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만들어진 신화
송호정 지음 / 산처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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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서에 ‘민족’(民族)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근대 역사가 신채호의 ‘독사신론’(讀史新論)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민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단위를 통해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역사’니, ‘전통의 발명’이니 하는 말들이 떠오르는 맥락도 비슷하다. 현재의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역사가 동원되거나 없던 전통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사례는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돼버렸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킨다거나 북한이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복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역사 만들기’ 작업인 셈이다.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쟁점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단군과 고조선’ 문제다. ‘단군, 만들어진 신화’를 쓴 고대사학자 송호정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부의 역사 인식에 영합하는 보수우익 집단이 대거 등장하면서 웅대한 한민족사와 고조선사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며 “역사와 민족에 대한 지나친 우월의식으로 인해 한국사의 유구함과 영토의 광대함을 밝히고자 하는 의욕만이 앞서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논란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이 책을 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료와 유물에 대한 엄정한 분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구성해야 하는 그에게 신화는 그저 신화일 뿐이다.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볼 때 단군이 민족의 시조이자 실존인물이라는 일반인들의 믿음은 허황된 것이다. 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가 이런 얘기를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숱한 ‘재야사학자’들과 사이비 민족주의자들이 신화를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다. 북한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고구려 귀족의 무덤을 단군릉이라며 대동강 문명권을 주장하는 북한은 ‘만들어진 신화’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정당화하려 한다.

저자가 일차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단군에 대한 탈신화화다. 고조선의 건국 시기, 단군의 실존 여부, 기자조선 문제, 강역 문제 등 한국 고대사의 가장 예민한 쟁점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반만년 대륙 민족의 영광사를 되찾아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식의 과잉 민족주의 언설들이 가진 위험성을 비판한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환단고기’와 같은 재야사학자들의 저서들도 비판의 목록이다. 저자에 따르면, 붉은 악마의 상징인 치우가 실존인물이며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주장도 허구다. 국사교과서 역시 신화에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

한국인들에게 단군은 민족 정체성의 구심이면서 민족적 위기 시 민족을 통합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저자는 단군신화가 가진 긍정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화를 역사로 인식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저자는 고대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은·주의 신화시대조차 실제 역사라 말하는 중국의 ‘저급한 논리’는 역사학적으로 극복돼야지 항의집회나 민족주의에 호소한다고 해결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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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일제 침략사
임종국 지음 / 한빛문화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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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3월 2일, 일제의 초대 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에 부임했을 때 그의 수행원 가운데는 4명의 화류계 여자가 섞여 있었다. 이토는 군대와 함께 일본의 ‘기생’을 한국에 들여왔던 것이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시 일본군은 한국에 진주하면서 서울 묵정동에 70여평의 공창가를 조성했다. 이곳은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신마치’(新町)로 불리면서 8천3백여평 규모의 ‘인육시장’으로 발전했다. 일제는 “한손에 칼, 한손에 ‘코란’이 아니라 대포와 기생을 거느리고 조선에 왔던 것”이다.

친일문제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고(故) 임종국씨의 ‘밤의 일제 침략사’는 일제에 의해 시작된 한국 ‘밤문화’의 기원을 찾아 나선다. 한·일 병탄을 추진하고 군대를 진주시켜 대륙 침략의 야욕을 불태웠던 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한낮’의 얼굴이라면, 요정과 게이샤가 동원된 유흥문화의 잠식은 일제의 ‘밤의 얼굴’인 셈이다. 이 당시 형성된 근대적인 밤문화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 6·25를 거치면서 현대의 환락가로 이어졌다. 최근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는 집창촌 역시 일제시대에 비로소 근대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일본군 사령부가 있었던 용산에는 1908년 무렵부터 공창가가 형성됐다. 현재에도 건재한 용산의 사창가 역사는 이즈음부터 시작된 셈이다. 요정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임씨는 1887년 일본에서 건너온 이몽이 개업한 정문루가 한국 최초의 고급 요정이라고 쓰고 있다. 당시 조선은 돈벌이에 좋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일본 여성들이 대거 건너왔다고 한다. 정식 게이샤는 극히 드물었고 무허가 작부들이 단신으로 건너온 경우가 많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통감정치가 시작되면서 당시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일본 요정에 정식 게이샤가 대거 들어왔고, 이때부터 ‘요정 전성시대’가 개막된다.

