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세 번 쯤은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을 독특한 구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구꽃 창비시선 307
최두석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장바구니담기


요람과 무덤


비질이 잘된 융건릉 숲길에
나뭇잎 요람이 깔려 있다
거위벌레가 알을 낳고 상수리잎으로 말아
바닥에 떨군 것이다
나는 이 정성들여 만든 요람이
사람들의 발길에 밟힐까 저어하여
주워서 숲속에 넣어주며 가다가
그냥 발에 밟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걷는다
나뭇잎 요람이 너무 지천인 탓이요.
나의 가벼운 적선을 보는
상수리나무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껴서이다.
왕릉 지키는 숲을 헤치는 해충을
무엄하게 동정하는 죄를 저지르다니!
무덤 속 정조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해서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신의 묘를 쓰기 위해
수원성을 옮긴 정조의
공과를 묻는 나의 상념은 부질없이
숲길을 따라 돌며 칡넝쿨처럼 뻗어가는데
산책이 끝날 즈음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거위벌레도 엄연히
행복하게 살 권리를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12쪽

강 건너 산철쭉


이 땅에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강이 어디 있나
이 땅에 이토록 정갈하게
아름다운 풍광이 어디 있나
거듭 감탄하게 하는
영월 동강 어라연에 봄빛 찬란한 날
붉은 물그림자 어른대는
강 건너 산철쭉 바라보며 손을 씻는데
바람결에 쓸리는 물살이
손등을 간질이며 묻는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강 건너에만
산철쭉 꽃이 피는 사정과
이편 아닌 저편이 늘 아름다운 연유를.-52쪽

게와 개


꽃게 농게 밤게 집게 칠게
새만금 개펄과 바다에
얼마나 많은 게들이 살고 있는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지만

제방을 막고 나면
게 대신 개가 들어와 산다는 건
지나가는 도요새도 안다
아마도 꽃게 수천 마리가
물살을 헤집고 가르며 유영하는 대신
푸들 한 마리가
머리에 리본을 달고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 것이다.-90쪽

고니


호수 위에 고요하게 떠서
곧잘 우아한 선율의 주인공이 되어온 고니
하지만 수면 밑 물갈퀴 발은 쉴 새 없다고 한다
그래야 평화롭게 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아름다운 곡조를 내기 위해
무대 뒤에서 끊임없이 활을 켜야 하는 예인처럼

고니는 늘 혼탁한 목청으로 울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의 마지막 울음은
구름 너머로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배우의 고별무대를
화가의 최후의 그림을
고니의 노래라 칭한다고 한다.-1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구꽃 창비시선 307
최두석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 마음, 지천명에 빛나는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생소하지만 받을 상은 다 받은 세계적 거물이었다.
돈키호테의 정열이 숨 쉬는 나라의 작품답게 흥미로운 에너지가 발산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민세문집을 읽으면서 어떤 틀에 갇히지 않으려고, 시리즈 뒤에 번역자가 덧붙이는 작품해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냥 내 느낌 그대로 독서의 느낌을 대충대충 메모해 두는 정도로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의도를 모르면서 독서를 하는 엉터리 독자라는 비난도 몇 번 받아본 것 같다. 그러한 지적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따지는 다른 독자나 번역자에게 썩소를 날리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본심이다. 세상에 이 많고 많은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그렇게 공들여 해석하고 토론하며 학습하고 싶은 마음은 내 독서관과 많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그럴 시간에 다른 책 한 권 더 읽거나 다른 쓰잘데기 없는 짓이라도 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것이 내 독서관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멀리 전라도 화순에 조문을 다녀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다보니 다 읽고 시간이 남아 돌아 다를 때와는 달리 작품 해설까지 읽어 볼 수 밖에 없었다. 버스 안에서 다른 읽을 거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받은 재미나 느낌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세련되고 분석적인 해설이었다. 결코 반발심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해설에 의존하다 보면 해설자(번역자)의 틀에 갇혀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을까말까 망설이는 이에게 나처럼 다 읽고 나서 번역자 정동섭 선생님의 지상 강의로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보라고 권장하고 싶어 졌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정부, 전쟁 후 가라앉은 문학의 창의성이 되살아나는 시작이 된 이 책, 그리고 전율주의... 작품해설 읽은 부작용으로 내 개성을 담은 후기로는 잘 정리되지 않아  리듬에 따라 기억하는 차원으로 본문 몇 개만 발췌해 본다.
 
