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통 붉은 색이다. 그 곳에 발을 담그면 나도 온통 붉은 색을 뒤집어 쓴 착각이 든다. 대장정의 마오가 있었고, 흑묘백묘의 덩샤오핑도 있었지만, 누구도 중국을 빨갱이의 나라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저 빨간 깃발이 왠지 빛바랜 듯하여 싫다. 내가 섰던 그 자리에 87년의 대한민국처럼 탱크의 캐터필드에 천안문 앞은 학생들의 핏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2005년의 북경은 더웠다.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 저 간판을 보는 순간 아직도 "Workingman of all countries, Unite!"라던 공산당선언이 유효한지 궁금했다.

아기자기한 대한민국에 살아서 그런지, 나는 이 곳에 별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창덕궁이 낫고, 종묘가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수 세기전 이 곳에 사신으로 왔을 우리의 선조들을 생각하니 그 크기에, 그 벌건 빛에 얼마나 기가 질렸을까 싶어 내내 불편했다. 산너머 산, 산너머 산이 아니라, 지붕너머 지붕, 지붕너머 지붕이다. 한여름에 여길 다 둘러보는 것은 미친 짓이다.

명13릉 입구. 그나마 지하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더위는 면하는 곳이나, 사람 죽은 묘지에서 올라오는 습기니 썩 반가운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는 그저 '장성'으로 불린다. 장성으로 가는 도로에서 부터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다. 높은 지대라 구름이 산을 휘감고, 그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장성은 이내 그 모습을 펼쳐 보이는데, 구렁이 담 넘어간다는 말처럼 능선을 따라 구렁이가 길게도 뻗었다. 시황제다운 발상이며, 시황제다운 추진력이다.
이 여행은 참으로 관광지 일색의 여행이었고, 혼자 돌아다닐 형편도 안되었다. 이미 상해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넘어오면서 만만디의 국민성을 한껏 체험했기에 - 활주로에서 출발하지도 않은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드셔보셨습니까? 비행기에 태우고 2시간이 넘도록 출발도 하지않은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꺼내주더군요. 다행이 기류에 요동치지않는 조용한 식사를 했습니다만, 나 같은 외국인을 제외하곤 아무도 따져묻지않는 그들에게 두 손 들었습니다. 북경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침 튀기며 열변을 쏟던 나에게 사람들은 그거 별 일 아니라고 하더군요. - 애초부터 기대를 버렸었다. 그저 나도 눈 딱 감고 즐기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