서 반전이 또 숨어 있다. 정말 멋진 작품이다.
「안식처」
*(Agalma) 마지막 돈 이모부의 상황이 없었다면?
「자존심」
p 189
그 말에는 내가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었다. 그래야 어린 시절에 머무르면서 모두를 내 옆에서 지내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는 너무 간단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내 학창 시절은 내가ㅡ내 얼굴이ㅡ어떻게 보이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 가버린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대끼지 않고도 이곳에서 살아남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이곳에서 용케 버텨낸 것을 나는 승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우리 모두를 다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데려가는 것을 원하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고맙지만 그건 사양하겠다.
p 197
오래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가는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된다. 모두의 얼굴이 고통을 경험했다.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코리」
*(Agalma) 멋진 추리소설. 코리-편지-하워드
「기차」
*(Agalma) 잭슨의 떠나는 방식이 이 소설의 모티프. 일리, 벨, 보디 던디라는 이름의 건물에서의 세 밤. 메노파 교회의 어린 소년들이 마차를 타고 지나가며 부르는 노랫소리. 시대의 활동사진처럼 흘러가던 인물들의 삶.
「호수가 보이는 풍경」
*(Agalma) 파킨슨병이었던 앨리스 먼로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깊은 이해
「돌리」
p 322
그 어떤 거짓말도 결국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p 329
시인의 시에 대해 시인에게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히.
※ 피날레
*(Agalma) 앨리스 먼로가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자전적이지만 때때로 사실적인 측면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고 밝힌 자전소설
「시선」
p 355
내가 다섯 살 때 난데없이 남동생이 태어났고, 어머니는 그것이 내가 늘 바라던 일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몰랐던 생각을 어머니는 어떻게 알았던 걸까. 어머니는 그 생각을 상당히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모두 꾸며낸 것이었지만 반박하기 힘들었다.
*(Agalma) 이렇게 시작되던 것이 '세이디'로 집중되던 절묘함. 그리고 멋진 피날레.
p 351
그런데도 오랫동안 그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그날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장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부자연스러운 시체 분장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졌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고 생각했다. 한때 있던 젖니가 빠지고 새 이가 나도 당신은 젖니가 실제 존재했었다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처럼, 나는 그 일을 그렇게 쉽게 믿었다. 어느 날, 아마 십대였을 때, 마음 속에 어두운 구멍을 간직한 내가 지금의 나는 더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
「밤」
*(Agalma)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의 먼로가 겪은 가정사 비극을 '불면'으로 풀어낸 작품
「목소리들」
*(Agalma) 性에 눈 뜬 청소년기 환상의 편린을 잔잔하고 섬세하게 연결해내는 이 문단에 감탄.
p389
얼마나 오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춥고 어두운 내 침실에서 그들이 나를 살살 흔들어 잠재웠다. 나는 스위치를 켜듯 그들을 불러내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렸다. 오,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들의 목소리는 나와 상관없는 제삼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이 내 가는 허벅지를 축복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내 에로틱한 환상 속에 머물러 있는 사이, 그들은 떠나버렸다. 그들 중 몇몇이, 대부분이, 영원히 떠나버렸다.
「디어 라이프」
*(Agalma)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인간으로서 '어머니'들을 되돌아본 앨리스 먼로의 마지막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