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이산의 책 42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 이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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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한 물리, 의학서를 회독하는데 있어서도 해석을 해주거나 소리 내어 읽어줄 사람은 없었다. 몰래 가르치는 것도 묻는 것도 서생 사이에서는 수치로 여겼기에 절대로 이것을 어긴 자는 없었다. 오로지 자기 혼자서 독파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문법을 토대로 사전에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104p쪽

회독 날이 가까워지면 한 달에 여섯 번 있는 시험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열심히 공부했다. 책을 잘 읽느냐 못 읽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재능에 달려있기도 했다. 어쨌든 주위를 속이면서 적당히 몇 년 지내고 나면 승급이 된다거나 졸업을 하게 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진정한 실력을 기르는 수업을 했으므로 숙생들은 원서를 잘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106p쪽

(영국 패러데이 전기학설에 대한 원서를 빌려보고)
"이 책을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보는 건 중단하고, 자 베끼자." (중략) 오가타의 서생들은 사본 제작의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기에, 한 사람이 원서를 읽으면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듣고 받아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읽고 한 사람은 쓰기 시작했다. 쓰는 사람이 다소 지쳐 붓놀림이 둔해지면 즉시 다른 사람이 교대하고, 지친 사람은 아침이건 낮이건 즉시 잠을 자는 방식으로 밤낮 없이 밥 먹는 시간도 담배 피우는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 결과 대략 2박3일에 걸쳐 전기에 관한 부분은 물론 그림도 베끼고 교정까지 보았다.-111-2p쪽

무엇 때문에 고학을 하느냐고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다. 명예를 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난학 서생이라고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할 뿐인지라 이미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있었다. 오로지 밤낮으로 고생하며 어려운 원서를 읽고 좋아할 뿐 정말로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당시 서생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다. 그 즐거움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것이다. 서양의 새로운 문명이 기록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일본 전국에서 우리밖에 없다. 우리 동료들만 가능한 일이다 하면서, 가난하고 고생스럽게 조의조식, 언뜻 보기에는 볼품없이 초라한 서생이지만, 왕성한 지식과 고고한 사상만큼은 왕족귀인을 눈 아래로 내려다볼 정도였다.-113p쪽

어쨌든 당시 오가타 서생들은 십중팔구 목적도 없이 고학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목적이 없는 덕분에 오히려 에도의 서생들보다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듯하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서생들 역시 학문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면 오히려 학업에 지장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중략) 면학하는 중에는 그저 조용히 지내는 것이 최상일 것이라는게 나의 결론이다.-115p쪽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보자는 결정이 내려진 건 안세이 6년(1859년) 겨울이었다. 즉 (미국 페리 제독의) 증기선을 눈으로 본 뒤로 7년, (네덜란드인으로부터) 항해술을 전수받기 시작한 지 5년째 되는 해에 결정을 내려, 드디어 이듬해인 만엔 원년(1860년) 정월에 출항하게 된 것이다. (중략) 지금의 조선인, 중국인, 혹은 동양 전체를 살펴보아도 불과 5년 동안 항해술을 배워서 태평양을 횡단하겠다는 계획과 용기를 보인 경우는 결코 없을 것이다.-136p쪽

당시는 물가가 싸서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 남은 돈을 모두 갖고 가서, 런던 체류 중에 다른 것은 제쳐놓고 오로지 영서만 사 갖고 왔다. 이것이 일본에 영서를 수입한 최초의 일로, 그로 인해 일본에서도 영서를 자유로이 사용하게 되었다.-151p쪽

런던에 있을 때, 어느 교회의 사람이 교회이름으로 의원에게 건의했다면서 그 초고를 일본사절에게 보내왔다. 내용인즉슨 재일본 영국공사 올콕이 신흥국가인 일본에서 극심한 횡포를 부린다, 마치 무력으로 정복한 국민을 대하듯 한다 운운하며 각종 증거를 들어 공사의 죄를 비난하고 있었다. (중략) 나는 이 건의서를 보고 가슴이 아주 후련하였다. 이제까지 외국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일본의 약점을 파고들어 일본인의 불문살벌을 틈타 갖가지 무리한 시비를 걸어오는 바람에 몹시 난처하였다. 그런데 그 본국에 와보니 사람들이 무척 공명정대하고 온순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평생의 소신인 개국일편의 설을 견고히 한 적이 있다.-154-5p쪽