이 글의 저자가 자신을 죽이러 왔을 때
그를 "가엾은 파스쿠알."이라 부르며 미소 지었던
명문가 귀족 토레메히아 백작,
돈 헤수스 곤살레스 델 라 리바를 추모하며. (23쪽)


내가 요즈음 슬픔과 고뇌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면 안믿으실지도 모르겠군요. 분명히 말하는데 내 회개는 그 어느 성자의 것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알고 있을 사실과 지금 나에 대한 평판이 너무나도 안좋은 것들이라서 내 말을 안 믿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선생님께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내 말을 이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명예를 걸지 않아도ㅡ내 명예를 걸어봐야 별 볼 일 없으니까요.ㅡ 선생님께 맹세한 것을믿어 주실 거라는 생각을 머릿 속에서 떨칠 수가 없어서 말예요. 심장이 피 대신 쓰디쓴 액체를 만들어 내는지 목구멍까지 쓴맛이 치밀어 오르더군요. 그것은 내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입천장에 쓴 뒷맛을 남기고, 그 향으로 혀를 적시며, 묘 구덩이의 공기처럼 괴롭고 사악한 공기로 내 오장육부를 말려 죽이려는 듯합니다. (70쪽)

조금 더 지나 길 중간쯤에 이르니 오솔길 오른편에 묘지가 보였습니다. 내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그 자리에, 여전히 거무스름한 벽돌담에 둘러싸여서 말입니다. 전혀 변한게 없는 높은 사이프러스 나뭇가지 사이에서 부엉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죠. 그 묘지에서 내 아버지는 울분을, 마리오는 천진함을, 내 마누라는 방종을, 그리고 싸가지는 오만함을 묻어 두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또 유산된 아기와 꼬마 파스쿠알, 내 두 아이들의 유해가 썩어 가는 곳이기도 했지요. 꼬마 파스쿠알이 살아 있던 열한 달 동안 그 애는 내게 태양과도 같았는데······. (157쪽)

그는 영혼의 과제를 침착하고 차분하게 처리해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였고, 사형장에 끌려가는 순간에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해 그렇게나 온순하게 교화된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악마가 그의 마지막 순간을 빼엇어 가 버린 것이 안타깝군요! 그러지 않았다면 그의 죽음은 분명 성스러운 것이 되었을 것이기 떄문입니다. (184쪽) 

4년 넘는 세월 동안 독서 중간중간에 민세문집을 빠트리지 않고 읽다보니 2년 전 가을에 153권을 따라 잡았고(http://www.my222.net/zbxe/14415), 한결 여유있게 민세문집을 읽던 최근 2년 동안은 제본상태도 허술해지고 오타가 너무 흔해서 짜증도 많이 났고, 실망도 컸다. 다행히 최근 몇달 사이에 나온 시리즈는 다시 예전의 안정감을 되찾은 듯하다. 모르긴 해도 올 늦은 봄쯤에 담당자나 책임자가 바뀐 것으로 판단된다. 한 시리즈를 4년 동안 집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점들이다. 애정을 가진 독자로서 민세문집의 새로운 책임자에게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구판절판


"지위(知爲)는 행하지 않는 것이고, 지언(知言)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지사(知射)는 쏘지 않는것이다." -63쪽

'자로의 사체가 소금절임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집안의 모든 젓갈류를 내다 버리고, 이후 일절 식탁에 젓갈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136쪽

이상과 포부를 가지고 아무리 뻐겨도 어차피 자신은 소나 말에게 짓밟혀 버릴 길바닥의 벌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무참히 짓밟혔지만 수사라는 일의 의의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비참한 몸이 되어 자신감도 긍지도 잃어버린 후, 그대로 세상에 살아남아 이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하기 싫어도 최후까지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인연과도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1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