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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 주말 지방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가수들이 다양한 이유로 모금함을 내걸고 있었다. 모금함의 구조는 같았으나 내용은 각각 달랐다. 결식아동 돕기, 결핵환자 돕기, 독거노인 돕기 등등...
그들의 모금함에 좀처럼 돈이 모이지 않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둘이서 하루 종일 노래해서 3~5만원 정도 모일 것 같은데, 과연 남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길까?"
"그럼~ 항상 오늘처럼 모금액이 적지는 않을 것이고, 나같은 사람이 천 원씩만 내면 충분해~"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기쁨으로 다가왔지만... 생활인으로서 중년 무명 가수들의 노랫소리가 애처롭게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나이에 종일 벌어 가정을 꾸리면서 기부까지 한다는 것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그들이 자선이 아닌 스스로 생활비나 벌 수 있을까 걱정을 했으며, 모금함의 용도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책은 지난 주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반복되었던 나의 의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줬다.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당연히 구해줘야 한다. 내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만 구할 것인가? 남의 아이라면 망설일 것인가? 그것은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유 막론하게 베풀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책은 바로 나의 행복을 해치지 않고, 세계의 빈곤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책이다. 한동안 인기몰이를 했던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되새기게 한 책이다.
조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한 경찰은 그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조든의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길을 가다가 아이가 물에 빠진 걸 보면, 지체 없이 뛰어들어야 옳죠······.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 무슨 훈련이 필요한가요?" (22쪽)
모르는 아이의 목숨과 자신의 소유물 중 어느 하나를 놓고 배타적 선택의 기로를 제시하여 잔인한 비교를 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이기적인 판단을 하기도 한다.
그때 그는 아무도 타지 않은 차량이 궤도를 이탈한 채로 철길을 따라 굴러 내려오는 것을 본다. 아래쪽 철길을 보니, 한 꼬마가 철로에서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탈선한 차량이 곧 덮칠 텐데, 밥이 기차를 멈출 수는 없고, 아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밥이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밥은 철로 변경 스위치를 돌려서 굴러 내리는 차량이 아이를 비껴가게 할 수는 있다. 그러면 차량은 바로 그가 부가티를 갓길에 세워둔 철로로 옮겨서 굴러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겠지만, 열차는 썩은 목책을 부수고 갓길로 뛰어들어 부가티를 덮칠 것이다. 부가티로 인해 자신이 얻는 즐거움, 게다가 재정적인 안정감을 저버릴 수 없는 밥은 스위치를 돌리지 않기로 한다. (33쪽)
얼마 전, 여름 휴가 때 2MB가 직원들에게 대국민 우민화와 여론 장악 등 다분히 아름답지 못한 목적으로 돌린 책이 바로 Nudge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책을 악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올바른 Nudge는 이미 널리 응용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의 범위를 조정하여 '디폴트'로 제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음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일에서는 국민의 겨우 12퍼센트만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등록했다. 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무려 99.98퍼센트에 달한다.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은 문화적 배경에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오스트리아인들은 그토록 장기 기증에 열성적인 것일까? 아마도 그들이 유난히 열성적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뚜렷한 차이는 독일의 경우 기증하겠다고 등록을 해야 예비 기증자가 되는 반면,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기증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 한 예비 기증자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102쪽)
저자는 우리가 굳이 부유층이 아니라도, 수돗물을 놔두고 생수를 사 마실 수 있을 정도면 이미 충분한 사치를 하고 있다고 자극한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으로 수긍할만한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은 고가의 미술품을 소장하거나, 개인용 비행기나 대형 요트를 소유하는 부유층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될 때 반론의 여지를 바닥으로 내려치기에 이른다. 그것을 개인의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도덕적인 공격으로 몰아부치면 참으로 난처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은 오러클의 CEO인 엘리슨를 예로 부유층의 사치생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로마 황제 비텔리우스는 공작 수천 마리의 뇌수와 플라밍고 수천 마리의 혓바닥으로 식사를 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도덕적 타락의 증거로 이야기 한다. 그런 초대형 요트를 보유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너무 가혹한 판단 같다면, 먼저 그런 배를 사들이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생각해 보라. (중략)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기후 변화를 고려해도 거대한 요트를 가진 사람들에게 비난을 돌리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요트라는 이름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 배들은 풍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며, 큰 엔진과 펌프로 움직인다. 따라서 막대한 디젤 연료를 소비하며, 대량의 온실가스를 대기 주에 내뿜는다. 예를 들어 엘리슨의 '라이징 선'은 4개의 엔진으로 구동하며, 이 엔진들은 각각 풀파워 상태에서 시간당 548갤런의 연료를 쓴다. 따라서 이 배를 움직이려면 매시간 2천 192갤런의 연료를 써야 하다. 한 시간 만에 '라이징 선'은 보통의 미국인 운전자가 디젤 엔진의 폭스바겐 제타를 거의 7년 동안 몰며 쓰는 것과 맞먹는 연료를 써버리는 것이다. (214쪽)
생의 끝자락에서 평생을 베풀며 살아 온 '헨리 스피라'씨가 저자에게 남긴 말은 멋지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단지 상품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인생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은 남들을 위해 자신이 사는 곳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든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 부여가 세상에 있을까요?" (232쪽)
우리 부부는 집에서 마시는 생수에 대해 가볍게 토론을 했다. 그것도 사치라는 저자의 의견 때문이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저것 불안한 이유와 경제성을 이유로 그냥 생수만큼은 계속 삼다수를 구입해 마시기로 했다. 대신에 앞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의 그 이름 없는 가수들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직접 베푼다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나의 대리인으로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두의 베푸는 마음이 더욱 더 진화 하기를...
'기부를 망설이는, 회의하는 이들에게 내미는 100˚C 실천 논리'
책의 겉표지를 벗겨내자 돼지 저금통에 세계지도를 맵핑한 멋진 그림과 함께한 문구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