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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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를 떠올렸다. 인간의 몸은 자유의 본질이며 출발이다.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물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합의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 또한 인간의 기본권이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과 거리가 멀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매력적인 몸이 다르고 특정한 몸을 추앙하던 사람들도 변한다. 질병과 장애로 일그러진 표정과 뒤틀린 몸을 로트렉이나 에곤 실레처럼 색다른 관점으로 표현한 화가도 있으나 대개 몸에 대한 미의 기준과 사회적 관점은 본능에 가까운 직관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니 몸과 관련된 주제는 정치, 사회, 역사, 예술 분야에서 조금씩 다르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빌 브라이슨은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되고 흥미로우며 미지의 대상인 인간의 몸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피부에서 뇌와 머리 입과 목, 심장과 피, 면역계와 소화기관뿐 아니라 음식, 잠, 직립 보행과 심호흡에 이르기까지 몸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은 ‘우리 몸 안내서’라는 부제답게 외계인을 위한 인간 이해 매뉴얼 같은 느낌이다. 해부학 도판으로 충분한 설명을 굳이 텍스트로 설명할 이유는 없다. 『그림과 함께 읽는 바디』가 따로 출간된 사실을 토론 도중 알았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라디오 드라마 극장’을 듣는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빌 브라이슨의 목적이 인체 해부도 설명에 있지 않았으리라는 건 누구나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입증한 지식과 정보의 편집력, 유려한 문장과 매끄러운 설명력, 재치 있는 입담과 적절한 비유를 무기로 다양한 인문학적 양념이 뿌려진 책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 책 또한 의학 분야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잡학 다식한 읽을거리로 가득하다. 과장하거나 주관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몸을 바라보며 다양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무나 쓸 수도 없다. 지식과 정보의 깊이와 넓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글쓰기 능력을 우리는 숱한 책에서 매일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 대란은 어느 쪽이 옳고 그름으로 판정할 수 없다. 응급 의료 체계부터 진료 과목 편중, 지방 의료 붕괴 등 이해관계로만 따질 수 없는 의료 문제는 교육보다 더욱 심각하게 공공성을 따져 거시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토론에서 다뤄진 ‘좋은 의학과 나쁜 의학’ 뿐만 아니라 ‘건강과 노화’, ‘뇌와 기억’ 등 우리는 몸을 통해 자기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의대 증원 문제가 숫자놀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성적순으로 의대에 진학하는 동안 무너진 기초 과학, 특정 직역의 상상을 초월한 이기주의, 의료 보험의 보장성과 실비보험 문제 등 이야기는 결국 현실과 닿고 우리 몸이 곧 삶이 되는 현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더 오래 살기 위해 불노초를 캐오라던 진시황제를 떠올렸을 테고 누군가는 덧없는 삶에 대한 환멸로 자살한 숱한 예술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과 다르다. 우리는 언제까지 직립보행하며 살 수 있을까.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아니 그렇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인 실존적인 몸과 건강 문제 앞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순 없다.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만큼 건강권도 소중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오늘을 살 수 있는 ‘행복’이 허락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두 발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남은 시간에 경의를.

문 : 건강한 사람을 정의한다면?

답 :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 - 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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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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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구름이 몰려오니 조심하라 인간들이여!

이렇게 그대가 말할 때,

창조하는 자들은 모두 가혹하다,

이렇게 그대가 가르칠 때,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날씨의 조짐에 대해 얼마나 조예가 깊은지!

_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는 인류사를 땅과 대양의 힘이 부딪치는 ‘투쟁’으로 요약한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곧 문명의 역사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이성과 합리성의 지배를 받지만 인식론과 존재론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다. 여전히 ‘감정’ 혹은 ‘감성’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아니 특징과 개성을 전제로 선택과 판단을 가늠할 수 있으며 삶의 목적과 가치, 즉 “뭣이 중헌디?”를 결정한다.

