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충정로역.
환승하려고 걸어가는 도중에 김규동 시인이 보였다. 시가 바로 시인이라... ^^

추석날이면 
소주 한 병 들고
남산에 올라
혼자 울었다
북쪽 고향 하늘 그리며

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은 아직 빌딩의 숲이 아니었고
하늘은 맑고
대기오염같은 것도 없었다
남산은 우리 모두의 산
서울의 심장
남산에 오르지 못한 지도 한참 되었다.




사실 내가 충정로 역에서 이 시를 발견한 것은 추석이 막 지난 어떤 평일이었는데, 지금도 걸려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내가 참 좋아하는  김규동 시인의 시를 하나 덧붙여 둔다. 언젠가 S 선생님께서 낭랑하게 읽어주시던 바로 그 시다.
 

육체로 들어간 꽃잎

- 김규동 -

먹었단 말입니다
연한 이파리
무지개 같은 진달래를
순이와 난 따 먹었어요
함경도의 3월은
아직 쌀쌀하나
허전한 육체에
꽃은 피로 녹아
하늘하늘 떨었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평안도 약산 시인은
노래했으나
밟고 가다니 사치하잖아요
먹었단 말입니다
심장으로 들어가게 했지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기다리겠노라고
전라도 강진 시인은 노래했으나
도대체 뭘 기다린단 말인가요
모란이 뭔지도 모르는 바람 센 땅에서
기다릴 것도 없이
우린 불붙듯 하는
진달래를 따 먹었어요
 
여름내 땀 흘려 농사짓고
겨울엔 이태준의 <문장> 잡지를 읽는
이름 없는 농부의 딸 순이와 나는
입술같이 연한
진달래 이파리를 따 먹었어요
 
순인 북에 있고
난 남쪽에 있으나
둘의 심장으로 들어간 진달래꽃만은
세월이 가도
고동치면 돌고 있답니다
사시사철 꽃은 피고 있답니다.  

 

노 시인의 마음 깊은 곳이 상처와 그리움이 밀려 온다. 
굳이 거창한 표현을 쓰지 못하더라도 김규동 시인의 시를 보면 남북 문제가 보다 전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들게 한다.

이 뿐만 아니라, 모든 지하철 역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마다 시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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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품절


20달러짜리 지폐를 눈앞에 흔들어 보이면서 경매 물건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입찰할 수 있지만, 단 두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첫번째는 입찰가를 1달러 단위로 높여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규칙은 약간 까다롭다. 경매 낮찰자는 당연히 지폐를 차지하지만 차점자 역시 자신이 부른 입찰가만큼 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차점자가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실제로 경매가 시작되면 싼 값에 20달러 지폐를 자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손이 올라온다. 경매가 공식적으로 진행되자마자 눈 깜짝할 속도로 입찰이 이어진다. "패턴은 항상 동일합니다. 입찰은 12~16달러 사이에 이를 때까지 빠르고 맹렬하게 진행되죠." 배저먼은 설명했다. ···중략··· 최고가를 부른 두 학생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 미끼에 걸려든다. "한 입찰자가 16달러를 부르고 다른 입찰자가 17달러를 부릅니다. 16달러를 부른 학생은 18달러를 부르거나 16달러 손실을 감당해야 하죠." ···중략··· "물론 입찰자가 20달러를 넘어서면 나머지 학생들은 폭소를 터트리죠."-46~48쪽

평범하게 생긴 한 남자가 청바지 차림에 야구 모자를 쓰고 태연하게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꺼내더니 연주할 준비를 했다. 그 남자는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슈아 벨로 내로라 하는 공연장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만원 관객들을 앞에 놓고 정기 공연을 하는 음악가였다. ···중략··· 벨의 지하철 연주는 바이올린 곡중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알려진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로 시작됐다. 그 뒤로 43분 동안 콘서트는 계속됐지만 아무도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67쪽

강사를 '따뜻한'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의 학생들 대부분은 그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이 학생들은 "친절하다. 타인을 배려한다. 격의 없다. 사교적이다. 인기 있다. 유머 감각이 있다. 인간적이다." 등의 단어를 써서 강사를 묘사했다. 반면 '차가운'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은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내용의 토론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그 강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자기 중심적이고 딱딱하고 붙임성이 없는 데다가 화를 잘 내며 유머 감각이 없고 무자비하다."고 여겼다.-96쪽

