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아서 고든 핌이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낸터킷의 존경받는 상인이었다˝ ㅡ 에드가 앨런 포 『아서 고든 핌의 모험』 (1838) 첫 구절
˝내 이름은 이스마일(추방자, 방랑자라는 뜻)이라 부른다. 몇 해 전ㅡ정확하게 언제였는지는 묻지 말아 주길 바란다ㅡ내 주머니는 거의 텅 비고, 육지에는 흥미를 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잠시 배라도 타고 세계의 바다를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우울한 마음을 털어 버리고, 혈액 순환을 조절하고 싶을 때면 나는 이 방법을 취한다. 또 입가에 험상궂은 주름이 늘 때, 특히 우울증이 나를 짓눌러 웬만큼 강하게 도덕적인 자제를 하지 않으면 거리로 뛰쳐나가 남의 모자를 계획적으로 벗겨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ㅡ그런 때에는 더욱더 되도록 빨리 바다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게 권총과 총알의 대용물이다.…… ˝ ㅡ 허만 멜빌 『모비 딕』 (1851) 첫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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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서 고든 핌의 모험』 이 아니었다면 『모비 딕』 도 상당히 달라졌을 거라고 추측한다.
(심심해서는 아니고) 두 작품을 비교해 본 적 있다. 멜빌은 처음엔 포의 영향을 받았을 걸로 짐작한다.
나중엔 『모비 딕』 을 바다의 돈키호테 같은 서사시적 모험물로 만들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조이스가 멋지게 『율리시즈』 로 또 다른 오디세우스를 만들었듯이.
도입부에 고래에 대한 현학적이면서 장대한 백과 사전식 나열을 보라.
포 『아서 고든 핌의 모험』 은 1837년도부터 뉴욕 신문에 연재되었고, 1838년도에 출간되었다. 뉴요커였던 멜빌은 그것을 읽었을 것이다. 재밌는 점은 1837년도에 초등학교 근무를 하던 멜빌은 1838년도에 <탁상> 단편을 지방지에 게재하고 돌연 대서양을 횡단하는 세인트 로렌스 호의 급사로 항해를 떠난다.
섬에서 군 생활 잠시 한 게 다일 뿐 항해해 본 적도 없이 대단한 항해 소설을 쓴 포와
포경선의 경험, 식인종에게 잡혀 섬에서 억류생활, 군함 생활 등 다양한 해양 경험을 한 멜빌.
『모비딕』 은 1851년 7월에 멜빌이 탈고하여 10월에 런던에서 『the white whale』 로, 11월에 뉴욕에서 『moby dick』 으로 발표, 두 가지의 제목을 따른다. 그래서 국내 번역 제목으로 『백경』, 『모비딕』 두 제목이 있는 것. 예전엔 『백경』이라 많이 말했지만 요즘은 『모비딕』이 일반화되었다.
15년 차이를 두고 있는 이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멜빌이 포의 어떤 점을 능가해 추앙받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이 워낙 기괴한 전개라ㅎㅎ... 처음엔 아동문학 같더니 뒤로 갈수록 호러 판타스틱! 고전 작품 추앙자들이 안 좋아할 만 하지...
흡사 액션물이 공포물로 바뀌던 로버트 로드리게즈 <황혼에서 새벽까지>(영화, 1996) 전개와도 비슷하달까?
에드가 앨런 포가 시/소설 작법론을 썼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포의 시론은 칸트와 비견할 만 하다, 아니 그가 생각한 이론이 칸트와 맞아 떨어졌다고 봐야 할까. 내막은 포 자신만이 알겠지)))
포가 소설의 원리로 제시한 것은 "독창성, 간결성, 효과의 통일성과 수학적 치밀성"이다.
포는 단순히 공포/탐정 그런 식의 규획, 기획으로 작품을 쓴 게 아니다.
그는 천재적으로 치밀했고, 염세성과 현실의 불운은 수레바퀴처럼 작용했다.
그의 전기를 보면 눈물이 글썽여진다....흑)))
단언하건대 글(시/소설)은 몰입하고 읽게 만드는 힘 자체다. 그래서 '내용이 곧 형식을 만든다'는 말이 나오는 것.
작가의 가치관과 상상과 의도와 호소가 그 속에 보이지 않게 녹아 있는 것과 설탕 범벅처럼 외부에 돌출되어 있는 것 중 어느 걸 최고라 말하겠는가? 돌출된 재미 때문에 후자를 먼저 선택할 수는 있다. 난 색다른 거~난 고전물 지루하더라~난 도전을 좋아해~영역들도 요즘 파워가 세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최종적 평가에 있어서는 (취향을 접고라도) 전자를 더 최고로 꼽지 않을까.
요즘은 영역 붕괴가 늘어나는 추세라 이 평가도 앞으로 다양해지겠지. 우려되는 것은, 취향이 매체에 의해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결국 무엇을 어떻게 더 많이 담으면서 간결할 것인가, 그 원리를 파악한 자가 작가다.
가장 미세한 입자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침투한다.
모험 가득하고 시원한 해양소설 읽고 싶어지네~~~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