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거기에 있는 거야? - 작은 개미 노티스의 변화와 성장 이야기
후쿠시마 고세이 지음, 지희정 옮김 / 타고북스 / 2009년 9월
품절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분 좋은 일이야. 마치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처럼 말이야. 누구라도 영원히 그런 상태로 있고 싶을거야.
하지만 따뜻한 물도 언젠가는 차갑게 식고 말아. 그러니까 기분 좋은 상태로 그 안에서 잠이 들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낭패지.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 테니까.-36쪽

"이런 당했어! 기껏 꿀까지 나눠줬는데······. 다음에 만나면 혼쭐을 내주겠어!"
다른 사람을 믿은 자신이 바보였다.
자신이 원망스러워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노티스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꿀을 숨겨둘 만한 상자를 찾아서 그 안에 꿀이 담긴 병을 넣은 다음 자물쇠로 담가두는 거야!"
그리고 또 다른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맞아! 숨겨두는 장소를 분산해두면 한꺼번에 도둑맞을 일이 없을 거야! 아! 그렇지! 아예 다른 곳에도 꿀을 숨겨둘 집을 만들면 좋겠다. 그러면 꿀도 훨씬 많이 저장할 수 있을 거야! 이젠 마음 놓고 빨간색 꽃에서 나는 꿀을 찾으러 다녀도 되겠어!"-146~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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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절판


독일에서는 국민의 겨우 12퍼센트만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등록했다. 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무려 99.98퍼센트에 달한다.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은 문화적 배경에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오스트리아인들은 그토록 장기 기증에 열성적인 것일까?
(중략)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의 범위를 조정하는 일에 새롭게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다. 경제학과 법학 교수인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테인은 '넛지'라는 책을 공통 집필 했는데, '디폴트'를 이용해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일을 옹호하는 책이다. -102~103쪽

로마 황제 비텔리우스는 공작 수천 마리의 뇌수와 플라밍고 수천 마리의 혓바닥으로 식사를 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도덕적 타락의 증거로 이야기 한다. 그런 초대형 요트를 보유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너무 가혹한 판단 같다면, 먼저 그런 배를 사들이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생각해 보라.
(중략)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기후 변화를 고려해도 거대한 요트를 가진 사람들에게 비난을 돌리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요트라는 이름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 배들은 풍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며, 큰 엔진과 펌프로 움직인다. 따라서 막대한 디젤 연료를 소비하며, 대량의 온실가스를 대기 주에 내뿜는다. 예를 들어 엘리슨의 '라이징 선'은 4개의 엔진으로 구동하며, 이 엔진들은 각각 풀파워 상태에서 시간당 548갤런의 연료를 쓴다. 따라서 이 배를 움직이려면 매시간 2천 192갤런의 연료를 써야 하다. 한 시간만에 '라이징 선'은 보통의 미국인 운전자가 디젤 엔진의 폭스바겐 제타를 거의 7년 동안 몰며 쓰는 것과 맞먹는 연료를 써버리는 것이다. (*엘리슨=오러클의 CEO)-214쪽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단지 상품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인생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여기는 일은 남들을 위해 자신이 사는 곳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든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 부여가 세상에 있을까요?" (헨리 스피라의 발언)-232쪽

조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한 경찰은 그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조든의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길을 가다가 아이가 물에 빠진 걸 보면, 지체 없이 뛰어들어야 옳죠······.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 무슨 훈련이 필요한가요?"-22쪽

