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도 하지 않고 잤다. 거기서도 나는 얼마나 많은 이미지를 놓쳤던가. 기차는 이미 저만치 가버린 것처럼.
눈을 뜨자마자 그림을 그렸다. 아무리 해도 표정은 잘 잡히지 않았다. 이 눈빛이 아닌데... 이 포즈가 아니데... 이 풍경이 아닌데... 자꾸만 달라지면서 남는 것. 다 그리고 나서 오는 또 다른 기시감. 로버트 파카 사진이 떠올랐다. 그런 것인가. 이런 것들은 우리의 원형일까. 원형으로 남고야 마는 것일까.

 

 

 

(재료: 연필, 파스텔, 소요시간: 50분)

 

 

 

  공화파 알코이 민병대원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의 전사장면을 찍은 로버트 파카<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Spanish Loyalist at the Instant of Death)>(1936), 퓰리처 상 수상

 

 



증기기관차를 성적 이미지와 연결하는 프로이트를 가져온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저 그림을 떠나감에 대한 절박함이란 감정과 연결하겠다.  그것은 내게 거의 언제나 그랬다. 인간의 개인적 위치와 무의식을 맞춰 보는 건 지난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방어벽을 끊임없이 깨고 들어가야 한다. 끊어진 연결들, 끊임없는 재구성.

 



오래전 찍어 놓았던 기차 사진들은 뗄 수 없게 붙어 있었다. 시간은, 이미지는 나도 모르는 사이 박제되어 있었다. 새벽인지 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어디로 가려고 거기 있었나. 추측만 가득하고 사실이란 것은 거의 남아 있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손쉽게 과거라고 말한다.

 

 

 

 

 

 

기억과 기차...

 

 


그리고 또 내가 보는 것은, 당신이 나처럼 나이 들게 되었을 때의 어느날, 이미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어느날의 일입니다. 그날 당신이 많은 것을 보게 되며, 그렇게 바라본 사물들 중의 무언가가 당신의 기억을 건드려, 그 기억이 우리들 주변을 서성이게 되고, 그리고 어느 순간 당신은 이 편지를 읽던 때를 떠올리게 되며, 그날 하루, 정처없는 산책에 나선 당신, 생명의 열정은 미지근하고 검게 굳은 피는 이상할 정도로 천천히 흐르며, 무엇을 잊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하면서ㅡ아마도 당신은 그것이 열쇠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ㅡ당신은 하루종일 그것을 찾아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떠돌 것입니다. 이 방 저 방을 느리게 돌아다니며, 간혹 누군가 당신을 도와주지 않을까 헛된 바람을 가지고 창밖을 바라볼 테지요. 그러면 항상 당신을 형성해왔던 다른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이, 당신이 연기해온 인물들, 당신을 연기해온 인물들이 정체를 숨긴 채 창문에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 나타났다 사라짐이 일정한 속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기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창문에서 나타나는 그들은 반대방향에서 오는 기차를 타고 당신을 스쳐지나가면서, 당신과 마찬가지의 생각에 잠겨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때로 스스로를 정녕 낯설게 여기는 것은, 그런 가상의 인물들에 대한 당신의 유난히 높은 감수성과 호응력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일생 동안 헛되이 그들 사이를 헤매고 다닐 테지요. 그들을 마치 당신 자신처럼, 그렇게 친근하고 남몰래 안타깝게 여길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 지금 어둡고 깊은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을 나의 난,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린 상태로 그날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그날도 여전히 당신 기억의 깊은 아궁이 속에서는, 타오르지 못한 불씨가 오랜 세월 동안 저절로 말라죽어가는 쓰라린 냄새를 풍기고 있을 것입니다.

 

배수아 ,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기차와 미술...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폴 델보(Paul Delvaux 1897~1994)

건축을 하려다가 화가로 전환해 활동한 초현실주의 화가. 그래서 그의 그림엔 건축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초기엔 야수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이후 키리코에게 자극받아 몽상적인 그만의 회화 세계를 보여줬다. 나신의 여인들과 기차 등이 어울려 있는 그의 그림들은 누구든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Forestry Station(1960)

 

 

 

 The sabbath(1962)

 

 

 

 Hommage a Jules Verne  (1971)

 

 

 

기차와 음악...

 

 

 

Sioen - Cruisin
 

staring bright through the window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저 햇살
you're bending over to me 
넌 나에게서 획 돌아섰지
a sentimental forsaken 
감상과 고독에 젖어있는 날

you're trying hard yet to comfort
안락한 삶을 위해 넌 아등바등 노력 중이지
but you're waving me goodbye 
넌 내게 이별을 통보했어
a sentimental forsaken 
감상과 고독에 젖어있는 내게
 
you're looking around you are hasted 
넌 두리번 거리더니 급히 서둘렀어
you're supervising my chief 
넌 현재 내 상사를 감독하는 사람이지
my heart is ticking, let it on 
심장이 몹시 두근거렸고 그건 한참 계속되었어
looks like you're dying to say 
네가 다 죽어가는 소리로 말하는 듯했어
but now you turn your head away 
그러나 몸을 돌려
get out and leave me, let it on 
영영 날 두고 나가버렸지
 
but when it's going to be ok 
난 점점 원기를 회복하고 있고
i'm cruisin' on a train 
현재는 기차를 타고 여행 중이야
i've got to fear no holiday 
휴일이 없어서 힘들긴 하지
fear is where i'm in
그래서 끔찍해
 