신마치 묵정동이 공창가였다면 소공동 일대, 태평로와 을지로, 청파동, 명동 일대에도 일본 매춘부들이 들끓었다. 일본 기생들이 많아지면서 일종의 게이샤 조합인 ‘권번’이 출범한다. 1920∼30년대에는 본권번·신권번·남권번 등 세개의 게이샤 권번이 3백50여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게이샤 권번의 출현으로 한국 기생들도 조합을 결성하게 되는데, 일제의 3개 권번에 대해 한국 기생들은 대정·한성·한남·대동의 네개 권번으로 재편된다. 조선인 창녀들은 1908년 경성창기조합을 결성하면서 조직화를 시도하게 된다. 임종국씨는 1930년대 무렵 일본인 1천4백34명에 1명꼴로 일본인 게이샤가 있었다면, 조선인은 4만3천여명에 1명꼴로 기생이 있었다고 전한다.

일본인 통감들은 저마다 게이샤 취향이 달랐다. 이토 히로부미의 관저는 언제나 게이샤와 건달패들로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화대로 쌀 2백가마에 해당하는 1천원을 선뜻 지불할 만큼 통큰 사내였지만, 기실 이토의 유흥비는 한국 침략으로 일제가 빨아들인 돈이었다.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수장 송병준을 비롯한 친일파의 거두들도 일제가 조성한 유흥가의 단골이었다. 송병준이 일본인 애첩 오카스를 시켜 차린 청화정은 일제 통감부 문관들 전용인 화월, 무관들이 자주 드나들던 국취루와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친일파의 총본산이기도 했다.

전통시대 한국 유흥가의 주역이었던 기생들은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 곧 노래는 팔지언정 몸은 팔지 않는다라는 명예로운 관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밤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한국 기생들의 법도도 사라져 갔다. 가령, 조선의 기생들은 손님 옆에서 술을 따라주는 관습이 없었다. 일본인들이 일본 요정에서 조선 지배층을 접대하면서 기생들에게 술을 따르게 한 것이 조선 기생의 법도를 깨뜨리고 새로운 관습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창·가무 등 예인의 자질과 시·서·화에 능한 기생은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기생과 창녀의 구별도 모호해졌다. “전답 좋은 것은 철로로 가고, 계집애 고운 것은 갈보로 간다”는 당시의 속요처럼 일제가 조성한 유흥가 속으로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 빨려들어 갔다.

일제 말기 들어 식민지 조선 전체가 전시체제로 변하면서 조선의 유흥가는 대륙 진출을 꾀하게 된다. 국내에서 폐업한 포주·접대부·요정업자들이 대륙 곳곳의 ‘전선’으로 진출해 ‘황군’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애국적 영업으로 각광을 받았다. 일본군이 직영하는 매춘업소들도 등장했고, 조선인 포주들도 해외에 사창가를 건설했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만들면서 조선인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여자사냥’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다. 한국에 최초의 공창가를 만들었던 일제는 일본군이 진주한 전역에 걸쳐 또다른 매춘가를 건설했던 것이다.

