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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 문화주의 기업문화 - 영국정부와 예술 정책
김정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0월
평점 :
시인 김정환이 <기차에 대하여>(창비)라는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시집’을 내고 난 뒤 그당시 부상하던 ‘압구정 문화’에 대해 “우리는 사회주의의 미래를 24시간 편의점의 실내만큼 화려하게 그려본 적이 있던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노동해방과 사회주의를 말하던 한국의 숱한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은 19세기 러시아만큼이나 우중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려보이는 문화의 미래 또한 낫과 망치로 묘사될 수 있을 만큼 후진적인 것이었다. 제임슨이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라고 말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지식수입상들에 의해 한국에 상륙했을 때조차도, 이들은 그것이 가진 소비자본주의와의 결탁과 반민중성을 분석하고 폭로했을 뿐, 이렇다할 대안적 논리도 보여주지 못했다. 20세기 초반 마야코프스키가 참여했던 시대착오적인(?) 미래파 운동인 프롤레트쿨트만큼도 ‘화사한 미래’를 그리지 못했다. 그들이 남긴 문화적 스타일은 저 누추한 개량한복이고, 남은 논리는 <문화과학>류의 ‘구라’일 뿐이다. (이건 너무 심한가?)
1970년대 이래 한국의 민중문화 운동이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듯이 한국의 주류문화도 이렇다할 문화적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 동물원 옆에 처박힌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보아도, 예술의 전당에도, 세종문화회관에도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의 문화는 “없다.” 동남아와 아랍인들을 사로잡았다는 이른바 ‘한류’도 기실 따지고 보면, 헐리우드의 문화적 독점력이 약화된 시대에 그것의 손쉬운 대체물로서 선택되고 소비된 것일 따름이다. 일본문화는 로컬리티가 너무 강하고, 중국은 세련되지 못했으며, 유럽의 그것은 흡인력이 약하다. (백원담, <한류>) 최근 한달여 동안 꾸역꾸역 <문명화 문화주의 기업문화>(김정희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한국의 문화적 빈곤은 압축적 근대화가 낳은 부정적 유산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성숙과 변동은 자본주의의 진전과 변화와 더불어 함께 진행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서 복지에 따른 병폐를 말하는 것이 우스운 것처럼 공공의 문화를 위한 시도를 해본 경험이 없는 나라에서 ‘문화국가’ 운운한다는 것도 가소로운 일이다.
이 책을 한겨레에 실린 작은 소개기사를 보자마자 주문했는데, ‘영국정부와 예술정책’이라는 부제가 유독 눈길을 끌었던 탓이다. 480여 쪽에 3만원씩이나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국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저력이 참으로 부러웠다. 감히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과 우리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빈약한 유산과 얄팍한 문화는 빗대어 볼때 한층 더 초라하다. 영국은 알려진 대로 수백 년에 걸쳐 자본주의의 전형적 발전과정을 밟아온 국가다. 경제발전의 과정만큼이나 문화적 성취도 오랜 축적의 역사와 탄탄한 기반을 자랑한다. 이 책은 오늘의 영국과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상당부분 ‘국가의 역할’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서글픔과 초라함은 우리는 이제껏 그런 국가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새삼스러운 자각 때문이다.
저자는 서울대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인데, 영국에서 일년간 연구년을 보내면서 이 책을 썼다. 그녀는 런던의 화랑가와 국립도서관,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영국을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는 품격과 교양, 천천히 진행되는 북유럽의 봄, 영국 도서관의 고요함과 쾌적함, 사우스뱅크의 질이 있고 종류가 다양한 음악과 영화 프로그램, 런던 하늘의 드라마틱한 구름, 리전트 파크의 자작나무 이파리 소리와 그것이 만들어주는 바람의 느낌”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국립 박물관/미술관의 무료입장과 저렴한 음악회 티켓 가격 같은 것이다. 영국은 한 사회에서 예술이 어떻게 수용되어야 하고, 국가는 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범적 사례를 제공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18세기 이후 영국의 문화정책과 그것이 목표로 한 바를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그 출발점은 1759년 1월 15일 개관한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다. 세계 최초의 박물관이자 대영제국의 영광을 그대로 집약해 놓은 이 거대한 박물관은 국민 교육을 통하여 영국사회를 ‘문명화’하는 것을 존재이유로 삼았다. 대영박물관의 이사들은 “컬렉션은 전체가 다 보존되어야 하고, 보기 위해 무료로 접근하고 숙독하고자 하는 일반 국민의 사용과 이익을 위해 보존되어야 한다”라는 조항이 담긴 문서에 서명을 했다. 국왕의 통치행위를 위한 보조기관으로 설립된 우리의 ‘규장각’과는 애시당초 비교가 안된다. 대영박물관은 엘리트계급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배우고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다윈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와 간디도 이 곳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할 수 있었으리라.