그때 그는 아무도 타지 않은 차량이 궤도를 이탈한 채로 철길을 따라 굴러 내려오는 것을 본다. 아래쪽 철길을 보니, 한 꼬마가 철로에서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탈선한 차량이 곧 덮칠 텐데, 밥이 기차를 멈출 수는 없고, 아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밥이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밥은 철로 변경 스위치를 돌려서 굴러 내리는 차량이 아이를 비껴가게 할 수는 있다. 그러면 차량은 바로 그가 부가티를 갓길에 세워둔 철로로 옮겨서 굴러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겠지만, 열차는 썩은 목책을 부수고 갓길로 뛰어들어 부가티를 덮칠 것이다. 부가티로 인해 자신이 얻는 즐거움, 게다가 재정적인 안정감을 저버릴 수 없는 밥은 스위치를 돌리지 않기로 한다.-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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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시압 이야기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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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문학동네가 가끔 이렇게 신선한 문화권의 소설을 소개시켜주니 참으로 고맙다.
주말을 맞아 아내와 함께 멀리 지방으로 이사 간 처제네 집을 다녀오면서 고속버스 안에서 읽었는데. 난독증에라도 걸린 듯 읽고 또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으나 그냥 대충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글들이 많았다. 이 소설이 내게 어떤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이 한결 풍요로워진 기분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리얼리즘의 테두리 안으로 자꾸 나를 속박해 가던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좋은 책을 만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목숨이 마냥 아까웠던 어느 건달이 죽음 앞에서 노름과 같은 생명 구걸을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매우 비현실적임에도 내게는 현실의 교훈처럼 다가왔다.

"난 자네가 내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 남자 대 남자로 게임 한판 하는게 어때? 박진감을 높이기 위해 뭘 걸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만약 내가 이기면 내게 백 년의 수명을 더 줘, 어때?" (15쪽)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으뜸패 게임으로 백 년 수명 연장의 게임이 시작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건달의 오랜 친구는 단순 내기에 말려 들었다가 진실을 알고서 분노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게임에 강한 죽음 앞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아대며 죽어 간 두 건달... 어차피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던 노인 젯잘 데데(데데=할아버지)는 죽음과 한 편에서 의연하게 으뜸패 게임을 나섰다가 두 건달이 죽은 뒤, 죽음의 제안으로 이야기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 자체가 주는 즐거움 이외에는 그 어떤 목적, 규칙 그리고 조건이 없는 게임, 그러니까 진짜 게임을 하지. 난 자네가 손자 손녀들에게 전설, 동화 그리고 이야기들을 해주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자넨 이미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 한 주제를 택해서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로 하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 자체를 위해서 말일세. 이야기 한 편당 자네에게 한 시간의 목숨을 더 허락하겠네. 어떤가?" (23쪽)

죽음이 찾아 왔을 때, 손자 손녀들과 함께 있었던 젯잘 데데는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것을 마냥 싫어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거인 에프라시압의 보물을 찾아가게 되었노라며, 아이들의 두려움을 잠재웠었다. 그리고, 죽음과 젯잘 노인의 생명 연장의 핑퐁 게임은 공포, 종교, 사랑, 천국 등 다양한 주제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와 데카메론 풍의 이야기 게임이 포스트모던 하게 전개되는 동안 죽음은 또 다른 표적 '우준 이흐산'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가고, 노인은 별다른 불만 없이 죽음과 동행하며 독자들을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흡혈귀 교장과 천재 소년 화가의 섬뜩한 이야기 '화창한 날', 마이다스의 손을 연상시키는'비다즈의 저주'로 공포 이야기를 끝내고, 이슬람 마을의 종교 지도자 이맘의 성지 순례에 동행한 노망난 노인과 상사병에 걸린 늑대 소년의 '어느 성지 방문', 부유한 상인 압튈제야트가 꿈에서 만난 살리흐 노인의 훈계를 듣고 떠나는 이야기 '세계사'로 종교 이야기를 끝내고, 자식들을 결혼시키기 위한 홀아비와 과부의 네 자매 이야기 '에지네의 괴물', 그림 동화 '빨간 모자'를 패러디한 '포도주와 빵'에서 사랑을 이야기 한다. 입장이 정리되지 않는 소년 슈퍼맨의 '하늘에서 온 아이' 등 끝없이 펼쳐지는 그들의 주제... 다음 이야기의 주제를 묻는 죽음에게 그만 끝내고 싶다고 의연하게 대답하는 젯잘 데데의 선언은 죽음을 당혹스럽게 한다. 

