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날들
이문열 / 아침나라(둥지) / 1993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참으로 멋진 작품임에도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사라지는 안타까운 장면을 목도하기도 한다.
이념을 왈가왈부 하기에 앞서 현역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고 싶은 이문열, 그의 작품 중에서도 그가 아끼는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팔렸을 뿐만 아니라 아예 시중에서 사라져버린 불운의 명작이 있다. 미로의 날들이 바로 그것이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화자인 나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발령을 기다리는 청년으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항상 현실의 부당함을 견디지 못한채 학원강사나 기타 일자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오로지 발령 받을 날만을 괴롭게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빈둥빈둥 흘려보냈고, 어머니의 소개로 외가 쪽 먼 친척이 하는 지방 도시의 목재소에 서기로 취직을 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장은 짝달막하지만 배포가 큰 인물로 입에 험한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며, 도무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행동만 일삼는데도 회사는 잘만 굴러 간다. 그렇게 몇달 지내다 보니 본사의 신과장이나 공장장, 제1공장의 강서기는 항상 짜고 회삿돈을 횡령한다는 것을 눈치 챈다. 목재소 본사 경리과에는 현양이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으며, 그녀와의 사랑에도 어설픈 정의감과 매너로 응대하는 주인공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인공이 사장 몰래 벌어지는 공장의 비리를 파헤치고 정의감에 불타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팔을 걷고 나서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문열식 인간본성 파헤치기의 진수를 맛보게 되며,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삶의 본질인지 갈등하기에 이른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고, 잘못된 이해로 삐딱하게 살아가는 한 사나이를 알고 있으며, 그가 자기 변명처럼 이 이야기를 읊어 대는 데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작가의 눈부신 글발에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설픈 천사의 모습이 교활한 악마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이 책이 어서 재출간 되어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열망한다.
사실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 보다 많은 독자들을 통해 재해석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내가 소장한 낡은 이 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래문학과 둥지출판사에서 1993년 봄과 가을에 연달아 출간된 개정판이다.
둘 다 고만고만하게 낡고 병든(?) 소장본이라 책장에 보관해도 그다지 멋이 없다.



1993년 4월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책인데, 개인적으로는 미래문학의 표지가 조금 더 맘에 든다.



미래문학이 조금 더 상세하게 작가를 소개하고 있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소개다.



서문부터 시작해서 내용은 전혀 다르지 않게 일치한다. 괄호로 한자를 첨부한 것까지 원문이 완전히 일치한다.



두 책은 편집이 완전히 똑같다. 아래아한글로 편집한 듯한데, 장평이나 자간 행간이 일치한 것을 보면 먼저 미래문학이 교정보고 출판한 원고를 그대로 받아다가 둥지에서 재출간한 것 같다.



작가의 도장이 하나하나 정성껏 찍힌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날짜와 가격으로 보아 미래문학에서 먼저 낸 책을 어떤 사정에 의해 둥지출판사가 다시 계약한 것 같다. 둥지출판사의 대표자가 시인 황근식 선생님인 걸 보니 아침나라 출판사가 어서 개정판을 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아침나라에서 하드커버로 이문열의 전집을 줄줄이 냈던 것을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할 일도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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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 2011-04-2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둥지출판사가 지금 아침나라 이구요 망한것 같구요 대표 황근식은 숨어버렸죠 저도 3년동안
돈도 못받고.. 사기행각으로 힘들었답니다

동탄남자 2011-05-03 07:48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황근식 사장님 건재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