도쿠가와 정부의 완고함을 보여주는 일례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체임버스의 경제론을 한 권 갖고 있던 나는 무슨 이야기 끝에 대장성의 요직에 있는 사람에게 그 경제서 이야기를 했고, 그는 무척 기뻐하며 부디 목차만이라도 좋으니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그 목차를 서둘러 번역하던 중, 'competition'이란 단어에 부딪쳐 이리저리 궁리 끝에 '경쟁(競爭)'이라는 번역어를 만들어내 처리했다. 그는 무척 감명을 받은 듯했다. "아니, 여기 '다투다'(爭)라는 글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무슨 뜻인가?" "무슨 뜻이냐니? 이건 별다른 게 아니다. 일본의 상인들이 하는 것처럼 옆에서 물건을 싸게 팔면 이쪽 가게에서는 그보다 더 싸게 팔아야 하고 (중략) 서로 경쟁을 벌여 그 결과 물가를 제대로 정해질 뿐 아니라 금리도 정해진다. 이것을 이름하여 경쟁이라고 한다." "음, 그런가. 서양의 방식은 엄격하군." (중략) "과연 그렇게 말하니 이해가 되기는 하나, 아직 아무래도 '다투다'라는 글자가 마음에 걸린다. 이래서는 로주님께 보여드릴 수가 없다." 이렇게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낌새를 살펴보니, 경제서 안에서 사람들끼리 양보하는 내용을 보고 싶어하는 듯했다. 예컨데 장사를 하면서도 충군애국, 국가를 위해서는 공짜로도 판다는 식의 내용이 적혀 있다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215p쪽

(게이오주쿠 숙생들에게)
"오래전 나폴레옹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침략을 받은 네덜란드는 본국은 물론이고 인도지역까지 모두 점령당해 국기를 게양할 곳이 없어졌지만, 전세계에 단 한 곳만 남아 있었다. 바로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이다. 데지마는 예전부터 네덜란드인의 거류지로, 유럽 전쟁의 영향도 일본에는 미치지 않아 데지마의 국기는 항상 하늘 높이 휘날리고 있었다. 따라서 네덜란드 왕국은 단 한 번도 멸망한 적이 없다며, 지금도 네덜란드인들은 자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게이오주쿠는 일본의 양학을 위해 네덜란드의 데지마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온갖 소동이나 난리에도 불구하고 양학의 명맥을 굳게 지켜왔다. 게이오주쿠는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이 주쿠가 건재하는 한 대일본은 세계 속의 문명국이라 할 수 있다. 긍지를 가져라."-236p쪽

원래 나의 교육방침은 자연의 원칙에 무게를 두고 수(數)와 이(理) 두가지를 근본으로 하여, 세상만사 모든 일의 처리를 이로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 도덕론에 있어서는 인간을 만물 중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 절대로 비열한 짓이나 방정치 못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며, 불인·불의·불충·불효 같은 못된 짓은 누가 부탁하건 아무리 긴급한 상황에서건 하지 않겠노라고, 항상 몸을 고귀하게 간직하며 이른바 독립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일단 목표를 정했다. 이 목표에만 전념한 이유는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비교해보면 그 진보의 속도에 정말로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도덕의 가르침이 있고 경제에 관한 지식도 있고 문무에 제각기 장단점이 있으면서도, 일단 그 국세를 살펴보면 부국강병이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면에서 동양은 서양의 밑에 놓이게 된다. 국세의 정도는 국민의 교육수준에서 나온다고 본다면, 분명히 쌍방의 교육법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 유교주의와 서양의 문명주의를 비교해보니, 동양에는 유형의 것으로는 수리학, 무형의 것으로는 독립심, 이 두가지가 없었다. -239p쪽

무슨 이유에서 예전에는 번에 대해 그토록 비열하던 사내(후쿠자와 본인)가 훗날에는 모처럼 주겠다는 후치마이조차 완강히 사양하게 된 것일까? 사양하지 않더라도 비웃을 사람은 없는데, 전혀 딴 사람이 된 듯, 얼마 전까지 마치 조선인 같았던 녀석이 주겠다는 물건을 기세등등하게 마다하고 백이숙제 같은 고결한 선비로 변모한 것은 정말로 대단한 변화였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필경 봉건제도의 중앙정부를 타도하자, 그와 더불어 개인의 노예근성도 일소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303p쪽

