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를 처음 접한 것은 90년대 초중반이었던가.
    그가 처음 베스트셀러를 냈던 [개미]라는 책이었다.
    그 때 C가 그 책들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소감과 함께 추천을 해주었었는데
    나는 그 당시 그렇게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지금까지 그냥 책장에 꽂아
    놓고만 있었다.
    그 이후로 C는 계속해서 베르나르의 책들을 샀다.
    [개미혁명], [타나토노트]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개미혁명]은 [개미]의 후속편이다.
    [타나토노트] 역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베르나르가 언어를 조합하긴
    했지만)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책들을 접할 당시 나는 지구에서 체류한지 십몇 년 밖에 안됐었고 [타나토노트]는
    아직 내가 읽을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여전히 그들은 내게 먹히질 않고 제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개미 : 1,2,3권    

 개미혁명 : 1,2권      

  

      

 타나토노트 : 상, 하권

 

    그러다가 2003년, 나는 갑자기 베르나르의 다른 책들을 빠른 속도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었다. [아버지들의 아버지], [천사들의 제국], [나무], [EXIT] 등.
    마치, 어떤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오랫동안 등한시했던 작가의 책들 6권을 단 며칠만에 먹어치우는 기록을 세웠다)
    전세계적으로 지금의 베르나르를 있게 만든 [개미]는 정작 아직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나온 그의 다른 책들이 나는 무척 맛있었다.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니라 그의 사고방식이나 그가 기술하는 세계가 마음에
    들었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그의 남은 것들을 (거의 의무감 비슷한 감정으로)
    먹어치우기 위해 입양한 것이 [뇌][신]이다.
    평소 인간의 뇌에 관심이 많아 다른 인문학 혹은 전문/교양 서적류를 통해 뇌에 관해
    그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과 호기심과 끊이지 않는 의문들에 대한 대답을 얻어가며
    즐기고 있었던 내가 베르나르가 쓴 [뇌]라는 책을 안 읽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EXIT]라는 만화에서 [뇌]라는 소설이 어떤 양상을 띄고 있을지 짐작을
    했다 해도 말이다. (베르나르의 특징이다. A 소설에서 B 소설에 대한 힌트를 주거나
    미리 암시하는 것은) 

   

  아버지들의 아버지 : 상, 하권  

 천사들의 제국 : 상, 하권

 나무 : 단편소설 모음집

  

 

 EXIT : 만화 1권 완결

  

     베르나르는 한 소설에 2개 혹은 3개의 플롯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여러 소설이 하나의 큰 맥을 이루게 만드는 것 또한 그의 고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됨을 그의 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조금 실망스러운 것은 그가 새로운 주인공들을 양산하는 것보다 한 번 썼던
    주인공들을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펴낸 여러 소설들에서 나타내고 싶은
    그의 '생각의 뿌리'나 '이야기의 전체 흐름을 유지하는 맥' 때문이라는 것도 알지만.  

   

 뇌 : 상, 하권   

 

 

 신 : 1~6권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아 조사하는 여기자 '뤼크레스 넴로드'와
    남기자 '이지도르 카첸버그'가 [뇌]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뇌의 신비'를 캐기
    위해 다시 뭉친다. 그리고 [타나토노트]에서 영계 탐사를 했던 '미카엘 팽송' 외 친구
    들은 [천사들의 제국]에서 천사가 되어 인간들의 삶을 관찰, 개입하고 다시 그들은
    [신]에서 '신 후보생'으로써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다.
    같은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소설에서 이어진다는 것은 재밌는 발상이고 작가의 글을
    쓰는 개인적 취향이므로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여러 소설에서 계속 강조되는 그의
    개인적인 철학적 사고들은 가끔 질리기도 한다.
    가령, 예를 들어 생물의 단위를 아라비아 숫자로 재해석한 것. 

     1. 광물
    2. 식물
    3. 동물
    4. 인간
    5. 현자 

    여기까지가 [아버지들의 아버지] 외 다른 소설에서 나온 숫자로 재해석한 생물의 단위이며
    일종의 레벨이다. 처음 접했을 때는 참신하고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천사들의 제국]에서 다시 언급되며, 

    6. 천사 

    6번항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다음은 뻔한데도 불구하고 '비밀'이라는 식으로 풀어버린다. 

    [신]이라는 소설에서는 숫자 7을 '신 후보생'이라고 하는 것 같다.
    [신]은 6권짜리인데다 다른 먹을 책들이 많으므로 손을 데지 않은 상태다, 아직. 