딜러들은 제조사와의 거래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제조사가 자신들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느냐'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에 따르면 딜러들에게 중요한 건 단순히 유리한 거래 조건을 얻어 냈느냐가 아니었다. 딜러들은 제조사가 '사업을 운영하는 대리점의 현지 여건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는지',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행동 했는지' 혹은 '딜러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대했는지'와 같이 얼핏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사항들로 관계를 평가했다. 딜러들이 거래 결과에 대해 느끼는 전반적인 만족도에서 이 공정성이라는 요소는 기본 수치들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149쪽

관제탑의 허가 없이 데네리프 공항에서 이륙하기로 했던 반 잔텐 기장을 다시 떠올려보라. 그날 일어난 사고는 항공업계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충돌사고의 영향으로 관계 당국은 수년 동안 일어난 모든 비행기 충돌사고와 근접 사고의 조종실 기록을 세밀히 조사했다. 70퍼센트는 사람의 실수 때문인 것으로 판명됐고 그중 대다수는 팀 역학과 관계있었다. 예를 들어 반 잔텐이 조종한 비행기의 조종실 기록 중 마지막 몇 초 동안의 교신 내용을 들어보자.
반 잔텐 기장이 계기판에 손을 갖다대 엔진의 회전 속도를 올리자 부조종사는 본능적으로 그를 저지하려 했다. "잠깐만요. ATC 허가가 없었잖아요."
반 잔텐은 수긍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행동을 방해 또는 지연시키려는 시도에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알아. 어서 물어보게."
놀라운 건 부조종사가 이의를 제기한 다음 곧바로 단념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반 잔텐 기장이 두번째로 이륙을 시도할 때 부조종사는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차단자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끔찍한 일이 이어졌다.-199쪽

조종실이나 회의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반대의 목소리는 성가시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차단자에 대한 대응이 짜증스러울지라도 그들의 의견은 그룹의 균형 유지에 필수불가결하다. 차단자의 부정적인 언사를 무시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반대의 목소리는 비이성적이라는 홍수를 지탱해주는 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205쪽

이미 너무나 많은 돈이 투입됐다는 이유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공공사업 프로젝트에 계속해서 자금을 대는 정부 공무원에게든, 중도 포기자로 비치기 싫어서 실패한 캠페인을 계속 지원하는 마케팅 매니저에게든 '과거를 흘러 보내는' 전략은 유효하다. 가라앉는 배 위에 계속 앉아 있는 건 전혀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이다.-210쪽

그로부는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인텔의 회장 겸 CEO인 고든 무어와 함께 사무실에 앉아서 우리의 난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침울했죠.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그레이트 아메리카 놀이공원에서 돌아가고 있는 회전 관람차가 보이더군요. 잠시 후 저는 고든을 향해 돌아서서 물었습니다. '우리가 쫓겨나고 이사회가 신임 CEO를 영입해 온다면 그 새 CEO는 어찌할 것 같은가?' 고든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죠. '메모리 사업을 버리겠지.' 저는 멍하는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자네와 내가 저 문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새 CEO가 됐다치면 어떤가?'-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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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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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다! 내 행동방식을 다시 셋팅해야겠다. 역설적으로 이 책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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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의 대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5
엘리오 비토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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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편지가 베네치아에서 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버지는 세상에 흩어진 우리 다섯 아들 모두에게 똑같이 정확한 말로 편지를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특이한 일이었다. 나는 편지를 다시 읽었으며, 아버지의 얼굴, 목소리, 파란 눈, 몸짓을 확인했다. 잠시 동안 나는 아버지가 어느 작은 기차역의 대합실에서, 산카탈로에서 라칼무토까지 선로의 모든 철도원을 위해 '맥베스'를 공연하는 동안, 박수를 치는 어린아이로 되돌아갔다.-12쪽