나라 전체의 대세는 오로지 개진과 진보로 기울어 차츰 그 결실을 맺게 되고, 수년 후에는 그 성과가 청일전쟁에서 관민일치의 승리로 나타났으니, 유쾌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살아있다보니 이렇게 좋은 구경도 하는구나. 먼저 죽은 친구들은 불행하다. 아, 보여주고 싶구나'하며 나는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사실 청일전쟁은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그것은 일본외교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니 그렇게 기뻐할 것도 못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신일본의 문명부강은 모두 선인유전의 공덕에서 유래하며, 우리는 마침 좋은 시절에 태어나 조상님 덕분에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니, 나에게는 두 번째 큰 소원성취라 할 수 있겠다.-364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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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붉은 색이다. 그 곳에 발을 담그면 나도 온통 붉은 색을 뒤집어 쓴 착각이 든다. 대장정의 마오가 있었고, 흑묘백묘의 덩샤오핑도 있었지만, 누구도 중국을 빨갱이의 나라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저 빨간 깃발이 왠지 빛바랜 듯하여 싫다. 내가 섰던 그 자리에 87년의 대한민국처럼 탱크의 캐터필드에 천안문 앞은 학생들의 핏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2005년의 북경은 더웠다.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 저 간판을 보는 순간 아직도 "Workingman of all countries, Unite!"라던 공산당선언이 유효한지 궁금했다.



아기자기한 대한민국에 살아서 그런지, 나는 이 곳에 별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창덕궁이 낫고, 종묘가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수 세기전 이 곳에 사신으로 왔을 우리의 선조들을 생각하니 그 크기에, 그 벌건 빛에 얼마나 기가 질렸을까 싶어 내내 불편했다. 산너머 산, 산너머 산이 아니라, 지붕너머 지붕, 지붕너머 지붕이다. 한여름에 여길 다 둘러보는 것은 미친 짓이다.



명13릉 입구. 그나마 지하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더위는 면하는 곳이나, 사람 죽은 묘지에서 올라오는 습기니 썩 반가운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는 그저 '장성'으로 불린다. 장성으로 가는 도로에서 부터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다. 높은 지대라 구름이 산을 휘감고, 그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장성은 이내 그 모습을 펼쳐 보이는데, 구렁이 담 넘어간다는 말처럼 능선을 따라 구렁이가 길게도 뻗었다. 시황제다운 발상이며, 시황제다운 추진력이다.

이 여행은 참으로 관광지 일색의 여행이었고, 혼자 돌아다닐 형편도 안되었다. 이미 상해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넘어오면서 만만디의 국민성을 한껏 체험했기에 - 활주로에서 출발하지도 않은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드셔보셨습니까? 비행기에 태우고 2시간이 넘도록 출발도 하지않은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꺼내주더군요. 다행이 기류에 요동치지않는 조용한 식사를 했습니다만, 나 같은 외국인을 제외하곤 아무도 따져묻지않는 그들에게 두 손 들었습니다. 북경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침 튀기며 열변을 쏟던 나에게 사람들은 그거 별 일 아니라고 하더군요. - 애초부터 기대를 버렸었다. 그저 나도 눈 딱 감고 즐기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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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2-2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도 그건 뭔가 말이 안되는것 같은데요? 두시간이 넘도록 출발하지 않고 기내식을 꺼내주다니. 뭔가 굉장히 부조리한 느낌이예요. 글쎄요, 저라면 따졌을까요? 부조리하다고 느끼면서 저도 따지지 못하고 구석에서 궁시렁거리며 기내식을 먹었을것 같아요.

그래, 중국은 님에게 어떤곳이었나요? 다시 가고싶다는 느낌을 선물하던가요?

dalpan 2007-02-2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출발할 것 같던 비행기에서 한숨자고 일어나 유리창밖을 보니 활주로에 그대로 더군요. 또 한숨 잤지요. 눈을 뜨니 또 그대론데 음료수를 주더군요. 또 한숨 잤지요. 눈을 뜨니 또 그대론데 이번에는 기내식을 주더군요. 답답한 기내여서 더 답답했는데 중국사람들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고 놀더군요. 저도 배 고파서 궁시렁거리며 다 먹어치웠지요.