    그렇다면, 베르나르는 8을 뭐라고 할까. '완전한 신' 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냥 '우주'인가.
    뫼비우스의 띠가 8자인 것처럼, '우주=무한대'라는 공식을 갖다 붙이면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욕샘쟁이 베르나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8에서 끝낼리 없다.
    그는 9까지 늘어놓을 것이다. 베르나르가 진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저 숫자들을 중심축으로
    은근슬쩍 자신의 철학적 사유들을 주구절절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흥미위주의 소설을 매개체로. 

    그는 처음부터 - 마치, '이지도르 카첸버그'가 벽에 커다란 '가능성의 나무'를 그리며 '뿌리에서
    가지로' 뻗어가는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듯이 - 자신이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야금야금 여러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내면서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에 접근하거나 혹은 흡수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간접적으로 그는 이미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 입을 통해서.
    실제 [나무]라는 단편소설 모음집은 프랑스에서 '가능성의 나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베르나르가 목적하고 있는 것.
    [뇌]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그에게도 있으리라.
    베르나르의 동기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괴짜 소설가의 엉뚱한 주제'일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꽤나 영향을 미치는
    사고의 전이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후자를 원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인가.
    어쨌거나 이제 베르나르가 [신]을 마지막으로 그 기나긴 여정 - 십몇 년에 걸쳐 완성하고자 했던
    자신의 이야기 풀기 - 을 마치고 다른 소재의 새로운 소설을 쓰기를 바라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맛있었지만, 계속해서 같은 것을 먹으면 질리고 체하기도 한다.
    베르나르의 책들은 이제, 나로 하여금 소화불량이 되기 직전까지 만들고 있다. 
    소화를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같은' 음식만 먹어서 탈이 나는.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지 안다. 그래서 이제 질린다.
    그는 아주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전달력이 상당히 좋은 작가다.
    하나의 주제에 집착하는 것은 졸업하고 좀 더 다양하고 많은, 그래, [나무]에서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으면 한다. 

    나는 배고프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마르다.
    나는 충격을 받고 싶다.
    나는 끊임없이 지구의 삶을, 문화를, 언어를, 인간들의 생각을, 지식을, 진보화된 문명 등을
    흡수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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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1-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 보니 어쩐지 댄 브라운이 떠올랐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아주 예전에 단편 소설이던가? 짧은 소설 한편만 읽고는 다시 안 읽었어요. 내용이 좀 괴상했어요. 첫번째 책이 별로였음 그 작가 책을 다시 잘 안 찾게 되어요. 개미나 기타 다른 책들은 재밌을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읽고 싶지 않더라구요.^^;;

L.SHIN 2010-01-10 20:31   좋아요 0 | URL
댄 브라운..? 낯익은데..누구였더라..(아, 이 눔의 몹쓸 기억력 =_=)
그래요, 누구에게나 취향이란게 있는데다가 '첫 만남'이 별로였다면 다른 것도 흥미가 떨어지죠.
저는 댄 브라운을 찾아봐야겠습니다.(찾았는데, '아, 이 사람!' 하고 외치게 된다면, 그야말로
내 저질 기억력에 좌절하고 말 듯 하지만,웃음)

메르헨 2010-01-1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아버지들의 아버지,나무,뇌 읽었군요. 흠...개미가 젤 재미있었어요.^^

L.SHIN 2010-01-10 20:32   좋아요 0 | URL
[개미]는..'아직도'입니다.(웃음)
그 당시에 앞 부분 약간만 읽다가 손을 놨었는데, 꽤나 흥미로웠다는 것은 기억해요.

무스탕 2010-01-10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한 편도 안 본 1인;;;

L.SHIN 2010-01-10 20:34   좋아요 0 | URL
네, 이외로 많습니다. 제가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무라카미 뿐만 아니라 수 많은 -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 작가의
책 또한 읽지 않으니까 말이죠. 취향의 차이일 뿐입니다.(웃음)

후애(厚愛) 2010-01-1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한 편도 안 봤어요.^^;;;
신은 보고싶은 책이에요.^^

L.SHIN 2010-01-11 09:10   좋아요 0 | URL
물론, [신]만 따로 읽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내용이 [타나토노트] - [천사들의 제국] - [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단지 주인공들이 같다는 것과, 작가가 본래 전하고자 하는 취지가 그 세 소설에 두루 걸쳐서
뼈대를 만들고 있을 뿐이니까요.^^

다락방 2010-01-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미] 읽고 그의 다른 책을 들었다가 실망하고 그의 책 읽기를 멈추었죠. [개미]는 그당시 제게 혁명 그 자체였어요. 정말 옴팡지게 재미있어요. 최고에요!

L.SHIN 2010-01-11 18: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개미]는 누구에게나 혁명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만한 책은 쉽게 보이지 않죠.
그 최고의 책을 정작 저는 뒤로 한채 다른 것만 먹어치웠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