바람이 머물 순 없다. 오늘처럼 구름 낀 하늘에도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철학은 날씨를 바꾸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날씨가 철학적 관점을 흔드는 게 아닐까. 서동욱의 에세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밀란 쿤데라의 『불멸』, 황지우의 〈거룩한 식사〉, 플라톤의 『국가』,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장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헤로도토스의 『역사』,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등 고전과 문학과 사회학의 명저가 망라한다. 풍요로운 지적 산책에 동참하면 눈과 귀가 즐겁고 시야가 트이며 생각은 깊어지고 생각은 맑아진다. 현실을 벗어난 자리에 철학이 놓이는 게 아니라 철학적 사유로 현실을 긍정 혹은 부정하려는 태도가 낯설어 보이지만 자기 삶을 향유하고 그 깊이를 더하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 아닌가.

달콤한 말 한마디의 위로는 적지 않으며, 공감을 이끄는 한 문장이 힘을 주기도 하지만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현실과 매번 좌절하고 마는 연약한 결심과 ‘노오력’의 결과를 차분히 살피려면 생각의 근육이 필요하다. 닭가슴살과 계란을 챙겨 먹는 노력만큼 중요한 철학적 사유는 어떻게 채워질 수 있을까. 대개 책을 읽는 행위가 가장 무용하지만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을 도피하거나 망각을 위한 독서를 즐기는 사람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가장 치열한 투쟁의 도구로서 책, 자기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서동욱의 에세이는 기생충과 예술, 우울과 여행, 남녀관계, 인공지능, 근대와 주체, 염세주의, 느림과 환생, 나이듦과 죽음 등 매우 현실적이며 철학적인 주제를 고루 다룬다. 형식과 내용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가 두서없이 펼쳐지지만 각각의 주제에 천착하는 사유의 밀도는 단단하다. 끝끝내 밀어붙이지 못하고 ‘타협’하는 게 옳은 선택이 아닐 때가 많다. 언제나 경계에 서성이다 금을 밟고 후회한 적이 많다. 그 결정적 순간들, 선택의 무게와 책임 앞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거나 적당한 합리화 과정을 거쳐 인지 부조화를 극복한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내일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위안의 말 대신 산책을 권한다. 걷고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죽는다. 의학적 죽음이 아니라 성장을 멈추면 존재론적 사망 선고를 받는 법이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아도 혼자 걸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현실은 잔인하고 미래는 암울하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일은 결국 지금, 여기 각자의 생각과 태도가 결정하는 게 아닌가. 흐린 날이다. 이런 날 황지우는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온갖 고생에서 서리 같은 귀밑머리가 많아짐을 슬퍼하니,

늙고 초췌해져 이젠 흐린 술잔마저 멈추었네.

_두보, 〈등고登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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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안다는 것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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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안다는 게 가능한가. 예를 들어,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엄마의 착각이 아이를 망친다. 식성과 습관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으나 성장 과정에서 생각과 감정은 하루가 다르게 차이가 난다.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는데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는 도시의 전설은 여전하다. 부모 자식뿐 아니라 연인과 부부 관계만큼 오해가 심각한 경우도 드물다. 많은 사람이 에리히 프롬을 소환하고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거라고 되뇌지만 내가 바라보는 그, 혹은 그녀는 자신의 기대와 거리가 멀거나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리가 있다’는 게 디폴트 값이다. 리처드 니스벳의 탁월한 저서 『사람일까 상황일까』는 인간의 양면성을 상황 논리로 설명한다. 누구나 그럴 수 있고 사람은 앞뒤가 다르며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말과 행동을 한다.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하는 건 특정 직역, 정치인, 행정가, 공무원, 과학자의 논문 정도가 아닐까.

사람을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데이비드 브룩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관점이 달라진다. 우리, 아니 당신이 믿는 인간 혹은 세계는 어떤가. 서로를 깊이 알면 우리의 세계는 어떻게 넓어지냐고 묻는 저자에게 서로를 깊이 알면 다칠 뿐이라는 시니컬한 답을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소셜 애니멀』부터 관계에 집중했다.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며 인생의 태도를 점검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적 영감과 성찰을 준다는 점에서 공상과학에 가까운 자기계발서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저자의 지향점과 전제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례 중심으로 철학과 심리학, 문학과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소설과 영화를 가로지른다. 읽는 재미는 충분하며 인사이트도 충분하다. 모든 사람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 적당한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운 건, 사람마다 초점 자동 조절 기능으로 피사체를 선명하게 바라보는 기능을 장착한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 기대고 쇼펜하우어나 니체를 소환하고 템플 스테이와 명상을 시도하기도 하는 걸까. 정답이 없으니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만의 ‘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며 자기 정체성이다.

