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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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중에서(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였던 기형도 시의 일부다. 다소 엉뚱하게도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고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한 말이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작은 언쟁이 연인들 사이에 오간다. 너무 유치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영원한 사랑’에 대한 열망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과거에, 현재도, 앞으로도 아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인류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고 인류의 역사인 것처럼.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t,1994>는 모든 연인들의 필독서로 권해도 좋을만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연인 사이의 문제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는다고 해서 실제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이렇게 영원히 되풀이되는 주제에 대해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는 관심과 공감을 표시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의 매뉴얼이 나와 있다면 이런 종류의 책도 의미가 없어질테니 말이다. 이성과 사랑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이론일 뿐이다. 절대 독해 불가능한 타인과 사랑에 대한 메카니즘을 분석하고 해부하는 것과 현실적인 문제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책은 더 없이 훌륭하게 다가온다.

  보통의 전작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essay in love,1993>와 <사랑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kiss & tell,1995> 사이에 쓴 책이니 사랑에 관한 3부작으로 엮는다면 가운데 토막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1년에 한권씩 사랑과 연인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를 3년에 걸쳐 완결한 것일까? 93년부터 95년까지의 시기면 69년생인 보통이 만 스물 네 살에서 스물 여섯 살까지 한 권씩 쓴 셈이다. 사랑에 관한 한 박사학위를 받아도 될 만하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일반화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보통은 이 책에서도 역시 연인들 사이의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의 에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완벽한 풀코스를 선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식상하고 당연해 보이는 정식 코스에 숨겨진 비밀들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사랑에 관한 금언과 격언들은 다름 아닌 인간 관계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스물 네 살의 영국의 광고 회사 직원 앨리스는 파티에서 의사를 포기하고 금융업에 종사하는 서른 한 살의 에릭을 만난다. 친구 수지와 매트는 조연이고 등장인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앨리스는 필립이라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끝난다.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는 없는것과 마찬가지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분석하거나 해석하는 내용들이 어렵지 않게 묘사된다. 많은 철학자들의 말과 문학 작품 속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분명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유머와 재치를 곁들인 보통의 문체는 가독성을 배가 시키고 깊이 잠수했다가 수면위로 떠오르듯 자연스럽게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런 문장과 책을 왜 마다하겠는가.

  책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보통 특유의 그림들과 해설들은 쉽고 재미있게 추상적 개념과 연인들의 심리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주관과 객관이 뒤섞여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까지 덤으로 얹어준다. 그것들이 모두 객관적이거나 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공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와 보편적 정서를 밑바닥에 충분히 깔아두고 있다.

  우리말 제목의 의미 - ‘우리는 사랑일까’는 현재 진행형인 연인들의 관계를 점검하는 시제다. 하지만 ‘사랑 이후’의 연인들이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할 예정인 연인들에게,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더 이상 사랑이 필요 없다고 선언한 사람들에게도 골고루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엉뚱하게도 에릭을 만나기 전 앨리스가 “나랑 세상 사이에 목도리 같은 게 끼어 있는 기분이야. 자연스럽게 느껴는 걸 막는 담요 같은 게 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 공감하기도 하고, 앨리스가 에릭에게 이별을 선언할 즈음에 하는 생각 - 그이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구나. -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유명한 경구의 진부한 메아리였다. - 이 모든 사람과 공감할 만하다.

  20세기 사랑과 연인들의 심리에 관한 보급판 같은 책이라는 속된 평가가 지나치지 않다면 부담없이 소파에 파묻혀 책장을 넘겨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다.


200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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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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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책만 보는 바보를 꿈꿔 본다. 세상에 대한 도피와 일탈의 성격으로 쉽게 말한다. “아~, 시골에 내려가 책이나 보면서 지냈으면 좋겠다.”하는 소망을 드러낸다. 나도 그렇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하늘을 벗삼아 책만 보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태도가 다 다르니 사람마다 소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책 속에 묻혀 사는 즐거움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강렬한 유혹임에는 틀림없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책만 읽는 바보를 ‘간서치(看書痴)’라고 한다. 조선 후기 한 시대를 살았던 이덕무(1741-1793)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글을 남겼다. 스물 한 살에 쓴 ‘간서치전(看書痴傳)’이 그것이다.

