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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사도 - 개정판 ㅣ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8
니토베 이나조 지음, 양경미.권만규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벌써 10년이 흘러버렸다. 처음 일본땅에 여행을 가고 나름대로 소중한 경험들을 들고 왔지만, 더 자세히 일본을 들여다 보려해도 마땅한 서적들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기껏 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던 책이라야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영화감독 이규형의 일본문화 소개책자 정도랄까. 이제는 일본문화의 개방으로 영화에서부터 음악, 서적까지 넘쳐나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는 상당히 피상적이었다 싶다. 가깝고도 멀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 책은 출간한지 100년이 넘은 책이다. 작가인 니토베 이나조는 그 옛날에 존스 홉킨스에서 공부했고, 귀국해서는 교육자로서 그리고 국제연맹 사무차장까지 역임했으니 꽤 유명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우연찮게도 얼마전에 읽은 책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의 저자는 1만엔 일본지폐, 이 책은 5천엔 일본지폐의 주인공이니 일본은 이미 과거 봉건시대를 접고 근대화 이후 시대에서 그들의 미래를 보고 싶은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국사책에서 보아오던 일본(왜)은 설사 36년간 한반도를 침탈했던 과거를 애써 부인하지 않아도, 백제에게 문화를 전수받고, 조선시대 통신사절을 받아들이던 왠지 왜소해 보이던 국가가 아니었던가 싶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그런 관념적 과거형 속에 묻혀있을 때, 그들도 놀라듯 그들의 근대화는 말그대로 일사천리였다. 우리에게 일본의 근대화는 무서운 일이었고, 불행한 역사로의 귀결이었다.
이 책은 100여년 전 니토베 이나조가 미국에서 출간한 책으로 물론 영어로 먼저 발간된 책이다. 일본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에, 일본의 근원이라고 작가가 판단한 '무사도'의 연원, 덕목, 정신, 의무를 비롯해 무사도의 현재, 미래를 서양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다.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왜 일본에는 종교교육을 시키지 않느냐?'는 외국인 교수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고심한 끝에 그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일본정신의 근원이라 할 만한 '무사도'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기본적인 정신은 동양에서 살고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낯선 것들이 아닌 유교적 가치의 발견이다. 다만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인 인(仁), 예(禮), 용(勇), 충(忠)등의 덕목에 일본 봉건주의의 특수한 계급, 바로 사무라이에게 요구되던 사회적, 역사적 책무와 그들의 의식에 관한 접목들을 시도한다. 어쩌면 오랜 세월 가마쿠라, 무로마치, 전국시대를 거쳐 에도막부에 이르기까지 군사정권으로 유지되어온 일본의 봉건역사에서 사무라이와 무사도 정신은 특수계급의 정신적 지향점을 넘어 일본전역에 뿌리내려 온, 작가의 생각대로 하나의 종교적 의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이 책을 텍스트로만 접한다면 따분하기 그지없는 책일 수도 있는데, 거의 책의 1/3을 사무라이와 전쟁에 관한 옛 그림 및 도판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 내용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그러나 누차 일본인들이 직접 쓴 책들, 특히 근대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인류보편의 가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글은 실종되고, 대부분이 일본적 가치의 절대화, 이를 통한 편협한 일본주의의 실상을 드러내는 듯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책의 전반부, 무사도의 기본 정신을 설명하면서 동양사상에서 아주 익숙한 유교적 가치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유사한 내용을 끌어들여 이를 전부 일본화하는데,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마치 일본고유의 것으로 둔갑시키고 이를 찬미한다. 심지어는 서양의 유사 내용도 일본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일본 속담에 "길 잃은 새가 품속으로 날아들면 사냥꾼이라도 새를 죽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기독교적인 적십자운동의 정신이 이미 일본에 그 뿌리가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일본 국민들은 제네바의 만국적십자조약보다 몇 십 년 앞서, 일본 최고의 소설가 타키자와 바킨의 작품을 통하여 적군의 부상병을 치료해 주는 이야기에 친숙해져 있다." (72p)
이는 어찌보면 편협한 일본주의의 서양인의 전통적 동양무시-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항변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를 무시하고 제국주의 침탈로 달려간 역사적 사실을 볼 때 결국 이러한 무사도 정신은 일본의 가치이지 인류보편의 가치는 아님이 명징하다.
작가는 칼로 대변되는 무사도 정신에 전통적 유교적 가치로 덧칠을 하고, 절대 등 뒤에서 칼을 꽂지않는, 온화하고 평정심을 가진,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할복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무사들을 그려내나, 칼에 그 마음을 덧씌운다고 칼이 붓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칼의 가치는 힘(무력)의 가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오히려 강하게 든다. 세계 어디에서도 칼을 쓰던 무인이 지닌 덕목에 충성과 명예를 빼고, 인명살상만 강조하는 민족은 없다. 무사도정신이 일본의 종교적 가치를 능가하는 일본정신의 뿌리라 함은, 결국 힘의 가치를 절대화한다는 편협한 일본을 일본인 스스로 시인한 것에 다름아니다.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우경화되는 일본의 상황에 곱지않은 시선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