staring bright through the window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저 햇살
you're moving closer to me 
넌 내게 벽을 쌓아가고 있어
a sentimental forsaken 
감상과 고독에 젖어있는 내게
you're trying hard yet to comfort 
안락한 삶을 위해 넌 아등바등 노력 중이지
but now you're waving me good bye 
하지만 넌 내게 이별을 통보했어
get out and leave me, let it on 
영영 날 두고 나가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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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1-13 0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대단한 실력이세요^~^ 파스텔이라서 그런가. 좀 따뜻한 느낌도 있고 말이죠.로버트 파커의 사진을 떠올리시고 프로이트까지! .제겐 조금 어려운 예술세계지만 아침 준비로 육수내던 짬에 잠깐 들러서 호강하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AgalmA 2017-01-13 07:21   좋아요 1 | URL
파스텔 느낌이 꿈과 비슷하잖아요^^ 모호하면서도 아름다운...
저도 많이 아는 거 없어요. 계속 연결해보며 뭔가 발견하길 바랄 뿐.
어떤 맛있는 걸 만드시려고 육수를ㅎㅎ 김이 모락모락나는 부엌, 생각만 해도 따뜻해지네요.
^~^ 이 표정 다시 보니 더 훈훈^^

겨울호랑이 2017-01-13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제겐 ‘기차‘하면 ˝은하철도 999˝가 떠오르네요...너무 유치한 것 같지만..ㅜㅜ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어려운 내용의 만화를 용케 재미있게 본 듯합니다. 물론, ‘메텔‘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요..ㅋㅋ 오늘도 좋은 그림 보고 갑니다. Agalma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7-01-13 08:30   좋아요 1 | URL
유치하신 분이 <학문의 진보> 보십니까ㅎㅎ;
생각해보면 은하철도 999 어려웠어요. 내용도 그로테스크했고. 천년여왕, 하록 선장 등등...당시 우주,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스며 있었을지도.

hnine 2017-01-1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래 사진들을 보면서 저는 여러 장의 연관된 사진들을 일부러 붙여서 만드신 꼴라쥬 작품인줄 알았어요. 멋있어요!

AgalmA 2017-01-13 09:38   좋아요 0 | URL
우연이 만든 묘미겠죠. 자료로 많이도 찍고 많이도 모았죠. 스크랩북에 테이프로 붙여 두었는데, 자기들끼리 붙어서 저러고 있더라는ㅜㅜ... 떼면 사진들이 손상될 거 같아 손을 못 대겠더군요;; 정리를 늘 해줘야 하는데, 요즘 디지털 사진만 찍다보니 소홀해서 저 사달이ㅜㅜ

yureka01 2017-01-13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버트 파커..종군사진작가..전쟁터로 다니며 사진 찍었죠.결국 자신도 전쟁터에서 죽었던 사진 작가..그림이 오늘따라 강합니다.....어이쿠...

AgalmA 2017-01-13 09:28   좋아요 1 | URL
네. 전시회도 갔었는데 이상하게 큰 인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증기기관차의 색조 때문일까요?

cyrus 2017-01-13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에 나오는 기차역이 ‘박제된 시간‘의 묘한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거기에 사람도 없어요.

AgalmA 2017-01-13 10:14   좋아요 0 | URL
키리코에게 영향을 받은 폴 델보의 기차 그림들을 저는 인상적으로 생각하죠. 본문에 추가했어요^^

2017-01-13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7-01-13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차였군요. 저는 곰인형에 눈이없네, 생각했네요. ㅋ
50분만에 저런 완성도라니 부러운 재능이십니다 ^^

AgalmA 2017-01-13 11:11   좋아요 0 | URL
곰인형ㅋㅋ 토마스와 친구들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ㅎ! 아니, 왜 안 되겠어요. 이렇게 재밌다면^^
연상하시는 게 다양해서 저도 참 재밌습니다ㅎㅎ

그림은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올해는 더 잘 그리고 싶어서 공부책도 샀고^^;;

단발머리 2017-01-13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물론 <50분>에서 제일 감동받았지만 ㅎㅎ 그림과 음악, 그리고 조근조근한 해설이 있는 이런 공간을 정말 뭐라하면 좋을까요. Agalma 문화 살롱~~~*^^
아침부터 눈호강, 귀호강 하고 갑니다ㅎㅎ

AgalmA 2017-01-13 13:44   좋아요 0 | URL
추적 60분도 아니고ㅎㅎ; 잡다함의 부비트랩으로 안 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
처음엔 이런 글이 아니었는데 이웃들과 대화를 나누다 이러저런 것들이 떠오르고 계속 추가하다보니 지금의 모습이 되었지요. 여러분 덕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살롱이 맞긴 맞네요ㅎ

양철나무꾼 2017-01-1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그림엔 목도리를 길게 두르는게 종종 눈에 띕니다.

이사도라 덩컨도 떠오르고, 영화 ‘페도라‘도 떠오르네요~^^

AgalmA 2017-01-13 19:54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 생각했어요. 그리고 누가 이 얘기 할 거 같은데 했는데, 제 그림에 관심 많은 양철나무꾼님이 먼저 해주셨군요^^
지금 시기적으로 그래서 지난 번 크리스마스 1일 1그림처럼 목도리가 많은 것도 같고, 제가 늘 세상을 여행하는 곳이라 생각하는 것도 작용하는 거 같아요. 아이템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다음엔 더 신경 쓰던가 아니면 더더 쓰던가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그것도 다 그리고나서 생각하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싶으면 또 무의식적으로 그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