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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미학 산책 -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완결개정판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0월
평점 :
오래 전에 썼던 서평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을 다시 기억하노라면 희미한 인상만 남는다. 마치 눈을 감고 친구와 아무 걱정 없이 놀았던 초등학교 시절이나 그 이전의 즐거웠던 추억을 기억해보려 하면 친구의 이름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얼굴 윤곽도 흐릿해지고 희미한 인상만 남는 것과 같다.
이 책의 글쓴이인 정민 선생의 책 중 과거에 읽었던 <미쳐야 미친다>에 대한 나의 기억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베스트셀러라 아무런 생각없이 의무감에 읽었다는 것과 뭔가 실망스러웠다는 점 뿐이었다. 그나마 과거(2006년 가을)에 썼던 서평이 남아 있었는데 마치 과거 즐거웠던 기억과 추억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과 같아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권하건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꾸준히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면 훗날 이와 같은 즐거움을 얻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과거 내 서평을 읽어 보니 젊어 쓴 글이라 과욕과 치기가 더러 보인다. 그 시간 만큼 나 역시 세월 따라 생각이 바뀌고 안목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찌되었건 그 당시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제목은 멋있는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라 하여 굉장히 기대하고 읽었으나 기대에 못 미쳐 이와 같은 평가를 한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 책의 글쓴이 역시 <미쳐야 미친다>의 글쓴이 정민 교수다. 이번엔 과연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인지 궁금해 하며 이 책의 첫장을 펼쳤다.
'한시'의 현대적 의미는?
'한시'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일단 읽기 어려운 꼬부랑 글씨로 써져있어 해석하기 어렵고 공자님 말씀처럼 현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 역시 나름 정규 교육을 잘 받아 왔다고 생각하지만 옆 그림과 같은 꼬부랑 글씨(초서체) 같은 것은 전혀 해석할 깜냥이 없다. 그저 흰 것은 종이요 검정 것은 글씨일 뿐이다.
이와 같을진대 '한시'가 오늘날 외멸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 이상 한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젊은이가 줄어들고 한시 전문 시인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시는 골동적 가치만을 지닌 퇴영적 문화유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정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선인들의 한시 이야기를 먼지 털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과연 먼지 쌓인 역사의 뒤편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이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놓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힐 수 있을지 곰곰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 정신을 배울 뿐 표현은 본받지 않는다.
아마 이 글귀가 글쓴이 정민 선생이 이 책을 통해 독자 및 시인에게 던지고자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날 한시에 대한 관심이 한갓 골동품 완상 같은 호사 취미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고 시론과 비평론은 꼭 '현대'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구의 문예이론을 전달하는 상황에서 한유가 말한 '정신을 배울 뿐 표현은 본받지 않는다'라는 원리를 환기한다면 우리가 한시를 통해 퍼 올릴 수 있는 샘물은 무궁무진하다(p.667~668)고 정민 선생은 말한다. 또한 연구자들이 문화의 차이나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최신의 서구 이론을 무작정 대입하는 연구를 내는 것도 문제지만 미셸 푸코,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의 영향으로 cm가 아닌 자척으로 한시를 설명하겠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알아 듣는 사람이 없다고 글쓴이는 지적한다.(p.669)
하지만 이와 같은 글쓴이의 주장엔 의문만 더 커진다. 한시 해석에 있어 이것도 잘못, 저것도 잘못이라면 대체 어떻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문학성과 미의식을 기준으로 한 한시 연구를 강조하는데 이런 한시 연구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저 원론적인 말을 되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 책에 나온 연암 박지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마치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을 하나 주워놓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이 "숟가락 주웠다!"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p.290)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을 배울 뿐 표현은 본받지 않는다.'라는 원리는 한시의 현대적 의미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한시를 현대적 양식과 표현에 맞게 변화시키자는 것인지 아니면 한시에 담긴 정신 중 현대적 의미와 맞는 것만 찾아 보자는 건지 그 의미가 모호하다.
'한시 미학 산책'의 현대적 의미는?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가 잃어 버렸던 혹은 잊고 있었던 한시에 대해 글쓴이의 의도대로 어느 정도는 신선한 숨결을 불어놓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혔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 한시에 대한 좋은 책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 '한시'에 대해 한 권 추천해달라고 할 때 자신있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서 매우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