  이 책은 자서전 형식으로 이덕무 스스로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글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늦은 나이에 연경에 다녀온 후 규장각 검서관으로 입궐하고 지방의 수령으로 내려가기도 한 그의 삶은 평범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글과 생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어찌보면 역사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특별한 공적이나 특징이 없어보이지만 그의 생각과 삶이 주는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이 있다.

  한번 서자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대대손손 서자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은 그 후손들이 짊어져야할 삶에 멍에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다. 적자와 서자의 차이, 신분의 차이가 삶을 결정했던 시대를 들여다 보는 일은 슬프다. 이덕무는 서자의 집안 출신으로 관직에 나아갈 길도 막혀있고 그렇다고 농토가 풍부하거나 상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스스로 ‘책만 읽는 바보’라고 칭할만 하다.

  만약 정조와 같은 왕을 만나지 못했다면 서자 출신의 이덕무는 평생 눈물과 회한으로 쓸모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살았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중요한 일이다. 직업의 선택이나 생계의 유지 수단이 제한되어 있었던 이덕무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유쾌하거나 즐겁지만은 않다.

  다만 그의 젊은 시절 방안에 들어앉아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따라가며 책을 읽는 모습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책을 사랑했던 선비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평생 책과 함께 하며 그보다 더 좋은 친구들과 교우했던 이덕무의 삶은 평범했지만 그의 생각과 글은 맑은 수채화처럼 깨끗하다.

  평생의 친구였던 유득공과 박제가 그리고 백동수와 이서구 등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책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준다.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그의 두 칸짜리 집 마당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방 한 칸을 만들어 주는 일화는 형언하기 힘든 친구들의 우정과 그 관계를 말해준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복잡해지고 속도가 지배하게 됐지만 이덕무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18세기 후반의 어느 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이덕무의 산문들을 자서전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가의 솜씨도 깔끔하다. 문장의 흐름과 내용에 군더더기가 없고 이덕무의 글을 그대로 옮겨 나가는 부분도 어색하지 않다. 한 선비의 이야기로 책을 좋아했던 사람의 일생과 평범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전해주는 책이었다.

  이덕무의 친구 유득공과 박제가도 서자였다. 가슴 아픈 현실과 가난을 곁에 두고 살았던 그의 삶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을 스승으로 모시며 백탑(원각사지 10층석탑)아래를 거닐던 이덕무의 젊은 시절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건 나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할 친구와 존경할 만한 스승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높은 벼슬도 많은 재산과도 거리가 멀었던 이덕무의 삶은 그렇게 평범한 듯 보이지만 시대를 벗어나고자 했던 올바른 생각과 태도가 아름다운 간서치였다.

  현실적인 고통과 자책감 때문에 붙혀졌을 ‘책만 보는 바보’는 그 이면에 깔린 비애보다 현실에서 벗어나 글읽기를 좋아했던 한 선비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 있다. 하지만 책읽기의 행복과 모든 것을 나눌 만한 좋은 친구들과 함께한 그의 삶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차별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살았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책을 가까이 했던 그의 삶이 전해주는 의미는 만만치 않다.

  ž‹은 수묵 담채화처럼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그의 맑은 영혼이 느껴진다. 책속에, 글속에 많은 것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 진솔한 한 인간의 삶과 이야기가 영웅의 이야기를 넘어선 감동을 전해준다. 이 세상에는 책만 읽는 바보가 아니라 책도 안읽는 천치는 얼마나 많은가.


200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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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도 매뉴얼이 있다 - 탁석산의 글쓰기 1 탁석산의 글쓰기 1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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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만큼이나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글쓰기이다. 억지로 의무적으로 써야하는 글쓰기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두 가지로 나눈다. 문학적인 글쓰기와 실용적인 글쓰기가 그것이다. 문학적인 글쓰기를 꿈꾸는 많지 않고 습작을 통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자발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글쓰기와 구별된다.