어찌 잠시 다녀온 출장으로 중국을 말하겠나요? 장님 코끼리 더듬기지요. 낯선 곳을 가면 한꺼번에 다 보지않고 아껴두어야 맛이 있는데, 중국에선 그런 걱정은 안했습니다. 다음에 제 선배의 중국얘기를 해 드릴께요. 왜 다시가고 싶은지...
 
진해 벚꽃
김탁환 지음 / 민음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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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만나 눈물부터 쏟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뺨을 들어 보이며 숙이 말했다.
"미안! 나 조금만 울게. 무릎을 빌려 주면 좋겠거든."
공주에 도착할 때까지 숙은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바지를 적셨다. 허벅지가 축축하고 불편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슬픔에 빠져들 때도 있는 법이다. (중략) 혀가 단어를 만들기도 전에 목구멍에서 어떤 고통과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짐승 울음소리를 만드는 것을 예전에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다.-30~31쪽

열셋, 열여덟, 서른둘에 어떤 사람을, 그것도 여자를 띄엄띄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성을 쏟을 일도 아니었다.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서야만 빛나는 만남도 있고 멀리 두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문득 그리운 만남도 있는 법이다.-47~48쪽

책임을 진다는 것, 목숨을 건다는 것, 시간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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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니 고향 진안에 내려가 관기씨를 만나고 왔다. 아마 너나 나나 일터지고 제일 멀리 다녀온게 아닌가 싶다. 오지랖 넓은 니 탓에 관기씨도 내 일을 다 알고 있더구나. 니가 중국에서 나올 때마다 내 걱정을 했다고 하니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마음이 많이 무겁구나. 나는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 마음이 더하다.

많이 울었다.

새벽에 썰렁한 인천공항에서 너를 기다릴 때 전광판으로 북경에서 들어온 비행기의 도착 사인이 나오고 사람들이 나오는 틈에서 나는 정말로 반가운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가 형의 품에 조그마한 상자에 안겨서 들어올 때 조차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형의 침통한 표정에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힘겹게 니 아들 선호를 안고, 텅빈 눈빛으로 걸어 들어오는 제수씨를 보고서도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친구는 어디있나...



친구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아...이게 현실이구나라고 다들 말을 잃었을 것이다. 병원 영안실에 도착해 망자의 이름을 보고 영정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현실이 비현실임을, 설사 현실이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 니 이름을 보고 니 사진을 보고서야 눈물이 나더라. 니도 봐서 알겠지만 니 앞에 엎드려 운 놈들 많았다. 찬홍이가 특히 많이 울었다.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니가 흔적을 그리도 많이 남겼을까 싶다. 관기씨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뜸금없이 니가 보고싶다고 했다더구나. 니가 사온 작퉁지갑은 그날 아침에 고리가 떨어져버렸다고 우리 누나가 그러더라. 내가 니 소식을 받는 날 아침... 사무실에서 내가 얼마나 허둥대고 있었는지 니는 알지 않느냐? 오늘은 조심해야지..조심해야지... 그게 니 소식일 줄이야. 청천벽력 같은 니 소식일 줄이야.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내 옆에 그렇게 붙어있었더냐.

몇년 전 같이 지리산 올랐던 기억나나? 연하천 산장 앞 길바닥에서 침랑 하나 깔아두고 은하수 보며 비박할 때 따뜻하게 마시던 그 커피가, 시덥잖은 얘기에 희희덕거리던 너의 얼굴이, 장터목에 끼었던 비구름과 '사는게 죄지요'라는 철 다리의 낙서에 마주보고 웃던. 빈 속의 커피만큼 아린다. 제대하고 공부 좀 해보겠다고 도서관에 있는 너를 불러들인 내가 죄인이다. 현대 입사원서 갖다주고 대신 써 준 내가 죄인이다. 내 기숙사에 너를 집어넣은 내가 죄인이다. 지난날 북경에 갔을 때 너를 흠씬 두들겨 패지 못한 내가 죄인이다.