국립으로 세워진 대영박물관의 설립과 운영 원칙은 다른 국립 문화기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내셔널갤러리나 “영국 국민을 하나의 조직체로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설립된 테이트 갤러리, 빅토리아앤앨버트(V&A) 박물관 역시 국민에 대한 예술교육과 문명화를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그 핵심이 바로 이들 국립 미술관/박물관의 무료입장 원칙. 미술관의 소장품은 “국가의 재산이고 국민의 교육이라는 공공의 목적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무료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짧은 영국 여행 동안 나같은 외국인 여행자가 공짜로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 18세기 영국인들 덕분인 것이다. 국가가 박물관을 국민 계몽과 도덕교육의 주체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박물관의 정치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장품의 상당수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따른 유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의 ‘계몽주의적 열정’은 감동스럽다. 문명화의 과제는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중상주의와 결합하여 ‘공예산업’의 진흥과 같은 방향으로 바뀌었다. 도덕의 열정은 상업적 열정으로, 기술과 산업에 대한 강조로 변화했다. 1851년 5월 1일 시작되어 11월 31일까지 열린 국제 대박람회와 거기서 선보인 수정궁은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적 열정을 상징하는 예술과 산업, 기술의 집약체였다.
20세기 초부터 대처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영국의 문화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케인즈는 주식투자에 능하고 매력있는 여자를 찾아내는 데만 귀신인 줄 알았는데, 그는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문화정책가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의 CEMA(음악과 예술 장려회의)의 2대 의장이었는데, 이 기관은 “최대 다수에게 최고의 것을”(the best for the mos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예술적 성취에 있어서는 최고를 지향하고, 최대 다수(the most)의 국민들이 그것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사회적 접근성’을 내세운 CEMA의 전략은 복지국가론의 문화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국가는 ‘팔길이 거리’ 원칙을 내세워 예술에 대해 공공적 지원을 하지만 간섭을 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세금이라는 공공재원을 통해 운영되기 때문에 대다수 문화예술기관들은 모든 국민들이 무료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케인즈는 “과거에는 혜택받은 소수를 위해 비축됐던 순수미술의 즐거움을 도래하는 시대에는 대중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가 한 사회의 문화를 위해, 그 문화를 즐기고 수용하는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의 두 번째 제목인 ‘문화주의’는 바로 이 시기의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용어다.
문화적 케인즈주의로 불릴만한 이같은 논리는 20세기초부터 1979년 대처 집권 이전까지 영국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었다. 문화적 복지국가가 거의 80여년을 지속했던 것이다. 1970년대말 이른바 광산노조의 파업으로 불거진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discontent)을 배경으로 등장한 대처정부는 빅토리아 시대 이후 계속된 ‘문명화’, ‘문화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목표는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대처주의의 신념은 정부지원을 받는 공공기구(quango)들에게 강력한 민영화 프로그램을 강요했다. 이제 예술은 영국의 ‘기업문화’를 확산시키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게 대처리즘의 예술정책이었다. 대처시대에 많은 유적들과 공공박물관/미술관들은 먹고 살기 위해 ‘무료입장’ 전통을 바꾸기 시작했다. 유적의 상품화, 공공정책의 상품화, 공공문화의 상품화. 영국의 문화예술정책을 주도하는 아츠카운실은 “노동당의 요새”들이었기 때문에 폐지되거나 개혁 대상이 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민영화와 자율을 주장하는 대처리즘 시대에 공공예술기관들은 ‘팔길이 원칙’에서 벗어나 국가의 ‘간섭’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것. BBC도 ‘임명권’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이 점에서 BBC는 KBS의 선례가 된다.) 복지국가 시기에 독립적 기관들은 ‘중앙’의 통제를 받는 기구들로 바뀌었다. “팔길이 원칙이 손목 길이 원칙으로 바뀌었다.”