  물론 실용적인 글쓰기라 할지라도 학교에 제출하는 보고서나 회사에서 작성하는 기획서, 프리젠테이션용 문서, 대입을 위한 논술, 가정통신문에서 신문에 게재하는 사과문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내용은 다양하다. 그 수많은 종류의 글쓰기에는 일정한 패턴과 방법이 있을 것이고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분명 차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구별하지 않고 고정관념과 기존의 습관에 젖어있다. 우선 다음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점검해 보자.

1. 누구나 노력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
2. 말하듯이 글을 쓰면 된다.
3. 많이 읽고 많이 써보면 글을 잘 쓸 수 있다.
4. 글은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된다.
5. 글은 문장력이다.
6. 글쓰기의 궁극적 목표는 인격을 닦는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 테스트의 목적을 금방 알아챈다. 여섯 개의 문제 모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상태가 심각한 사람이고 모두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책세상 문고 1권 <한국인의 정체성>의 저자 탁석산이 의외의 책을 낸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1 - 글쓰기에도 매뉴얼이 있다>는 작은 책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철저하게 문학적 글쓰기와 구별해서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에 대한 방법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으로 되어 있는 시리즈물이다. 전체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이런 노력의 첫 번째 과정으로 생각을 바꿔주는 과정이다. 마음가짐과 글쓰기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고 쉽게 구성되어 있으며 활자가 크고 편집이 시원스럽다. 글쓰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지루하지 않게 적은 분량으로 되어 있고 시리즈물로 기획한 목적이 지독한 글쓰기 혐오자나 참을성 없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알맞은 책이다.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글쓰기에 다가설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쁘게 보면 한권으로 족한 분량의 책을 다섯 권으로 분책해서 팔아먹을 예정이다.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글쓰기를 조금 더 자신있고 분명하게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당연히 그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 많은 책들 속에서 분명하게 두드러진 면을 드러내려는 노력과 기획은 충분히 설득력을 얻고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하다.

  특히,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배상복의 <문장기술>, <서울대학교 글쓰기교실>은 왜 직접적인 글쓰기 과정에서 효과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 어떤 내용들이 잘못되어 있는지 밝히고 있는 부분은 신선하다. 기존의 생각과 틀에 박힌 관념을 깨뜨리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초 작업이다.

  <핵심은 논증이다>, <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보고서는 권력관계다>, <토론은 기 싸움이다>로 예정되어 있는 나머지 책들도 관심이 가긴 하지만 다 읽어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결국 탁석산의 논리도 일반론 수준에서 끝날지 아니면 보다 구체적인 각론을 제시할 것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실용적인 글쓰기를 분야별로 각권마다 담아낼 수는 없을 텐데 어떤 식으로 기획되어 출판될 지는 지켜 볼 일이다. 한 두 권은 더 읽어보아야 할 듯싶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글로써 다 전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말과 글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에게 어떤 도구인지 확인해보는 것도 책을 읽기 전에 확인해 볼 일이다. 왜, 어떤 글을 쓸 것인가가 결정된다면 생각보다 쉽게 자신에게 꼭 맞는 방법과 기술을 익힐 수도 있을 것이다.

  ‘행간을 건너뛰는 두 개의 콤마’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 여백의 의미를 쓰다듬어 보는 문학적 글 읽기와 선명하게 구별되는 실용적 글쓰기에 대한 특별한 책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200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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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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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뷰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깊이가 없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뷰어의 질문과 의도에 따라 대화가 진행되고 인터뷰이는 미리 준비하거나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솔직하고 생생한 느낌과 역동적인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받는 느낌으로, 제 3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혹은 엿듣는 호기심 가득한 독자가 되는 일은 즐겁다. 전문 인터뷰어로서 꾸준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지승호의 <7인 7색>은 분명한 색깔을 띠고 있다. 7명의 인터뷰이의 이름을 보고 거부감 없이 주문한 책이다. 인터뷰이들의 면면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지승호가 던지는 질문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고 지승호가 준비한 질문들이 궁금했다. 그런면에서만 궁금했으니 내게 특별함이나 새로움을 주지는 못했다.