사람의 간사함에 놀란다.

너를 보내고, 그 춥던 밤에 쓸쓸히 죽어 누워있는 니가 몹시나 춥겠다는 난생 처음으로 느낀 말도 안되는 생각에 담배만 피워댔다. 이 녀석 갔구나... 몇 주가 지나 집에 오르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바깥 풍경을 보며 불현듯 너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울어댄게 불과 몇 주라고 나는 이리도 태평스레 살고있는가 싶어 화들짝 놀랐다. 너 역시 바라지 않겠지만, 보낸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만 이해해주라.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빨리 달려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이산 쌍봉우리를 보니 감회가 새롭더구나. 앞이 탁 트인 너의 보금자리는 기순씨가 두고 갔다는 시든 꽃다발 탓에 더 추워보였다. 그래... 이렇게 너와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어야 되는데. 우리가 뭐 별거있나. 이거면 될 것을.

관기씨와 너를 찾아가면서 얘기 많이 했다. 관기씨도 새롭게 일하려하니 힘이든가 보더라. 기순씨도 그렇다니 가까이 있는 니가 자주 봐 주면 좋겠다. 나야 항상 잘 살지 않느냐. 걱정마라. 그리고 니가 가진 것은 다 놓아주어라. 북경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니 가족 사진도 다 버렸다. 다 놓고 멀리 가라.

따뜻한 봄 바람이 불면 친구들 데리고 다시 가마. 추워도 조금만 참아라. 이제 곧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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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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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정신분석이라는 것이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의학의 한 과목이라는 딱딱하기만 한 나의 생각에 이처럼 곱고 아름다운 말로 풀이를 해 준 것만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대단하기만 하다. 누구나 좌절하고, 누구나 상처받고, 누구나 우울해 하지만, 이는 사람이 사는 세상만사의 하나일뿐이라는 나의 긍정적인 자조에 작가는 '사랑'이라는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덕목을 덧붙여 친절하기만 한 누나처럼, 선생님처럼 얘기를 풀어주었다.

원체 살아 온 날들이 거대 담론과 체계나 관계 속에서의 인간들을 정의하고, 보편적 인간윤리라는 것이 어릴 때 몸에 베인 가정교육과 학교 다니던 시절 도덕수업으로 마감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가 보기에도 나의 삶이라는 것이 한마디로 재미없음 그 자체가 아니었겠나 싶다. 그러하기에 심리학이나 정신분석과 관련해서는 이 책이 거의 처음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고 사람이 사람을 들여다 보는 일에 대해서는 참으로 소흘했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주변에서 맴돌았다.

이 책은 자기알기, 가족관계, 성과 사랑, 관계맺기라는 네 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다루고는 있으나 궁금적으로는 그 네 가지를 이해함에 있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맞추어져 있다. 프로이트 학파나 융 학파에서 말하고 있는 다양한 정신분석의 기법을 비롯해 원본능, 자아, 초자아라든지 전이, 역전이, 투사적 동일시, 전이 행동화 등 아주 전문적인 용어들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절대 어려운 전문서적이 아니며, 짧은 상담 문구를 제시하고 작가가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해 주는 친절한 상담서이다.

사람들이 올린 짧은 상담 문구를 들여다 보면, 이건 나의 얘기다 싶은 것들이 어디 한두가지겠는가 싶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의 행동에 상대방은 왜 이러는지? 어쩌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일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일 수 있으며,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수위의 차이로밖에 나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이 책은 병든 사람들만의 특수한 얘기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바로 우리들의 얘기이다.

이 즈음에 나는 내게 던졌던 단순한 두 가지 의문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나는 사람을 상대적으로 대한다'라는 말과 '나는 육체적 사랑을 믿는다'는 말의 거북함과 가벼움을 느꼈던 것에 숨겨진 나의 이면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솔직하게 마주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절대적으로 대하고, 정신적 사랑을 믿는다고 스스로 암시하던 이면과의 양가적 통합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스스로 마주할 수 없었던 내 마음 속의 아픈 생채기를, 이제는 어르고 달래 눈 앞에 마주하고 치유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 책은 읽기만 해도 치유되는 듯한 묘한 탕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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