“아츠카운실, 즉 ACGB는 케인즈에 의해 국민에게 ‘위대함과 선’을 교육하고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중개하는 기구로 탄생했다. 케인즈와 같은 문화주의자들은 미술과 산업을, 문화를 실용성과 그리고 레저를 노동과 구분했다. 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기금을 통한 국가의 예술지원을 주장한 가장 큰 이유는 예술을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아츠카운실이 기금을 분배할 때 ‘예술적 가치’, ‘기준’, ‘질’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원칙은 경제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77년까지도 지속됐다. 그러나 아츠카운실은 대처시대에 두명의 의장이 기업들로부터 기금을 받고 이름을 빌려 줌으로써 상업주의적인 기업들을 국가가 문화애호적인 것으로 ‘인증’해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들로 변했다. 아츠 카운실이 기업들의 사업도구가 됨으로써 그것들로부터 보조금을 전달받는 예술기관들도 기업의 상업주의에 종속되어 갔다.”(278-279)
저자는 대처시대를 예술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시기로 묘사한다. 대처 시기에 테이트갤러리에는 다국적 기업인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 의해 ‘노무라방’이 만들어지고, 기업들은 “문화경영자적 자본주의자들”이 되어 미술에 스폰서를 한다. 맥주회사 벡스는 영국 미술을 후원함으로써 벡스가 영국의 ‘아방가르드 술’이 되고, 앱솔루트 보드카는 옥스퍼드 현대미술관의 ‘새로운 영국 회화’전을 후원하면서 독특한 ‘예술적 아우라’를 획득한다. 영국의 유명 광고회사 사치&사치의 찰스 사치가 “슈퍼 컬렉터”로 등장한 것도 이 시기. 그는 자본의 힘으로 미술품을 사들이고, 젊은 미술가들을 후원해 그들을 키우고, 작품값을 높여 엄청난 수익을 내고 되판다. 데미안 허스트(수족관에 포르말린을 넣고 상어를 집어넣은 이 작자의 작품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도대체 나는 알 수 없다), 트레이시 에민 등 대처와 사치의 아이들인 'yBas' 그룹이 등장하여 천문학적인 작품값을 기록한다. “오늘날 미학적 산물은 일반적으로 상품생산속으로 통합됐다”(프레드릭 제임슨)
대처 시대의 문화와 예술정책이 ‘기업문화’로 요약된다면, 블레어 노동당 시기는 ‘문화경제’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당의 옷을 입은 대처라는 표현 그대로 블레어는 대처의 공공문화기구의 민영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문화 예술 자체를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로 변형시켰다. 예술은 이제 ‘가치(교환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산업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무료입장과 같은 최소한의 공공성은 유지되었지만 민영화는 계속되었고, 예술은 더욱 기업화되었다. 블레어의 문화노선은 “예술과 문화를 창의적 산업들로 상표를 바꾼 것”이며, “문화활동과 에이전트 보다는 상품들의 경제적 이익들에 초점을 맞추고 경제적 글로벌화의 제국주의적 확산에 기여하면서 분명히 자율적으로 고립되어 실행되며 더 중립적으로 비치는 창의성이라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사회적인 문화를 주변화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블레어가 문화경제 노선을 위해 만든 기구는 DCMS(department of culture, media, and sports)다. 이 부서의 목표는 “접근, 우수함, 교육, 경제적 가치”(access, exellence, education, economic value)로 설정된다. 접근은 모든 계층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수함은 예술의 질적 탁월함을, 교육은 국민계몽과 문화교육을, 경제적 가치는 말 그대로 부를 창출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블레어 이전의 문화예술이 담당한 문명화, 문화주의, 기업문화라는 패러다임은 모두 ‘문화경제’ 패러다임 안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대영제국 시대의 문명화라는 잔영과 복지국가 시대의 케인즈주의와 대처리즘이 공존한다. 이쯤 되면 우리의 문화체육관광부(MCST,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가 블레어의 DCMS에서 빌어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블레어 시대에 이르러 “예술이 방송과 영화를 통해서 문화의 범주 안으로 통합되면서 예술의 경계와 질적 수준의 차이”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예술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과 아우라를 상실한 채 월마트 안에 쌓인 수많은 상품 중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문명화, 문화주의를 거쳐 기업문화와 문화경제에 이른 영국적 경로를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차라리 문명화 이전 혹은 거쳐야할 단계를 건너 뛰어 느닷없이 문화경제가 운운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 아닐까. (차라리 비동시성의 동시성?) 국가가 문화예술을 통한 교육과 계몽을 국민에게 한 번도 제대로 제공해준 적이 없는 역사적 빈곤 속에서, 문화강국이니 소프트웨어를 키우자느니 하는 것은 공허하고 허망한 노릇이 아닐까. DJ 정부는 콘텐츠 산업의 육성을, 노무현 정부는 창의산업을 외쳤지만 그것으로 역사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V&A에서, 내셔널 갤러리에서 절망하고 서글퍼 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부재로서의 역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족 한가지. 이 책의 저자는 많은 자료와 논문에 근거해서 책을 쓰고 있는데, 인용문들은 거칠고 어색하게 번역되어 있고, 문장은 학자의 글이라고 보기에는 난삽하기 그지 없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 하나는 대학원생의 보고서 같다고 평가했는데, 수긍이 가는 평가다. 영국 문화정책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 미문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책을 비싸게 구입할 독자의 처지도 마땅히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좀더 정돈되고 압축된 문장이었다면 이 책이 그렇게 두꺼워질 이유도, 따라서 비쌀 이유도 없을 것이다. 대처리즘 시기의 서술은 지나치게 미술작품과 미술계 동향에 집중되어 있어 정책와 기구, 패러다임 중심의 서술인 앞부분에 비해 돌출적이다. 책 전체의 균형이 기우뚱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