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밑둥의 검정 개미들은 벌어진 앵두 속에 돌멩이들과 잔가지들을 쑤셔 넣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앵두의 수분이 날아갈까봐 혹은 더운 날씨에 상할까봐, 저장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서?

     앵두를 발견한 새들이 날아와 앵두를 집어 먹다가 자신들이 공 들여 만든 집터가 망가질까봐 염려스러워서?

 

 

 

     인간은, 마음 속의 앵두가 찢어졌을 때 -

     못본 척 외면하기도 하고,

     원형을 유지해보려고 다른 것으로 그 안을 꾸역꾸역 메꾸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가 난 앵두를 통째로 무의식 속에 버려버리기도 하고,

     전혀 다른 열매를 가져다가 '넌 원래 앵두가 아니었어, 봐봐. 넌 이 열매야'하고 우기기도 하는 거야.

 

     이건 썩지도 않아.

     계속 남아 있는 거지.

 

     결국은 용기를 내어,

     어느 날,

     찢어진 앵두를 꺼내놓고 마주봐야 해.

     

     찢어지고 벌어진 앵두 속을 엉뚱한 것들로 채워봤자, 소용 없다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 까지 -

 

     인간도 벌어진 앵두 속을 계속 무언가로 채우고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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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12-08-0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산에서
((엄청난 길이의)) <-거리라고 해야 할 지도;
개미들의 행렬을 발견했어요.
신기하고, 놀라워서
한참 관찰했던 기억이 있네요.
몇 주 전에^^

L.SHIN 2012-08-08 19:06   좋아요 0 | URL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됩니다. 그 행렬 앞에 쭈구리고 함께 앉아 과자를 먹으며, 부스러기를 주고 싶네요(웃음)

Jeanne_Hebuterne 2012-08-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잃어비리면 그것 뿐이에요. 어떻게 다른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엘신님. 오늘은 꼭 내가 살아 숨쉬는 하루가 병원 대기실에서의 시간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의 환자가 이백명 쯤 되고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는데 접수계에서 진료 끝을 외치면 어쩌나, 조바심 내는 그런 환자가 되어 그런 시간을 보내는 기분.

'이 앵두 속을 채워서 뭐 해' 와 '그래도 채워야 한다'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라고 중얼거리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 같은데, '내 이럴 줄 알았지'의 '이럴 줄'이 어떤 것인지가 궁금해서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오.
마침 적절한 시간에 엘신님의 글을 잘 만나서 다행입니다. 엘신님의 글에는 밑바닥에 감춰둔 오천원 짜리 지폐같은 따뜻함이 슬며시 보여서 좋아요.

L.SHIN 2012-08-10 20:04   좋아요 0 | URL
오늘, 그리고 어제는 어떠셨나요?
조금은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나요? ^^
나는 오늘.. 저녁에, 폭풍 같은 시간이 휩쓸고 갔습니다. 이제서야 숨 고르기를 하고 있죠.
무슨 정신인지도 모른 채, 악으로 끝까지 업무를 마친 것 같습니다.

Jeanne_Hebuterne 2012-08-10 21:37   좋아요 0 | URL
아니오, 전혀요! 평소 이렇게 일했다면 초고속 승진에 이어 최고 경영자의 자리까지도 넘볼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이 빠듯함은 8월 한 달을 쭉 가게 되었어요. 제가 뭘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일 무더기의 한복판에 떨어진 격이랄까요.

악으로 업무를 마친 것 같은 때, 그런 때가 있어요. 꼭 답은 모르겠고 시간은 채워야겠고 답지도 채워야겠고, 그래서 앉아있다 나오면서 '다시는 이 시험 안 쳐' 하는 심정으로 퇴근하는 순간이오.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엘신님이 페이퍼를 써주셔서 다행이에요.

L.SHIN 2012-08-11 00:14   좋아요 0 | URL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글을, 필요한 때에 남겨놓는 것 같아요.
노골적으로 'ㅇㅇ 에게 보여줘야지' 라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손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썼는데, 결국 서로를 위한 글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뭐랄까, 어쩌면 영혼의 주파수가 같은지도 모릅니다.(웃음)

프레이야 2012-08-1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물이란 결국 공허감만 더해줄 뿐이죠.
만남이란 것도 그런 의미로 볼 때 더한 공허감을
남길 때가 있어요. 채우려하지말고 그저 비어있으면
비어있는대로 두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파요, 엘신님♥

L.SHIN 2012-08-13 13:03   좋아요 0 | URL
나는..늘 공허감을 느낀답니다. 그게 어쩐지 심각한 고민이 되어 버렸어요.(웃음)
삶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도대체 그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답니다.
충실하게 살려면 나는 세상에 집착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건 도무지 생기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프레님 말대로, 나는 비워야 할까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 무언가 나를 방해하는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