"다음 주제는 없소. 이제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게임은 끝났소. 내게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져가시오."
- 중략-
"사실 난 당신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한 모든 이야기를 포괄하는 한 편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 이야기는 영원히 지속될 거요. 하지만 이야기꾼이 나인 것으로 보아 당신이 추측하듯 너무 지루할 거요. 나는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오. 우리네 삶도 이러하지. 지금까지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소.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소. 보시오, 잠시 후면 해도 서산으로 넘어가겠소." (305쪽)


하지만 노인의 살아온 날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나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손자 손녀들... 에프라시압의 보물을 할아버지와 함께 찾아 나서고 싶었던 그 순수한 영혼들이 할아버지에게 함께 데려가 달라고 조르다가 죽음을 발견하고는 할아버지를 지켜내고자 한다. 죽음은 그 아이들의 소망에 맞서 또 다른 게임을 제안한다.

"좋아, 정 그렇다면 너희들과 게임을 하자. 봐라, 곧 해가 떨어질 것이다. 너희들에게 해가 지평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주겠다. 그 시간 안에 나를 웃기거나 미소 짓게 한다면 너희 할아버지를 두고 가겠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데리고 갈 테다. 어때, 내기를 하겠느냐?" (314쪽)

마지막 내기는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나는 승리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언제가 끝날 수 밖에 없는 삶. 현실의 삶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또다른 미지의 세계를 마냥 두려워 한다면, 작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의도와 엇갈리는 행보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번역자인 이난아 선생님이 남긴 후기를 보면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읽을 수 있는데, 좋은 작품을 번역해 준 이난아 선생님에 대한 내 존경심을 덧붙여 드리고 싶다.

뭐가 딱히 기억에 남는 내용의 독서가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여운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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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어린 창부
김춘수 지음 / 월간에세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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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의 시와 에세이 묶음집 한 권이 다소 이국적이고 외설적인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시집은 특히 외모가 예뻤으면 좋겠는데, 15년만의 개정판임에도 표지는 균형도 어색하고, 멋스럽지 못한 캘리그라피로 장식되어 많이 아쉽다.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김춘수 시인의 시는 단연 '꽃'이 이 책 17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존재의 이유와 함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누구나 꽃을 생각하면 봄이 떠오르고, 봄을 상징하는 것 또한 꽃이기에 '봄은'(32쪽)이란 시가 눈에 띈다. 중앙대 겸임 교수 임종두 화백의 화사한 그림과 함께하는 본문은 표지의 못난 억울함(?)을 과감하게 벗겨준다고 볼 수 있다.

표제시 '마드리드의 어린 창부'는 이국적인 글이 많이 수록된 이 책의 특징을 압축한 책일 수도 있으나 독자로서 그다지 감흥도 없고, 시인이 그렇게 다양한 소재로 활용한 유럽의 문화에 대한 공감도 크게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이 땅에도 소재는 넘치며, 이국에는 그네들의 언어와 시각이 넘칠 텐데 왜 그리도 유럽을 소재로 한 글이 많은지 이 책의 표지에 이은 내 두 번째 불만이다. 당시에는 그러한 소재가 지식인의 유행이었던 것일까? 많고 많은 글 중에서 왜 이런 시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채택한 것일까? 시어의 운율과 느낌은 좋지만 제목을 보면 왠지 모를 서러움과 함께 불쾌함이 밀려 온다. ㅡㅡ;

마드리드의 어린 창부

마드리드에는 꽃이 없다.
다니엘 벨은
이데올로기는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유카리나무에 피는
하늘빛 꽃은 바다 건너
예루살렘에 가야 있다.
마드리드의 밤은 어둡고 낯설고
겨울이라 그런지 조금은
모서리가 하얗게 바래지고 있다.
그네가 내미는 손이
작고 차갑다.
 



