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시선 500
안희연.황인찬 엮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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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만진 슬픔

_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창비시선 500 기념 시선집.

문지시인선 600과 봄에 만났다.

오래 만진 슬픔도 언젠가 지나가나 봄.

이건 다만 고통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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