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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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짧고 간결한 문구들은 새벽공기에 오한으로 요를 적시는 한 武將의 식은땀처럼 책 전체를 관통하며 독자의 가슴을 후빈다.

일찌기 영웅을 그리는 소설이나 전기물에서 작가들이 그려낸 그들도 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책들을 접할 때 그들의 삶은 훨씬 더 경건하게 다가오곤 했다. 절망스런 백의종군에서 시작된 글은 절망한 그의 죽음으로 간결하게 끝을 맺지만, 이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군량도 없고 군수물도 없는 절망으로 가슴을 치며, 가슴에서 징징징 울어대는 칼로 벨수 없는 적들을 눈앞에 두고 애닳아하며, 아들 면의 삶의 젖냄새와 죽음의 피냄새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외로운 武將이 온전히 우리 앞에 다가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린시절 영화에서나 보던 휘황찬란한 갑옷에 거북선을 이끄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이순신이 여기에는 없다.

나아감과 물러섬이 결국은 하나이듯, 펼치는 것과 오므리는 것, 집중하는 것과 분산하는 것이 남해의 밀물과 썰물처럼 이루고 이루는 것이 결국 또 새로운 하나를 이루어낸다. 죽음 같은 삶과 삶 같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나아감과 물러섬의 일체로 적들을 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조지 워싱턴은 가장 흔한 1달러 지폐에 새겨져 있지만, 성웅이라 칭하는 그는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져 있다. 이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또한 만원짜리부터 100원짜리에 이르는 서열대로 인물사를 평하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우리에게서 오히려 더한 자괴감을 느낀다.

내고향 남쪽바다에는 도심 한가운데에 이순신 동상이 떡하니 서있고, 그를 기리는 4월 군항제 기간에는 아직도 사꾸라 꽃잎이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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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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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고 인권이라는 주제로 10명의 만화가 각자가 작업한 내용을 공동으로 발간한 이 책은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을 얘기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만화라는 형식적 가벼움을 통해 말하려는 기획의도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그리고 개별적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아야 할 천부적인 인권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지는 불감증이나 의도적 기피성향을 현실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 대중적인 형식을 통해서라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가리고 싶은 부끄러운 현실이 이미 대중화 되어버린 사회의 깊은 자기반성에서 나온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사회에서 자행되는 장애인, 여성, 성적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신체적, 경제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차별 - 사실 차별의 수준을 넘어 사람취급을 하지않는 험악한 사회적 학대라고 생각한다. - 받는 현실을 솔직하게 그려냄으로써 이 시대를 살고있는 독자들은 읽는 동안의 불편함을 누구나 회피할 수 없이 겪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읽는 동안 차별을 당연시하는 현실이 개인의 개별적 성향을 넘어, 사회 전체에 통념화 되어있다는 사실에서 우리사회의 심각한 모순과 역사적 성찰의 필요성을 느낀다. 저 멀리로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나라잃은 이주민의 설움과 연해주에서 불모의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고려인의 고통, 일본인에 의한 재일동포의 차별을 얘기하고, 안으로는 국가 근대화의 보이지 않는 채찍 속에서 "빨리빨리"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내재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차이로 차별받지 말아야 할 천부적 인권에 더하여 올곧은 역사를 세우지 못함으로 인해 역사적 인권을 짖밟힌 더 아픈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 인권마저도 "인권"이라는 큰 사회보편적 틀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겠지만,  3.1절인 오늘 수많은 독립투사의 후손들과 일제 징용징병자, 위안부에게 가해지는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고통들은 역사적 인권을 져버린 우리 스스로에게 가하는 자학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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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김훈의 '칼의 노래'를 다 읽고 담배 한대의 힘을 빌려 "마이리뷰"를 썼다. 꽤 오래된 얘기지만 숙제내지는 일종의 의무처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대던 시절에서 벗어나자마자...아무래도 글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편지를 쓰거나 대자보를 쓴 것이 고작인 것 같다.