내 좁은 마음 탓인지 이국의 어린 창녀를 생각하다 불쾌해진 마음을 '소년'(25쪽)에서 찾고 싶었다.

이 책은 시집이 아니라, '시집 + 에세이집'이다. 앞쪽은 시집이고, 뒤쪽은 에세이집인 것이다.
비판적인 김춘수 시인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 나름대로 15~20년은 지난 글이라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에는 더욱 더 심화되었을 뿐 전혀 개선되지 않은 문제들임 읽을 수 있다.

후기산업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거리에 나붙은 갖가지 현수막 중에서도(무슨 놈의 현수막이 그렇게도 많은지) 몹시 시신경을 아프게 하는 것을 하나 보고, 정말이지 봐서는 안될 것을 그만 보고 말았구나! 하는 심정이 된다. 그 현수막은 '우리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학교에 보냅시다'라는 글귀이다. 서울의 거리에는 동서남북 할 것 없이 이따위 현수막이 도처에 나붙어 있다. (87쪽, essay '아이들을 위한 유토피아' 중에서) 

조선시대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외규장각을 훔쳐간 프랑스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다음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씁쓸함이 더욱 더 커져만 간다. 

훔쳐간 것은 백번 사죄하고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인간된 도리다. 그들이 곧잘 지적소유권이니 하고 자기들의 권리를 내세우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들은 남의 것을 훔쳐가도 되고 남은 자기들 것을 베끼기만 해도 안 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양심의 마비요.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부처의 눈에는 이런 따위도 부처로 보인다고 하면 나와 같은 옹졸한 위인의 눈에는 부처가 우습게 보일 뿐이다. (125쪽, essay '부처의 눈에는' 중에서) 



비판적인 에세이 몇 편을 읽다보니 37쪽에 수록된 '개 두 마리'라는 제목의 짧은 시가 아른 거렸다.
월간 에세이에 3년간 연재한 컬럼을 묶어 시인이 선별한 시들과 함께 묶어 낸 이 가볍고 편안한 책은 분명 멋지다. 화사한 그림들과 함께 편안하게 책을 보지만 덮어두면 표지가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한 번 아쉬움 생각, 시집은 특히 표지가 예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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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어린 창부
김춘수 지음 / 월간에세이 / 2009년 8월
품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7쪽

마드리드의 어린 창부


마드리드에는 꽃이 없다.
다니엘 벨은
이데올로기는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유카리나무에 피는
하늘빛 꽃은 바다 건너
예루살렘에 가야 있다.
마드리드의 밤은 어둡고 낯설고
겨울이라 그런지 조금은
모서리가 하얗게 바래지고 있다.
그네가 내미는 손이
작고 차갑다.-44쪽

후기산업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거리에 나붙은 갖가지 현수막 중에서도(무슨 놈의 현수막이 그렇게도 많은지) 몹시 시신경을 아프게 하는 것을 하나 보고, 정말이지 봐서는 안될 것을 그만 보고 말았구나! 하는 심정이 된다. 그 현수막은 '우리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학교에 보냅시다'라는 글귀이다. 서울의 거리에는 동서남북 할 것 없이 이따위 현수막이 도처에 나붙어 있다. (essay '아이들을 위한 유토피아' 중에서)-87쪽

훔쳐간 것은 백번 사죄하고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인간된 도리다. 그들이 곧잘 지적소유권이니 하고 자기들의 권리를 내세우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들은 남의 것을 훔쳐가도 되고 남은 자기들 것을 베끼기만 해도 안 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양심의 마비요.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부처의 눈에는 이런 따위도 부처로 보인다고 하면 나와 같은 옹졸한 위인의 눈에는 부처가 우습게 보일 뿐이다. (essay '부처의 눈에는' 중에서 외규장각에 대한 프랑스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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