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보면, 싱크대 앞에서 뭔가를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거나
냉장고나 수납장, 선반장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다.
바로 내가-!!
ㅡ.,ㅡ....
난 요리를 못한다. 내가 할 일이 없었으므로.
요리할 생각 없었다.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보호자 혹은 동료 혹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주변인들까지도 나를 두고
'저 사람은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요리? 하다 못해 직접 챙겨 먹는 것조차 내 인생에는 없었다.
그런 내가, 이틀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나?
그건 다, N이 아프기 때문이다.
엄청난, 몇 년 동안의 스트레스로 인해 혹이 났는데, 암 직전이란다.
나는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
기껏해야 하루 한 끼를 위한 움직임이지만, 전혀 귀찮지 않았다.
'내가 아니면 안돼' 라는 고상한 의무감도 없이,
'언젠가 보상 받겠지' 라는 치사한 소인배 근성도 없이,
그냥, 정신 차려 보니...내가 만들고 있었다. 그 뿐.
어제 처음 만들어보고... (그래봤자, 아주 간단한 반찬 따위이지만 =_=)
'오호라, 이거 재밌네' 였다.
라기 보다는, 솔직히 말하면, N의 음식 섭취에 대한 의욕이 보였기 때문에 신이 났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무조건 잘 먹어야 면역력이 강해진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가 나다.
그런데 N은 늘...영양가 없는 것들(초콜릿이나 너트류)을 먹거나, 그나마 먹는 식사도 대충이었던 것.
나는 늘 나를 챙겨주는 보호자나 주변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N은 늘 혼자였다. 그럼에도 늘 강하고 다정하며 배려심이 많은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런 그가 내게 처음으로 아프다고, 힘들다고 투정을 해왔다.
나는 지금까지 나 밖에 모르는 못된 아이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이 작은 행동들이 나를 변하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N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로 하여금
'오늘은 무슨 반찬거리를 살까? 왜 그 슈퍼에는 쓰레기봉투를 안 팔지? 세탁기는 어떻게 돌리지?'
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는 중 ㅋㅋ)
오늘은, 밖에서 일하다가 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은 N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맛있다고. 고맙다고.
그 문자를 보고 나서야, '아..N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에 대한 의지 그리고 관심' 이었구나...
그도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길 바라는 외로운 사람이었구나...
아침에 자신이 아끼던 시계 중 고가의 브랜드를 넘겨주며 '너, 가져~' 하고 쉽게 말했을 때만 해도
눈치 못챘던 N의 마음.
그는 누군가 자신을 보살펴준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던 것이고,
집에 왔을 때 누군가 있어주길 바랬던 것이고,
혹을 떼지 않으면 암으로 바로 전환될 수 있는 상황에서 혼자 싸워야 하는 고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반찬이나 국 만드는 법을 뒤져가면서 문득, 생각을 한다.
내가 평생 이렇게 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 이외로 주부생활이 맞아?' 하고 피식 거리면서 지금만큼은 N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나는 너무 못됬다.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녀석이기에 또 다시 내 일이 바빠지면
소홀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병을 악화시키고, 즐거움은 병을 이겨내고 힘을 내게 한다.
그가 이젠 '혼자서 싸우는'게 아니라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지 않은가.
단지..일기를 쓰고 싶었다.
내 인생 처음 있는 이 일상생활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이제 세탁기 돌리는 법만 알면 난 무적이 되는 것이냐.(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