임씨의 책은 이같은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자이크처럼 펼쳐진 당대 하류문화의 풍속도로서는 모자람이 없다. 이토 히로부미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등 한국에 진주한 일본인 최고 권력자들이 누린 사치와 향락, 최고의 요정 중 하나인 화월의 게이샤 유키코나 한국인 기생 초옥 등 당대 밤문화 주역들이 보여주는 드라마들은 이 풍속사의 두께를 더욱 두텁게 만들어주고 있다. 일본이 36년간이나 한국을 지배한 것은 결코 무력의 우위 때문만이 아니었음을 이 책은 생생히 증거한다. 오래 전 ‘한국사회풍속야사’란 제목으로 출간됐던 이 책이 별다른 자료의 보강없이 그대로 출간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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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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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무함마드 깐수’ 교수가 북한 간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는 당국에 체포돼 자신은 북한에서 온 ‘정수일’이라고 순순히 밝혔다. 한국인이었던 그의 아내조차도 신분을 몰랐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감추었다. 5년여의 감옥생활 끝에 2000년 석방됐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석방 직후 그는 초인적인 집필력으로 ‘실크로드학’·‘고대문명교류사’ 등의 역저와 ‘이븐 바투타 여행기’·‘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난해한 고전을 잇따라 펴냈기 때문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정수일씨의 파란많은 인생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감옥 밖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은 이 책은 사적인 내용의 서한집이 아니다. 정씨는 분단시대의 비극이 그대로 농축돼 있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민족주의자이자 이슬람 학자로서의 공부 내력과 포부를 담담히 서술한다. 남한 사회에 그는 ‘간첩 깐수 교수’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치열한 학자로서의 면모다.

그는 한국어·일본어·중국어·아랍어·페르시아어·말레이어·타갈로그어 등 동양어 7종과 러시아어·영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12개 언어에 능통한 인물이다.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그의 학문적 궤적과 성취는 학계에서 세계 일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다른 이력만큼이나 그가 풀어놓는 에피소드들도 눈길을 끈다.

그는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해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했다. 중국 내 젊은 조선족 엘리트들이 ‘잔류파’와 ‘환국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다 자신은 조국의 건설을 위해 북한행을 택한 과정, 압수당한 ‘고대문명교류사’ 원고를 사형을 구형한 검사한테 돌려받은 일화 등 불우했던 천재학자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중국 외교부에서 일할 때 저우언라이 가문의 한 여성으로부터 구애를 받았으나 이미 북한행을 결심한 그는 구애를 거절했다. 이 ‘러브스토리’는 그의 법정 신문에서도 화제가 됐다.

중국 잔류파로 중국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낸 조남기씨와 그의 삶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같은 중국 내 조선족 엘리트였던 조남기씨가 남한 언론으로부터 ‘조선족 영웅’ 대접을 받았던 반면 ‘조국’인 북한을 택한 그는 영어의 몸이 됐던 것이다. 그는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두루 섭렵하고 ‘실크로드학’이라는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는 그에게 ‘간첩’이라는 수식과 감옥생활은 삽화에 불과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정수일씨는 세계적인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강단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이만한 학자를 대접하는 데 한국 사회는 너무나 인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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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 무엇이 문제인가
신장섭.장하준 지음, 장진호 옮김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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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의 저자들은 매우 단호하게 한국 경제의 시스템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기자로 활동하다 지금은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로 있는 신장섭과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바로 그들. 두 학자가 공동으로 펴낸 이 책은 한국의 ‘구조 개혁’의 기본틀을 도마에 올려 놓고 각종 실증적 근거를 토대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개혁’이 선이고,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는 외침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방향조차 틀렸다는 것이다.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전개된 구조 개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 점령세력에 의해 일본과 독일의 기업들이 강제로 해체된 이래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그중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은 저자들이 이 책에서 핵심 주제로 삼고 있는 분야다. 금융 부문과 공공 부문에서도 상당한 진통을 겪으며 구조조정이 실시됐지만, 기업 부문이야말로 “전체 틀을 구성하는 주제”였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결과 한국 경제는 활력을 상실했으며, 국민 경제에 커다란 비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구조 개혁은 영·미식 경제 시스템이라는 틀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재벌 개혁은 그러한 시스템으로 가기 위한 기업 개혁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재벌 개혁 조치로 도입된 부채비율의 감축은 위험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했으며, 빅딜과 워크아웃도 성과가 없었고 오히려 기업의 생존 능력을 후퇴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꼽히는 정부의 산업정책과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대마불사의 논리도 한국 경제의 실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저자들이 진단하는 위기의 진정한 원인들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경제를 이끌어가는 “발전 국가의 쇠퇴, 금융 자유화의 부실 운영, 전지구화의 도전에 대한 재벌들의 대처 실패” 등이다. 한국 경제에 적합하지 않은 영·미식 시스템에서 탈피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정책을 실시하고, 국제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기업그룹화(재벌)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한다. 재벌에 대한 옹호와 비판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재벌 경제가 가진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최근 10여년 동안 이뤄진 한국 경제 개혁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서일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명한 것으로 믿었던 논리들이 이 책에서 하나하나 전복된다. 무엇보다 투자 부진과 대량실업, 빈부 격차의 확대라는 ‘현실’은 그동안의 개혁 조치들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바꿔’라는 소리를 그 세월 내내 들었지만, 대체 나아진 것이 없으니 이건 뭔가 잘못 바꾼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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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1-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 아쉬웠던 게 재벌에 대한 비판은 없더군요.