책을 즐겨사는 덕에 마일리지도 쌓아주고, 할인도 해주는 인터넷 서점들을 자주 애용했지만 요즘 알라딘의 변한 모습은(사실 나의 서재가 생기는 등의 변화는 꽤 되었다.) 글을 읽는 나에게 참으로 많은 자극과 도움을 주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책을 사서 오는 뿌듯함을 두배 세배로 배가시켜 주는 것 같다. 다른 이의 서재를 들여다보고(어릴적부터 책 많은 집이 그리도 부러웠다.) 관심사를 공유하며 나를 자극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글을 잘쓰는 방법으로 당송시대의 팔대가 중의 한명인 구양수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이라 했는데 나의 습관은 어디 한쪽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던가?..굳이 글을 잘 써야겠다는 심산으로서의 三多가 아니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스쳤던 생각마저 되살아나 자연스레 다상량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읽는 족족 써대는 버릇을 만들어 보려하고, 이 또한 형식주의에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할 요량이다. 그때까지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망하지 않고 번성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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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2007-03-2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촌 다독. 다작. 다상량은 꼭 명심하겠습니다. ㅋㅋㅋ 저는 삼다중에 전부가 부족하다는 점에 참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겠지요.. (_ _ )..

^^ 2015-06-2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은 다행히 아직까지도 건강하네요
 
장길산 - 전10권 세트 - 청소년을 위한 장길산
황석영 지음, 김세현 그림 / 책이있는마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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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대학을 갓들어온 후배로부터 왜 우리에겐 승리한 역사가 없습니까?라고 한스럽게 물어온 질문을 받고, 스스로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거슬러 생각해보면 그 후배의 말대로 역사속에서 민중이 승리하는 선명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터에, 나 역시도 어렸던 당시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 체 그 질문은 세월이 갈수록 스스로 곱씹어보게 하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승리의 역사란 무엇이며, 또 누가의 승리를 말하는 것인가?

조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입한 '청소년을 위한 장길산'은 큰 글씨체와 현장감 넘치는 삽화로 어우러져 책을 읽는 부담은 훨씬 덜하였고, '장길산'을 읽어보지 못해 얼마나 간추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장의 지루함 없이 박진감 넘치게 흘러가는 내용과 역사적 배경의 사실적 기술은 읽는 이로 하여금 책에 흠뻑 젖어들게 하여, 독자는 길산과 함께 말을 달리는 활빈당이 되기도 하고, 토포에 나선 관군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먹을거리를 찾아 떠도는 헐벗은 유민이 되기도 한다.

글읽기의 즐거움을 더한 것은 간추려진 내용의 박진감에 오히려 작가의 의도가 명료하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길산은 장길산이란 그의 이름은 나의 이름이 아니며, 자신의 유명은 조선팔도 방방곡곡 천한 민중들이 굶주림과 싸워얻은 이름이라는 말로 승리한 역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한다. 권력의 역사가 아니라 대동세상으로 가는 과정의 역사...그 권력의 승리란 한낱 조급한 권력의 역사일 뿐이며, 당장 구하는 것이 오히려 조급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광대에서, 명화적으로 그리고 대역적으로.. 그 길에는 다른 수많은 장길산이 함께 하였고, 몰아치는 질풍노도와 같은 활빈당의 풍경은 이미 조선사회를 뒤엎어 버린다. 그것이 오래동안 스스로 물어오던 승리의 역사가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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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을 처음 대면했을때, 인간의 관념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확인했다. 흔히 보아오던 사진 속의 삐쭉 솟은 2차원적인 탑으로만 그려져 있던 것이 실제 탑 밑의 매표소에 들를 즈음엔, 3차원적인 철골의 부드러움과 치솟은 역동적인 모습에 이미 관념속의 사진은 폐기처분 되고 만다.

두번째 에펠을 찾았을때...잔뜩 구름이 낀 파리시내를 내려다보는 에펠이 장엄해보이기까지 했다. 이 사진을 얼마나 찍고 싶었는지 모른다. 옆에서 오늘은 올라가 봐야 볼 것도 없겠다며 길을 재촉하던 일행은 지겨웠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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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1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엄하게 보입니다.

dalpan 2006-12-1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현상된 사진을 보고나서 심장이 발랑발랑 뛰었습니다. 장엄하게 보여서 찍었는데, 그렇게 보이신다니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