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송두율 교수, 철면피 폭력 언론…한국 가기 두렵다
송두율 교수 '방북 무죄 판결' 뒤 첫 인터뷰
'해방 후 최대 간첩' 내몬 뒤 모르쇠 '분개'
"사법부, 보안법 모순에 전향적 동의한 것. 실용정부 대북정책, 냉전 포위된 비실용"
» 송두율(64)
"사법부가 구시대 산물이며 국제적으로 늘 지탄의 대상인, 부끄러운 국가보안법을 과거처럼 적용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 것 같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64·사진) 교수는 1993년 8월 독일 국적 취득 이후 자신의 북한 방문이 국가보안법의 탈출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날인 18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사법부가 현행 국가보안법을 확대 해석해 잘못된 관행을 그동안 많이 남겼는데, 이번에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명예훼손 등 다른 부분의 상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독일 국적 취득 이전의 방북은 여전히 유죄'라는 사법부의 논리도 꼬집었다. "독일 유타 림바흐 괴테문화원 총본부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가교가 될 괴테문화원을 평양에 연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서울과 평양을 자주 오가는 그 역시 국가보안법이 적용된다면 처벌돼야 한다는 것이냐."
이번 상고에서 이른바 '소송사기' 사건은 그대로 넘어갔다. "내가 북의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주장한 황장엽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을 보수우익단체가 소송사기라고 주장해 기소 이유에 포함됐다. 이 부분도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번복시키지는 못했다. 황장엽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소송을 벌인 것처럼 몰아, 내게 도덕적으로 흠집을 가하려는 시도는 '가짜교수 송두율' 소동만큼 불쾌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일부에서는 북이 막 등장한 이명박 정부를 떠보는 전술 정도로 평가하지만,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의했고 대화의 문도 열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동-서독의 사례처럼, 연락사무소가 설치될 정도의 남북관계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견고한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현재 대북정책의 기조로는 어렵다."
"실용정부의 대북정책이 오히려 비실용적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지적한 그는 새 정부가 민족문제를 풀어가려면 "실용이 그저 '돈의 힘' 정도로 이해되는 것 또한 문제다. 실용에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서로 공존하기 위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낸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라는 책에서, 그는 2003년 9월 방한부터 다음해 8월까지 구금돼 있던 시기를 '광기와 폭력이 난무한' 상황으로 묘사했다. "책을 통해 한국 사회가 나와 관련된 일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기를 바랐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 일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내 사건이 이른바 '민주화'된 조건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나나 주위의 친지들 모두에게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서울을 떠난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은 더 당혹스럽다. '돈이면 최고지, 도덕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는 식의 '잘못된 계몽'에 묻혀 있다."
그런 까닭인지 그는 여전히 '귀국'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내가 한국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로 여기고, 또 서울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이른바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내두르는 그 야비한 구조적 폭력이다. '해방 이후 최대 간첩'으로 여론재판을 해놓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의 철면피한 언론이 지배하는 사회가 우선 싫다." 다만, 법적 체제 안에서나마 진일보를 보여준 이번 판결은 분명히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고 그는 덧붙였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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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송두율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이번 대법원 판결은 독일 국적을 취득한 1993년 8월 이후 방북 부분만 무죄라는 얘기인가?
=이번 판결에 따르면, 독일 국적 취득 이전의 방북은 여전히 유죄다. 하지만 △체제전복의 목적이 아니라, 가령 학술회의의 목적을 갖고 북한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 △남한이 아니라 외국에서 방북하는 것은 탈출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4명의 소수 의견도 있었다.
독일 유타 림바흐(Jutta Limbach) 괴테문화원 총본부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가교를 놓을 수 있는 괴테문화원을 평양에 연 것이라고 말했다. 현 서울의 괴테문화원 원장이 평양 원장을 겸임하고 있어 서울과 평양을 자주 왕복한다. 그도 국가보안법이 적용된다면 처벌돼야 한다.
지휘자 로린 마젤이 뉴욕 필하모니를 이끌고 평양에서 공연했다. 한국인 출신 단원이 8명이었다. 이들도 북한을 평화적인 나라로 선전한 셈이 됐으니, 국가보안법을 적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상식에 어긋나는 법이다.
-상고 내용이 얼마나 수용됐나?
=일부만 수용됐다. 이른바 '소송사기' 사건은 그대로 넘어갔다. 1997년 망명한 황장엽이 내가 북의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주장한 데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내가 김철수라는 증거도,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거도 없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황장엽이 내게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어정쩡한 판결을 내렸다. 2003년 10월 나에 대한 기소가 진행되고 있을 때, 보수우익 단체가 내 이미지를 손상시키려고 내가 황장엽을 상대로 소송사기를 했다고 검찰에게 고발했다. 검찰은 이를 수용해 기소 이유에 추가했다.