SERI를 많이 인용하던 것도 눈에 띄구요.
 
언론.정치 풍속사 - 나의 문주 40년
남재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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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학자는 술을 마시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을 ‘호프만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그것은 문학평론가 김현씨의 말을 빌리면 “술이 위 속으로 들어가면 말의 성감대를 움직여 사람의 입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원로 언론인이자 정치인인 남재희씨는 술과 그 자리의 ‘말’을 즐기는 사람이다.‘호프만 콤플렉스’로 가득찬 그의 술자리는 한국 정치의 정사(正史) 뒤편에 숨은 야사(野史)의 보고다. 19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언론·정치사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그의 술자리에 불려나와 불콰한 얼굴로 말의 성찬을 풀어 놓는다.

‘언론·정치 풍속사’라는 제목을 단 남씨의 책은 지난 40년간 교유했던 인사들과의 취중 진담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남씨는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정치부장·논설위원과 서울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1979년 10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4선을 기록한 관록의 정치인이다. 언론계와 정치권을 두루 섭렵했던 남다른 이력은 그의 술벗들의 면면을 짐작하게 한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거물급 인사만이 아니라 고급 살롱의 마담에서부터 사회운동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술벗들은 풍성하리 만큼 다양하다. 그는 이들과 더불어 보낸 술집 행각을 일컬어 ‘사회학적 순례’라고 부른다. 술을 통한 한국 사회의 풍속 탐구라는 뜻이겠다.

남씨는 두주불사형의 애주가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고백하듯이 ‘호사가’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굵직한 인물들의 됨됨이를 짐작케 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다. 화장실에서 만난 박정희 대통령이 소원 한가지를 말해보라고 하자 “공장에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피력하는 선비 언론인 송건호씨, 촌지를 받지 않았다는 30년 전의 기억을 컴퓨터처럼 떠올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술집에 홀로 와서 술잔을 기울이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살롱계를 주름잡던 마담들과 그들에 얽힌 이야기 등 그의 ‘문주(文酒) 40년’의 일화들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펼쳐진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을 각각 검도와 축구의 주장, 테니스에 비유하는 재치도 눈길을 끈다.

그는 “대폿집을 갈 줄 아는 정치 지도자. 나는 그런 지도자를 바란다”고 말한다. 근엄한 얼굴로 국가와 민족만을 말하는 금욕주의자는 인간적 깊이가 그만큼 옅다는 얘기다. 고은 시인은 남씨를 “의식은 야에 있으나/현실은 여에 있었다/꿈은 진보에 있으나/체질은 보수에 있었다//시대는 이런 사람에게 술을 주었다”고 읊고 있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남씨의 인간적 깊이는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에서부터 보수 정치인, 그리고 권영길과 같은 진보 정치인을 아우를 만큼 넓고도 깊다. 지난해에는 여야 3당 대표가 룸살롱에서 7백만원짜리 폭탄주 파티를 벌여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런 시대에 빈대떡집에서 정계와 언론계의 거목들이 소주를 마시는 남씨의 술자리는 ‘전설’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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