  워낙 친숙하고 그들의 면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게 읽었다. 철저한 준비와 인터뷰이에 대한 꼼꼼한 분석으로 최근의 이슈가 됐던 사건이나 생각의 단면들을 여지없이 보여주도록 하는 지승호의 인터뷰는 분명한 특성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차원의 문제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과 인터뷰이의 개성과 특성을 드러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일률적인 내용으로 흐를 위험성을 피해가며 인터뷰이가 선명한 색깔을 드러내도록 도와준다.

  ‘나는 모든 지배와 권위에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박노자에 대한 인터뷰가 처음으로 실렸다. ‘진정한 아나키스트’로 명명된 박노자는 분명 한국인이지만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그의 세계관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을 비추어보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간 박노자가 쓴 책들과 칼럼들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보여준다. ‘다름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 이우일은 색다른 만화가다. 키취적 감성과 인디적 매력을 모두 가진 특별한 만화가다. 그가 세상에 대해 보여주는 냉소와 삐딱함은 독자들을 열광케했고 여전히 그의 만화를 기다리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만화를 특정 장르로 묶어두는 것은 곤란하다. 다양한 내용과 또 다른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이우일의 개인주의는 이기적이거나 치기어린 돌출행동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면을 가지고 있다.

  ‘낭만주의를 포기한 낭만주의자’라는 이름이 조금 어색한 유시민. 지승호의 최근작인 <유시민을 만나다>에서 소셜리버럴리스트라고 명명한 유시민이 이번엔 낭만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현실 정치에 대한 꿀꿀함을 쿨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유시민에 대한 지지자들이 애증을 보일만한 내용이다. 앞의 책에서 그의 생각과 면면들을 자세하게 소개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근황과 최근 정치 현실, 변화된 어법에 대한 생각들을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다. 손석희에 맞서 SBS에서 시사 프로를 진행하는 ‘광대의 철학자’ 진중권의 인터뷰도 흥미롭다. ‘나는 고상함 대신 장바닥에서 싸움질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한마디가 그를 대변한다. 항상 흥미로운 또는 투사같은 느낌으로 상대의 속을 뒤집거나 그 반대편의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거침없는 언변으로 싸움닭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라디오 프로 진행자로서의 장단점을 들려준다.

  ‘유연한 사회주의자’ 노회찬은 대중의 호감을 위하여 사회주의자인 나의 정체를 숨기지는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솔직함과 부드러움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의 삶과 정치인으로서 태도는 가장 정직해 보인다. 숱한 어록을 남기며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민노당 의원 노회찬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면이 많다. TV에서 보여지는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가 준비하고 있다는 책들을 만나 좀 더 많은 생각들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자 세상을 꿈꾸는 인도주의자’ 하종강은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20여 년간 같은 일들을 반복하며 노동자의 편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생각과 이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 전해지길 바란다. 스스로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인줄 모르는 사람들과 노동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노동자는 선이고 노동 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란다 ‘타인을 부끄럽게 하는 좌파’ 김규항의 인터뷰로 이 책은 마무리 된다. <나는 불온한가>가 나오기 전에 인터뷰한 내용이어서 출판에 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언급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김규항은 유일하게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친분때문인지 몰라도 어색하거나 거부감이 들기보다는 나름대로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일곱 명의 면면이 너무 뚜렷하고 개성적이어서 <7인 7색>이라는 제목을 붙였겠지만 ‘따로 또 같이’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만큼은 확실하게 얻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흔들림 없이 자기 갈 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것이 비록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도 인간적인 면을 떠나 그들이 행하는 방식과 지향점을 한번쯤은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이렇게 사는 것은 어떤가? 혹은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라는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사람들이지만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일곱명 모두에게 평소 깊은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다. 애정이 없는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를 읽을 이유가 없다. 당연하지만 지승호의 이 책은 인터뷰어의 훌륭한 기록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지승호의 다음 인터뷰도 기다려진다.