"왜 수프가 없어요?"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가 오는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니?"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니,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에요. 어머니는 수프를 해서 드시지 않아요?"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나는 내 생애에서 거의 수프를 먹어본 적이 없다······. 나는 너희들과 너희 아버지를 위해 요리했지만, 내가 먹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겨울에는 청어, 여름에는 구운 고추, 올리브기름, 빵······."
"언제나 그랬어요?"
"물론, 언제나 그랬지. 때로는 올리브 열매, 그리고 돼지고기, 소시지도 먹었지. 돼지를 길렀을 때는 말이다······."-68쪽

"그래, 그랬단다······. 아기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얼굴이 파랗게 변하더구나. 아주 멋진 아기였어. 나는 아기가 질식할까 두려웠지······."
"그때 누군가가 도착했겠군요."
"천만에! 그때는 밤 2시였고, 아무도 오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침대 탁자 위에 있던 물병을 잡았지. 난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고, 그 물병을 네 아버지 머리에 던졌어······."
"맞추었어요?"
"물론, 나는 정확히 맞추지! 나는 정확하게 맞추었고, 그때서야 그 사람은 나를 도와주기로 작정했어. 그래서 나를 도왔고, 아기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밖으로 끄집어냈어. 마치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남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사람이 끄집어 냈다기 보다, 내가 밖으로 밀어낸 편이었지. 그 사람 얼굴은 완전히 피하고 땀 투성이였어······." -81~82쪽

"하나였어! 하나였다고! 왜냐하면 다른 한 번은 실수였고 중요하지 않으니까."
"실수였다고요? 어떻게 실수죠?"
"우리가 메시나에 있을 때, 어느 동료와의 일이었어. 지진이 있었던 다음에······. 간단히 말해 혼란스러운 일이었어. 나는 아주 젊었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럴 수가! 그러면 다른 사람하고는요?"
"오! 다른 사람하고는 우연이었어!"-106쪽

"정말로 네 식욕을 돋우었니?"
"왜, 안되나요?"
"오!" 어머니는 소리쳤고 웃었다.
"너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여자야!"
그리고 덧붙였다. "과부도 네 입맛을 돋우었니?"
"물론이지요! 오히려 더······."
"오!" 어머니는 소리쳤다.
어머니는 웃었고 말했다. "네가 그걸 알았더라면, 보지 못하도록 했을 텐데."-157쪽

"그러니까 자네 친구는, 모욕당한 세상의 고통 때문에 우리가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군."
"알고 있지." 칼갈이가 말했다.
에제키엘레라는 사내는 간략하게 요약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크고 아름답지만, 많은 모욕을 당했어요. 모두들 각자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모욕당한 세상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세상은 계속해서 모욕을 당하고 있지요."
그는 말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조그마한 눈은 슬픔 속에 닫혔다가, 생생해지더니 칼갈이를 찾았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친구에게 말했나? 내가 모욕당한 세상의 고통들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184쪽

남자는 내 말에도, 어머니의 말에도 몸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새하얗고, 무척이나 늙었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깊이 생각에 잠겨 있거나 아니면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자고 있어요?"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니야. 울고 있어. 멍청이."
그리고 덧붙였다. "언제나 그랬단다. 내가 해산할 때 울고 있었지. 그리고 지금도 울고 있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는 외쳤다. "아니, 어떻게? 그럼 아버지예요?"-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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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JC는 인생에 대한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근육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만큼 늙었지만 깊은 통찰력으로 국가의 기원, 아나키즘, 민주주의, 마키아밸리즘 등 강력한 정치적 견해들을 속삭인다. 참으로 노인네다운 잔소리같고 지루한 글은 그렇게 시작된다.

마키아밸리에 따르면 이렇다. 통치자인 당신의 모든 행동이 도덕적인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그런 도덕적 시험이 안중에도 없는 적한테 틀림없이 지게 될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임수와 배반의 기술을 터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는 그것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25쪽)

하지만 책은 상하로 나누어 져서 하단에 전혀 다른 느낌의 경쾌한 속삭임이 시작된다.
어느 날, 동네 세탁실에서 엉덩이가 너무도 아름다운 젊은 여자를 보고 푹 빠져버린 로망의 노망!

"하느님, 제가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소서."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이라는 사실이 너무 창피해 철회했다. (16쪽)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걸고, 그녀의 이름을 알아 가고, 요새 놀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의 에세이를 입력하는 일을 좋은 보수로 제안하기에 이르는 작가 JC는 때때로 그녀에게 실망도 하면서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하나둘 씩 알아간다. 

