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큰 머리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키는 작고 머리는 거의 산발이었는데 그 산발로 그의 머리는 정말로 커 보였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나 산발은 꾸미지 않은 자유로움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그도 그랬고, 김지하도 그랬고, 장선우도 그랬고, 백기완 선생에 이르면 단연 산발의 최고봉이었다. 그러나, 그의 외모는 그저 그의 노래에 묻혀 별로 중요한 얘깃거리가 못 된다.
그는 갔으나 그의 노래는 남았으니, 나는 아직도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처음으로 그의 노래를 불러댄건 고등학교시절 문예부 선배들과 우리들의 아지트 '토끼분식' 가게 문걸어 잠그고 기타치며 흥겹게 합창했던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였지만, 이제 그의 노래는 생활속에 아주 깊숙히 박혀버렸다. 거리에서 '거리에서'를 부르고 다니고, 흘러간 옛사람을 생각하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르고, 군대가는 친구들에게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고, 달빛 좋은 밤이면 '혼자남은 방'을 부르고, 심히 괴로울 때는 '일어나'를 불러댄다. 그가 세상에 없었다면 아마 나는 더 음침한 김민기의 노래들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나의 노래는 나의 힘'이라던 그의 말처럼, 덕분에 세상사는 걸 좀 더 밝게 만들어준 그에게 늘 감사하며 노래를 한다. 너무 불러 지겨워졌다가도 다시 힘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들. 그게 그의 노래다. 불현듯 점심시간에 떠오른, 32살 꽃 같은 나이에 져버린 그를 그리워 한다.
부치지 못한 편지 : 김광석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
그대 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