  살아가면서 세상을 안다는 것은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만큼 지루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한 분야에서 혹은 자신의 일에 열정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렵고 힘들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즐거움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은 나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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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의 흰머리뫼 문학과지성 시인선 306
박남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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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혼란스런 질문을 던지게 한 시인이 있었다. 80년대 해체주의가 절정에 달하고 있을 무렵에 만난 박남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형식에 대한 파괴와 도전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특별한 현상이나 처음 시도되는 것도 아니었다. 장르에 대한 도전과 파괴는 시인들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초절정 경직 사회였던 제 3공화국이 무너지고 박정희가 저격당하자 사회는 한동안 무질서와 혼란속에 빠져든다. 그것은 부정적 상황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질적 전화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기득권과 정치권력에 의한 군부독재는 지속되는 현실을 많은 사람들은 목도하게 된다. 5 ․ 18 학살의 원흉 전두환이 정권을 잡게 되는 충격적 사건을 맞는다. 이런 혼란 속에서 문학이라는 장르와 시의 의미를 고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노동 운동이 정점에 달하면서 박노해와 백무산, 김신용과 같은 대중적 노동자 시인이 등장했고 순수시는 혼란과 자기 파괴를 거듭하고 있었다. 박남철은 1984년 <지상의 인간>을 통해 세상에 대한 야유와 풍자, 신랄한 비판과 독설을 퍼붓는다. 기존의 도덕과 질서, 형식에 대한 파괴를 통해 독자들에게 충격 요법을 선사하고 있다. 시대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이 학자들의 몫이라면 박남철은 그 시대를 온몸의 촉수를 동원해서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혹은 거부하고 혹은 비틀어 놓고 있다.

  그의 시 일부를 발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시집 전체와 통어하는 독자들의 감수성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를 덮을 때까지 그가 이끄는 혹은 그가 살아온 세월과 시절을 더듬어 스스로를 ‘가짜 시인’이라 명명하는 박남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덕규와 함께 첫 시집이자 공동 시집인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발표하고 두 번째 시집 <지상의 인간>을 내놓은 박남철은 이후 <반시대적 고찰>에서는 더더욱 극명한 시에 대한 분열적 태도와 해체시라 분류될 만한 시들을 발표한다. 그때 갓난 아기 사진이었던 아들 ‘해미르’가 이제 수험생이 되었다는 시의 내용은 그의 가족사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이 가져온 변화를 미세하게 감지한다.

독자놈들 길들이기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 - 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 차렷, 헤쳐모엿!

이 좆만한 놈들이……
헤쳐모엿,

(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 따위로들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 박남철,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36, 1984, 64페이지

  피터 한트게의 연극 <관객모독>을 연상시키는 이 시는 가히 충격이었다. 충격은 단순히 충격으로 끝나지 않고 논리와 질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스무살 내게 점점 다른 시선과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구체적 모색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박남철이 모든 독자들에게 권유했던 고정관념과 기존질서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었고 야유와 풍자의 목소리였다. 그 방법도 여전히 유효하고 때때로 절실하게 요구된다. 과거의 수많은 예술에 대한 도전들 다다를 비롯해 초현실주의와 현대 예술의 다양한 방식들이 여전히 반시대정신을 요구한다.

  ‘파괴’를 넘어서 ‘무시’에 가까운 문학적 태도와 논의는 독자들에게 충격요법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현실로부터 일탈하려는 사람들과 목숨걸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동시적 경고에 해당되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결국 모든 예술도 인간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넘나든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 문학과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의미 없어 보인다.

  다만 세월과 시간의 벽을 넘어 ‘어디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돌고래 한 마리도 꼬리에 걸리’는 것이 시인의 운명인 듯하고 말하는 박남철의 변화가 주목된다. 정말 오랜만에 나온 시집을 찬찬히 읽어가며 나이와 시간이 주는 변화를 기대해 본다. 단순히 늙은 시인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이제는 동해바다의 고래를 잡으러 떠날 정도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나 싶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술에 취해서, 시외 전화까지 걸어와서, 자꾸 ‘죽음’이란 말을 입에 올려서 - 그는 지금 오랫동안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으리라! - 나는 제법 차분하게 “죽음이란 없다!”고 단언해주었다.

  죽음이란 없다.

  그대가 그대의 태어난 순간을 모르듯이, 그대는 그대가 가는 순간도 모르리라.

  다만 있 것은 생물학적인 공포와 개체 보존 본능만이 있으리라.

  니체가 ‘영겁 회귀’같은 것을 얘기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지만, ‘영겁 회귀’같은 것도 없으리라.

- 본문 11페이지 <어제 누가>중에서


200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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