위층에 사는 안야는 순수하고 단순한 타이피스트로서는 조금 실망스럽다. 그녀는 자신의 할당량은 해낸다. 그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의기상투, 그러니까 내가 쓰는 것에 대한 센스는 없다. 때때로 그녀가 건네준 원고를 보면 당황스럽다. 가령 이런식이다. 대니얼 디포에 따르면, 진짜 영국인은 'papers and papery'를 싫어한다. 브레즈네프의 장군들은 'somewhere in the urinals'에 앉아 있다. (35쪽)


독일 젊은이들은 항의한다. "우리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를 인종 차별주의자이자 살인자라고 무시하는가?" 그것에 대한 답은 이렇다. "당신들이 불행하게도 당신네 조부모의 손자니까. 그리고 당신들에게는 저주가 붙어 있으니까." (61쪽)


그 운명적인 파티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지막으로 안야를 보았다. 그녀는 사과를 하러 왔다. 그녀는 그날 저녁을 자기들 두 사람이 망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앨런이 지옥으로 만들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일단 지옥으로 만들면 그를 제지할 방법이 없어요." 내가 말했다. "지옥으로 만든게 앨런이라면 사과해야 하는 사람은 그의 애인이 아니라 앨런이 아닌가 싶군요. 의미론적으로 말해서, 사과할 마음 상태가 아닌 사람을 대신해 제대로 사과를 할 수 있을까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온 거예요."
내가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나한테 사과하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당신에게도 사과하지 않을 그 남자와 같이 살 건가요?"
그녀가 대답했다. "앨런과 나는 서로 떨어져 살려고 해요. 시험적으로 떨어져 보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나는 타운스빌에 가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려고요. 모든 게 잠잠해지면 내 기분이 어떤지 보고 돌아올지 말지 결정할 거예요. 오늘 오후에 비행기로 떠나요."
내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는군요."
"네, 맞아요.' (187~192쪽)



앨런이 말했다. "그녀는 애원했죠. 그리고 나는 그 애원을 들어줬고요. 아이고, 이걸 어쩌나, 내가 비밀을 발설해 버렸네요. 나는 단념하고 그 애원을 들어줬어요. 맞아요. 솔직히 말하면 후안, 내가 그 사람이었어요. 당신을 강탈하려고 했던 문제의 악당이 나란 말이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요. 여기에 있는 나의 애인 때문이지요. 달콤하고 달콤한 컨트(cunt)를 가진 나의 귀여운 애인 때문이지요." (194쪽)


"나는 자위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아. 자위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거야. 자위는 악기를 연습하는 초보자를 위한 것이야. 프로이트를 읽은 자네가 어떻게 그처럼 무책임하게 그런 말을 사용하는가? 내가 얘기하는 것은 이상적인 사랑이며 시적인 사랑이지만 관능적인 차원에서일세. 자네가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네."
그는 나를 잘못 판단했다. 내게는 그런 관능적인 차원에서의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일컫는 이 현상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199쪽)



그녀가 천천히 몸을 빼더니 생각에 잠긴 눈으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말했다. "나를 안고 싶어요?"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가 말했다. "내가 떠나면 우리가 서로를 다시 보지 못할지 모르니까 나를 껴안고 싶으냐고요? 그래서 내가 어떠했는지를 나중에 잊지 않도록 말이죠." 그녀는 나를 향해 팔을 완전히 뻗지 않고 옆구리에서 반쯤만 들어 올렸다. 그래서 그 팔에 안기려면 한 발짝 떼야 했다. (209쪽)



처음에 그녀(엉덩이)에게 빠진 것은 노인 JC 였으나 차츰 그 노인의 매력에 빠져 가는 안야의 이야기...
20대 안야와 사랑하며 동거하지만 80대 노인에게 질투하고 통제력을 잃어 가는 40대의 앨런...

읽을수록 흥미진진한 그의 견해, 그의 독백,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
3단의 소설로, 모든 독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읽어가게 될 흥미로운 편집...
세로로 길쭉한 판형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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