내 변호인들은 배상금을 노린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는 결국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부분도 무죄라고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이번에도 번복시키지는 못했다. 우리 변호사들도 국가보안법 적용 문제가 핵심이니 지엽적인 문제는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흡사 황장엽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서 벌인 소송사기처럼 몰아, 내게 도덕적으로 흠집을 가하려는 시도는 '가짜교수 송두율' 소동만큼 아주 불쾌하다. 소송사기 문제와 한국 국적으로 방북한 부분은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한 것이다. 완전무죄로 내 사건이 종결되지 않아 솔직히 불만스럽다.
-최근 정권 교체 이후 남북관계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고, 남북교류와 접촉에 짙은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북한은 남쪽의 대북 자세에 뭔가 중대한 변화가 있다고 판단했거나, 정권교체기의 어수선한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한반도에는 온난 기류도 함께 있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와 북한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해 어느 정도 진전을 보고 있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냉각상태에 빠졌다. 지난 십년 동안 나름대로 지속된 한반도의 화해·평화의 분위기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일단 나빠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북이 막 등장한 이명박 정부를 떠보는 전술 정도로 평가하지만,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같다. 이번 방미에서 이 대통령은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의했고 대화의 문도 열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동서독의 사례처럼, 연락사무소가 설치될 정도의 남북관계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견고한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연락사무소까지 발전할 수 있는 상호 신뢰구축은 현재 대북정책의 기조로는 어렵다. 현 정부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퍼주기식'은 없다며, 아쉬운 북한이 먼저 굽히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태도를 보이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의 과도기적인 현상이지만, 이른 시일안에 순리적·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남북 긴장은 불행하게도 오래 갈 것 같다.
-외부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통일이나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실용정부'의 대북정책이 오히려 비실용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냉전적 이념에 너무 포위돼 있다. 또 '실용'이 그저 '돈의 힘' 정도로 이해되는 것 또한 문제다. 그래서 햇볕정책도 돈 문제로만 축소 해석되고, 그저 북에 퍼주는 정책으로만 폄하되는 것같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이의 긍정적인 부분은 살려가야 한다. 실용에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서로 공존하기 위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만 강조하다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전체적 맥락 변화를 놓칠 수 있을 것이다. 한-중 관계, 또 북-중 관계 등, 여러 가지 복합적 관계요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남북관계를 손상된 한-미 관계 회복의 종속변수로만 취급한다면 민족문제 해결의 전망이 나타나겠는가?
-지난해 낸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라는 책에서, 2003년 9월 방한부터 다음해 8월까지 구금돼 있던 시기를 '광기와 폭력이 난무한' 상황으로 묘사한 바 있다. 당시 함께 수감돼 있던 미군 범죄자에 대한 우대와 자신에 대한 푸대접을 지적했다. 한국 검사들의 유치한 사고 수준과 협소한 세계관에 놀라움도 표시했다. 지금 소회는?
=독일에 돌아와 만 3년 9개월 만에 대법원 판결을 듣고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사회가 나와 관련된 일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기를 바랐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 일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를 대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같다. 내 사건이 이른바 '민주화'된 조건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나나 주위의 친지들 모두에게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서울을 떠난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은 더 당혹스럽다. '돈이면 최고지, 도덕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는 식의 '잘못된 계몽'에 묻히고만 대선과 총선을 지켜보면서, 사실 나도 우리말 집필을 접어뒀다. 지금은 정년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아 독일어 저서 집필에만 전념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며, 국내로 불러들여놓고는 보수반동적 언론들이 주도한 매카시즘적 여론재판에 휘둘려 최소한의 인권조차 지켜주지 못했다.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실상이 잘 드러났다.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우리를 초청한 사람들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들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진척되고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은 아직도 취약하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민주화가 꽤 이뤄졌다는 잘못된 자부심이나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민주화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국민들이 그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지 못한 조건에서 선거는 실망만 재생산할 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만족했거나 인정했던 외국의 관찰자들에게 내 사건은 충격이었다.
-지난해 후마니타스 인터뷰 때 선생의 귀국은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내가 한국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의 문제는 아닌 것같다. 내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문제로 여기고 ,또 서울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이른바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내두르는 그 야비한 구조적 폭력이다. '해방 이후 최대 간첩'으로 여론재판을 해놓고 사실이 밝혀졌어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의 철면피한 언론이 지배하는 사회가 우선 싫다. 법적 체제 안에서나마 진일보를 보여준 이번 판결은 분명히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그 어려운 때 나와 가족을 지켜준 따뜻한 분들이 사는 그 땅으로 이번 판결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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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후마니타스, 송두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