차이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고 조절해야 한다. 하나가 되려는 허튼 노력과 우리가 남이냐는 호소가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때로는 인맥과 인연을 강조하며 관계를 이용한다. 남이 하면 이기적 집단주의 카르텔, 내가 하면 처세술에 능한 성공한 인맥 관리일까. 정서적, 개인적 1차 관계와 공적 영역의 2차적 관계를 구분하는 공정한 세상, 합리적이고 평등한 사회는 ‘꿈’에 가까운 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최소한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에서라도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익히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간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지혜로움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책이 그러하듯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개별 독자의 몫이다.

“사람들은 개인의 정신적 경험을 세상에 투사한다. 그럼으로써 자기의 감각기관과 개인사, 목표, 기대치에 의해서 특정한 지각이 형성되었음을 망각한 채, 자기의 정신적 경험을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라 착각한다.” - 프로핏/드레이크베어 『지각Perception』 재인용,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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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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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이 끝나고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가 떠올랐고, 223차 모임 도서표지를 보고 이문구의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가 생각났다.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사투리 특유의 특징을 기막히게 살린 ‘재밌는’ 소설과 달리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날것 그대로인 ‘몸’을 드러내며 솔직함을 무기로 개별 독자의 몸을 돌아보게 한다.

한 남자의 몸에 관한 68년간의 기록은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1944년생 다니엘 페나크가 68세가 된 2012년에 출간한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보다 스무 살쯤 연상인 1923년생으로 설정했다. 경험과 생각 이상의 무언가를 쓸 수 없는 게 작가의 한계라면 이 소설 역시 자전적 경험이 바탕이 됐으리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의 몸은 거의 매일 걷거나 뛰고 오랫동안 서 있다. 중력을 극복하려는 헬서들의 노력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견디며 지나온 시간, 살아낸 인생을 고스란히 몸에 새긴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망각과 추억이 뒤섞여도 몸에 남은 흔적들은 어쩌지 못한다.

화자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동성애자 손자 등 오래 산 만큼 가족과 친구와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는다. 죽은 후에 딸 리종에게 남기는 형식의 글들이 간간이 섞여 있으나 두툼한 소설 한 권은 화자의 몸으로 쓴 인생을 표방한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몸, 주변인들의 몸에 대해 관찰한 기록, 비올레트의 죽음으로 사라진 몸, 몸이 없는 상상 속의 동생 도도 등 다양하게 맺은 관계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걸어온 길이 삶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펼친다. 다니엘 페나크는 거대한 몸의 서사를 표방하고 있으나 어쩌면 우리 몸의 기쁨과 슬픔, 욕망과 한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묻고 있는 듯하다.

따뜻한 봄나들이가 여름의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으나 남산과 한옥마을, 동대문 성곽길과 낙산공원, 함께 나눈 김밥과 샌드위치와 떡과 과일과 그리시니와 호두과자를 먹은 몸은 기억할 듯싶다. <책읽는 고양이>에서 시작해 밥집을 거쳐 다시 카페에 둘러앉아 계속된 책과 몸에 관한 우리들의 기나긴 이야기들이 울고 웃었던 시간도 우리 몸의 일부가 될 듯하다. 아픈 몸, 어머니의 몸, 건강한 몸, 좋아하는 몸...2분기 주제인 몸과 건강은 즉물적 삶의 실존적 토대다. 오롯이 자신에게 남겨진 몸을 돌보고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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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시선 500
안희연.황인찬 엮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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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만진 슬픔

_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창비시선 500 기념 시선집.

문지시인선 600과 봄에 만났다.

오래 만진 슬픔도 언젠가 지나가나 봄.

이건 다만 고통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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