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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정신분석이라는 것이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의학의 한 과목이라는 딱딱하기만 한 나의 생각에 이처럼 곱고 아름다운 말로 풀이를 해 준 것만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대단하기만 하다. 누구나 좌절하고, 누구나 상처받고, 누구나 우울해 하지만, 이는 사람이 사는 세상만사의 하나일뿐이라는 나의 긍정적인 자조에 작가는 '사랑'이라는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덕목을 덧붙여 친절하기만 한 누나처럼, 선생님처럼 얘기를 풀어주었다.
원체 살아 온 날들이 거대 담론과 체계나 관계 속에서의 인간들을 정의하고, 보편적 인간윤리라는 것이 어릴 때 몸에 베인 가정교육과 학교 다니던 시절 도덕수업으로 마감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가 보기에도 나의 삶이라는 것이 한마디로 재미없음 그 자체가 아니었겠나 싶다. 그러하기에 심리학이나 정신분석과 관련해서는 이 책이 거의 처음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고 사람이 사람을 들여다 보는 일에 대해서는 참으로 소흘했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주변에서 맴돌았다.
이 책은 자기알기, 가족관계, 성과 사랑, 관계맺기라는 네 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다루고는 있으나 궁금적으로는 그 네 가지를 이해함에 있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맞추어져 있다. 프로이트 학파나 융 학파에서 말하고 있는 다양한 정신분석의 기법을 비롯해 원본능, 자아, 초자아라든지 전이, 역전이, 투사적 동일시, 전이 행동화 등 아주 전문적인 용어들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절대 어려운 전문서적이 아니며, 짧은 상담 문구를 제시하고 작가가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해 주는 친절한 상담서이다.
사람들이 올린 짧은 상담 문구를 들여다 보면, 이건 나의 얘기다 싶은 것들이 어디 한두가지겠는가 싶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의 행동에 상대방은 왜 이러는지? 어쩌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일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일 수 있으며,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수위의 차이로밖에 나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이 책은 병든 사람들만의 특수한 얘기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바로 우리들의 얘기이다.
이 즈음에 나는 내게 던졌던 단순한 두 가지 의문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나는 사람을 상대적으로 대한다'라는 말과 '나는 육체적 사랑을 믿는다'는 말의 거북함과 가벼움을 느꼈던 것에 숨겨진 나의 이면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솔직하게 마주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절대적으로 대하고, 정신적 사랑을 믿는다고 스스로 암시하던 이면과의 양가적 통합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스스로 마주할 수 없었던 내 마음 속의 아픈 생채기를, 이제는 어르고 달래 눈 앞에 마주하고 치유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 책은 읽기만 해도 치유되는 듯한 묘한 탕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